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나
주세페 카토첼라 지음, 이소영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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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나>


​🇮🇹 하나 된 이탈리아라는 찬란한 축제 뒤,
총을 들어야 했던 사람들

​우리가 흔히 아는 이탈리아 통일 역사는
가리발디 장군 같은 멋진 영웅들이 붉은 셔츠를 입고 돌격해
나라를 하나로 합친 찬란한 신화잖아요.
하지만 주세페 카토첼라의 소설 <이탈리아나>는
그 화려한 건국 축제 이면에 가려져
철저하게 잊히고 버려졌던 사람들의
진짜 날것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이 소설의 한가운데에는 19세기 후반,
가난과 억압에 맞서 산속으로 들어가 총을 들었던
실존 인물 마리아 올리베리오, 일명 '치칠라'라는
매력적인 여성의 삶이 살아 숨 쉬고 있어요.

​우리에게는 낯선 단어인 '브리간테(Brigante)'는
원래 산적이나 무장 도적을 뜻하는 말이에요.
하지만 통일 이탈리아 역사 속에서는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존재들이었어요.
​북부 엘리트 중심으로
나라가 급격하게 합쳐지는 과정에서,
소외된 남부 지방의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은
오히려 통일 전보다 훨씬 더 가혹한
세금과 착취에 시달리게 돼요.
당장 굶어 죽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이들이
생존을 위해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국가에서는 이들을 한낱 잡범이나
'산적(브리간티)' 무리로 규정해 사냥하듯 토벌해 버려요.
.
​주인공 마리아 역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늘 배움을 갈망하던 총명한 아이였어요.
그저 가족들과 평범하고 오순도순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부조리한 현실과 폭력은 그녀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죠.
남부 여성들을 옥죄던 가혹한 가부장제와 굶주림 속에서
벼랑 끝까지 밀려난 마리아는,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산속으로 들어가
전설적인 여성 브리간테 '치칠라'로 다시 태어나게 돼요.

​작가는 이들을 억지로
착한 영웅으로 미화하거나 옹호하지 않아요.
그들이 저지른 잔인한 폭력과 모순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동시에 왜 평범했던 민중들이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에게
배신당해 스스로 도적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남부의 뜨거운 흙먼지 냄새와 함께 생생하게 그려내요.

📖 역사책에 단 몇 줄의 '폭도'나 '산적'으로 기록되고
쓸쓸히 사라져간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조명하는 작가의 시선이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통일이나 개혁이라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장 오늘 아침 먹을 빵을 빼앗아가는
깡패 짓이나 다름없을 수 있다는 걸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거든요.
힘 있는 자들이 쓰는 뻔한 역사 뒤에는
늘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지워진
진짜 약자들의 눈물이 숨어 있기 마련이니까요.

​똑똑했던 시골 소녀 마리아가
남부 특유의 숨 막히는 가부장제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총을 든 사수이자 전사로 변해가는 과정은 몰입감이 넘쳐요.
멋진 정치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답게 살아남고 싶어서 총을 쥔 거였거든요.
숲속 험한 바위 틈에서 잔인하게 총을 쏘아대던
치칠라의 독한 모습 뒤로,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었던 한 인간의
진짜 외로움이 겹쳐 보여 씁쓸하기도 했어요.

​선과 악이라는 편리한 반쪽짜리 잣대로
사람을 너무 쉽게 평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남부 사람들의 떼강도 짓은 분명 나쁜 범죄지만,
그들을 그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 넣은 건
모른 척 등 돌린 국가와
돈줄을 쥔 북부 자본가들이었을 테니까요.
오늘날까지 이탈리아가 남쪽 북쪽 갈라져서
으르렁대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건 물론이고,
당장 내 주변에서 '어쩔 수 없다'며 조용히 소외당하는
이웃들은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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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피케이션 -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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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시티피케이션>


💩 우리가 쓰는 모든 앱이 시간이 갈수록
'개똥'이 되는 진짜 이유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인스타그램...
처음엔 세상 편하고 공짜라며 우리를 유혹했던
이 고마운 플랫폼들이 요즘 왜 이렇게 광고 범벅에
쓸데없는 알림만 울려대는 쓰레기로 변했을까요?

