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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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인가,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가 막 극장 개봉을 앞 둘 무렵에, 신랑이 읽을거리가 뭐 없나 싶어 책장을 쭈욱 훑어보더니,

신랑, "어라, 이거 윌 스미스 영화제목 아니야."

나,    시큰둥하게 "맞아"

신랑, "이게 원작이냐?"

나,    또 시큰둥하게 "응"

신랑, "읽었니, 재밌어?"

나,    좀 겸연쩍어서 "아니, 아직!"

신랑, (사다 놓기만 하고 왜 안 읽는데,라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흘낏 보더니)

      "이 책이나 읽어볼까나"

나,   "웬일로!"

그날 저녁, 신랑 소파에 기대어 이 책 다 읽고 나서는, 나한테 휙 집어던지며 하는말. "뭐야, 재미 없잖아." 

평소에도 공포물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 책이 재밌을 리가 없다. 게다가 1954년 작품이니 반세기도 더 지난 책이다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50년동안 글쓰기의 트랜드도 변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는 더욱더 영상적으로 변했고 영악해졌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져 있지 않는 한, 반세기전에 출가된 작품을 재밌게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이 스티븐 킹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그리고 윌 스미스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이 책에 어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에 재미를 못 본  신랑의 말 한마디가 아무래도 내 머리속에 눌러 붙어 있었나보다. 한동안 이 책 잊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얼마나 재미없길래 신랑 입에서 그렇게 볼멘 소리가 나오나 싶어 읽었다. 하.지.만. 난 이 책이 무척이나 맘에 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누구나 있을 법한 감상적인 신세타령도 없다. 조잡스럽지 않는 심리묘사나 건조함이 로버트 네빌의 고립된 상황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졌다.   

서른 여섯살, 평범한 인상의 영국계 독일인. 단호해 보이는 입과 밝은 청색의 눈동자를 가진 로버트 네빌. 네빌은 자신의 집을 견고한 무기로 삼아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무엇을 위해서. 그는 왜 살아서 자신을 좀비로부터 지켜야 했을까. 그의 고립은 무인도에 갇혀 있는 그런 고립하고는 다르다. 무인도의 고립은 적어도 자신이 언젠가는 구출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는 끈이라도 있지만, 네빌이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다. 그의 집 주변에는 실존적 존재인 좀비가 밤마다 그의 피를 갈구하며 맴 돌고 있고, 그는 밤하늘의 별조차 볼 수 없다.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고립. 그는 왜 살아남아, 좀비와 대응해야 했을까. 어차피 좀비를 없앴다고 해도, 이 지구상에 생존자는 네빌뿐인데.  같은 뜻을 가진 반란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인류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란 존재는 한 때 푸른 지구 위에서 존재했던, 먼 옛날의 이야기일뿐텐데. 그의 생존은 부질없고 희망없는 존재의 의의를 전혀 느낄 수 없는데 말이다. 내가 만약 네빌과 같은 입장에 처해 있다면, 나의 최후의 선택은 아마 좀비라는 유형의 공포로 인해 미쳐버리거나 자살할지도 모르겠다. 산들 뭐해.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아둥바둥 살아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 길거리에 뒹구는 시체들이나 치우고 기껏해야 도서관에서 좀비관련 서적을 가져와 책을 읽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자신의 삶을 엿가락처럼 길게 들여봐야 죽을 때까지 혼자 인걸. 자연적인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의 외로움이나 고립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데, 네빌은 왜 끝까지 살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 고통스러운 외로움(개를 친구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네빌을 떠올릴 때면 그의 외로움이 얼마나 크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과 공포속에서 그가 사는 이유는.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네빌이 정말로 두려워 한것은 죽음도 공포도 아닌, 좀비가 되어 사는 것이라는 것을. 신인류 좀비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네빌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221p).  

이 땅위에서 그가 원하는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좀비의 형태가 아닌. 그는 강하게 다수가 되길 거부하면서까지 자신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칠 수 없고 자살을 할 수 없었으리라.  마지막 장면은 나의 하나의 사고와 하나의 감정이 교차하여 일치점을 만들어 냈다. 그래, 네빌 당신의 죽음은 이제 전설이 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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