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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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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1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의 압박에 '내가 이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나갔다. 읽고 또 읽고 다른 책을 뒤적이며

거대한 철학적 담론의 암벽에 내 지적 한계를 느껴 더 오르길 망설일때는 가벼운

에세이를 한 두편 읽고 다시 심호흡을 하고 마침내 그 고원에 이르고 말았다.

책을 다 읽었다는 만족감과 나로선 가늠할 수 없는 지적 광활함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을 뿐 몇몇 내용들을 제외하고는 지금 내 머리 속에 기억되는 내용은 책의

분량에 비해 너무나 미세하다.

어렵게 그 고원에 이르렀으니 이제 내려가 세상속에서 실천해야하는 부담감만

가득 짊어졌을 뿐이다.

마침 KBS다큐멘터리를 통해 아직도 남아 있는 유목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책을 읽어 나가며 잊어졌던 단어와 문장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을 얻어 그 감동을

새롭게 했다. 언어는 삶의 실천과 함께 관념적 언어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그 의미의

진실성이 살아나는 것임을 느꼈다.

'홈 패인 공간'에서 과감히 탈주하고 싶어하는 자들과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자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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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 - 유목적 사유의 탄생
이정우 지음 / 아고라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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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롤러코스터가 서서히 출발하여 고도의 정점에 올라

엄청난 속도로 급강하듯 문학에 관한 내용들은 감동하고 깨닫고 고개를 끄덕거는 사이에

책 읽는 속도에 탄력을 받아 어느새 두번째 장으로 넘어서게 되었다. 급강하한 롤러코스터가

180도,360도 역회전 할때 처럼 두번째 과학에 대한 내용은, 지금까지 인문학 서적만 주로

읽은 나에게 정말 머리를 아프게 했고 그만 내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는

마지막 절정을 위해 다시 정점에 올라 급강하면서 짜릿함을 주었는데, 바로 세번째 장 철학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모든 레일을 지나 안전띠를 풀고 안전한 도착을 위해 서행할때의 약간

의 지루함이 이책 뒷부분의 여러 철학책들에 대한 짧고 간단한 소개였다.

두번째 느낌.  여러가지의 화려하고 다양한 먹음직스러운 고급 요리를 보는 느낌이랄까.

특히 철학부분에서 저자는 여러 방면의 근대 철학적 내용 소개하고 있는데 한참 군침이 돌아

먹어보려하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버리니 군침만 흘릴 수 밖에. 특히 다산 정약용에 대한

부분이 참 아쉽기도 했다.

세번째 느낌. 책냄새가 짙게 풍겨나는 책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는 저자의 서재를 들여다 본

느낌이다. 문학책들은 꺼내봐 읽어보기도 하고 내가 읽은 책들도 있고 해서 반갑고 했지만

과학책들은 책제목만 훑어볼 뿐이었고, 철학책들은 겉페이지를 열러 목차만 훑어봤을 뿐이다.

스무살 때 미국 에모리 대학교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산더미 처럼 쌓여있는 책들을

 보고  난 의문은 "이 많은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하고...

아무튼 저자의 광활한 지적 여행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읽어봐야 할 책 목록만 무지하게

늘었으니 이번달도 굶고지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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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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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유무에 집요하게 천착하는 것이 서양 사람들의 특징이 아닐까

 그들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서 고등한 과학적 문명이 탄생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한 기질은 분명 과학적 진보와 고도의 문명을 만들어 냈지만 그 과정들과

 역사적 사건들은 그리 긍정적이지 만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신의 존재 유무를 논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소모적 논쟁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래도 흥미를 가지고 끝까지 읽었다. 생각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갔다.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은 흥미로웠지만 다양한 종교현상에 대한 좀더 포괄적인

 접근과 이해가 아쉬웠다. 다양한 문화적, 역사적 과정속에서 종교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임이 분명하다. 저자의 과학적 접근방식은 다양한 종교적 현상들을

지나치게 공식화 시키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믹서기에  쏟아넣고 갈아버린 것 처럼...

저자의 구약성서에 대한 비판과 근본주의 목사들에 대한 비판은 구차하다시피 하다.  

