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수련 - 내게 없는 것으로 삶과 맞서는 법
이예지 지음 / 세미콜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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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타고나기를 텐션이 낮고 무던한 편이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사람이나 매일 아침 몸을 일으켜 열정적으로 운동을 해내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은근한 시샘과 부러움이 일었다.

스마트폰만 열어도 그런 타인의 활기찬 삶이 쏟아진다. 저 물건을 사면, 저 에너지 가득한 일상을 흉내내면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에서 말하듯 나 역시 남이 가진 '삶의 방식'을 욕망하고 샘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금세 치졸한 열등감처럼 느껴져, 들키기 전에 서둘러 감추고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이예지 작가의 『질투 수련』은 외면하던 부끄러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작가는 30인의 인물을 통해 자신이 품었던 시샘과 부러움을 고백하며 말한다. "질투는 억눌러야 할 감정이 아니라 갈고닦아야 할 기술"이라고.

우리가 느끼는 질투는 보통 모호한 감정의 형태로 마음 안에서 부유한다. 무엇이 부러운지, 어떤 점이 샘나는지 알지 못하니 내 안에서 그저 막연한 열등감과 무기력함으로 남아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때 작가가 거친 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모호한 덩어리를 잘게 해체하여 내가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부러운지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 질투의 대상과 이유가 선명해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알려주는 좌표가 된다. 나아갈 길의 이정표가 뚜렷해지면 내가 당장 무언가를 시도해 볼 여지와 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즉, 책에서 말하는 수련이란 대단한 돌파나 질투를 억누르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아주 작은 태도를 이식하는 일이다.

그런 식으로 질투를 불꽃같은 동력으로 삼아 자신을 증명해 온 작가의 저돌성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질투심을 안겨주었다. 질투만 할 뿐, 그것을 곧장 삶의 에너지로 바꾸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작가의 그 솔직함마저 질투하는 내가 뭔가 슬프고 게으른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 역시 패션지 에디터로서 '질투를 파는 세계' 한복판에서 허무함을 겪었기에, 무엇을 질투하고 무엇을 놓아줄지 가려내는 분별력을 비로소 얻게 된 것임에도.
그래서 이 책의 질투는 단순한 부러움과는 조금 다르다. 무작정 타인의 것을 탐하여 내 삶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며 내 안에서 무엇이 자극 받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자아 탐구에 가깝다.

결국 작가의 솔직함과 저돌성에 압도되었던 것은, 내 안에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숨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록 당장 '질투는 나의 힘'처럼 감정을 동력 삼아 나아가지 못할지라도 타인을 보고 샘을 내는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가 진짜 닮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 솔직함이야말로 이미 '질투 수련'이 시작되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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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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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접했던 김인숙 소설가의 평은 독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독했던가. 물론 독했다. 기구했다. 그러나 그게 저 시대 여성 대다수의 삶이었을터다. 당시 한국 사회가 보편적으로 부여하던 독함이었다. 즉 인물 개인이 유난히 독하게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와 사회적으로 개인에게 가하던 폭력의 농도가 그만큼 독했다는 뜻에 가까울 것이다.

과장된 비극이 아니라 당대 여성들이 몸으로 버텨낸 보편적인 역사, 그 보편성 자체가 가장 독하고 기구한 진실이다. 작가는 자극적인 비극을 쥐어짜는 대신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렇기에 소설은 더욱 강력한 설득력과 몰입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최근 대중문화나 소설에서 과거를 다룰 때 현대적 정서와 윤리를 입힌 '사이다'형 캐릭터를 배치하는 경향이 뚜렷하나, 최진영 작가는 그 손쉬운 유혹을 철저히 거절한다. (이 소설이 2011년에 나왔음을 감안하더라도) 누군가의 손에서 이 이야기가 쓰인다면 저 멀리 시집간 언니를 찾고 싶었던 두자는 언니를 찾아갔을 지도 모르고, 수선은 어머니 두자에게 한번은 반항했을 것이고, 봉선은 수선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자는 자신을 버린 전남편에게 돌아가 쌍둥이를 오히려 독하게 매질하며 키우고 수선은 두자에게 순종하고 봉선은 그렇게 나가고도 수선에게 돈을 보내며 계속 남자를 만난다.


