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
파(pha) 지음, 한호정 옮김 / 동아시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하반기 공개 채용이 끝났다. 주변에 울상이 된 친구나 후배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자신의 회사에 레고처럼 딱 들어맞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처럼 채용되는 인원 자체가 적다. 채용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데 불러주는 곳은 적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다.

참 우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대체너는 어떠한 사람이기에 이 각박한 시기에 빈둥빈둥, 그것도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살라고 권하는지 궁금해졌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많아 그냥 게으르게 살아도 되는건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일단 이 사람의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생각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하루 종일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거나 컴퓨터, 혹은 만화책 같은 것으로 잉여롭게 보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꽤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나름 알차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기 때문에 일을 할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는 말도 일면 수긍이 된다. 세상만사가 피곤한 이 사람에게는 이러한 일상적인 생활만으로도 이미 빠듯함이 느껴진달까. 심지어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 읽고, 블로그에 글도 올리고 나름 교양있고 생산적인 활동은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쩌면 양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아예 부모님이 주신 돈이나 까먹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광고를 올리든 생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돈은 벌고 있었다. 대신에 차, 집, 연애, 결혼, 쇼핑, 여행 등과 같이 보편적인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들을 포기한 것뿐이다. 

 
마치 회사에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받았지만, 그 돈으로 시간을 다시 사는 것을 반복하는 짓 같았다.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보람 같은 그런 거창한 것 없어도, 일단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밥과 잘 곳과 지루함을 달래줄 수단, 그리고 친구만 있다면, 인생 그것으로 충분하다. 

 

 

 단지 일이라는 것 자체가 싫어, 노동을 하지 않으려고 무작정 놀기만하는 것도 아니다. 회사 생활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것뿐 무언가를 만들거나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자 한다. 이와 동시에 타인들과의 교류도 이어간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순탄한 니트족 생활을 알차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무료한 생활을 반복할 경우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니트족 역시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 즐거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정서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으므로 나름의 목표, 향상심은 반드시 필요하다. 활발하게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거나 재미를 위해 독학으로 배운 프로그래밍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소설만 읽은 문과생에다가 컴맹이란다- 스킬을 이용하여 웹서비스를 공개해 그 쪽에 올린 광고로 얻는 월수익이 5천엔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7~8만엔을 번다니 이 사람의 생활을 영위하기에 딱히 부족한 금액은 아닌 듯 싶다. 

부모 집에서 니트족짓을 하고 있으면 가족들한테 잔소리를 듣게 되고, 일도 없는데 혼자 살면 외로워지기 십상이다. 쉐어하우스라면 주변 사람들과 적당히 떠들며 놀고, 가끔 찾아오는 손님을 상대해주고 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 모아두었던 돈은 2년 만에 바닥이 나고,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얻는 소소한 수입에 기대어 살고 있다. 금전적으로는 빠듯한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재미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어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사지 않아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인터넷에 도와달라고 올린단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려 아파서 누워있다던가, 대만에 이러이러한 일로 꼭 가고 싶은데 도와달라던가. 그러면 적은 액수라고 돈을 보내주는 기부자들이 있다는데 참 놀라운 일이다. 그의 글들을 보고 희망과 재미를 얻었기 때문에 기꺼이 보내주는 돈인건지, 인터넷 친구지만 정이 쌓였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은건지 의문스럽긴 하다. 지나치게 솔직한 도움 요청이 조금은 뻔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니트족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장착된 얼굴의 철판을 이렇게도 응용하는 순간이 오나보다. 