​디지털 권리 운동가인 코리 닥터로가 쓴
<엔시티피케이션>은 우리가 스마트폰을 켤 때마다 느끼는
이 지독한 불쾌감에 아주 찰진 이름을 붙여준 책이에요.
똥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뜻의 이 신조어 하나로,
거대 빅테크 기업들이 어떻게 우리의 영혼과 지갑을
야금야금 털어먹고 있는지
그 얄팍한 사기극을 낱낱이 폭로해요.

​저자는 모든 잘나가는 플랫폼들이 예외 없이
'개똥화(Enshittification)'되는
슬픈 4단계 법칙이 있다고 꼬집어요.

✔️​사용자 꼬시기
일단 초반에는 서비스도 엄청 좋고 다 퍼줘요.
공짜로 노래도 듣게 해주고 배달비도 아끼게 해 주며
사람들을 잔뜩 끌어모으죠.

✔️​사업자 가둬두기
사용자가 바글바글해지면,
이번엔 판매자나 크리에이터들을 불러들여
"여기 손님 많으니까 장사해라" 하며 가둬버려요.

✔️​가두고 털어먹기
모두가 이 플랫폼 없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면,
본색을 드러내고 수수료를 무식하게 올리거나
광고판을 덕지덕지 붙여서
가치를 전부 자기 주머니로 챙겨요.

​✔️거대한 똥 더미
이제 검색창엔 정답 대신 돈 낸 광고만 뜨고,
나쁜 꼴 안 보려면 돈 내고 구독하라고
사용자들을 협박하는 껍데기만 남게돼요.

​아마존에서 최적의 상품을 검색해도
정작 광고비 낸 비싼 물건이 맨 위에 뜨고,
어도비가 연간 라이선스 돈 아끼겠다고
팬톤 컬러를 유료 구독으로 돌려
디자이너들의 색깔을 인질로 삼는 양아치 같은 짓들이
다 여기서 나와요.
갤런당 무려 1만 달러짜리 정품 잉크를 팔아먹으려고
카트리지에 칩을 박아 호환 잉크 사용을 법적으로 막아버리는
HP 프린터의 횡포도 마찬가지죠.

​이 책은 기업들이 "우리는 혁신적인 연결을 선물합니다"
라고 사기 치는 이면에서,
어떻게 사용자를 가두고 판매자를 쥐어짜며
독점 체제를 굳혀 가는지
아주 매콤하고 유쾌하게 털어내는 책이에요.

📖 인터넷 쇼핑몰에서 뭘 검색할 때마다
내가 진짜 찾는 물건은 저 밑바닥에 처박혀 있고,
온통 '광고' 딱지 붙은 비싼 것들만
맨 위에 도배되어 있던 이유를 이제야 확실히 알았어요.
예전에는 똑똑하고 고마운 무료 비서 같았던 앱들이,
왜 갈수록 돈 내고 구독 안 하면 숨도 못 쉬게
사람을 가두는 감옥처럼 변했는지 딱 알겠더라고요.
빅테크 기업들이 말하는 그 화려한 연결의 힘이라는 건,
우리를 인질 삼아
꼼짝달싹 못 하게 묶어두는 쇠사슬이었던 셈이죠.

​내 돈 주고 산 내 프린터나 스마트폰조차
기업의 지식재산권이라는 해괴한 방패 때문에
제 뜻대로 고쳐 쓰지 못하게 가로막는 대목에선
진짜 실소가 터졌어요.
잉크 카트리지 리필 좀 했다고 기기 안에 락을 걸어버리고,
그걸 풀면 중범죄자로 몰아세우는 세태가
얼마나 오만하고 황당한가요.
"착한 기업이 되자"던 구글조차 주주들 돈벌이를 위해
유능한 개발자들을 길거리로 내쫓고
오직 수익에만 눈이 멀어 썩어가는 현실을 보니,
한때 정보의 바다라고 불렸던 인터넷이
거대한 기업들의 깡패 같은 영토 싸움터로
변해버린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저자가 "우리에겐 도망칠 권리가 있다"며
든든한 해결책을 던져줄 땐 속이 다 시원했어요!
우리가 앱을 못 떠나는 건
그동안 쌓아둔 데이터나 인맥이 아까워서인데,
이걸 다른 플랫폼으로 통째로 이사 갈 수 있게
대문만 열어줘도
기업들이 우리 눈치를 보기 시작할 테니까요.
매번 기업들이 짜놓은 판에
고분고분 길들여지는 호갱이 되기보다,
내 물건은 내가 고쳐 쓰겠다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부당한 독점에는 딴지도 걸 줄 아는 똑똑한 반항아가 되어야
내 지갑과 인터넷의
진짜 주권을 지킬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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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남긴 것
애너 퀸들런 지음, 김지현 옮김 / 리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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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가 남긴 것>


