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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 유명 작가들의 별난 소년 시절 이야기
존 셰르카 엮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에서 풍기는 남자가 된다는 것의 어감이 동네 똘마니 불량배들을 만난 것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경멸을 자아내, 이 책 살까말까 고민 좀 했었다.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난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처럼 사내는 이래야된다라고 앙팡지게 아들에게 주입하거나 몰아부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다 책을 읽은 죄라면 죄 아니겠는가. 살면서 책하고는 담 쌓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는 남자가 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책 깨나 읽었다는 나는 아들에게 중성적인 성향을 요구하고 사내라는 말조차 거부감이 드니 말이다.
예전에 샬롯 졸로트의 <윌리엄의 인형>이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윌리엄은 공놀이을 하는 것보다는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 하는 사내아이다. 게이성향이 드러난다고 할까나. 당연히 윌리엄의 아빠로서는 심히 못마땅할 수 밖에. 그는 인형을 갖고 노는 윌리엄을 윽박질러 사내애처럼 키우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그 아이 성향이 있는데 아버지 뜻대로 되간.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윌리엄은 인형을 갖고 놀지 못 하게 되자, 슬픔을 느낀다. 그러자 윌리엄의 할머니가 윌리엄의 아버지를 설득하고 나선다. 어차피 아이가 커서 아버지가 되면, 아기를 돌봐야하지 않겠냐고. 윌리엄이 지금 하는 인형놀이는 나중에 아버지가 되긴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머니가 윌리엄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끝나는 그림책이었는데, 몇 년 전에 이 책 읽었을 때, 그 거부감은 실로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우리 아들애가 5살 무렵이었는데, 그 때만해도 남자아이에게 이런 계집애같은 행위나 샌님같은 행동은, 아무리 유명그림책이지만 받아들여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근게 이게 웬걸! 지금은 남자가 된다는 것이라는 책제목에 반감이 슬면시 생기니, 이게 뭔 조화여. 학습효과의 성공적인 결과라고 해야하나. 일단 서점에서 책소개를 에는 미국 유명 글쟁이들이 대거 참가하여 쓴 잡문성격이 강한 글이어서 읽어 볼 만 한 것 같았고, 현재 미국에서 잘나가는 작가가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림책 작가들이 글을 쓴 거라서 일단 구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토요일에 받아 보았는데, 이 책 받고 그 날 하루만에 다 읽어치웠다. 존 셰스카의 주도하에 현재 미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 편집장 그리고 작가들이 남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형식에 구애됨 없이 쓴 글들이다. 제목만큼 남자다움을 선언한 글은 대런 샌의 사나이 선언문 정도이다.대부분 자신의 요절복통 어린 시절의 회고담인데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운을 남겨준다. 게중에는 성의 없는 글이 한 두개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 내 미국그림책 작가들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하는 필독책이다. 대체로 그림책 작가들은 토크쇼에 초대되는 법이 없으니깐, 이렇게 책으로 밖에 그들에 대한 어린시절의 정보라든가 에피소들 알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국땅에 앉아 미국내 그림책 세계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우습고 미국내 그림책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잘 모르지만, 그네들의 책이 한권 한권씩 쌓이면서 드는 생각은 미국내 그림책 작가들이 서로 간의 친분 관계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타의 다른 분야 보다도 확실하고 공동작업등 서로 주고 받은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림책 시장이 워낙 파워을 형성할 만한 세력이 아니어서 눈에 안 뜨는 것 뿐이지, 그림책이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서로간의 이해와 친화력이 그들을 강력하게 묶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드는 생각. 존 셰스카와 친한 레인 스미스는 왜 빠진 거지.
01소년, 남자가 되다, 02맞아, 우리 땐 누구나 그래, 03아빠와 아들만의 이야기, 04상상력이 우릴 구원할거야, 05우릴 미치게 했던 것들 그리고 06꿈은 이렇게 시작됐지 6개의 소제목으로 나눠 작가들이 나름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어린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것. 걸죽한 입담의 소유자 존 셰스카는 다섯형제중 둘째로 자랐으며 <안돼, 데이빗>의 작가 데이빗 섀논은 자신의 작품의 탄생배경을 이야기하고, 우리 딸애가 좋아하는 그림책 <거미와 파리>의 토니 디터리치의 그림책 작가가 된 상상력의 근원지를 이야기하고, 학교 다닐때 부터 반항적인 대니얼 핸들러 등 그림책 작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고 대체로 글들이 재밌어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놓기 싫어진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중 아는 사람은 한 1/3정도. 그 밖의 사람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대표작들이 따로 소개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준 데이빗 클래스의 <울아빠>였는데, 독자인 나에게 묘한 여운을 남겨놓을 정도로 작가가 진심으로 이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ps- 미국애들은 운동에 미쳐, 책이라면 안 읽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 한결같이 탄탄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우리네가 어릴 때부터 논술이네 전집이니 뭐 열심히 시키고 사다 받치는 거에 비하면 펄프픽션이나 잡지 나부랭이나 읽은 애네들은 왜 이렇게 글을 잘 쓰고 자신만의 문장이 있는지 모르겠다. 궁금해. 궁금하다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