누구나 ‘재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라거나 ‘병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라는 마음은 모두 갖고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전면적으로 지원을 해줄 수는 없어도 500엔이나 1,000엔 정도는 내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1,000엔으로 만화책을 사는 것보다 1,000엔을 니트족에게 주고 그 사람이 어떻게 쓰나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나도 가난해서 500엔이나 1,000엔 정도밖에 줄 수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콘텐츠로서 재미있다고 느껴서이기도 하고, 내가 솔선수범해서 그렇게 돈을 보태줌으로써 가볍게 돈을 보내주는 행위가 정착되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에서 정말 이 사람이 뼛 속까지 니트족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선에서 안 되면 과감히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의 경우 노동하지 않고 불쌍함을 내세워 구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에 조금은 뻔뻔하게 느껴졌지만- 그에 대한 본인만의 명분도 뚜렷하다. 적어도 이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니트족 양산을 위한 제도적 방안까지 생각해 주시니 그야말로 니트족을 염원하거나 이미 니트족인 사람들의 추앙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아무 생각없이 빈둥거리는 니트족은 그냥 백수일 뿐 진정한 니트족이되려면 뚜렷한 사상과 치명적인(?) 매력이 필요한 것 같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을 위해 모두가 인터넷을 통해 소액의 돈을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해서 순조롭게 굴러간다면, 그것은 보험회사라는 물주 없이 보험제도와 똑같은 효과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와 같이 모두가 자기보다 가난해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수입 중 2% 정도를 준다면, 그것은 지금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누진과세나 생활보험 같은 ‘소득의 재분배돈 많은 사람에게서 돈을 걷어 돈 없는 사람에게 주는 것’를 정부라는 몸통 없이 실현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


그렇게 말을 해도 나 역시 돈이 있으면 좋겠다. 유감스럽게도 돈이 없으면 불행해지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돈을 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부담 느끼지 마시고 그냥 나에게 달라. 적당히 낭비할 테니까 니트족에게 돈을 주고 업보를 씻도록 하자.

바람직한 얹혀살기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꼭 얹혀살기 스킬을 업그레이드 해야만 한다. 얹혀살기 스킬이란 ‘집안일을 척척 알아서 하는’ 또는 ‘얹혀살고 있어도 짐이 되지 않는’ 또는 ‘이 사람이 살고 있으면 어쩐지 즐거운’, 그런 스킬을 말하는 것이다. (......) 얹혀살 때에는 얹혀살도록 해주는 사람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집안일도 알아서 잘하고, 상대의 감정에도 신경을 써주면서 ‘이 사람을 집에 들이길 잘했다.’라고 생각이 들도록 노력하자.

열심히 일하지 못한 사람이나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받아야 한다. 사회와 국가는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의 결과를 그 사람이 전부 떠안아야만 한다면, 사회나 국가 같은 공동체가 존재하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은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시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본인이 가장 행복한 방향으로 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언제 어떻게 행복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았고 답을 모르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고 남들이 가장 많이 가는 길을 따라간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테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주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의식인지는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가장 돈 안 되고 지루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다음에 한 달 정도 일을 쉬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은 정년퇴직 후에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늙어서 몸이 말을 안 듣게 된 다음에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한들 의미가 없는 것 아닐까.

매일 하나도 즐겁지 않은 상태에서 병에 걸릴 경우와 노후생활에 대비해 눈코 뜰 새 없이 준비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닐까?
이런 인생은 싫다. 이런 상태로 살아봤자 죽은 것과 다름없다. 

회사에 다니다 그 회사가 망하면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도 많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니까 그런 상태가 안정되어 있는가 아닌가는 정도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돈벌고 그게 정답인줄 알았다. 보통 어른들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막상 저 질문을 받고 나니 가슴 한 쪽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불타는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늙어서 막상 몸이 내 맘대로 안 움직일 수도 있다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도 어린 친구들에게 그 나이에 해볼 수 있는 것 다 해보라고 조언을 하면서, 정작 나는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중에~ 라고 말하며 미루고 있었던 건 아닌지 후회스럽기도 하고 뭔가 생각이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스스로 느끼기에 난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는 것 같다. 체력도 없고, 책임감도 없고, 하던 일을 금방 포기하고 싶어진다. 누구랑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하고,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금방 피곤해진다.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하고, 일정이나 마감이 정해지기만 해도 고통을 느낀다. 아침에 잘 못 일어나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탁해진다.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피곤해지기 때문에, 회사나 학교에 다닐 때는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하고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대인對人 에너지가 바닥이 나서 일이 끝난 다음이나 휴일에는 진짜로 만나고 싶은 사람하고 만날 기력이 바닥나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로 만나고 싶은 사람한테만 대인 에너지를 쓸 수 있어 너무 기쁘다.


냉정한 자기 평가를 거쳐 선택한 길이라는 생각에 절로 박수가 나온다. 전혀 그의 선택이 한심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길을 택한 것뿐이다.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이란 명목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괴롭고 규칙적인 생활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사회가 아침형 인간으로 살게끔 제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하고 있을뿐! 이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자기 성찰을 삶에 적용한 결과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그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당당함이 참 부럽다. 