인간의 위대한 이성은 우리를 신의 망상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며 저자는 이성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물론 이성은 인간의 "진화"의 속도를 가속화했지만

그 이성으로 인간이 더 "진보"하고 있다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그 빛나는 이성으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18.19세기 아시아 식민지 국가들에

행해진 데카르트의 후예들의 자비(?)는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인간의 명석한 이성적 사고로 고등 수학문제를 풀 수도 있고 우주의 신비를 밝혀 낼 수

도 있겠지만 우리의 습관과 생활을 바꾸기에는, 마음과 행동을 변화시키기에는,

 분명 이성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종교로 인해 수없는 전쟁과 살상과 파괴가 이루어진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것은 종교의 가면을 쓴 인간의 욕망의 표출일 뿐이다.  

 나도 20여년 째 종교(개신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창조신이나 초월적 절대자를 믿지 않는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그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개인적인 종교생활에 있어서 초월적 절대자는 불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의 짧은 종교생활을 경험으로 이야기 하자면 종교라는 것은 개인적인 체험이며

 가치관의 변혁이며, 전이해의 파괴, 즉 자아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큰 형은 안정된 직장과 적지 않은 연봉에 남부럽지 않게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항상 내면적 갈등과 우울증에 괴로워했다. 형의 고백으로는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고 한다. 우연하게 형이 종교 체험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면서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 체험 후에 형은 기독교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헬라어 원어 성경으로 신의 흔적들을 찾아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신을 찾아나선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다.

 파스칼이 과학을 버리고 기독교 변증가로 돌아섰다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모든 종교는 자기만의 신과 진리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종교든 완전한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종교든 신의 파편과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흔적을 찾아나서는 구도자의 겸허한 자세가 진정한 종교인이

 라고 생각한다.

 자아를 찾아가는 끊임없는 모험이 종교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종교라는 단어의 의미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중세 카톨릭적 세계관에 갇혀있을 뿐이며 저자의

종교 비판은 중세적 기독교의 잔재에 대한 과학적 비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는 어느 선사의 말처럼 신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면 그 신을 죽여야만 한다.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넘어서는 이상과 꿈을 가지는

것이 이땅의 수많은 교회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에너지 소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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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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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올 선생님을 워낙 좋아하기에 즉시 구입해서 봤는데

논술과 철학강의 2는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와 똑같더군요.

출판사의 심술궂은 행동인지...

미리 알려나 주지..

반송비 2000원만 날리게 됐습니다.

책은 참 좋아서 그래도 별 4개 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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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7-02-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량이 넓으신 분이시군요.^^ 하마트면 저도 속아넘어갈뻔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는 있다 - 오강남 교수의
이국진 지음 / 기독신문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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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교수의 "예수는 없다"와 다양한 진보주의적 신학 논리를 비판하며 정통주의 신학을 변호

하는데는 너무나 빈약한 논리와 단순한 구조.   이것이 우리나라 복음주의 신학의 한계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심 오강남교수의 주장들을 날카롭고 시원스럽게 비판해 주길 바랬지만

그 기대는 다음으로 미루어야 겠다.

전통적 신앙을 가진 분들에겐 오강남교수의 "예수는 없다"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이책을 통해

자위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신학적이고 학문적인 내용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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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bel 2008-01-1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제가 한가지 묻겠습니다. 진보주의적 신학, 즉 자유주의 신학 논리를 대표한다고 하는 오강남교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 탄탄한 논리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짐작컨데 신학적이고 학문적인 내용으로 저 책을 보신듯 한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나 감명깊으셨는지 모르겠군요. 한참 때지나서, 마치 많이 아는척 하는듯한 이런 서평은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청춘표류 2008-01-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리뷰를 보고 불쾌하셨나 보군요.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저는 종교는 고착화된 교리적 이해와 주관적인
신앙을 떠나 역사와 문화적 이해를 전제로한 다양하고
하고 포괄적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감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는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라 생각하기에
학문적이고 치밀한 논리적 구성보다는 일반독자들에게
종교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쉽게 쓰여진 책이라 생각합니다.
오감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는 다양한 시각을 통한 종교적 접근과
배타성과 폐쇄성을 고수하고 있는 현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을 볼때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예수는 있다"는 종교에 대한 새롭고 깊이있는 통찰력의
부재를 느낍니다.여러가지 학설과 자료들의 나열을 통해 복음주의
신학을 변호하지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선 피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의연한 자세가 더 멋지지 않았나라고
생각해보기도 했답니다.

진정한 진리는 보편의 정점에 서야하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생각들이니 너무 불쾌해 하지 마시고 즐거운 독서하시길...

환각의 무사 2019-03-16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서평에 엉뚱한 딴지를 거는 이런 댓글따위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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