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신작이 예약판매중인데, 제목이 흥미롭다. 일인칭 단수,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싫어하는 시점이 일인칭 시점인데,

일단 나는, 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건의 전체적이고 입체적인 흐름을 알 수 없고 이상하게 자기 고백적(혹은 독백적 혹은 내면적 혹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으로 처지는 느낌이 나서, 일인칭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믿고 거른다.

그래서 내가 극혐하는 시점인 일인칭 단수,라는 제목을 본 순간, 어 뭐지??? 왜 일인칭이야? 일인칭 시점 캐릭터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려고?? 물론 일인칭 시점을 다루는 그만의 방식이 있겠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만만찮은 하루키가 아니 이야기로 할 말이 많은 작가가 일인칭 시점은 소설 캐릭터들의 행동반경이 넓지 않아, 운신의 폭이 좁을텐데, 다 담아낼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선호하는 시점은 뭘까? 모든 이야기를 풀고 싶을 때 역시 작가 시점이 제일 좋지 않을까? 일인칭 시점을 선택할 때는 작가들이 한번쯤은 고심해 보지 않을까? 그리고 독자도 읽고 나서 아, 이건 작가 시점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하면서 안타까운 작품이 있을 수 있지 않으려나.

내 독서 경험상으로, 상반기에 읽은 GV 빌런 고태경,이 딱 그런 소설이었다. 재밌게 읽은 일인칭 소설이었지만( 캐릭터도 좋고 이야기 흐름도 좋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 아 이 작품은 삼인칭 작가 시점이었으면 더 좋은 작품으로 남었을텐데, 작가가 처음 몇 장만이라고 일인칭도 써 보고 삼인칭도 써 보는 테스트를 했더라면, 휠씬 더 좋은 작품으로 남지 않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적어도 나는 고태경의 실체 그리고 그의 본심을 알고 싶었기에, 작가가 일인칭 시점을 내세운 건 두고두고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사실 우리 나라 작가들이 유독 일인칭 소설을 애정애정해서.. 나랑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작가들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낼지 고심은 하겠지만, 좀 더 3인칭 시점으로 캐릭터나 이야기의 스케일을 키워보는 것, 이게 한국 문학의 과제 아닐런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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