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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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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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조개껍데기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물체, 아니 존재들처럼 보여. 마치 우리처럼.(255p)

11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고스트 듀엣'에는 있으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회가 소수자들과 힘없는 자들에게 행하는 크고 작은 폭력 속에서도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서로 연대하며 보듬는 모습에서,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진다. 그 힘이라는 것은 결국 사랑이 바탕이 된다. 그 사랑이란 것은 부족한 나의 것도 나눠주는 것이고, 있는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품에 안는 것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자격을 갖는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서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강자들의 폭력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투쟁을 보여준다. 그 투쟁이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속한 현실이 우울할지라도 결국 이 삶을 살아내겠다는 의지, 그것들이 연결돼 단단히 힘을 갖는 것이다. 그들은 귀신이나 고스트가 되어서도 때론 홀로그램으로, 가상현실 속에서 나타나서라도 그들과 함께 한다.

내가 읽은 단편집 중에서 가장 많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있나'를 읽으면서 인물관계도를 그렸는데 그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하나로 이어져 커다란 원을 이룰 때 적잖은 감동을 느꼈다. 우리는 혼자 살(할) 수 없고, 연결될 때 완성된다.

🔖형우의 소설에는 항상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누가 누구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누가 누구를 선불리 보듬지도 않으면서. 아니 어쩔 땐 섣부르게 보듬으면서 인간이 인간을 생각하며 인간에게 손 내미는 것을 보여줬다. 이 정도면 휴머니즘도 병이라는 말을 들어도 형우는 존재가 존재를 쉬이 저버리지 않는 이야기를 쓰려 애썼다. (78p)

형우의 소설, 결국 김현 작가님의 소설이지 않을까.
김현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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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시간 앞에서 부끄러운 사람이 되지 않 바란다. 너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너의 시간을 빼앗아 가게 두지 않았음 좋겠어.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시간을 되돌려보고 싶을 땐 시계를 열고 닫아보는 것도 좋더구나. (48-49p)

🔖남들이 사람 취급을 안 해준다고 해서 내가 사람인 것까지 포기하면 안 돼요. (53p)

🔖말을 줄이며 상민은 조용히 그녀와 눈빛을 나눴다. 눈빛. 그것은 죽음을 데리고 다니는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언어였다. 눈빛은 이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말을 했고, 꼭 해야 할 말을 하도록 했다. 그들이 살아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82-83p)

🔖형석은 사과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승우는 사과하지 못했음을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누군가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하루를 허투루 보냈다고 여기지 않았다. (115p)

🔖나는 '그런데도 인생'을 살면서도 살자고 반복해서 말한다. 믿는다. 나와 영수는, 아마도, 아니 분명히 이후로도 오랫동안 꿈이 있는 사람으로서. 가난한 연인들로서 각자의 삶과 우리라는 삶을 동시에 살아내고자 애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우리에게 주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줄수만 있다면, 주어야 한다면. 주는 행위만으로도 사랑은 생생한 색채를 띠기도 하니까. (127p)

🔖내가 진짜로 묻고 싶었던 건 정규가 쓰는 소설의 미래가 아니라 소설을 쓰는 정규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어떻게든 쓰더라도 어떻게 쓸지를 고민하고, 어떻게든 살아지더라도 어떻게 살지를 계속 자문하는 사람이 돼야지. 작가라면. (212p)

🔖인생이란 다짐의 연속이다. 다짐이란 부질없는 것. 다짐하다 인생 다지는 거다. (2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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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민군을 도왔던 황금동 성매매 여성들,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폄훼되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관련 내용을 쓴 소설 '황금동 여인들'이라는 책을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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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p 14째줄 '상민은 조금만 힘내자,'->'승남'으로 수정돼야 할 것 같아요.

#고스트듀엣 #김현 #소설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하니포터7기
#독서 #서평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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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 1
정보라 지음 / 읻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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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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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님이 쓴 초창기 소설이다. 익숙한 구미호 이야기를 현대판 판타지 로맨스 소설로 둔갑시켰다.

🔖"지은 씨가 원한다면, 평생 다른 사람들한테 지은 씨 얘기 절대로 안 할게. 자신 있어."(44p)

여우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기를 빨려가면서도, 구미호 황지은을 사랑한 남자, 최기준. 외모와 잠자리에 홀려 결혼까지 하자고 매달린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구미호(이 때는 과거 구미호와의 기억을 잃은 후)의 결심을 얻어낸 기준은 그녀와의 악속을 지키지 못해 결혼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무한의 삶을 사는 구미호가 유한의 삶을 사는 인간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것인데도 기준은 그 약속을 기억조차 못 하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 구미호 앞에서 자신의 100%를 다 줄 거라고 말했던 기준, 애초 그런 약속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니었다. 기준으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나중에 제정신이 들면, 목숨이 아까워지는 날이 있을거야. 그러니까 그런 약속은 함부로 하지 마."(45p)