도시에 있으면 ‘빈둥거리면서 사는 신통찮은 어른들이 엄청 많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면서 마음 든든해진다.

평일 낮에 택배를 받거나, 고양이를 돌봐주거나,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세탁물을 걷는다거나, 항상 집에 붙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일이 바빠서 집안일을 돌보기 어려운 가정에 니트족을 파견하면 정말 좋지 않을까.



엉뚱해보이지만 일면 공감가는 부분들이 있다. 당연하다 생각해왔던 것들을 살짝 비틀어 생각해보는 그의 상상력은 꽤 재미있다. 그것이 허탈함에서 나온 웃음이든, 즐거움에서 나온 웃음이든 어쨌든 그의 글을 보고 웃게 된다. 확실히 책 제목처럼 단순히 빈둥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독서와 나름의 교류를 통해 내면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사람 특유의 유연한 사고가 느껴진다. 요컨대, 이 사람을 통해 글쓰기와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낙오되는 인간은 줄어든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절대적인 선이며, 이 세상의 불행은 대부분 선택지가 적어서 초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범적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생활 방식과 어울리지 못하고 적응할 수 없어서, ‘내 탓인가?’ 또는 ‘내 노력이 부족했나?’ 하고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살든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자살하거나 사람을 죽이지만 않는다면.”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고 그 사람과 환경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일 뿐이다.


문득 돌이켜보면 나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두려워 보편적인 삶의 양식을 고수한 게 아닌가 돌이켜 보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돈과 명예가 모두에게 우선하는 가치도 아니거니와 우리 인생을 그런 가치들에 치여 낭비하기에는 너무 짧다. 건강한 정신과 신체를 위해 노동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지배하도록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좀 더 풍요로운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만약에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정신이 균형을 잃고 무너졌거나 몸이 피곤한 것이니까 그럴 때는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 된다. 회복하고 나서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뭔가 하고 싶어질 것이다. (......)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나 휴식이다. 회복하고 나서 스스로 내면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되면 자연스레 지루해져서 뭐든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역시 노력하거나 애쓰거나 참아내는 것을 과도하게 칭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점이 이 사회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희생하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일을 위해 인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것이니까.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 자기 인생을 깎아먹는 것은 본말전도이다.


굉장히 공격적인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덮을 때쯤에는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느낌이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삶과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있으며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제도적 모순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니트족이 옳다 라는 주장이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데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함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막상 일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며칠 쉬라고 권해 보면 지루함에 치를 떠는 것처럼 이 사람은 어딘가에 구속되어 다소 강제적인 일을 하는 것이 싫은 것뿐이다. 일을 하지 않으니 게으른 사람이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지나치면 될 일인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니트족이 크게 폐를 끼치는 문제도 없는 것 같다.-게으른 백수와 나름의 뚜렷한 가치관과 목표를 가진 니트족은 애시당초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근거도 없거니와 오히려 이런 자유로운 사람들 덕분에 세상에 웃을 일이, 여유가 생겨나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생각이 터무니 없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사람으로부터 꼭 받아들여야 할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인생에 살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일은 우리가 더 나은,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굳이 일을 하지 않은 인간은 무능력하고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살아가는 일 자체를 무섭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애를 써서 억지로 상황을 바꾸려고 드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며, 자기가 그토록 힘을 쓰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어떻게 하면 유리해질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너무 당황하지 말고 뭔가 보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추운 겨울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끝나는 법이고, 상황은 어느 때나 반드시 계속 바뀌는 법이니까.


지금의 나에게는 이 말이 정말로 고맙게 다가온다. 내가 이전보다 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도, 몸이 자꾸만 아픈 것도 앞길이 막막하고 뭔가 해서 바꿔야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잠깐 숨을 고르며 기다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내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다 해봤다면, 이제 기다리며 유리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차분히 생각해 보는게 낫겠다. 늘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들, 좀 더 느긋한 삶의 자세를 익히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죽도록 개미처럼 일하는 한국인이 아닌 즐겁게 창의적으로 일하는 한국인이 더 많아진다면 사회가 더 유연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개개인이 느끼는 즐거움의 요소가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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