어쩌면 당찬 캐릭터가 있었다면 읽는 당장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르나 그랬다면 이 소설은 과거 우리의 실제 여성사가 아니라 단순한 대리 만족용 판타지가 되지 않았을까. 답답하리만큼 지금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그 모습들은 미화되지도, 정당화되지도 않은 당시 여성들이 실제로 취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이자 생존 방식이다. 지독하게 현실을 펼쳐낸 이야기라서 그 무력함과 한계마저도 묵직한 사실감이 된다.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영웅을 조형하는 대신, 구조적 폭력에 짓눌려 일그러진 채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여성들을 기록했다. 그 야속하고 답답한 인물들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 보편적 수난사의 끝에서 은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은하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기에 이 책의 제목이 『끝나지 않는 노래』로 완성된다. 그 비극은 앞세대가 사회적 폭력, 가난 속에서 살기 위해 감내하고 억눌러왔던 모든 상처들이 가장 약하고 무력한 막내 세대인 은하에게로 고스란히 몰려든 결과에 가깝다. 은하는 현대 사회의 가난한 젊은이가 내몰리는 밀폐된 공간인 고시원에서, 문을 막아서고 흉기를 휘두르는 남성과 타오르는 불길에 갇혀 도망치지 못한다. 사회적 무관심과 남성 폭력의 결합이 '화재'라는 가장 극단적인 사건으로 종장을 맞이하는 것이다.

은하의 이야기는 두자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세월의 서사 속 중간중간에 아주 긴박하게 삽입되어 있다. 마치 100년 넘게 축적되어 온 이 비극의 무게가 한 인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처럼 비극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은하는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 가장 힘없는 약자로 존재했기 때문에 그 모든 폭력을 몸으로 받아내며 죽어간다. 어떠한 포장도, 과한 자기 연민도 없이 원초적 생존의 몸부림으로 찬 은하의 기록들을 읽다보면 덤덤해서 오히려 가슴 한구석을 참담하게 짓누른다. 이 비극의 굴레는 지금 끝나있는가?



인물들에게 어설픈 개성을 부여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시대가 강요했던 껍데기와 상처를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에 읽는 내내 나는 이 인물들이 어떠한 개별자가 아니라 수많은 옛날 여성들의 고유명사처럼 느껴졌다.

소설은 그런 기구함을 다루면서도 거대한 담론을 주장하거나 세상을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저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삶을 포장이나 연민 없이 거칠면 거친 대로, 일그러졌으면 일그러진 대로 묵묵히 3대의 이야기로 엮어두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서사는 힘을 잃지 않는다.

화려한 트렌드나 유행을 타는 자극적인 글은 빠르게 타올랐다가 소진되겠지만, 지독한 사실감으로 삶을 직시해낸 작품은 우리가 왜 과거에 지나간 폭력을 기억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입증한다. 유행을 타지 않기에 더욱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 이야기,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의 얼굴을 정직하게 담아낸 노래는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힘을 잃지 않은 채 오래도록 독자의 손에서 끝나지 않고 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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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판박이
아베 코보 지음, 곽형덕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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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즐겁지 않나요. 자신을 화성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니······."


화성인(주장남)의 맹렬한 플러팅과 속으로 '이 거북한 미치광이 새끼'하면서 태클거는 주인공의 환장조합



아베 코보의 문학세계는 언제나 구체적인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모래의 여자』가 모래 구덩이라는 물리적 지형으로 인간 개인의 정체성을 시험했다면 『인간 판박이』는 오직 작은 무대 위에서 말과 논리만으로 사람들이 약속한 관념을 뒤흔든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라디오 기획자인 '나'에게 어느날 본인을 화성인이라 주장하는 남자가 들어선다. 이 둘의 대화로 인해 이 작은 방은 순식간에 인간의 심리와 본성, 그리고 상식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드는 정밀한 실험극의 무대로 뒤바뀐다. 자칭 화성인이 던지는 화성 토지 매매나 자서전 같은 제안은 단순한 궤변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을 찌르고 공략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연출적 도구이다.

화성인은 완벽히 정상인이다. 화성인이라고 주장하는 것 빼면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며 기괴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말 속 허점을 파고든다. 상대의 반론을 예상하고 역으로 당신이 인간이라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집요함 앞에서 독자는 스스로에게도 물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인간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지.


남자가 자신을 가리켜 칭하는 '인간 판박이'라는 개념은 이 소설이 휘두르고 있는 실존적 칼날이다. 남자는 형태가 달라도 원료와 만드는 방식이 같다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정교한 논리를 들고나온다. 기묘하게 들리지만 설득력 있는 이 논리 앞에서, 원본과 복제본을 가르려던 기존의 구분법은 무력화된다. 겉모습은 물론 사고의 제조법마저 인간과 다를 바 없다면, 과연 무엇을 근거로 '진짜 인간'의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가. 주인공이 집착하던 상식은 증명 불가능한 자만에 불과했음이 밝혀지고, 존재를 심판하려 했던 판정관의 지위는 어느덧 피고인의 자리로 역전된다.


