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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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도서

처음 요가를 배웠을 때 요가 선생님은 호흡이 중요하다고 했다. 숨을 내쉴 때와 들이켤 때의 동작이 달랐고 그걸 반대로 하지 말라고. 몸 안의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김혜나의 소설집은 '요가'같은 소설이다. 호흡을 고르고 내 안의 에너지에 집중하게 한다. 동작의 만듦새는 호흡에 따라 달라지고 외부에 신경 쓰지 않고 코어에 집중하면 동작은 탄탄해진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긴 호흡으로 바라볼 줄 아는 것과 작고 큰 문제들에 전착하기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하면서 한 발 나아가는 것, 멈출 때를 아는 것, 그런 것들을 느끼며 소설들을 읽어나갔다.

비교적 차분한 어조의 7편의 단편 소설 주인공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이나 문제를 '객관적상관물이자 낯설게하기, 혹은 비틀기'(229p)로 우회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자신을 탓하며 우울에 빠지지 않는다. '깊은숨'을 내쉬고 앞으로 정진한다.

존재는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고 누구에게도 속해있지 않기에 자체로 완전한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의 아진은 생모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이 진리를 깨닫는다. 인생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여정이라는 것.

모든 단편이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단편은 <오지 않는 미래>였다. 여경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 종국에 그녀가 '긴 한숨'을 내쉬었을 때 나도 같이 내쉬게 될 정도로 몰입 되었다.

작가님의 첫 소설집인데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소설은 역시 나에게 '코너스툴'같은 존재다.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었으니 책방 이름을 지어야 했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코너스툴'이었어요. 우리는 비록 링에서 싸우듯이 살아가고 있지만, 잠깐씩 앉아 쉬어 갈 구석 자리가 됐으면 해서 지은 이름이에요.(265p)

#깊은숨 #김혜나 #소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4기_깊은숨
#독서 #책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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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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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제공도서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9p)

사람들 틈에 있지만 사람이 그립고, 위로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위로를 받고 싶은 때가 있다. <어느 날의 나>는 이런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유리와 동아리 언니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살지만 서로의 과거를 캐묻지도 않고, 유난하게 서로를 위로하지 않으며, 서로의 생활을 간섭하거나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 곁을 내주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그 선은 상대에 대한 믿음으로 견고하다.

🔖거기까지.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본다.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거기서부터는 언니의 몫이고, 나는 여기 가까이에 서 있을 뿐이다. (39p)

🔖..언니를 믿는다. 나는 나의 날들을, 언니는 언니의 날들을 살고 있는 중이니까.(83p)

유리와 언니는 과거의 상처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조금씩 과거에 덤덤해져 간다. 과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처를 흉터 없이 치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흐름을 받아들인다. 서로 극복을 강요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유리는 그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괜찮으니 다행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언니와 재한 씨 같은 친구가 있으니 장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소소하게 정을 나누는 것, 이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사건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주란 작가의 <어느 날의 나>는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삶이 시끄럽다고, 말이 넘치는 것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다정한 위로가 되는 소설이다. 타인을 염려하는 마음은, '손톱달'을 여러 번 멈춰서 바라보는 남자처럼 그렇게 애틋하게 조용하게.

🔖고마워
저도 고마워요.
나한테 뭐가?
태어나줘서요.(69p)

🔖그가 세 번째 멈춰 섰을 때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손톱달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 손톱달이 떠 있었다. 달을 보려고 멈춰 서는 사람이라니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봤네요. (75p)

🔖저는 뭔가를 극복했다, 그런 게 다 허상 같거든요. (109p)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면.(1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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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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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제공도서 

수잔 발라동의 1920년대 작품 <파란 방>에 누워있는 여성은 기존 그림들에서 볼 수 있었던 유혹적이며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책을 곁에 두고 편한 옷차림으로 누워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이 그림이 유독 내 눈에 머물렀던 이유는 이전 시대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들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라서 일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름답다. 진짜 잘 그렸다. 섬세하다. 감탄하며 그림들을 넘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림을 지나치는 우리를 붙든다. 

다시 보세요.  이 그림에서 당신이 놓친 것이 있어요.

지나친 그림들 속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있고
왜곡이 있으며 강요와 협박, 혐오와 거짓말, 슬픔이 숨어있다.  저자는 그림 속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은 남성의 관음증을 충족해줄 성적 대상으로 미화되고, 흑인은 단지 백인의 아름다움을 받쳐주기위한 배경 역할로 등장하고, 장애인들의
모습은 확대, 과장됐거나 일부러 대중적이도록 순결함과 조합해 그려졌다.  또한 이러한 현실 외면이나 왜곡에 저항한 예술가들 있다.  커버링하지ㄴ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때론 고발한다.  살아있고 존재한다고 알리는 외침같다.

그림 속의 소품으로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보고 싶은 대로 그리는 남성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헨드릭 혼디위스가 그린 <몰렌베이크의 무도병 여자들>에서는 여성 자궁의 혐오가, 제임스 애벗의 <회색과 검정의 조화(화가의 어머니)>는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애가 드러난다.  때론 저평가된 가사노동과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의 모습이 신랄하게 보이기도 한다.  학대당하는 여성들을 그대로 보여주며 고발하기도 하고, 그림 속에서조차 여성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그림 속에서 여성의 역사와 사회를 읽는다.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권력, 그것을 비트는 다른 한편의 예술가들, 부자들이 자신의 자비심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했던 예술작품들, 최근 까지도 예술을 정치적, 이념의 도구로 이용했던 국가 권력자들의 이야기, 이 책이 들려준 기울어진 그림 속의 감춰진 많은 이야기들과 해석을 들려준다.  책을 읽고 나니 오늘날을 짚어보게 된다.  사회, 여성, 환경, 장애 등 여러 분야에 드러난 여전한 문제점들을 보인다.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과제를 던지며 단절시켜야 할 것들과 연대해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날카로운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시대를 증언한다. 화가는 스스로는 의식 못하겠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기늘 작품 안에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예술 작품을 지금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 읽기의 의의가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8-9p)

