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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출판사제공도서
수잔 발라동의 1920년대 작품 <파란 방>에 누워있는 여성은 기존 그림들에서 볼 수 있었던 유혹적이며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책을 곁에 두고 편한 옷차림으로 누워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이 그림이 유독 내 눈에 머물렀던 이유는 이전 시대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들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라서 일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름답다. 진짜 잘 그렸다. 섬세하다. 감탄하며 그림들을 넘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림을 지나치는 우리를 붙든다.
다시 보세요. 이 그림에서 당신이 놓친 것이 있어요.
지나친 그림들 속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시대의 그림자가 있고
왜곡이 있으며 강요와 협박, 혐오와 거짓말, 슬픔이 숨어있다. 저자는 그림 속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은 남성의 관음증을 충족해줄 성적 대상으로 미화되고, 흑인은 단지 백인의 아름다움을 받쳐주기위한 배경 역할로 등장하고, 장애인들의
모습은 확대, 과장됐거나 일부러 대중적이도록 순결함과 조합해 그려졌다. 또한 이러한 현실 외면이나 왜곡에 저항한 예술가들 있다. 커버링하지ㄴ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고 때론 고발한다. 살아있고 존재한다고 알리는 외침같다.
그림 속의 소품으로 등장하는 여성들의 이미지는 보고 싶은 대로 그리는 남성 화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헨드릭 혼디위스가 그린 <몰렌베이크의 무도병 여자들>에서는 여성 자궁의 혐오가, 제임스 애벗의 <회색과 검정의 조화(화가의 어머니)>는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애가 드러난다. 때론 저평가된 가사노동과 착취당하는 여성 노동의 모습이 신랄하게 보이기도 한다. 학대당하는 여성들을 그대로 보여주며 고발하기도 하고, 그림 속에서조차 여성들을 학대하기도 한다. 그림 속에서 여성의 역사와 사회를 읽는다.
그림 속에 담겨 있는 권력, 그것을 비트는 다른 한편의 예술가들, 부자들이 자신의 자비심을 과시하기 위해 이용했던 예술작품들, 최근 까지도 예술을 정치적, 이념의 도구로 이용했던 국가 권력자들의 이야기, 이 책이 들려준 기울어진 그림 속의 감춰진 많은 이야기들과 해석을 들려준다. 책을 읽고 나니 오늘날을 짚어보게 된다. 사회, 여성, 환경, 장애 등 여러 분야에 드러난 여전한 문제점들을 보인다. 저자의 의도대로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과제를 던지며 단절시켜야 할 것들과 연대해야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날카로운 저자의 필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시대를 증언한다. 화가는 스스로는 의식 못하겠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기늘 작품 안에 담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예술 작품을 지금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책" 읽기의 의의가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8-9p)
🔖우리 여성들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의 목을 짓누르고 있는 그들의 발을 치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여성 노동력은 남성들의 성공을 위한 거름도, 언제든 대체 가능한 잉여도 아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만큼 일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기본권'부터 챙길 수도 있도록, 그 발부터 치우라.(138p)
🔖지라르에 따르면 인간들은 사회에 재난 같은 큰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특정 대상에게 뒤집어씌운다. 사회 전체는 이 대상을 희생시킴으로써 불안정한 사회 상태를 안정화하고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다.(206p)
🔖중요한 질문은 동물들이 이성을 가지고 있는가, 말을 하는가가 아니다. 그들이 고통을 느낄 줄 아는가이다...비건 활동가 캐럴 애덤스의 말대로 "정의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의 장벽에 갇힌 취약한 상품이 아니기"때문이다. (2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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