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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평점 :
#출판사제공도서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9p)
사람들 틈에 있지만 사람이 그립고, 위로의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위로를 받고 싶은 때가 있다. <어느 날의 나>는 이런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유리와 동아리 언니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나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살지만 서로의 과거를 캐묻지도 않고, 유난하게 서로를 위로하지 않으며, 서로의 생활을 간섭하거나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 곁을 내주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그 선은 상대에 대한 믿음으로 견고하다.
🔖거기까지. 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본다.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거기서부터는 언니의 몫이고, 나는 여기 가까이에 서 있을 뿐이다. (39p)
🔖..언니를 믿는다. 나는 나의 날들을, 언니는 언니의 날들을 살고 있는 중이니까.(83p)
유리와 언니는 과거의 상처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조금씩 과거에 덤덤해져 간다. 과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처를 흉터 없이 치료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흐름을 받아들인다. 서로 극복을 강요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유리는 그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괜찮으니 다행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언니와 재한 씨 같은 친구가 있으니 장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소소하게 정을 나누는 것, 이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사건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 않는 이주란 작가의 <어느 날의 나>는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삶이 시끄럽다고, 말이 넘치는 것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다정한 위로가 되는 소설이다. 타인을 염려하는 마음은, '손톱달'을 여러 번 멈춰서 바라보는 남자처럼 그렇게 애틋하게 조용하게.
🔖고마워
저도 고마워요.
나한테 뭐가?
태어나줘서요.(69p)
🔖그가 세 번째 멈춰 섰을 때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손톱달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 손톱달이 떠 있었다. 달을 보려고 멈춰 서는 사람이라니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봤네요. (75p)
🔖저는 뭔가를 극복했다, 그런 게 다 허상 같거든요. (109p)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가진 것을 생각하면.(11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