🔖우리 여성들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그들의 발을 치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여성 노동력은 남성들의 성공을 위한 거름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잉여도 아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본권'부터 챙길 수도 있도록, 그 발부터 치우라.(138p)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들은 사회에 재난 같은 큰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특정 대상에게 뒤집어씌운다. 사회 전체는 이 대상을 희생시킴으로써 불안정한 사회 상태를 안정화하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다.(206p)

🔖중요한 질문은 동물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하는가가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줄 아는가이다...비건 활동가 캐럴 애덤스의 말대로 "정의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장벽에 갇힌 취약한 상품이 아니기"때문이다. (220p)

#기울어진미술관 #이유리
#한겨레출판사 #그림에세이
#하니포터4기_기울어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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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와 밤의 형제단 비룡소 걸작선 62
B. B. 올스턴 지음, 고드윈 아크판 그림, 김경희 옮김 / 비룡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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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제공도서

초라한 배경이나 주워진 환경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흑인 소녀 아마리는 빈민가 로즈우드 출신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으며 명문 사립고에 다니지만 그녀의 출신 배경을 두고 괴롭히는 동급생들이 있다. 그녀의 오빠 퀸턴 또한 같은 사립고 출신이지만 명문 대학을 포기하고 의문의 일을 시작하면서 실종돼 사라지게 되자 나쁜 루머가 돌게 된다.

오빠가 보내준 단서들로 오빠는 초자연 세계의 초자연 현상 수사부 요원으로 일하다 실종됐음을 알게 되고 아마리도 초자연 현상 수사부 요원이 되기 위해 지원하지만 그녀는 앞선 초능력 검사에서 사람들이 혐오하는 '마법사'로 판명이 난다. 인간 세상에서나 초자연 세계에서나 아웃사이더인 아마리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사악한' 마법사의 인식을 깨고 초자연 세계를 구원한 '용감한' 마법사로.

아마리는 과연 오빠는 찾을 수 있는지, 초자연 세계를 무너뜨리고 사악한 마법사들, 밤의 형제단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암흑서와 그 책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지킬 수 있는지 그리고 초자연세계에서 배신자는 과연 누군지를 궁금해하며 읽느라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인간세계에서는 에밀리 일당에게 괴롭힘당하고 초자연세계에서는 라라 일당에게 괴롭힘당하지만, 아마리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정면 대응한다.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용기를 내본다. 시종일관 자신을 믿는 아마리, 멋지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아마리의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이 남들에게 차별과 무시를 당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빛나게 만들 수 있는 보석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혹시 아나, 그것이 초자연 세계에선 멋진 요원의 자격요건일 수도!

초자연세계 안을 돌아다니는 살아있는 엘레베이터들, 각 부서들에 걸맞는 환경, 순간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트랜스포터나 스턴 스틱 등 판타지 세계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잘 돼 한 편의 판타지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영화로도 나오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두 번 정도의 반전이 나오는데 마지막 반전은 충격적이다. 😅

🔖이 책이 여러분에게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판타지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독자 여러분 중 남들과 다르게 생겼거나 혹은 이유가 어찌 됐건,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외로운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만의 독창성이 결코 불안과 두려움의 원천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데서 오는 힘은 단단하고 무엇보다 큰 기쁨을 줍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아무도 여러분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ㅡBB올스턴 (559p)

#아마리와밤의형제단 #bb올스턴
#amariandthenightbrothers
#bbalston #비룡소 #김경희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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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그래픽 노블)
백대승 지음, 조지 오웰 원작, 김욱동 해설 / 아름드리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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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제공도서

🐕🐈‍⬛🐈🐷🐖🐐🐑🐀🦅🦢🦆🕊

동물농장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이 난다. 소련의 전체주의와 스탈린을 빗댄 정치 우화라는 건 미리 알았지만 읽을수록 완벽한 비유와 풍자가 대단하다고 여겼다.

동물농장은 우화이긴 하지만 상징하는 것들이 많고 80여년 전에 쓰인 정치풍자소설이라 청소년들이 처음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다. 큰애가 처음 읽었을 때 정치적. 시대적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기억이 난다.

선동가들은 해방을 외치며 일반 군중을 설득해 혁명의 과업을 이루지만, 서서히 권력의 맛에 취해 애초의 혁명 의도나 의미는 사라지고 또다시 부패한 정치질을 한다. 안타깝게도 공포를 이용한 전제정치의 그림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조지 오엘은 동물 농장을 통해 🔖'찬성하지 않아도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들어 주는 배려와 아량, 아무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225p)를 꿈꿨다.

오랜만에 다시 본 동물농장,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이 책은 동물농장을 그래픽 노블로 그린 것이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듯 재미나게 읽었다. 생각해 볼 만한 문장이나 내용들은 강조하여 표현했고 다소 복잡한 상황도 한 그림 안에 친절하게 그려 넣어 내용 전달이 잘 되었다. 무엇보다 그림이 난해하지 않고 선정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노란 박스 안의 텍스트는 눈에 확 띄어 짚고 넘어가야 하거나, 중요한 문장임을 알게 해줘 책을 더 깊게 즐기게 해준 것 같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이라면, 그래픽 노블을 먼저 보고 도전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동물농장 #조지오웰 #백대승
#김동욱_해설 #그래픽노블
#길벗어린이 #아름드리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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