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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에도 사람이 산다 - 서울 밖에 남겨나 남겨진 여성, 청년, 노동자이자 활동가가 말하는 ‘그럼에도 지방에 남아있는 이유’
히니 지음 / 이르비치 / 2023년 10월
평점 :
지금은 경기도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전에는 대전에서 7년 정도 살았었다 보니 책 제목에서부터 공감이 되었다. 확실히 지방에서 사는 일은 서울살이와 사뭇 달랐다. 요즘에는 지방에도 특색 있는 문화 공간과 매장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기는 힘들고 다양한 전시와 공연은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더불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불편함은 교통편인데, 자기 차가 없으면 이동에 지나치게 긴 시간이 걸릴 정도로 버스나 지하철 노선이 다양하게 제공되지 않는다. 노선도 많지 않고 배차 간격도 길거니와 많은 정류장을 거치면서 목적지까지 먼 길을 돌고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지방에서 살아가는 작가님의 경험담에 내가 겪었던 일화를 비추어 보며 공감했지만, 가장 격하게 동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노동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였다.
노력만으로는 역량을 만들 수 없는 이들에게 오롯이 개인 역량에만 취업을 맡기는 사회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냉혹한 것인지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어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질 나쁜 일을 해야 하는지 묻는 작가님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무엇보다 세상에 자신이 노예이길 바라는 사람은 없고,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작가님의 단호한 외침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워졌다. 언제부턴가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것이라 믿으며 사회 구조적으로 불합리한 것에 눈을 돌리고 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또 한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여성임에도 페미니즘뿐 아니라 사회가 주요하게 다루지 않는-특히 여성에 관한-담론을 독서로 제대로 진득하게 공부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창피하게 느껴졌다. 이 사회에는 여전히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 데이트 폭력 등 여성과 관련한 많은 문제가 만연해 있는데
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이며, 그것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근본적인 원인을 정의하지 못한 채로 이미 두텁고 견고한 편견과 차별에 대항할 수 있을까. 그저 이것이 문제고, 저것이 문제라며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시작하면 좋을지 차분히 생각해 보고 싶다.
책 속에는 정말 이렇게까지 날 것의 고백을 이어가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작가님의 솔직한 고백이 이어진다. 함께 분노하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분명 쉽게 꺼낼 수 없는 고백일 텐데 누군가에게 그저 흥미로운 가십거리로 읽히지 않고, 고백을 넘어선 다짐이자 비슷한 경험자에게 마음과 감정을 돌보는 하나의 처방전이 되길 바란다는 작가님의 말이 잘 전해지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