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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평점 :
한 번씩 미래를 그려본다. 비록 그것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희망이라는 달콤한 코팅을 추가하면, 생명 연장이 이루어지고 각종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기만 하다. 현재로서는.
그런데 지극히 사실적인 미래 모습을 미리 보여준 소설이 있다. 그것이 소설이라서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내용에 현실이 겹쳐 보이면서 실현할 수 있는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자리 잡는 것도 부인하지 못하겠다.
『아몬드』를 통해 작가 손원평을 알게 되었는데, 그간 청소년 소설뿐 아니라 『서른의 반격』, 『튜브』 등의 장편소설과 어린이 대상 『위풍당당 여우꼬리』 등 그녀의 독자는 전 연령대를 아우르고 있다.
이번 신작 『젊음의 나라』는 때마침 가장 기록적인 더위를 갱신하는 2025년 7월에 출간되었다. 매년 달구어지는 지구를 보면 곧 종말이 다가올 듯 암담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저녁 무렵엔 달콤한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한여름에 미래의 서늘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의 1월 1일, 주인공 유나라는 새해 결심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한국으로 이민을 온 친구 엘리야와 함께 살고 있으며, 호텔에서 청소를 하고 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시카모리아에 VR 장비로 접속하여 시카모어 섬에 드나드는 것이다. 시카모어 섬으로 말하자면 카밀리아 레드너라는 이가 플라스틱 폐기물로 이루어졌던 쓰레기 섬을 개발하여 35세 이하의 청년 60퍼센트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슈퍼 리치 시니어 30퍼센트로 도민을 이룬 꿈의 섬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하니, 나라는 이곳에 VR 장비를 통해서이지만 간접 체험을 하는 걸 낙으로 삼고 언젠가는 입도하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
하지만 새해부터 그녀의 일자리는 로봇으로 대체되어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가 되고, 시카모리아에 입장하기에도 여윳돈이 부족하다. 한때 그녀의 꿈이었던 배우도 AI 배우로 대체되고, 각종 서비스업도 로봇이 대체하니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이게 나다.
이것이 내 현실이다.
나는 아마 이렇게 늙어갈 거다.
방 안에서. 혼자. 외롭게.
쪼그라드는 꿈을 펼치지 못한 채.
잿빛으로 남루하게.” -31쪽
그런 그녀에게 유카시엘 재단에서 연락이 온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시니어 상담사로 일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유카시엘은 노인 거주 시설을 주 사업으로 하는 시니어 전문 기업으로 사실상 나라 전체의 노인 인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다. 이 수용 시설은 유닛이라 일컫는데, 최고 등급인 유닛 A부터 돈이 거의 없는 노인들이 머무는 유닛 F로 세분된다. 더군다나 유카시엘은 시카모어 섬과 MOU를 맺고 있기에 유카시엘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은 시카모어 섬에 채용될 수도 있다.
유닛 A에서의 상담사는 순조로울 것만 같았지만, 대부분 사회에서 명성을 떨치던 권력을 누린 이들의 화려한 과거사를 담은 소음을 들어주는 일이라 서서히 피로가 누적된다. 출근한 지 2주도 안 되어 건강관리 소홀로 노인들에게 제대로 된 ‘돈값’을 못하게 되어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기회는 다시 주어지고, 다음 아래 단계인 유닛 B로 강등되어 근무를 시작하게 되는데, 어느 날 시카모리아에서 만난 이로부터 곧 있을 시카모어 섬의 채용 정보에 관해서 듣게 된다.
카밀리아가 유카시엘의 상위 유닛부터 하위 유닛까지 다채로운 경험을 한 지원자를 원하고 있다고. 어쩌면 이번이 나라가 시카모어 섬에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러 유닛을 거치며 그녀는 꿈에 그리던 이도 만나게 된다. 바로 민아 이모.
사실 어려서 헤어졌던 민아 이모에 대해 나라는 점점 시카모어의 주인인 카밀리아가 이모가 아닐지 하는 확신까지 들던 차에 가장 낮은 등급인 유닛 F에서 만나게 된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아이는 내 삶의 가장 큰 무늬였으니까요.
가슴속에 거센 파도가 몰아쳤다.” -219쪽
인생에서 낙오된 민아 이모를 만나고, 이모의 마지막 꿈이라는 조력사를 고민하게 된 나라는 더 이상 희망도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운명을 바꿀 마지막 기회인 시카모리 섬 채용 면접의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데.
드디어 면접이 치러지는 날, 나라는 유닛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자신의 변화된 생각을 덤덤하고,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이 땅을 가득 채운 쓸모없는 노인들 때문에 내 젊음이 희생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내 삶이, 나이 든 누군가를 살리는 수혈 팩에 든 피 같다는 생각이요.
카밀리아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흥미로운 표현이네요. 계속해보세요.
-하지만 내 안을 채운 게 논리도 합리도 아닌 혐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을 때, 멈춰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중략>
-지난 몇 달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게 있어요. 나이가 많든 적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공통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을요.
-인간의 단 한 가지 공통적인 본성이라……. 대단하네요. 뭔데요. 그게?
카밀리아가 물었다.
사람은 세상을 향해 손을 뻗고 싶어한다는 사실입니다. 소중했던 기억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전혀 낯선 이에게까지도 사람들은 손 내미는 걸 멈추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확인받으려고 말이죠.
<중략>
지불한 액수에 걸맞은 서비스와 친절함, 환심 어린 애정, 심지어 젊음과 죽음까지도 살 수 있어요. 그것들을 모두 합쳐 행복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겠죠. 하지만 저는 절대로 살 수 없는 게 있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와의 깊고 진실한 관계요. 가진 게 전부 없어져도 나를 향해 여전히 태양처럼 남아 있는 미소만큼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저는 섬에 가서 누군가와 그런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리고 연결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찾아주고 싶어요.
<중략>
- 어느 천국에도 어둠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그 어둠을 전부 걷어내지는 못하겠지만, 다만 한 조각의 햇살이라도 던져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라의 면접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민아 이모의 마지막 꿈은 과연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 소설이었다. 작가도 말했듯이 불과 몇 년 만에 반으로 줄어든 초등학교 입학생 수를 접하면,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한국의 현실이 더욱 와닿아, 작가가 보여준 미래의 한 조각이 그대로 실현될까 두렵기도 하다.
소설에는 고령화, 빈부격차, 청년과 노인 세대의 갈등, 조력사, 이민자와의 갈등, 인간과 로봇, AI와의 문제 등 다방면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이 모든 문제가 이미 시작되었거나 진행되고 있어 현실과도 같은 미래라는 생각이 더욱 들었나 보다.
작가도 이에 대해 다시 한번 짚어 있다.
“이 이야기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딘가 꼭 존재해야만 하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를, 동시에 반드시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 289, 작가의 말 중
우리 모두에게 닥친 이 암울한 미래가 더 이상 어둡지 않게, 나라처럼 어둠을 살짝 걷어낼 수 있는 한 조각의 햇살과 같은 생각들이 모이면 그래도 이 소설만큼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그나마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만큼 고민의 시간이 쌓였으면 한다.
이 소설을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그리려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