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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록을 내일이라 부를 때 -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 이야기
마거릿 D. 로우먼 지음, 김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올해 친구에게 ‘나무처럼 살아간다’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그 책을 읽으며 나무들이 지닌 신비로운 능력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무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적절한 상태로 진화해 살아가야 하므로 어떤 생명체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발하고 경이로운 생존 방식을 보며 사실은 인간보다 고도로 진화된 생명체가 나무인 것은 아니겠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심지어 나무들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강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더불어 살 줄 알며, 어떤 동물보다 적극적이고 현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오히려 나무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한 과학자가 숲의 가장 높은 곳에서 세상에서 숲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는 책 표지의 글이 몹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숲을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나가야 할 나무와 숲 생태계에 대해 명료한 메시지를 담은 책일 것임은 분명했다. 다만 왜 하필 숲의 가장 높은 곳에서 답을 들려주는 것일까. 열대우림처럼 빼곡하게 높이 솟은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 연구를 한 사람인 걸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심지어 그 과학자는 지구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한 사람이고, 40년 동안 숲우듬지에 오른 여성 과학자라고 했다. 과연 저자는 오랜 시간 숲우듬지에 오르며 무엇을 관찰했을지, 그리고 나무와 숲 생태계에 대해서 어떤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저자의 연구 분야인 우듬지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처음 우듬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그냥 여러 종류의 숲 중에서 독특한 생태계를 구축한 어떤 곳을 지칭하는 단어인가 보다 하고 추측했을 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완전히 잘못 짚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듬지는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저자는 바로 이 나무 꼭대기 연구의 선구자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나무 수관의 최상층을 탐사하기 위해 각종 등반 도구들을 만들고 사용한 것도 저자가 최초였을 테다. 저자가 나무를 오르기 위해 홀로 동굴을 탐사하는 팀을 찾아가 그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살피며 손수 우듬지 탐험에 적합한 도구를 만들어 내기까지 노력한 과정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게 힘겹게 올라가 저자가 마주한 우듬지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나무의 끝이 그냥 눈에 보이는 일반적인 나뭇가지와 다를 게 뭐가 있겠나 싶지만, 하층부까지 빛이 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높이 자란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에서는 우듬지와 하층부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존재하게 된다. 일조량이 다르니 잎의 두께와 크기, 잎이 나는 시기도 다르거니와 우듬지와 하층부 생태계를 구성하는 곤충과 동물의 개체수와 종도 완전히 다르다.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곤충과 동물의 개체수가 상당하다고 하니 저자가 숲우듬지를 여덟 번째 대륙이라 부를 만하다. 심지어 삼림학에 접근하는 관점이 지면에서 공중으로 이동하자 담수 순환, 탄소 저장, 기후 변화 등 지구 순환에 관한 지식이 발전했다고 할 정도니, 우듬지가 얼마나 숲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토록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지기까지 저자의 삶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다. 어느 사람보다 고단하고, 숨 가쁜 삶을 살아냈다.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면서 연구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다지고 한 발, 한 발 충실히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나간 것이다. 심지어 1970-80년대의 과학계에는 여성 과학자에 대한 차별이 지금보다 심각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성추행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연해 있었다. 그러한 불평등에 맞서 싸우면서도 확고한 본인만의 연구 분야를 구축하고,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경외심마저 들게 했다. 마냥 세상을 비관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롤모델이나 멘토가 부재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본인이 어린 소녀와 후배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리라 다짐하는 모습은 너무나 멋졌고, 감사했다. 생각보다 현실에서 마주하기가 쉽지 않은 멋진 롤모델을 이 책을 통해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저자의 행보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저자는 여전히 우듬지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숲의 신비와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여러 사람이 통로를 걸으며 나무 수관을 연구할 수 있도록 우듬지 통로 또는 공중 통로를 설계해 각국 원주민이 벌목 대신 생태관광으로 수입을 얻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많은 시민 과학자를 양성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데, 저자의 노력에 힘입어 더 많은 사람이 숲의 생태계에 관심을 두고 관찰하며 숲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