🍳 밥상 차리다 갑자기 사라진 엄마, 멈춰버린 집구석 분투기

​보글보글 찌개 끓이고 두부 썰던 엄마이자 아내 애니가
갑자기 부엌에서 쓰러져 죽었어요.
진짜 허무하고 뜬금없는 이별이죠.
퓰리처상 수상 작가 애너 퀸들런의 소설
<애니가 남긴 것>은 그렇게 중심축이 툭 끊겨버린 가족이
애니 없는 첫 일 년을 어떻게 버둥거리며 살아내는지
보여주는 책이에요.

​가족의 사소한 빈자리가 집안 전체를 어떻게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는지 소름 끼치게 보여주는 책이에요.
​평생 요양원 조무사로 일하며 네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던
서른일곱 살 애니가 어느 날 저녁 식사로 두부를 썰다
부엌 바닥에 툭 쓰러져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요.
이 비극적인 첫 장면 이후,
소설은 애니가 사라진 집구석에 남겨진 아빠 빌과
네 아이들이 겪어내는 지옥 같은 첫 일 년을
사계절의 흐름을 따라 아주 촘촘하게 보여줘요.

​주인공들은 슬퍼하느라 바쁜 게 아니라,
당장 굴러가지 않는 일상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요.
장례식장의 검은 상복을 벗자마자 이들에게 닥친 건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바구니와 텅 빈 부엌 찬장이에요.
엄마 냄새가 밴 행주를 누군가 빨아버릴까 봐
방구석 깊숙한 곳에 숨겨놓는 사춘기 딸 알리,
속상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엇나가며
집안의 든든한 맏이 역할을 거부하는 오빠 앤트,
그리고 매일 밥상을 차려주고 아이들을 챙기던
아내의 ‘손길’이 사라지자 당장 사는 법을 몰라
머리를 쥐어뜯는 아빠 빌까지.

​여기에 요양원 동료들과 이웃들은 찾아와
"애니는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며
착하디착한 추억담을 늘어놓지만,
정작 딸 알리는 그 성인군자 같은 소리에 속이 뒤집어져요.
가끔은 짜증도 내고 피곤에 찌들어 있던,
진짜 날것의 인간 애니를 어른들이 자기들 편한 대로
예쁘게 포장해서 가짜로 박제해 버리는 것 같았거든요.
​슬픔에서 겨우 한 발짝 벗어나려 하면
"내가 엄마를 잊어버리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배신자처럼 채찍질하는 이 가여운 가족들.
소설은 이들이 서로 "내가 더 아프다"며 날을 세우고,
서툴게 밥을 태워 먹고, 엉망으로 엉킨 빨래를 개면서도
신기하게 조금씩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지나
다시 겨울로 소생해 나가는
일 년의 발자국을 탄탄하게 담아냈어요.

📖 이 책을 읽으면서 진짜 소름 돋았던 건,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하는 꼬락서니가
너무나 지질하고 못나서였어요.
보통 책이나 영화에서는 가족이 죽으면
세상에서 제일 애틋한 사이였던 것처럼 꺼이꺼이 우는데,
여기선 부엌 찬장 앞에서
"빨래는 누가 하지?" "나 이제 밥은 어떡하냐" 하면서
당장 자기 손발 불편해진 것부터 원망하잖아요.
그 이기적이고 찌질한 모습들이 너무 진짜 사람 같아서
보는 내내 심장이 쿡쿡 쑤시더라고요.

