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한 시한부 인생의 어마무시한 효과!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제목이 퍽 자극적이다. 단순한 호기심이 집어 올린 책인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작가도 아니요, 죽음을 결심한 뒤 1년 간의 기록을 일기처럼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 글이라 굉장히 편하게 읽힌다. 그런 가운데 목숨을 담보로 얻은 삶의 소중한 경험, 깨달음이 소박하게 표현되어 있어 가슴을 울린다.

그녀는 29살 생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 또한 용기가 없어 해내지 못하고 깊은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tv에서 흘러나오는 라스베이거스의 모습을 보고 시한부 목표를 설정한다. 1년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마련하여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것, 그리고 29살의 마지막 날에 전 재산과 그녀의 목숨을 블랙잭에 걸고 후회없이 죽는 것이다. 터무니없고 황당무계한 계획이지만 그녀는 29살을 살아오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의 감각들에게 마지막 잔치를 벌여 오감이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 라는 주인을 잘못 만나 음침하고 퇴화하고 있었던 오감에게 라스베이거스에서 맘껏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나는 그녀처럼 극단적인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진 못 했지만 나 역시 올해를 맞이하며 1년만 버티자고 기한을 정해 놓았기에 어느 정도 그 선택에 수긍할 수 있었다. 내가 보낸 10년은 살아있는 내가 아니었기에. 그 순간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나만을 위해서 보내지 못 했기에 살아도 살았던 게 아니니까.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온 여자가 갑자기 살아온 세월에 대해 공허함과 절망감 밖에 느낄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항목이 몇 가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아마리처럼 여자로서 가장 꽃다운 나이에 선머슴같은 커트 머리를 하고 뱅글뱅글 안경을 쓰고 운동화에 티셔츠 차림으로 근 10년을 보냈다. 이제 와서 내가 보낸 젊음의 순간들이 아깝고, 후회되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난 여느 여자들이 자신을 치장하는 데 들이는 수고를 단 한 번도 행한 적이 없다. 화장도, 하이힐도, 멋드러진 웨이브 머리도.. 어느 것도 내 몸에 해준 적이 없었다. 정말 '나' 라는 주인을 잘못 만나서 젊음을 뽐내고 만끽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게 미안했다. 나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서, 좀 더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자아관을 형성하는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무작정 일년만 이 악물고 버티자 라는 목표만 있을 뿐 일년 뒤에 내가 무엇이 크게 달라져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는데 어느 정도는 이 책이 걱정들을 날려준 것 같다. 나와 비슷한 것을 느끼고 행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결심이 선다. 그리고 적어도 가진 게 없다고 할 수 있는 것까지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그녀는 뚱뚱한 몸, 가난, 멋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극복하고 나름 잘 나가는 호스티스로 거듭났고, 당당한 새로운 '나' 라는 여성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처절한 노력이 수반되었지만 그만큼 데드라인이 가진 막강한 힘을 보여 주었다. '끝이 있다는 것' 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치열하게 내달릴 수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거울 앞에서 나 스스로를 애정 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일년 뒤 나에게 며칠의 시간이 주어질지 아직은 모르겠다. 무엇을 하며 어디에서 보낼지도 미정이다. 하지만 그 며칠이 내 일 년을 미친듯이 살아가게 할 원동력이 될 것이며 이제까지 알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맞이하게 될 전환점이 될 것임을 믿는다. 정말 변화의 작은 씨앗 -아마리에 의하면 기적을 일으키고 싶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이란다.- 은 의외의 순간,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