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위로다 - 명화에서 찾은 삶의 가치, 그리고 살아갈 용기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에 다니던 무렵, 학교가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도통 여유라는 것이 없었다. 학교 수업 듣고, 과제하고, 시험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나면 남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가끔 같은 과 친구들이 무슨 전시회를 보고 왔다거나 뮤지컬, 연극 공연을 보고 왔다고 말하는 날이면 어쩐지 서글프기도 하고, 나만 겉도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일단은 예술이라는 분야 자체에문외한인데다가 당시에는 그 비용이 엄청나게 큰 금액으로 느껴졌었다. 지금도 물론 유명한 뮤지컬 공연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내지만. 그러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모네 전을 갔었다. 어떠한 사전 지식도 없었고, 유명한 그의 그림도 아는 것이 없었다. 묘한 이질감을 느끼며 미술관을 배회하던 그 때 발길을 사로잡는 그림이 있었다. 풍차가 그려진 그림이었는데, 붉게 물든 꽃밭과 파란 하늘이 시선을 끌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평범한 풍경화였겠지만 나는 어쩐지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다. 꾸역꾸역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도 그 그림이 다시 보고 싶어 여러 번 그 앞을 서성거렸다. 결국 그 그림이 프린트 된 엽서 한 장을 사서 돌아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그 날의 만족감과 행복감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고, 바쁨에 찌들어가고 있을 때 인스타그램에서 소영님을 만나게 되었다. 정말 꾸준하게 매일밤 그림을 보여주시고, 작가나 작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림도 있었고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드는 그림도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단조롭게 하루를 보낸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소영님의 글과 그림을 책으로 만나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일단은 인스타그램 창보다 훨씬 크고 선명하게 그림들을 만날 수 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맨질맨질한 종이 위에 알록달록 선명하게 드러난 색깔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록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좋다. 역시 책은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는 맛이 있달까. 책 속에는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작품이나 작가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이 담겨 있다. 마치 엄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생소한 작가나 그림이 등장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엔 어떤 작품과 작가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고 설레인다. 그리고 명화 에세이답게 그녀의 삶과 생각, 감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대생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부유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전해주는 미대생의 현실 또한 녹록치 않다. 어쩌면 평범하다면 평범할 우리들의 삶보다 더 고단할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예술가나 큐레이터처럼 마냥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치열하게 과제와 시험을 준비하고, 취업을 고민한다. 오히려 미대생이기에 지원할 수 있는 자리 자체가 현저히 적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젊은 나이에 미술 교육과 관련된 사업을 시작했기때문에 남몰래 눈물 흘려야 했던 날도 몹시 많았던 것 같다. 그녀는 담담하게 사랑과 이별의 기쁨과 아픔, 그리고 삶의 고단함과 소소한 행복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그녀가 그림과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몹시나 평범하고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다. 그녀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그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다채로운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나 예술 작품들이-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삶과 관련한 무수한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림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해답을 찾아갈 것인지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준다.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며 같이 울고, 웃는 과정에서 오래전부터 나와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해 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마음 속 깊이 응어리져있던, 이름모를 감정들이 마침내 제 이름을 찾고 흘러 나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써 그림을 보여주고, 그 그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마음을 추스렸는지 이야기해준다. 누구나 해왔던 고민이자 경험해야하는 과정이었음을 알려준다. 멋진 백마디 말보다 그림 한장이 주는 공감과 위로란 얼마나 뭉클하고 잔잔하게 전해져 오는지. 

역시 그림의 힘, 그림이 건네는 위로란 대단하다. 매일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관련된 작품들을 보고 나면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에 대한 자그마한 희망과 함께. 매일 지옥같이 느껴지고 별 것 없는 나의 일상이 누군가의 눈과 손을 통해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되었기 때문이다. 눈부신 순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누리는 이 일 분, 일 초를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심미안과 날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찾게 된다. 내가 대충 흘려버린 하루가 누구에겐 너무나 간절했던 하루일 수 있고, 예술가의 눈을 통하면 그것 역시 작품이 되니까.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보고 듣고 느껴야겠다. 그리고 나의 하루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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