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2003년 나오키상 후보로 올랐지만 현실성 결여라는 이유로 낙선하자 작가는 나오키상과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걸작 미스터리 베스트 10' 에서 1위에 올랐고 영화화되어 2004년 일본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작가와 평론가 사이의 대립에서 대중이 작가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어떠한 면에선 젠체하는 문단에 한 방 먹인 것 같은 느낌에 통쾌하기도 합니다. 읽기 전부터 궁금증이 커지더군요.

책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온화한 성품, 후진 양성에 힘써오던, 존경받는 경감 카지 소이치로가 자신의 아내를 목졸라 죽였노라 자수를 하게 됩니다. 이미 오래 전 백혈병으로 아들을 잃은 그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의 부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고백합니다. 아이의 기일에 함께 무덤에 다녀왔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지 못 하고 자책하던 그녀는 어머니로서 죽고 싶다며 그에게 죽여달라고 간청하게 되지요.

그의 자백이나 사건 정황으로 보건대 이 사건은 범인과 동기가 모두 명백합니다. 하지만 그를 신문한 시키 지도관과 담당 검사 사세는 다른 사실에 집중 합니다. 아내를 죽이고 자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틀. 왜 이틀 뒤에 자수를 했으며, 그 이틀 사이에 무엇을 했는가에 초점을 두지요. 그의 성정과 상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가 아내를 죽인 뒤 자살을 택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틀 뒤에 자수를 한 이유,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로 그 이틀에 대해 함구하는 것 자체가 미완의 자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 아내를 죽인 다음 날 그가 도쿄 방면의 기차를 타려던 모습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행방이 묘연한 이틀에 대한 기자들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집니다.

경찰은 그가 도쿄로 향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간 곳이 도쿄 최대의 환락가 가부키쵸 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무작정 덮으려 했던 것이지요. 존경받는 경감이 아내를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경찰의 위신이 서질 않는데 아내를 죽인 뒤 환락가에 갔다는 것은 도무지 공표할 수 없는 사실이었겠죠. 이 사라진 이틀을 눈치 챈 검사 사세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서지만 검찰과 경찰이 서로가 각자의 약점을 잡고 뒷거래를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시키를 통해 카지가 50~51세에 자살을 감행할 것이다, 그의 사라진 이틀의 비밀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역시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조직 간의 이권 다툼과 조직의 명예를 위해 진실을 덮으려고 애쓰는 기득권자들의 행태가 매우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 조직에 반하는 자, 진실을 알면서도 조직에 순응하는 자.. 조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군상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나의 모습, 나아가 내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조직의 뜻에 따를 수 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고뇌와 자괴감에 공감하며 함께 분해하기도 하지요.

살인 사건에 관련된 경찰과 검찰, 교도관, 변호사, 판사 외에도 신문기자가 등장합니다. 나카오인데요, 그는 대졸 신입사원들과 달리 현장에서의 실무 경력를 인정받아 동양신문에 입사한 경력직 기자입니다. 용병이라며 자신을 무시한 상상의 뒷담화를 직접 들은 뒤 그는 더더욱 특종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의 기사가 카지에게 줄 영향력때문에 경찰과 다른 거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압박에 못 이겨 진실과 관련 된 기사를 쓰게 됩니다. 특종을 잡기위해 일각을 다투는 기자들의 생활이 박진감 넘치게 그려집니다. 아마도 작가가 신문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고스란히 발휘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여러 조직이 그 진실을 밝히느냐, 은폐하느냐로 두뇌 싸움을 벌인 결과가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 숨겨진 이틀 속에 굉장한 반전이나 거대한 음모가 있지도 않지요. 정말 이 치밀한 구성이 무색할 정도로, 결말은 우연한 인연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왜 그럼 이렇게 숨가쁘게 달려왔는가, 처음부터 카지가 입만 열었어도 모두가 밥그릇 전쟁을 하진 않았을텐데 하는 허망함이 몰려오긴 하더군요. 단 몇 장만에 끝나버린 결말도 조금은 불만족스럽고요.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훈훈한 결말은 좋지만, 어째 이 소설과 어울리진 않는 결말 같은 씁쓸함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흥미진진한 과정과 사건에 관련된 많은 이들의 입장과 생각을 잘 표현한 수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반전 추리 소설보다는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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