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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36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현 옮김 / 북로드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법을 안다. 마음을 구부릴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으며, 겨울동안 폐쇄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오만가지 방식으로 마음을 조져버릴 수도 있다. -p. 29
배에 립스틱으로 걸레라는 단어가 쓰여진 채 알몸으로 다리 밑으로 투신 자살한 여자. 그런 여자를 멀리서 바라보며 혼자 되뇌는 남자의 독백.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할 수 있음을 자신감있는 어조로 이야기 한다. 단순한 조종을 뛰어넘어 한 사람을 자살로까지 몰고갈 수 있는 그의 능력과 기술은 대체 무엇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인트로다.
여느 추리 소설에 비해 이 책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심리 스릴러물이라는 점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불온한 세력들을 잡아들여 고문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캐내는 일을 했던 영국 정보부 소속 군인 기디온, 그리고 그와 심리 두뇌게임을 하는 저명한 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박사. 소설을 이뜰어 가는 메인 캐릭터들의 직업 자체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일과 관련 이 있다. 전자는 마음을 읽고 틈을 만들어 부수는데 목적이 있다면, 후자는 마음을 열게하여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다. 게다가 기디온은 딸과 부인을 잃은 사람이고, 조눈 딸과 부인을 지키려는 자이다. 직업부터 자신들이 처한 상황까지 극과 극에 놓여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나 가족을 잃고 마음이 부서져버린 기디언과 파킨슨병에 걸려 움직일 수 없는 몸에 정신이 갇혀 버린 조 역시 마음이 부서져 간다. 그러한 과정들이 세심하게 잘 그려져 있고, 그들의 심리 변화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책 뒷면에 쓰여진 문구들처럼 한 번 붙잡으면 쉬이 멈출 수 없는 강렬한 흡입력을 가진 추리 소설이다. 살인의 이유, 살인의 방법, 그리고 그 과정 전체가 긴장감있고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자체도 그러하지만 서서히 내 목을 조여오는 것만 같은 생생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들 뿐만 아니라 마치 나의 은밀한 세계 역시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가 나를 사로잡는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고, 누구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비밀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상대에게 까발려 진다면, 특히나 지키고 싶은 누군가와 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떠한 짓이든 주저없이 행할 수 있을것만 같다. 그러한 설정 자체가 너무나 두렵고, 또한 특정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무섭게 다가온다.
과연 마음이 부서지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기디온과 조가 들었던 그 소리가 쉬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실은 듣고 싶지 않은 걸테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을 여는 법을 안다. 마음을 구부릴 수도 있고, 부술 수도 있으며, 겨울동안 폐쇄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오만가지 방식으로 마음을 조져버릴 수도 있다.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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