​게다가 사춘기 딸 알리가 어른들 위선에 대고
빽 소리 지르는 장면들이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었어요.
위로한답시고
"엄마는 좋은 곳으로 갔단다" "엄마는 천사였어" 하고
예쁜 말로 대충 덮어버리려는 어른들한테,
"우리 엄마 가끔 피곤해 쩔어 있었고 성질도 부렸다"
면서 굳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날카롭게 들이밀잖아요.
슬픔을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분노로 터뜨리는 그 삐딱한 깡다구가,
차라리 훨씬 건강하고 솔직한 애도처럼 느껴졌어요.

​솔직히 우리도 살면서 진짜 소중한 사람을 보내고 나면,
슬며시 웃음이 나거나
맛있는 걸 먹을 때 덜컥 죄책감부터 들잖아요.
'내가 벌써 그 사람을 잊어가나? 나 진짜 못됐다' 하면서요.
잊는 게 배신처럼 느껴져서
일부러 더 아파하려 버둥거리는 그 질척한 감정들을,
작가는 차분하게도 따라가요.
상실이라는 커다란 흉터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도
우리는 결국 또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빨래를 개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게 먹먹하면서도 안도감을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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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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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어>


​🧳 가방을 열 때 비로소 쏟아지는, 숨겨둔 우리들의 진심

​우리가 여행 갈 때 짐 바리바리 싸는 그 큰 캐리어 있잖아요.
공항에서 무게 잴 때 초과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억지로 지퍼 꾹꾹 눌러 닫던 기억, 다들 있으시죠?
한지수 작가님의 소설집 <캐리어>를 읽다 보면
'내 마음속 짐가방도 저렇게 터지기 일보 직전이겠구나'
싶어지더라고요.
그 안엔 남들한테 쪽팔려서,
혹은 아파서 차마 못 보여주고 구겨 넣은 감정들이
잔뜩 들어있거든요.

​이 소설집에는 파리, 발리, 이스탄불, 교토 같은
낯선 동네로 훌쩍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먹고살기 팍팍해서, 혹은 상처받아 도망치듯
비행기 표 끊고 날아간 주인공들인데, 참 이상하죠.
언어도 안 통하는 먼 타지에 덩그러니 서니까
오히려 꽁꽁 잠가뒀던
자기만의 '인생 블랙박스'를 툭 열어보게 돼요.

​회사에서 미투 사건 겪고
마음이 걸레짝 돼서 파리로 도망간 사람,
연인이 죽고 나서 그 그리움을 감당 못 해
스페인 골목을 헤매는 사람,
교토에 가서야 평생 비밀이었던 부모님의
처절한 진짜 모습을 보게 된 사람까지...
​이 가여운 주인공들은 낯선 이방인들을 만나고
낯선 바람을 맞으면서 가방 깊숙이 처박아 뒀던
자기 상처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해요.
작가님은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냐"고 다그치지 않고,
그들이 짐가방 열어놓고 엉엉 울 때 옆에서
가만히 등을 토닥여줘요.

📖 ​"상처는 내 것이 크고, 떡은 남의 것이 큰 법이지"
라는 대사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픽 하고 헛웃음이 나왔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제 손톱 밑에 박힌 가시 하나는
세상 무너질 것처럼 아파하면서,
정작 남들이 힘들다고 할 때는 "다들 그렇게 살아"
하고 너무 쉽게 넘겨버렸던 것 같거든요.
이 대사 한 줄에 제 이기적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뒤통수가 은근히 따끔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저마다 사연 가득한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는 걸 보다가,
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먼지 쌓인 가방을 쳐다봤어요.
제 가방 안에도
누구한테 꺼내놓기 부끄러운 이별의 찌꺼기나,
일하면서 쥐어 터진 자잘한 자존심 상처들이
한가득 쑤셔 박혀 있을 텐데 말이죠.
맨날 보던 서울 풍경 속에서는 차마 부끄러워서
열어보지도 못하다가,
아예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나를 던져놔야만
비로소 '나 사실은 이때 되게 아팠어' 하고
가방을 열어 환기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인생의 진짜 진심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하는
엽서 같다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 말이 은근히 머릿속을 맴도네요.
여행할 때는 정신없어서 모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나,
혹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때 그 여행이 나한테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오늘은 멀리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제 마음속 가방 지퍼를 살짝 열어두고
그동안 고생 많았던 제 상처들한테
시원한 맥주 한 캔 쥐여주며 가만히 토닥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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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있는 사람이 이긴다 - 불안은 약점이 아니라 무기다 - D·R·I·V·E
양인호 지음 / 비버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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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핍이 있는 사람이 이긴다>


