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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의 유산 ㅣ VivaVivo (비바비보) 1
시오도어 테일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9월
평점 :
결혼하기 전에는 비참할 정도로 외로웠다. 형제자매들이 결혼하기 전, 같이 살 때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몰랐었는데, 그들이 결혼해 나가 집안에 부모님과 나 셋이서 같이 살기 시작하기하자마자 집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아 외롭다라는 느낌을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글쎄, 그 때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그래봤자 회사직원 40명 조금 넘는) 살갑게 구는 회사후배와 여기저기 싸다기는 했고 여자친구와 늘 만나기는 했지만 마음 한 귀탱이는 늘 허전했다. 게다가 여중,여고,여대를 나오는 바람에 20대후반까지도 연애다운 연애는 커녕 남자라고는 사귀어 본 적도 없어(물론 한 두번 만나는 소개팅정도는 해보았지만) 연애를 어떻게 걸어야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20대 후반까지도 말이다. 윽! 지금 생각해보면 내 20대 인생 후졌다라는 말이 절로.
그러다 거래처 직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애를 낳자마자 외로움은 커녕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그런데로 아이들이 커서 책도읽고 영화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와지기 했지만 말이다. 뭐랄까. 그래도 아이들하고 떨어져 나 혼자 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둘째가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자 큰 애가 학교 간 사이에도 둘째랑 어쩔 수 없이 같이 있으니깐, 집에서 혼자 있고 싶다라는 생각이 부쩍 간절해졌다. 그러다 보니 별 것도 아닌일로 아이한테 신경질내고... 좀 포악해졌다고 해야하나.
이 책 <티모시의 유산>은 내가 아이들한테 받은 스트레스가 한창 하늘을 찌를 때, 아직까지 신간 서적에 1000원 쿠폰이 남발할 때 사서 읽은 책이었다. 올 해 안으로 이 책 리뷰나 써야지 했는데, 지금에서야 쓰게 되네.
" 나는 한동안 티모시의 곁에 머물고 있었다.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혹시 이미 그가 가버린 그곳에 나도 같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살다 보면 정말 그렇게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나는 또 다시 잠이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깨었을 때, 어디선가 휘미하게 야옹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스튜를 끌어안고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죽어 버린 티모시 곁에서. 아무도 찾이 않는 외딴 섬 한 가운데 눈이 멀어 버린 채 혼자서."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고 싶어 아이들한테 포악스럽게 굴때, 책장에서 꺼내서 읽는 대목이다. 빌레스타트라는 곳에서 사는 필립은 2차 세계대전 적국의 위협으로부으로 피신하기 엄마의 고향 버지니아로 가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적의 공격을 받고 난파당한다. 의식을 되찾자 그는 흑인 티모시와 함께 뗏목위에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필립과 티모시 그리고 고양이 스튜와 망망대해에서 떠다니다가 필립은 적의 공격을 받을 당시 뮌가에 강타당했는데 그로 인해 시력을 잃어 버린다. 티모시가 흑인이라는 것과 평상시 엄마의 흑인비하로 필립은 그를 경멸하지만 악마의 아가리라는 작은 섬에서 같이 살게 되면서 그를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른다. 티모시가 눈이 앞 보이게 된 필립을 위해 섬 곳곳에 밧줄을 설치하고 먹을 것을 잡는 법을 가르친다. 이 대목은 섬에 태풍이 불어오고 그 태풍으로 티모시가 죽자, 무서움보다는 혼자라는 두려움에 죽은 티모시의 시체옆에 있는 필립의 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귀찮아 질때, 혼자 있던 20대 후반을 생각하고 필립을 생각한다. 지도에도 없는 섬에 혼자 남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필립을 말이다. 소년의 시급은 당장 외로움보다 생존이 먼저였겠지만 아이들의 쌈박질과 텔레비젼 소리로 나날이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에게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섬 한 가운데 눈이 멀어 버린채 혼자서"라는 대목은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고 하는 나의 처지가 그래도 필립보다는 낫구나하는 쓴 웃음일지언정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 읽고 어쩌면 책이란 저마다의 개인적인 해석을 부여할 수 있구나 싶었다. 이 책의 의도는 흑백가의 인종 화해라는 측면이 강하던데 그래서 "두 눈을 잃고 나서야, 소년은 비로소 진짜 세상을 보게 되었다"라고 소개되었을 정도니.... 근데 말이다. 난 흑백의 갈등으로도 읽히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입맛에 맞게 읽히니.... 그래서 생각난 게 "볼 수 있다는 것"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색을 구분하고 미와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하고, 잘난 놈과 못난 놈을 가릴 수 있고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능력은 편견도 같이 자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본다는 게 다는 아닌데, 우리는 너무나 겉만 보고 판단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눈이 없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휠씬 나은 세상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