전설엔 없는 캐릭터가 기준의 할머니인데, 여우에 홀린 손주 기준을 살리겠다고 구미호와의 결혼을 반대하고 부적까지 만든다. 구미호의 심기를 건드린 할머니에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기준은 소중한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친다. 그것은 '구미호와의 기억'. 그래서 기준은 구미호의 약속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개가 대가로 받아 가겠다고 했던 '소중한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금 내게 소중하다고 할 만한 것은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깨어나시지 않는다는 현실 자체가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환 논리였다. 뭔지도 모를 소중한 것은 할머니를 살리기 위한 대가가 아니었던가? (146)

기준의 사랑은(사랑에 빠지기만 하면 결혼을 밀어붙이려는 게 좀 이기적이기도 함) 맹목적이고(때론, 사랑이 구미호보다 무섭기도하다.), 구미호 지은이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로서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고민하는 모습은 지금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저주토끼를 아직 읽지 않은 나는 사실 매운맛 공포를 기대했는데 예상 가능한 익숙한 장치들 때문인지 가볍게 읽었다. 장편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2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가독성이 좋고 호흡이 짧아 속도감 있게 한자리에서 읽을 수 있다.

🔖"약속한 것도 기억 못 하는 구나 .."
"정말 약한 게 인간이구나. 믿은 내가 바보였어."(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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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정보라 #소설 #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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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초록 천막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1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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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장편 소설 '커다란 초록 천막'은 스탈린 사후 격동기 소련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통찰이며, 문학과 음악을 향한 작가의 순애보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됐던 21세기 러시아의 가장 저명한 작가이다.

출신이 다른 6명의 주인공(남자 친구들인 일리아, 사냐, 미하와 여자 친구들인 올가, 갈랴, 타마라)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그물처럼 연결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생을 연주한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단할 수 없다. 카덴차로 마무리되는 인생이 있다면 끝내 마무리하지 못한 미완성 곡으로 남겨지는 인생도 있다.

가난한 학창 시절, 러문애(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모임)를 이끈 문학 선생님인 빅토르 율리예비치의 열정적인 가르침은 아이들 인생에 커다란 자양분이 된다. 그는 이러한 가르침이 '삶에서 혐오스럽거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등에 대항하고도 남을 백신을 맞는 것이라고 확신했다.(194p)'

당시, 문학이 사상교육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국가는 철저하게 문학을 통제.검열 하지만 사람들은 검열을 피해 자가 출판물을 만들기도 하고 비밀리에 유통하기도 한다. 일리야는 이런 사마즈다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누구보다 시를 사랑한 미하는 고달픈 인생을 위대한 작가들의 시로 위로받는다. 귀로 듣는 문학인 음악을 사랑한 사냐도 인생의 고비마다 음악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인생을 발목 잡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은 당시 통제와 검열의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대와 운명적 만남이 삶 속에서 일으키는 다양한 스파크를 보다보면 인생 앞에 겸손해지게 된다. 어떤 스파크는 인생을 휘몰아치게도 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비인간적인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것이 당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또한, 삶의 모습은 다 달라도 죽음은 누구에게든 찾아오며, 죽으며 들어가는 초록 천막 안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열려있다는 것을.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도서지원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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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훌 도르르 마법 병원 밤이랑 달이랑 6
노인경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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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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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이들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그 시절 아이들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 불쑥 내뱉는 말 한마디가 웬만한 시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놀이에서 하는 말들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놀이 중 드러나는 자신의 감정과 경험에서 나온 말들을 들을 때면 한 번씩 나의 육아태도를 돌아보기도 했다.

1.훌훌 도르르 마법 정원🩺🏥

밤이랑 달이는 힘이 없어 보이고, 말하기 싫고, 당근을 안 먹는다고 혼나거나, 늦잠을 자서 소풍을 못 간 동물 친구들의 마음을 잘 안다. 아마도 밤이랑 달이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동물 친구들이 아픈 걸 지나치지 못하고 치료해 주려고한다. 의사 선생님으로 변신한 아이들의 치료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밥을 잘 먹었는지, 똥을 잘 쌌는지 묻고, 배도 두드려 본다. 아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해도 괜찮다. 밤이랑 달이에겐 무엇이든 고칠 수 있는 두루마리 휴지가 있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 보이는 코끼리의 코를 둘둘 말아주고, 말하기 싫은 호랑이가 휴지탑을 뻥차게 해주고, 혼나고 실망한 강아지와 새와는 신나게 놀아준다. 어느새 동물 친구들은 다 나은 것 같다. 밤이랑 달이는 신나게 노는 것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는지 잘 아는 의사 선생님들이다. 나을 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진 이 꼬마 선생님들에게 치료를 받으면 낫지 못할 병이 없을 것 같다.

2. 꽁꽁 사르르 비밀의 방 🍦🧊

아이들은 신나는 모험가이고 모험을 사랑해서 스스로 모험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밤이랑 달이는 한밤중에 냉동실 아이스크림을 구출하는 모험을 떠난다. (엄마에게 혼날 걸 생각하면 이건 확실한 모험이다!) 한밤중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또 먹고 싶어 아이스크림을 찾아 냉동실을 샅샅이 뒤지며 모험을 떠나지만 빈손이다. 아쉬운 마음에 내일은 꼭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잠자리에 든다. (밤이가 냉동실 아이스크림을 구해주자고 할 때 소극적이던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는 더 먹고 싶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진짜 너무 귀엽다.)

