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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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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독가 정여울 선생님의 신작 수필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 문학을 주제로 한 가벼운 에세이 정도를 상상하고 집어든 책인데, 기실 굉장히 다양한 책들에 대해 논하고 있는 서평집에 더 가까웠다. 그것도 목차로 엿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책들에 대해!

그러니 책에서 가장 놀라웠던 지점은 역시 정여울 선생님의 엄청난 인사이트. 이 작품에서 저 작품으로, 책에서 책이 아닌(그러나 문학인) 것으로 자유로이 쏘다니는 방대한 사유에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막론함도 물론. 그리고 이 모든 작품들에 대한 감상은 곧 ‘문학’이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향한 찬사로 수렴된다. 이는 문학을 대하는 정여울 선생님의 깊은 마음뿐 아니라, 읽는 우리가 지금껏 왜 문학을 이렇게 사랑해왔는지, 이 세상에 왜 문학이 그토록 필요한지 알게 한다. 그러한 이유들은 막연하게 펼쳐지기보다 각종 문학 작품들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설명된다.

글 사이사이를 채운 사진과 코멘트도 책을 채우는 재미난 볼거리. 이승원 선생님과 여행지에서 찍으신 듯 보이는 사진들은 빼곡한 목차 사이마다 간지가 되어줄 정도로 많은데, 모두 ’문학과 같은 순간으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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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의 사랑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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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치평론가 뱅자맹 콩스탕이 남긴 단 하나의 명작 『아돌프의 사랑』. 제목 그대로 ‘아돌프’라는 남자 주인공이 ‘엘레노르’라는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본문 외피의 글들에서 잘 설명돼 있듯 이 작품은 단순한 연애소설이라기보다 치밀한 심리소설에 가깝다. 그렇기에 낭만적이기보다 차갑고, 사랑스럽기보다 투쟁적이다. 아돌프는 끝없이 자기 자신, 엘레노르,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러면서도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과는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자기 자신과는 관계를 끊을 수가 없는 것’(p.163)처럼 스스로를, 그리고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엘레노르를 연민하며 모순적인 결심들을 반복한다. 소설은 그 날선 반복들 속에 얼마나 많은 아돌프의 위악, 나약함, 동정심 따위가 깃들어 있는지 명료하게 비추어 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아돌프 그 자신이다. 이에 독자는 아돌프의 시선에서, 아돌프가 바라보는 엘레노르의 시선에서, 또 그들의 바깥에 있는 발행인들의 시선에서 그 심리를 훑어볼 수 있게 된다. 분량 자체가 길지 않기도 하지만, 무척 간명한 문체를 갖고 있는 이 소설의 핵심을 그 형식이 뒷받침한다. 아돌프라는 인물과 잘 어울리는 비-낭만주의적 문체는 그 주위의 불필요한 묘사들을 모두 줄이고, 스스로의 감정, 순간 불타올랐거나 금세 지루해진 것들에 천착한다. 이 인간적 심리는 몇 번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때로는 추악하고 고통스럽다.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그 사실까지 알고 있는 일련의 인간관계가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는 19세기 초를 살았던 어느 젊고 비루한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함께 많이 언급되는 듯하지만,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함께 출간된 『인간 실격』과도 비슷한 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수한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끝내지 못하는 인간들의 지독한 심리.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희망 속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게 있어서, 희망이 인간의 생애로부터 물러설 즈음이면 그 생애가 보다 엄격하면서도 보다 극적인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치 구름이 흩어지면 산봉우리가 지평선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듯이, 모든 환상이 사라지고 나면 그만큼 인생이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기 때문일까? - P20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변하기 쉬운 것이어서, 어떤 감정을 위장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그 감정을 정말로 느끼게 된다. 나도 슬픔을 감추다 보니 정말로 슬픔을 어느 정도 잊게 되었다. 쉴 새 없는 농담은 우울증을 덜어주었고, 엘레노르와의 대화 속에서 사랑한다고 다짐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진정한 사랑과 비슷한 달콤한 감동이 가득 차게 되었다. - P91