🏹 불완전함 속에서 먼저 쏘아 올린 화살

​열일곱 살, IMF 외환위기로 집안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온 동네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그 어린 나이에 채권자들 앞에 서서 "제가 갚겠습니다"
라고 선언하며 삶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사람이 있어요.
이 책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밑바닥에서
오직 버티는 힘 하나로 길을 만들어낸
저자 양인호의 뜨거운 생존 기록이에요.

​저자는 스펙도, 자본도,
든든한 배경도 없이 세상에 던져졌어요.
새벽 4시 자갈치 시장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선 상자를 나르는 일부터 시작해
러시아의 혹한과 유럽 시장까지 맨몸으로 부딪쳤죠.
그렇게 수많은 거절과 실패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 가지 단단한 진실을 배워요.
결핍은 부끄러운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앞으로 세차게 밀어주는
가장 뜨거운 연료가 된다는 사실을요.

​이 책은 완벽한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지쳐
시작조차 못 하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려요.
"준비가 끝나야 시작하겠다는 말은
시작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서 말이죠.
저자는 자신이 현장에서 검증해 낸 실행 원칙들을
영단어 'D·R·I·V·E'에 담아 설명해요.

​부족함을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눈(Deficit),
조건이 갖춰지기 전에 일단 화살부터 쏘는 용기(Risk First),
남들보다 한 박자 먼저 움직여
틈새를 선점하는 타이밍(Initiative Timing),
물건이 아니라
안심을 제안하는 가치 전환(Value Conversion),
그리고 백 번 넘어져도 결국 백한 번째 일어나는
회복탄력성(Endurance)이에요.

​IMF 키즈에서 출발해
글로벌 비즈니스 책임자가 되기까지,
사막과 시베리아를 넘나들며 피땀으로 쓴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유용한 실행의 기준을 전해줘요.

📖 "일단 화살부터 쏘고 과녁은 나중에 그린다"는
말을 보고 한참 동안 제 계획표를 쳐다봤어요.
저는 진짜 뭐 하나 시작하려면
온갖 자질구레한 계획부터 완벽하게 짜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 피곤한 타입이거든요.
자격증 시험을 접수할 때도, 새로운 운동을 시작할 때도
'아직 실력이 덜 됐는데 괜찮을까?' 하며 꽁무니만 뺐는데,
그 완벽주의라는 게 실은 시작하기 무서워서 부리던
얄팍한 엄살이었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찔리더라고요.

​새벽 4시에 부산 비린내 나는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 상자 던지던 얘기며,
러시아 벌판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영업 뛰던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니 제 안일했던 하루가
꽤 머쓱해지기도 했어요.
집안이 넉넉해서 곱게 자랐다면 절대로 배우지 못했을
날 것 그대로의 생존 감각,
한 번 푹 꺼져본 사람만이 가지는
튀어 오르는 탄성이라는 표현이 유독 마음에 남아요.
부족하다는 건 부끄러워하며 숨겨야 할 흉터가 아니라,
남들보다 한 박자 더 빨리 튀어 나가게 만드는
아주 훌륭한 시동 장치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동안 남들보다 스펙이나 인맥이 부족한 것 같아
은근히 기가 죽을 때가 많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슬며시 웃음이 나더라고요.
어차피 이 세상에
'완벽한 타이밍' 같은 건 애초에 없었던 거잖아요.
조건이 다 갖춰지길 멍하니 기다리다가 기운 빼기보다,
차라리 조금 어설픈 채로 일단 저지르고 보면서
굴러가는 게 백배는 낫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남들이 다 그려놓은 과녁 맞히겠다고
멈춰 서서 땀 흘리지 말고,
저도 제 손에 쥔 화살을
아무 데나 먼저 툭 쏘아버려야겠어요.
과녁이야 나중에 가서 대충 동그라미 그리면 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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