노인경 작가님의 밤이랑 달이랑 시리즈 속 아이들 세계를 들여 보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신나게 놀고 나면 내일을 긍정적으로 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그 희망 속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게 한 뼘씩 자라게 된다는 믿음이 생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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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의 미친 여자들 - 여성 잔혹사에 맞선 우리 고전 속 여성 영웅 열전
전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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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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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웅(雄)이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자 수컷을 뜻하는 말이란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고전적인 영웅 이야기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서사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20p)

영웅 하면 떠올리는 인물들이 있다. 떠올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들이고 그들이 펼치는 활약상은 비슷하다. 여성 영웅이라고 할 때 '이질적인 존재, 딱 들어맞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남성중심의 영웅서사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나 제도에 의해 약자가 될 수밖에 없고 차별을 겪는 여성들이 운명에 휩쓸리기보다는 '자기 운명의 주체가 되어 용기를 내 세상에 걸음을 내딛는 옛이야기 속 여성 영웅'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거나 세상 끝을 향해 모험을 떠나지 않았어도 그 자체로 영웅이라 불릴 수 있다.

공주로 태어났지만 버림받고 시련과 모험 끝에 죽은 아버지를 살려내고 신으로 정좌한 <바리데기>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 속 여러 여성 주인공들의 이야기의 기본 토대다. '출발-입문-귀환'이라는 영웅의 여정을 거치는 바리데기 이야기에서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속 여성 인물들이 어떻게 변주되고 연관되는지 저자는 이야기한다.

1.여성 영웅에서 중요한 어머니, 또는 이에 준하는 이들_
<숙향전>의 숙향은 가부장제에 굴복한 친어머니에 의해 버림받지만 이후 수양어머니와 여신어머니에 의해 보호받고 마고할미(어머니 여신)의 인도를 받아 모험을 마친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화해하고 이로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온전히 자신으로 살아간다.

2.아버지라는 숙명적 비극, 자식보다는 가문이 소중한_
여성 영웅의 아버지들은 대게 딸들에게 관심이 없고 오히려 시련을 준다. '자식 사랑'으로 포장된 무능한 <심청전>의 심봉사, <장화홍련전>,<콩쥐팥쥐전>에는 계모보다 무서운 무관심한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의 안일한 시각은 가정폭력, 아동학대로 이어지며, 불화와 잘못을 계모의 몫으로 전가한다. 여성이 의지할 곳은 자궁가족 밖에는 없다.

3. 결혼의 족쇄와 사랑으로 낡은 세계에 균열을_
<사씨남정기>와 <숙영낭자전>을 통해 혹독한 시집살이와 가부장제가 얼마나 여성의 인격을 말살하는지 보여준다. 미혼모가 된 <당금애기>의 당금은 스스로 감당한 시련과 모험으로 삼신이 된다. 여성들은 죽어 신이 되어도 여성들을 돌보는 존재가 된다. 가부장이 생사여탈권을 쥔 사회에서 여성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대안 중 하나는 사랑이다. 운명에 도전한 궁녀의 사랑을 보여주는 <운영전>,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는 <춘향전>의 춘향이 있다. '계급의 벽에 균열을 내는 혁명의 이야기다.'

4. 여성 영웅의 발전_
<박씨전>의 박씨는 명예남성이길 거부한 여성 영웅이었다. 남성보다 더 뛰어난 지혜로 가정을 이끌고 그 뜻을 이어갈 제자를 길렀다. 사회의 유리천장을 뚫기 위해 남장을 한 홍계월, 남장을 하고 나라를 구했지만 가정을 벗어나지 못한 영웅 <이학사전>의 이현경, 레즈비언과 동성의 대안가정을 상상한 <방한림전>을 통해 여성 여웅이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여성 여웅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부장적인 사회와 차별 자체가 고난인 사회에서 여성은 태어나면서 모험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진짜 자신들을 찾아가는 여성 영웅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다른 여성들을 구하는 손짓이다. 남성들이 세계를 구하는 바깥일에 몰두해 있을 때, 여성 영웅들은 남성성의 세계를 뚫기 위해 끝없이 고군분투했다. 여성들은 나 자신을 먼저 찾아야 했기때문이다.

🔖여성 영웅의 경우, 아테나 여신처럼 어머니가 삭제된 '아버지의 딸'이 아닌 이상, 여성 영웅에게 더 중요한 이들은 어머니, 또는 어머니에 준하는 이다. 딸의 시련은 어머니의 상실에서 시작되고, 어머니에 준하는 존재들의 보호를 받아 성장하며, 어머니 여신의 인도를 받아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여신 어머니의 사랑과 가르침을 통해 성장해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딸은, 한때 자신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그 어머니와 화해하고, 그 상처를 감싸준다. 상처받은 어린 딸은 이 과정을 통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성장한 개인으로서,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자유]를 손에 넣는 것이다. (85p)

#규방의미친여자들 #전혜진 #여성영웅열전
#한겨레출판 #서평단 #독서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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