당신은 나에게 너무 좋은 사람이었어요. 나는 불가능한 일을 바라고 있었어요. 내게는 사랑이 인생의 전부였지만,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이제 며칠만 더 나를 돌봐주세요. - P144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과는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자기 자신과는 관계를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벗어나고 싶던 고통을 다른 환경 속에 옮겨다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자리를 옮기면서도 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것은 오로지 뉘우침 위에 양심의 가책을 보태고 고뇌에 과오를 덧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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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 함께 우는 존재 여섯 빛깔 무당 이야기
홍칼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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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편견을 깨부수는 21세기 무당 홍칼리의 인터뷰집. 비슷한 결을 가진 여섯 명의 무당들을 인터뷰하고, 이에 대한 저자의 소회 등이 간략하게 담겨 있다. 홍칼리라는 특별하고 매력적인 저자의 힘도 분명하지만, 각양각색 (소위 ‘MZ’) 무당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획 자체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무당을 다루는 콘텐츠는 세상에 많고 많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는 <곡성>이나 <검은 사제들>, 그도 아니라면 <만신>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격변의 시대인 2022, 위 영화들처럼 지극히 영적인(혹은 전근대적인) 직업으로만 여겨지는 무당들의 일상은 어떨까? 역사 속에서 우리의 정치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살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 인터뷰집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안겨준다. 여전히 무당들은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곳에서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지금/여기서 여전히 누군가를 위해 울어주는 것을 직업 삼는 이들의 이야기는 퀴어페미니스트비건인 저자 홍칼리에 의해 옮겨지기에 더욱 특별하다. 생과 사, 영과 물을 매개하는 무당이라는 직업의 존재 가치처럼 책은 무()의 세계 속에 있는 이들을 그 밖에서 살아온 독자와 연결해준다. 기꺼이 남들의 사연을 듣기만 했던 무당들이 풀어놓는 저 스스로의 이야기는 익히 봐온 미디어 속 모습과도, 가벼운 우리의 상상과도 다르다. 낯선 무당의 언어가 튀어나오곤 하는 대화에서도 이들은 결코 기존의 편견 속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단지 이들 또한 자신이 믿는 것에 최선을 다하며, 이를 사랑하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특정한 운명의 길을 선택해온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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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앤더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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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와 『코리안 티처』로 주목받았던 서수진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 나 역시 올해 젊작상에서 「골드러시」를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영미권 청소년소설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럼에도 무척이나 한국적인 소재의 소설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장편인 만큼 소설에서는 여러 문제들(교육, 가족, 이민자, 커뮤니티……)이 입체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결론적으로는 성장소설(하이틴 소설?)의 결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소설은 분량이 짧은 각 장마다 초점을 달리 하며, 호주에 사는 세 명의 한국계 청소년 인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끝 없는 산불에 시달리는 그 나라처럼, 다사다난하게 흘러가는 아이들의 삶.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세 그룹으로 나누어지는 한국계 아이들의 커뮤니티를 대표한다. FOB 해솔, ABG 엘리, 그 중간그룹의 클로이. 가까울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 가장 먼 곳에 있는 이들은 무척 불편한 방식으로 연결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처럼 아름다운 연대는 아니지만, 유독하고 아름다운 올리앤더 나무와 징그럽고 무해한 거미가 황폐화된 하나의 정원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이 괴로운 진실을 보여준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견뎌나간다. 서로 대비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면서. 그리고 소설은 이 과정을 무척이나 섬세한 묘사로 따라간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것처럼 청소년 친구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한 감상이 보다 궁금해진다. 사실 이 소설에선 거의 모든 것들이... 좋아지지 않는다.(이 지점은 요즈음의 독자들이 가지는 선호와는 반대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다는 말, 내 마음대로 덧그리면 된다는 말, 스토리가 없다는 것을 스토리로 쓰면 된다는 말들은... 소설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짐작케 해주고, 그런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용기를 전달한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우리가 연결되었던 장면을 잊지 말고 다만 살아가자고. 


*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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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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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천착하고 계신 몇 가지의 소재가 특별히 인상깊게 남은 단편집이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우리가 소멸하는 법」과 「에덴 – 두 묶음 사람」. ‘두 묶음 사람’을 표제작으로 고민하셨던 분이 어딘가엔 계시리라 생각한다.


책을 이룬 8개의 단편들에는 모두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소설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미 떠나보낸, 한때 사랑했던 자들을 (혹은 바로 그 한때를) 기억한다. 다만 그 각자의 방식이라는 것은 그들이 겪은 상실 만큼이나 독특한 삶의 경험이어서, 이들의 애도는 허무하면서도 낭만적으로, 때로는 깜찍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표제작 「나이트 러닝」은 이러한 색깔이 가장 잘 살아난 작품일 것이다.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돋아나는 팔과 같은 기억은, 이미 소멸해버린 사람들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이들의 몸을, 언어를, 그들만이 줄 수 있었던 감각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상상으로) 새로운 ‘시’를 발명하고, 나의 지난 사랑을 재구성한다. 이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무덤 위를 달리는 이들의 호흡과 기다림은 계속된다. 이들은 타인과 같이 있기를 여전히 소망한다.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희망이 삶의 아주 작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바로 그러한 부분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위로를 전달한다. 우리 모두가, 그처럼 지나온 사람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한국어 교실에 다닐 때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허락할 수 없다‘라는 말이랑 ‘혀를 뽑아 버린다‘는 말이 신기했어. 내 몸의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 그러다 같은 반 친구가 ‘한쪽 팔을 잘라서라도 잃어버린 아이를 다시 볼 수 있다면‘이라는 작문을 해 왔는데 그게 너무 슬프면서도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어. 친구는 이 도시에 와서 아이를 잃었대. 나는 다른 곳에서 남편을 잃고 이 도시로 왔는데 말이야." - P30

"봐. 나는 시간과 맞서고 있으니까. 시간아, 네가 아무리 좀먹어 봐라. 내가 꿈쩍이라도 할까. 누가 이기나 보자. 이러고 사는 거야. 정정당당하게 노려보면서. 서두르지 않을 거야. 왜 사람들이 시간을 아까워하는지 모르겠어. 시간은 그냥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거야. 난 숙제가 없어. 남은 생을 방학이라 생각해."

어차피 산다는 건 시간을 좀먹는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젊음, 그리고 적당한 꾸밈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내면은 사납고 불안하다. 언젠가 외모는 내면을 닮아갈 것이다. 싫으나 좋으나 그때까지 살아야만 삶이 끝난다. - P59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건 무효다. 그럴 시간에 옆에 누워 있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더 사랑에 가까운 것 아닐까. 죽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용없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소중하지 않았다 해도 알던 사람이 죽으면 그게 뭔지 저절로 알게 된다. - P108

작은 악과 작은 선들. 그런 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래서 지금 제가 여기 발붙이고 있는 힘이 된다면, 적어도 알려드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 P167

"혼자가 아니야. 미엣과 같이 살아."

토끼 미엣(miette)은 프랑스어로 부스러기라는 뜻이라고 했다.

"피니가 남기고 간 부스러기지."

그래. 넌 두 묶음 사람이니까.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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