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 번에 판타스틱 12월호에 실린 온다 리쿠 인터뷰에서 온다 리쿠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평가하면서 문학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기는 쟝르로서의 인식을 기반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고 독자의 시선에 맞추어 서비스 한다는 생각으로, 독자가 즐겁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글을 읽고, 일본문학은 이제 순문학보다는 쟝르문학이 대세고 쟝르문학이 판을 친다는 것은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삶의 성찰이나 사유가 목적이 아닌, 책을 읽는 목적이 글을 읽는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구나 싶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작가. 뭐 문학을 순수해야된다는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나. 그래봤자, 지루할 뿐이다. 평론가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세계문학의 탑을 차지한 책들. 제목만 유명했지 실제로 그 내용을 읽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나. 끽해야 다이제스트용으로 읽고 읽었다고 떠들어 댄 것이겠지. 서경식도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몇 번이나 포기했다고 하질 않나.  순문학의 거창한 문학이론들 이제 그만 떠들라고 해. 이젠 문학도 엔터테이먼트 사업이라고 하잖아. 쟝르 문학의 엔터테인먼트 기능, 그게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다. 솔직히 글로 남을 즐겁해 해 준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재능이냐고. 한 때 순문학이 아니면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의 편협한 세계관이 부끄러울 뿐이지 뭐. 그래서 독자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일본작가들의 노력 가상하다고 생각한다. 돈 내고 기꺼히 읽어주마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코너에 오츠이치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가 있길래 망설임 없이 집어들고 대출했다. 오츠이치의 <zoo>는 무서웠지만 그 이후에 읽은 <쓸쓸함의 주파수>는 괜찮아서(물론 이 책도 도서관), 이 책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살까말까 좀 망설였다. 워낙 이 책 소개코너에서 천재작가의 탄생을 알린 첫 작품이니 뭐니 해서 호기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으면 빌려 본 후에 구입해도 늦지 않다. 아무리 일본에서 책이 엔터테이먼트의 일종이라고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독자를 무슨 바보로 아냐. CSI 수사대가 이 책 읽으면서 웃겨서 배꼽 잡을라. 

17살에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17살이 쓴 티 팍팍 난다. 아마추어 글이다. 이야기의 발상은 독특하다. 그리고 재밌다. 독자를 위해 반전서비스까지. 애쓴 것은 용타. 인정하마. 하지만  전개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일뿐. 비과학적이것도 어느정도야 말이지. 과학적인 설득력 없는 이야기만 풍부할 뿐 작가가 이야기를 가지고 무리해서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소설이 전혀 설득력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 과연 아이들이 놀다가 친구가 죽으면 친구의 죽음을 숨기기에 급급할까 게다가 켄은 시체를 가지고 숨바꼭질까지 하면서 즐기기까지. 아, 물론 소설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내가 우문이라는 것은 안다. 이러한 설정을 가정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말이다. 이건 좀 설득력이 약하지 않나. 두 남매가 사쓰키한테 무슨 치명적인 약점이 잡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 앉자 있다가 켄의 여동생 야요이에게 사쓰키가 네 오빠를 좋아한다는 고백했다가 화가가 난 야오이가 사쓰키의 등을 탁 치는 바람에 나무에 떨어져 죽은 것인데, 어린 마음에 그 사실을 숨기고 싶다.......

둘. 과연 죽은 사쓰키를 아이들 둘이 옮길 수 있을까. 못해도 살아있을 때도 몸무게 30kg은 나갈텐데... 죽으면 더 빳빳해져 힘들지 않을까. 솔직히 성인인 나도 쌀 20kg 들어 쌀독에 옮겨 놓을라 치면 허리가 뻐근한데. 12살하고 아홉살짜리가 두 남매가 죽은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들고 옮겨 다닌다는 것이 설득력 no.(그냥 억세게 운 좋은 걸로 치부해!) 

셋, 마지막으로 시체 냄새인데, 그 자연적인 것을 숨길 수 있을까. 동네 양반들이 다 축농증 환자란 말이야. 내가 이 비과학성 때문에 네이버나 다음까지 다 뒤져 봤더니, 결과는 이렇더라. 

1.사체냉각:체온이 점점 떨어져 24시간 후면 주변 온도와 동일하게 됩니다.
2.사체건조:사람이 죽으면 수분 공급이 중단되므로 피부가 건조하게 됩니다.
3.각막혼탁:12시간 전후면 안개가 낀 것처럼되며 24시간이 지나면 현저히 흐려지고 48시간이 지나면 불투명하게 됩니다.
4.시반:통상 1시간 이후부터 저부위(발)에서 부터 적자색으로 나타납니다.
5.사체강직:사람이 죽으면 전신의 근육이 일시 이완되었다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근육이 점차 수축되어 다시 굳어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시강이라고도 한다.이는 근육의 수축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므로 근육이 잘 발달한 사람에게서 현저하며,노인이나 유아의 경우는 약하게 나타나고 속히 이완된다. 급사체는 지속시간이 길며 대체로 2-4시간에 턱관절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경과하면 어깨-발목-손발가락순으로 진행한다.전신에 미치는 시간은 12시간 정도 걸리나 주위의 온도가 높을 수록 빠르게 진행되며 3-4일 후에는 다시 이완된다. 

이 책의 계절적 배경은 여름막바지. 겨울도 아닌 다음에야 파리가 여기저기 출몰하는 계절에 죽은 시체은 깨끗. 이게 이게 말이나 되냐. 애들이 구더기 득실거리는 시체를 눈 깜짝하지 않고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나흘이나 버틴다는 게.  난 CSI에서 구더기 나오는 장면도 비위 상하던데. 나도 어른 장례 몇 번이나 치러본 사람이라, 이런 비과학적인, 설득력없는 비약은 도저히 못 봐주겠다.

아무리 소설이 가능성 있는 이야기의 산물이라지만, 독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장치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설득력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켄의 나이가 12살이 아니고 중고등학생이었다면, 그리고 켄의 품성이 냉혹하거나 불량했더라면, (혹 켄이 훗날 <zoo>의 단편 seven rooms의 그 살인마 아닐까하고 엉뚱한 생각이 나더라니깐) 그래, 그 정도면 어린아이 시체 하나쯤이야 옮기기도 쉽지하는 생각이나 들지. 애들 장난에 그냥 속아넘어 간다. 하지만 오츠이치에게 천재라는 수식은  빼 줘라.  다른 작가들보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트릭이 강해 재미가 있을 뿐, 천재까지는 아니다. 자신도 이 수식어에 낯뜨겁겠다. 미국쪽에서는 이 작가 팝노블 작가로 분류하던데.  마지막으로  켄, 넌 타인의 죽음의 그렇게 즐겁다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goth는 기다려지지만, 이번에도 천재 타이틀 붙어있으면 안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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