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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계절이다. 감성적인 발라드가 생각나기도 하고, 날이 쌀쌀해지면서 지난간 사랑의 기억들,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리고 내 주변엔 유독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헤어지는 커플들이 많다. - 덕분에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 걱정은 늘 할 일이 없었다. 축하할 일은 아니지만.. - 봄도 봄이지만 가을에 헤어지는 것만큼 처량한 일이 없다. 감상적이고 우울한 기분을 만성적으로 유지시켜 준다. 여기저기 흘러나오는 슬픈 노래, 줄어든 일조량, 스산하게 굴러다니는 낙엽들, 차가워진 손을 꼭 붙잡고 다니는 커플들, 여기에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흐르기 시작하면 이별을 막 경험한 친구들은 미치기 시작한다. 위로를 해줘야 하는 내 입장에선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은 일이다. 하필 이럴 때는 더더욱 말문이 딱 막히고.. 사실 고등학교 이후 끊어진 것과 다름 없는 부모님의 쥐꼬리만한 원조로 늘상 생활고에 시달리는 고학생이다보니 사랑에 미친듯 아파본 경험이 그닥 없으므로 온전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무리다. 결국 '넌 몰라서 그래' 라는 결국 내 가슴이 아픈 말로 상황이 늘 마무리 된다. 난들 사랑이 안 하고 싶어서 안 해봤겠냐.. 돈드는 일 아니라고 하기엔.. 요새 세태가 그렇지 못 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타이밍을 못 잡아 망하기 일쑤였을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준다. 사랑에 빠지고, 권태기가 찾아오고, 바람 나서 헤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아주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적어도 나같은 얄팍한 경험을 자랑하는 이공계생에게는 뭔가 엄청 와닿는다. 달콤하고 은유적인 사랑의 밀어 대신에 철학, 정치, 문화, 예술 다방면의 예로서 사랑의 과정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석적인 접근을 통해 친근감이 느껴지게 한다. 여기서 친근감이란..머리 속에 알고리즘이 만들어지면서 단계적 접근과 이해를 가능케 하는 느낌을 말한다. 아직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이라던가 기초적인 서적도 버거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알랭 드 보통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난해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 중에서 내 가슴과 머리를 땅! 하고 내려친 것은 사랑과 프랑스 혁명, 마르크스 등과 엮어 쓴 내용이었다. 어떻게 사랑을 이것과 연관 시켜 쓸 생각을 했을까?! 전혀 로맨틱하고 달달하지 않다. 그저 현실적이고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를 설명하는 것 같은 단조로운 의사 표현이 더 과장없이 와닿는다. 나로서는 그의 유연한 사고 방식과 방대한 지식의 양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스토리가 뻔하고 다소 고전적인 소재이지만 그 표현 방식, 독특한 시각으로 모든 것을 커버하는 것 같다. 오직 그만이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세련되고 흥미진진하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3부작 시리즈 중 이제 하나를 읽었을 뿐인데 가슴이 설레인다. 아무래도 글이 어렵게 느껴지다보니 읽는 속도가 매우 더디지만 한 줄, 한 줄 음미하면서 읽다보면 소설을 읽고 있지만 지식이 쌓여가는 느낌이다. 나에게 과학 외에 인문학으뢰 첫 발을 가능케 해준 책! 정말 위트있고 지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