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
앤 비티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단편은 늘 내게 어렵다. 그저 읽은 것이 많다고 자랑하고 싶던 철부지 때는 분량이 짧은 단편을 선호하기도 했지만, 깊이 있는 책 읽기를 하고자 결심한 다음부터는 유독 단편이 어렵게 느껴져 잘 안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기억을 되새겨 보아도 최근에 읽은 단편집이라고는 재작년에 읽었던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가 다일 정도로 마땅히 떠오르는 단편집도 없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읽은 <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도 처음에는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그냥 지나쳤었다. 내가 어려워하는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인데다가 작가도 외국 작가로 내게는 생소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이 책 제목이 자꾸 생각이 났고, 제목이 된 해당 단편 내용이 궁금해 결국 신청해 만나게 되었다.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저자 앤 비티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한 작품들 중 주로 그의 초기작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시간적 배경이 지금으로부터는 약 40년 전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음악과 영화배우 등이 많이 등장한다. 지금은 매체의 발달로 40년 전 대중문화를 영상이나 음원으로 접할 수 있기는 하나, 이 단편집을 통해서는 그 당시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어떻게 소비했는지 그 모습도 함께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역자가 주석을 통해 설명도 따로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록 음악 등으로 대표되는 히피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나도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들 속에 녹아들어 있던 당시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작품들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수록된 9편의 단편 모두 하나같이 명확하게 끝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어느 한 부분에서 갑자기 이야기가 멈추어 버려 꺄우뚱 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작품에서 나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이야기들이 사실 많다.

 


수록된 단편들을 모두 읽고 나서야 역자 후기를 통해 그것이 앤 비티의 초기 단편소설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았다. 앤 비트 스스로도 자신의 초기작들에 대해 "공식 사진이라기보다는 스냅사진에 가깝다."(p.271)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보통의 소설들과 달리 일상의 한 단면만을 쓱 보여주고는 끝나버린다. 역자가 지적했듯 '아내가 사는 집'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등장하는 클라우디아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이 따로 제시되지 않고 결국 끝나버린다. 그리고 '늑대 꿈'에서는 신시아가 찰리와 결국 헤어지는지,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않고, '도시의 저주'에서는 카를로스와 마이클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또한 보여주지 않고 끝나버린다.

 


이처럼 수록된 9편의 단편 모두가 일상의 어느 한 단면만을 보여주고는 끝나버린다. 그래서 그 뒤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이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던 게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던 작품들의 특징이 아니었나 싶다. 이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 이야기만 한다. 서로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상황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을 좀처럼 이해하기가, 알 수가 없어서 그 뒤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다른 단편들의 숨겨진 결말들도 궁금하지만 이 단편집을 읽게 만들었던 2번째 수록 작품, '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에서 엘런은 결국 살아왔던 대로 살게 될지,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고 서부로 떠난 샘처럼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날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하다. "나는 행복하지가 않아요."(p.40)라고 말하던 샘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 후, 보내 온 엽서에 적혀 있던 "서부로 오세요.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시도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p.47)라는 말이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시도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라는 그 말이 엘런에게도 똑같은 두근거림을 선물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 나는 타인들의 눈에 벗어나 샘처럼 살 용기가 없기에 앨런만이라도 그렇게 자신을 찾아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 수 있었으면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읽은 <온전한 나로 살지 않은 상처>도 예전에 읽었던 <카스테라>만큼이나 나의 이해력과 상상력이 얼마나 바닥인지 보여주는 단편집이었던 것 같다. 훗날 이 단편집을 다시 만나면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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