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 - 융 심리학으로 읽는 자기 발견의 여정
모린 머독 지음, 고연수 옮김 / 교양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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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세상이 조금씩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벽 앞에 무너지곤 한다. 이를테면 최근의 회식 자리가 그러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자 형과 동생의 연대감을 다지는 자리로 변질되고 말았다. 술자리가 깊어짐에 따라 노골적으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겠다고 다짐하는 그들을 보면서 정말 술맛이 뚝 떨어졌다. 새삼 이곳에서 공정성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던 자신이 너무나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들이 만든 제도에서 승인받기를 바라거나, 남성들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남성을 모방하여 성공에 이른 현재의 여성 모델이 아니었다. 여러 신화, 동화, 민담 속에 등장하는 여성 영웅의 원형이었다. 남성의 언어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영웅의 길에 나선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확신은 적중했고, 책을 읽는 내내 심리 치료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성 영웅의 여정을 더듬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통해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내면의 깊은 분노와 슬픔의 얼굴을 명료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 역시 여자로 태어난 것은 죄가 많아서라고 이야기하시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여성성을 부정하고 있었다. 줄곧 나에게 결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남성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나를 매사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평가 절하하고 감춰왔으니,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들면서 정작 나 자신의 욕구는 외면해온 셈이다. 심지어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 때면 본질을 꿰뚫어 보려고 하기보단 다음 목표를 세우고 달려들고자 했으니 나는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던 걸까. 이제라도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내적 탐구의 여정에 올라야겠다. 어떤 행위(doing) 대신에 존재함(being)에 관해 깨닫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 여정을 통해 외면해온 나의 여성성을 긍정하고, 내면의 남성과 통합하는 과정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나를 여성과 남성이라는 양극화의 늪에 빠지지 않게 도와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여성성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찾아내고 연민과 자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연민이야말로 다양성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고 포용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니까. 더는 자부심을 느끼고 성공하기 위해 가부장적 규칙에 따라 게임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대신에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답게 살 수 있는 길로 들어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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