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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6년 6월
평점 :
#협찬
📚 <캐리어>
🧳 가방을 열 때 비로소 쏟아지는, 숨겨둔 우리들의 진심
우리가 여행 갈 때 짐 바리바리 싸는 그 큰 캐리어 있잖아요.
공항에서 무게 잴 때 초과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억지로 지퍼 꾹꾹 눌러 닫던 기억, 다들 있으시죠?
한지수 작가님의 소설집 <캐리어>를 읽다 보면
'내 마음속 짐가방도 저렇게 터지기 일보 직전이겠구나'
싶어지더라고요.
그 안엔 남들한테 쪽팔려서,
혹은 아파서 차마 못 보여주고 구겨 넣은 감정들이
잔뜩 들어있거든요.
이 소설집에는 파리, 발리, 이스탄불, 교토 같은
낯선 동네로 훌쩍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먹고살기 팍팍해서, 혹은 상처받아 도망치듯
비행기 표 끊고 날아간 주인공들인데, 참 이상하죠.
언어도 안 통하는 먼 타지에 덩그러니 서니까
오히려 꽁꽁 잠가뒀던
자기만의 '인생 블랙박스'를 툭 열어보게 돼요.
회사에서 미투 사건 겪고
마음이 걸레짝 돼서 파리로 도망간 사람,
연인이 죽고 나서 그 그리움을 감당 못 해
스페인 골목을 헤매는 사람,
교토에 가서야 평생 비밀이었던 부모님의
처절한 진짜 모습을 보게 된 사람까지...
이 가여운 주인공들은 낯선 이방인들을 만나고
낯선 바람을 맞으면서 가방 깊숙이 처박아 뒀던
자기 상처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해요.
작가님은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냐"고 다그치지 않고,
그들이 짐가방 열어놓고 엉엉 울 때 옆에서
가만히 등을 토닥여줘요.
📖 "상처는 내 것이 크고, 떡은 남의 것이 큰 법이지"
라는 대사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픽 하고 헛웃음이 나왔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제 손톱 밑에 박힌 가시 하나는
세상 무너질 것처럼 아파하면서,
정작 남들이 힘들다고 할 때는 "다들 그렇게 살아"
하고 너무 쉽게 넘겨버렸던 것 같거든요.
이 대사 한 줄에 제 이기적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뒤통수가 은근히 따끔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저마다 사연 가득한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는 걸 보다가,
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먼지 쌓인 가방을 쳐다봤어요.
제 가방 안에도
누구한테 꺼내놓기 부끄러운 이별의 찌꺼기나,
일하면서 쥐어 터진 자잘한 자존심 상처들이
한가득 쑤셔 박혀 있을 텐데 말이죠.
맨날 보던 서울 풍경 속에서는 차마 부끄러워서
열어보지도 못하다가,
아예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나를 던져놔야만
비로소 '나 사실은 이때 되게 아팠어' 하고
가방을 열어 환기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인생의 진짜 진심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하는
엽서 같다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 말이 은근히 머릿속을 맴도네요.
여행할 때는 정신없어서 모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나,
혹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그때 그 여행이 나한테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오늘은 멀리 떠나지는 못하더라도,
제 마음속 가방 지퍼를 살짝 열어두고
그동안 고생 많았던 제 상처들한테
시원한 맥주 한 캔 쥐여주며 가만히 토닥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