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폴란드의 풍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평점 :
책의 제일 첫 장에 '코스트 가(家) 가계도' 라는 것이 나온다.한 집안의 가계도. 즉 족보 비슷한 것인데, 코스트(1세)부터 시작해서 그의 5대 자손까지의 가계도가 나오고, 그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가 나오게 된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코스트 씨의 가계도에 써있는 한 사람 한사람의 죽음이라는 운명의 이력은 놀랄만큼 비극적이다. 책의 내용은 분명 이 '코스트 가' 사람들의 비극적인 죽음과 연관이 있을것이라 짐작했고, 역시 틀리지 않았다.
피를 물려받았다는 말은 유전적으로 비슷한 무엇인가를 물려받았다는 듯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집안에 누군가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아래 자손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한다. 비단, 유전적인것이 아니라 운명적인 것도 물려 받는 다는것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렴풋이 어른들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고 믿지는 않지만, 이 책은 아주 많이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
제목이 되는 폴란드의 풍차는 한 영지를 가르키고 있다. 책의 시작은 한 도시에 이 폴란드의 풍차의 소유자가 된 조제프 씨가 출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과거로 돌아가 코스트 가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코스트씨는 외국에서 오랜 시간동안 체류하다가 아내와 두 아들을 사고로 잃게 되고 귀향해 폴란드의 풍차를 세운 사람이다. 그는 두 딸 아나시시와 클라라를 운명의 시련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지극히 평범한 남자와 결혼을 시키기 위해 중매쟁이 오르탕스 양의 도움을 받고, 평범한 가문의 두 아들에게 자신의 딸들을 결혼시킨다. 얼마 후 코스트 씨는 낚시를 하다가 바늘에 찔려 죽게 된다.어이없게도...
첫째 딸 클라라는 앙드레와 앙투안느를 낳게 되지만 네 식구는 기차 사고로 일가족이 몰살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둘째 딸 아나시스는 셋째 아들 자크를 낳다가 죽게 되고, 아나시스가 낳은 첫째 아들은 가출 후 실종하게 된다. 그녀의 둘째 딸 마리는 버찌씨가 목에 걸려 죽게 되고, 그녀의 남편은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자크는 조제핀이라는 여자와 결혼해 장과 쥴리를 낳게 되는데, 장은 권총으로 자살을 하게 되고, 쥴리는 정신착란에 빠진다. 그리고 자크는 급사하고 만다.
쥴리는 대단한 미모를 가졌는데, 어릴적 고통으로 한쪽 얼굴이 찌그러지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그 도시에 출연한 유명한 조제프 씨와 결혼하게 되고 레옹스를 출산하게 된다. 레옹스는 루이스라는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지만 루이스는 아이도 낳질 못하고 반신불수가 되고 레옹스는 가출을 하게 된다.
책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코스트 가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이야기. 운명에 벗어나려는 사람들.. 비극은 그들을 벗어나질 않는데..
이렇게 쓴 이야기를 보면, 쉽게 쉽게 읽혀내려갈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책은 천천히 자꾸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분명히 코스트 가 사람들은 운명에 대항할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비극은 그들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운명에 도전은 한 사람들이었다. 그에 비해, 이 책의 화자인 변호사나 공증인 p. 또 드 K. V씨 등 운명을 그냥 순응할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저렇게 이니셜만 부여했다.
저자가 은근히 책의 내용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은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지만, 운명에 도전하려 했던 사람들이야 말로,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실망시키지 않았던 좋은 책인것 같다..
<평범하게 밥이나 목고 사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는 제 딸들이 그저 단순히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 살았으면 했다. 코스트의 장황한 말은 오르탕스 양의 섬세한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평범함이라는 것, 좋지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이봐요 당신은 그렇게 쉽게 거기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예요. 당신이 옳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기야 나도 이제껏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만 행복을 보아왔으니까요. 그렇지만 누구나 다 평범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런것을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는 이유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늘 <입으로 너그러움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너그럽게 사는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선 너그러움을 이루는 요소들을 자기 속에, 아니면 자기 주변에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 내부 속에서 너그러움을 이루는 요소들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단지 왜 그런가 하는 이유만을 말하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다른 모든 사람보다도, 아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다른 모든 사람처럼 덕목을 갖추기 전에 우리는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열에 아홉 번은 우리의 입을 채우기 위해선 남의 입을 털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