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지구의 운명이 대책없는 연애 고자들, 샘과 로라에게 달렸다! 심각하게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영위해 오던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키스 해야만 지구 종말을 막을 수 있다.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구원 투수는기적부 소속 천사 샘과 일라이자이다. 우리 천사들은 무수한 우연과 기적을 만들어내 제한시간 이내에 그 둘의 만남과 키스를 성사시킬 수 있을까?

만화같은 설정과 책표지가 눈을 끄는 책이다. 신이 정말 존재하는 걸까 불신스럽기만한 현대에 천사와 종말 이야기라니 유치하진 않을까 반신반의 하며 첫장을 넘겼다. 그런데 염려와는 달리 가독성도 좋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반적으로 유머러스하고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이어져 통통 튀는 맛이 있고, 그 안에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고민, 양면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기도와 기적의 의미, 매너리즘에 빠진 천사들 등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요소들- 그 분에 대한 믿음이 신실한 분도 아닌 분도, 모두- 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그래도 절대 내용이 무거워지지 않고 시종일관 상큼발랄함을 유지한다. 등장 인물들 마저도 평균 이하(?) 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찌들고 우울한 구석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격이 만사태평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재미없는 인생을 살면서 나름의 소소한 재미 -객관적으로는 전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를 찾아가며 살기 힘들 것이다. 모자란 듯 하면서도 용케용케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면 묘하게 위로도 되고 힘이 난달까. 정말 한 편의 유쾌한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만 읽다 보면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하는데 다름 아닌 두 주인공 때문이다!! 지구에 종말을 던지기로 결심한 하나님도 황당하지만 그 실행 여부를 건 내기가 샘과 로라의 사랑이라니... 정말 이런 일이 천국과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당장 뉴욕으로 날아가 이 둘 입술 박치기부터 시킬 것 같다. 이들의 연애 과정을 보고 있자니 정말 답답하고 지지부진하고, 나중엔 헛웃음까지 터진다. 요새도 이런 인물들이 있을까 싶지만 잘 생각해 보면 주변에 적어도 한 둘은 있다. 번번히 타이밍 놓치고 고심고심한 멘트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자신감 제로인 사람들. 이런 사람 하나만 보고 있어도 속이 터지는데 그 짝사랑 상대까지 이러한 상태라면?! 으으으으으으 정말 환상의 짝궁이다. 그래서 지구 종말의 카운트 다운 따위는 잊고 이 두 사람의 연애 거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읽다 보면 지구야 어찌 됐든 니네 둘은 좀 되라 되! 라고 외치게 된달까. 그만큼 어리숙하고 사랑스런(?) 한 쌍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샘과 로라를 욕하며 답답해 하는 천사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도 도찐개찐인 것 같다만. 이 대책없는 커플의 연애 코치마저 이 모양이라니 상황 참 웃기다.


누가 지구 종말을 이토록 심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그릴 수 있을까. snl 작가였던 그의 이력이 돋보이는, 즐거운 책인 것 같다! 해학과 풍자를 품은 아니러니한 상황들을 소재로 사용한 점도 그렇고 특징이 없는 듯 하면서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을 봐도 그렇다. snl의 짧은 꽁트 안에 온전히 녹아들면서도 무언가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특징적인 배우들처럼! 친근감있게 그려진 천사들과 하나님을 보는 재미로 시종일관 웃으며 읽기 좋다. 더불어 늘 불평만 하고 사는 인간들과 지구를 돌보느라 지쳐있을 천국주식회사 직원들과 CEO들을 생각해 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무 불평불만만 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실제로 작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한 채 무심하게 지나치는 건 아닌지. 하루하루를 좀 더 즐겁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길 기도해 본다.

인간들한테 계시를 보내는 건 어려운 일이예요. 인간들은 100번 중 99번은 계시를 놓치죠. 아무리 대놓고 알려줘도 마찬가지예요 -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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