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협찬
📚 <에티의 여름>
🎨 “그 그림, 정말 거장이 그린 거 맞아?”
한여름 프로방스에서 터진 수상한 비밀
햇빛은 눈부시고, 복숭아는 달고, 로맨스는 익어가는데…
저 집 화실이 아무래도 수상해요.
1920년, 전쟁이 남긴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영국인 기자 조지프는 전설적인 화가 타르튀프를 취재하기 위해
프랑스 프로방스의 외딴 농가를 찾아가요.
문제는 타르튀프가 인터뷰는커녕 문전박대부터 해버렸다는 것.
그때 조카 에티가 조지프를 새 그림의 모델이라고 둘러대면서
얼떨결에 세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돼요.
그런데 어느 날 밤, 조지프는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해요.
에티가 타르튀프의 완성작을 몰래 불태워버린 거에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분명 잿더미가 되었던 그림이 멀쩡하게 걸려 있어요.
심지어 거액에 팔려나가기까지 해요.
조지프가 따져 묻자 에티가 태연하게 한마디 해요.
“헛것을 본 거예요.”
그렇게 수상한 화실의 비밀을 따라가는 사이
조지프와 에티는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타르튀프의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진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요.
그리고 그 비밀 한가운데에는 여성이 화가가 되기보다
그림 속 모델로 남기를 요구받았던 시대가 자리하고 있어요.
에티가 원하는 건 남의 그림 속에 아름답게 남는 삶이 아니에요.
직접 붓을 잡고,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자기 재능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삶이죠.
프로방스의 햇살과 라벤더, 두껍게 발린 유화 물감 사이로
로맨스와 미스터리를 잔뜩 풀어놓고 그 안에
“내 재능은 누구의 것인가,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까지 슬쩍 숨겨놓았어요.
예쁜 여름 소설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그림 한 점 때문에
사람까지 의심하게 되는 소설.
달콤한 복숭아 향 뒤에 꽤 매운 비밀 하나를 감춰둔 작품이에요.
📖 제일 재미있었던 건 ‘누가 그림을 그렸는가’보다
‘누구의 이름으로 남았는가’가 더 무서운 질문이 된다는 점이었어요.
그림을 그릴 재능이 있어도 이름을 가질 수 없다면
그 재능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작품은 남는데 사람은 사라져요.
미술관 벽에 걸린 그림 하나 뒤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묻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름다운 그림도 갑자기 조금 섬뜩하게 보이더라고요.
에티가 원하는 것도 대단히 복잡하지 않아요.
자기가 그린 것은 자기 이름으로 남기고,
자기가 원하는 삶은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것.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해서 “그게 왜 어려워?” 싶지만
1920년대 여성에게는 그 당연한 일이 욕심 취급을 받았어요.
그래서 에티가 그림을 그리고 자기 삶을 되찾으려 할수록 응원하게 됐어요.
남의 허락을 기다리다가 인생 다 가느니
차라리 한 번 사고 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요.
프로방스의 풍경도 제대로 한몫해요.
햇살, 라벤더, 복숭아, 냇물, 물감까지
문장이 아주 작정하고 여름을 들이붓는 느낌이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안에서
소유욕과 질투, 욕망과 비밀이 계속 꿈틀거려요.
배경은 휴양지인데 사람들 속은 하나도 휴양 중이 아닌 것 처럼요.
그 대비 덕분에 달콤한 장면조차 마냥 편하게 지나가지 않아요.
무엇보다 에티의 갈망이 좋았어요.
숨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가 자기 이름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
재능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재능을 자기 것으로 지켜내는 일이
훨씬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자유가 주어질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삶보다
직접 문을 열고 나가는 삶이 훨씬 에티답게 느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