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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ㅣ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본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 한 장소에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과의 생경한 만남.
그리고 그 사람과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솔직하고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단, 다시는 그 사람과 내 생활 반경에서 마주치지 않을 것을 기약하면서.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상상이자 바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역시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 우리를 온전히 아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또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몹시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겁거나 혹은 진지한 '진짜 나' 는 가려둔 채 상황과 목적에 맞는 '대외용 나' 를 여럿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타인들과 원만하고 유쾌하게 잘 어우려저 살아갈 수 있을만큼의 가벼운 '나' 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주변 인물들이 원하는 인물상은 연기할 수 밖에 없다. 그와 동시에 그 주변 인물들도 '나' 라는 사람을 자신들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혹은 그들의 시각에서 정의내린 인물상에 맞추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이든, 가식적이든 상관없다. 누구도 무거운 진실을 감내하며 책임감있는 관계를 형성하고 싶어하진 않으니까.
"그러니까 넌 네가 아는 사토루밖에 모른다는 말이야.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아는 사토루밖에 몰라. 그러니까 요스케나 고토도 그들이 아는 사토루밖에 모르는 건 당연한거야."
"그러니가 모두가 알고 있는 사토루는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야. 그런 사토루는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 알겠어?" - p. 183
퍼레이드에는 한 집에 살고 있는 다섯명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 다섯명의 동거인들에게는 살을 맞대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되는 특유의 친밀함과 편안함이 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몹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것은 친한 척에 불과하다. 다들 속으로는 이것을 계산된 교제 혹은 친구놀이쯤으로 생각한다. 단기간으로 한정되어 있기에 순조로울 수 있는 관계, 모두가 이 생활에 적합한 '나' 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는 관계, 내일 당장 헤어져도 서운하지 않을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점은 이 다섯명이 차례로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이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 각자의 관점에서 동시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고 화자가 바뀌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아까는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다른 글에서는 관잘의 대상이 되는 점이 흥미롭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춰진 '대외용 나' 와 내가 표현하는 '진짜 나' 를 비교할 수 있다.
각자가 서술하는 다섯 남녀의 삶은 몹시 가볍고 유쾌해 보이지만 막상 화자로서 자신의 내면 세계를 보여줄 때는 그 진지함에 놀라게 된다. 모두가 대충 사는 것 같고 모자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상황을, 각자의 꾸며진 연기를 냉철하게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거리감을 위해 모두가 이야기해도 되는 것만 이야기하고 공동생활에 필요한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적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충격적인 결말 그 자체보다 끝까지 덤덤하고 무관심하게 넘어가려는 이들의 태도가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당당하고 거리낌없이 살수 있는 이유는 여기가 무인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이 무인의 집이 되기 위해서는 여기에 '이 집 전용의 우리' 가 존재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 집 전용의 우리' 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역시 우리밖에 없으므로... (중략)... 답답할 정도로 꽉 찬 만실 상태가 된다. 실제로는 꽉 찬 만실이면서도 텅 빈 공실. 그러나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꽉 찬 상태. ....... 잘 모르겠다. - p. 133
이야기를 읽는 동안 독자인 나 역시 등장 인물들에 대한 나름의 정의와 함께 개개인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관찰자 시점을 통해 단편적으로 보여지는 '대외용 나'(등장인물 중 누군가)와 '진지한 나'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는 순간 이것 역시 우리들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시니컬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이들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내보이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진짜 속마음' 같아서 씁쓸하고 불편하다. 깔깔대며 유쾌하게 읽히던 이야기 속에 씁쓸한 현실과 고독한 내면을 아무렇지 않게 녹여낸 작가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진짜 그들의 모습과 상관없이 내 안의 잣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어떠한 '대외용 나' 를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대외용 나' 는 대체 몇 가지나 존재할까.
세상 사람들은 대체로 익명을 부여받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내가 익명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절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과장에 과장을 덧붙인 위선적인 자신을 연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서는 '있는 그대로 산다' 는 풍조가 마치 미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란 나에게는 '게으르고 칠칠치 못한 생물' 의 이미지로 밖에 다가오지 않는다. - p. 132
블로그에 이 리뷰를 올리고 있는 지금의 '나' 라는 모습도 조금은 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