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저에게는 정말 흥미진진한 단편집이었어요. 사실 단편소설에 대한 고정관념때문인지 선뜻 읽지 않게 됩니다. 이야기에 몰입되어 정신없이 읽다보면 너무 빨리 끝나버리는 듯한 아쉬움이 싫었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다음 단편이 기다린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완성도 있는 결말때문인지 전혀 그런 아쉬움이 남지 않았어요. 그 짧은 단편 속에 반전을 담은 이야기도 있고, 가슴이 먹먹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었어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최근의 추리 소설과는 확실히 다릅니다.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사건 자체보다 그 일을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범인의 인생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 자체가 1950년대, 2차 세계 대전 이후여서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고달펐던 당시의 삶이 등장 인물들을 통해 여과없이 보여집니다. 전쟁때문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호스티스로 살아가면서 겪는 수모와 고통, 부와 명예에 대한 집착과 일그러진 욕망, 경제 불황으로 정리 해고되어 가정 내에서 설 자리를 잃은 남자들의 무기력함과 그 이면의 분노, 절망감 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범인도 악인으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서글픈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연민의 감정 또한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은 그들의 죄는 매우 나쁘지만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과 그들의 처지가 일면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죄의 발단에는 부조리한 사회와 욕망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궁핍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죠. 자연스레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게 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사건 사고가 잦은 요즘이죠. 당대보다 오히려 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가속화 되었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이들도 더 많고요. 그로부터 파생될 불가피한 반사회성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앞으로 이 간극을 어찌 좁혀 나가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됩니다.

이 책은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사건을 일으킨 동기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따라서 등장 인물들이 정말 현실성 있는 입체적 인물로 잘 묘사됩니다. 인간의 선한 이면에 존재하는 비정함, 질투와 시기, 교활함 등 더러운 감정과 욕망들이 면밀하게 드러납니다. 그에 따른 인과응보 역시 매 단편마다 소름끼치게, 혹은 후련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저는 얼굴과 귀축, 카르네아데스의 널이 인상적이었어요.

얼굴은 개성 강한 어느 무명 배우 이노 료키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극단 입단 후 8년 만에 영화 출연을 통해 유명해질 기회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에겐 내연관계의 여자를 죽인 과거가 있었죠. 그리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함께 떠난 기차 여행에서 어떤 남성을 만나게 됩니다. 이노 료치키의 입장에선 그 남성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영화 배우로서의 성공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기회인가, 자신을 파멸시킬 기회인가. 얼굴로 인해 성공을 할 수 있게 된 어느 배우가 바로 그 얼굴 때문에 파멸에 이르게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그 딜레마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나름 반전의 묘미도 있고요.

귀축은 인간 이하의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비정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키치와 오우메라는 인쇄소 부부가 등장하는데 소키치라는 이 남자는 바람을 피우게 됩니다. 어려운 시절이 지나고 나니 부인과 정반대인 여성에게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긴거죠. 바람의 대상인 기쿠요와의 사이에서 세 명의 아이들을 얻게 되며 '두 집 살림'을 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잘 숨겨왔지만 인쇄소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돈때문에 찾아온 기쿠요와 오우메가 마주치게 된거죠.어느 순간 기쿠요는 세 아이들을 버리고 멀리 도망가버립니다. 이 때 오우메가 이 아이들은 하나도 소키치를 닮지 않았다는 말을 해 버립니다. 그 이후로 소키치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죠. 이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오우메는 그런 남편의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극악무도한 행동을 지시합니다. 아이들을 없애버리라는 지시였지요. 계획대로 두 아이는 처리하지만 마지막까지 첫 째 아이가 살아 남습니다.그런데 참 묘한 것이 이 아이가 어떤 면에서 무척 섬뜩합니다. 죽음의 순간을 기똥차게 눈치채고 모면해 가거든요. 정말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였어요.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사제지간인 두 대학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저명한 역사학과의 교수인 구무라는 강연 여행 중에, 이전의 은사인 오쓰루를 찾아갑니다. 오쓰루는 전쟁 중 국가적 역사관을 강의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추방되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죠. 구무라를 만난 오쓰루는 그에게 자신의 대학 복귀를 위해 힘을 써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전 은사의 비굴한 모습에 묘한 자부심이 동한 구무라는 오쓰루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의 대학에 복귀되도록 돕습니다. 결국 대학에 복귀한 오쓰루는 진보적 학자로 급속히 변모하고 부유한 생활을 위해 애를 씁니다. 구무라는 풍족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상관하지 않는 옛 인사를 차갑게 방관하며 비웃고 있었죠. 하지만 오쓰루가 몇몇 저서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구무라는 조금씩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설상가상 시대가 변해서 문부성이 좌익 편향 교과서를 불합격시키자, 구무라는 진보학자라는 타이틀을 반납하고 우익으로 전향하려고 했으나, 마침 그때 오쓰루가 가장 먼저 전향을 선언하면서 자신의 앞길을 막을까 두려워집니다. 은근슬쩍 다른 노선으로 옮겨가고자 했으나 오쓰루때문에 눈에 띄어 기회주의자로 낙인 찍힐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죠. 결국 구무라는 내연녀를 이용하여 오쓰루를 교수직에서 물러나게 만들 계획을 세웁니다. 자신의 명성과 경제적 곤궁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학문적 입장마저 번복하는 교수들을 보며 환멸감을 느끼게 됩니다. 뻔뻔하고 착취적인 성격의 오쓰루나 매사 계산적이고 가식적인 구무라나 역겹기는 매한가지인 인물들입니다만, 내연녀까지 이용하고 더럽다 버리는 구무라는 정말 최악의 인간상입니다. 마지막까지 현대는 부조리로 얽혀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늬우치지 못 하는 그를 보면 치가 떨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과연 살아남은 것은 구무라이지만 바다속으로 떨어진 것은 내연녀인가, 오쓰루인가.

'카르네아데스의 널' 이라는 것이 있다. 카르네아데스는 기원전 2세기 경의 그리스 철학자이다. 그는 '망망대해에서 배가 난파했을 경우, 널 하나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빠뜨려 죽이고 자신만 사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것도 옳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목숨을 내버리고 타인의 목숨에 구애되는 것 또한 어리석다" 라고 했다. - p. 374

마치 폭풍우 속 조난자가 널판지를 함께 잡은 이를 바닷속으로 떠밀어 내고 저 혼자만 살겠다고 발버둥 치는 듯한 느낌을 아주 적확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씁쓸한 모습을 반영한 듯하여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시대를 거슬러 보편적 인간의 어두운 측면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세심하게 다룬 그의 이러한 작품들 때문에 "사회파"의 거장이라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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