소설의 결말에서 던져지는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실화의 세계입니까, 우화의 세계입니까?"라는 질문은 이 밀실극이 단순한 상상력 놀이에 그치지 않음을 증명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실화와 우화의 구분이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무모한 자기 확신보다는 자명하다고 믿었던 자신과 현실에 끊임없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 확신에 찬 신념과 정교하게 조작된 허구가 진실보다도 더 매력적으로 진실의 자리를 차지하는 오늘날, 아베 코보의 이 질문은 더욱 날카로운 시의성을 얻는다. 『인간 판박이』라는 언어로 만들어낸 실험실이 우리가 진실이라 확신하며 서 있는 현실 자체가 얼마나 허약한 모래성일 수 있는 지를 폭로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그냥 미치광이 토크쇼. 이게 엄청 재밌어서가 아니라 너무 이상해서 다 읽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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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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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AI 시대의 디스토피아를 말할 때 ‘인간성의 상실’을 경고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인간성의 자리에 사랑, 공감, 도덕 같은 숭고한 단어들이 쉽게 배치된다. 그러나 『아르고스』는 그 편안하고 안전한 프레임을 단숨에 부순다. 이 소설이 마주하는 인간은 착하거나 숭고하지 않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타인의 불행을 발판 삼아 재기를 꿈꾸며, 스스로의 몸을 갈아 넣어 자본을 좇는 표독한 인물이다. 재미있게도 이야기는 바로 그 추악하고 생생한 욕망이야말로 규격화될 수 없는 인간의 본질 중 하나임을 증명해 낸다.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 바로 옆에 밤낮으로 멈추지 않는 물류센터가 있다. 이곳의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는 감정도 악의도 없다. 그저 목표 물동량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잠을 빼앗는 주파수를 쏘아낼 뿐이다. 가족을 위해, 혹은 삶의 재기를 위해 자발적으로 불면을 택한 노동자들은 점차 꿈을 잃고 감정이 마모되어 이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변해간다.

주인공 재일은 이 비극의 구원자가 아니다. 그는 잠을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피를 뽑아 불면 혈청을 만들어 강남으로 복귀하려는, 끝까지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인물이다. 즉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정의감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계산과 생존 본능에 의해 행동 양식이 결정된다. 이런 인간의 이기심이 최첨단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이 설정은 이 작품을 여타 디스토피아물과의 독특한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폭우로 1500년 전 가야 고분이 무너지며 유골들이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 위로 휩쓸려 들어오는 장면은 상당히 크리피하면서도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을 상당히 직설적인 장면으로 보여준다. 로봇은 인간의 유골을 택배 상자처럼 무게로 측정하여 분류하고, 두개골이 바코드 스캐너를 지날 때마다 에러음이 울린다. ‘삑, 삑, 삑.’ AI에게 인간의 역사와 죽음은 인식 불가능한 오류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귀에 이명처럼 울리는 기괴한 에러음은, 어떻게 보면 효율과 수치라는 시스템 안에 결코 가두어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비명으로도 읽힌다.


《아르고스》는 현 시대에 가장 첨예하고 예민한 화두를 거침없이 관통하며 묻는다. 효율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어가고 있으며, 스스로를 어떤 기계적 부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는가. 규격화될 수 없는 욕망과 꿈을 가진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코드 스캐너의 에러음과 흙탕물 속에서 코를 골며 자는 소리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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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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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하향하던 혼인 건수가 다시 반등하기 시작할때, 미디어는 이를 흔히 사랑과 희망의 회복으로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안희제 작가의 『사랑과 안정』은 그 화려한 숫자의 이면을 드러내며 사회에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청년들은 과연 순수한 낭만과 행복의 결실로 결혼을 선택하고 있는가?

전작 『망설이는 사랑』(오월의봄, 2023)에서 사이버 렉카와 알고리즘이 휩쓰는 온라인 공론장의 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분투를 벌이는 팬들의 망설임을 들여다 보았던 저자는 이번엔 청년들이 결혼이라는 하나의 문으로 몰려드는 현상의 기저에 단순 사랑만이 아닌 지독한 불안과 안정에 대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파헤친다. 전작이 단죄와 퇴출이라는 손쉬운 정답 대신 윤리적 사유의 자리를 지켜냈듯, 이번 책 역시 ‘결혼’이라는 정해진 해답 뒤에 가려진 청년들의 다층적인 불안을 끈질기게 청취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결혼을 퍽 얄팍한 프레임으로 소비해왔다. 하나는 모든 현실을 낭만으로 포장해버리는 '사랑의 결실' 이고, 최근에서야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을 틀에 가두는 '가부장제의 재생산' 이라는 비판적 시선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살아가고 결혼을 고민하는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촘촘하게 들어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집값 상승과 고용 불안, 점점 파편화되고 개인화 되는 사회적 고립 속에서 청년들에게 결혼은 낭만의 완성이 아니라, 이 혹독한 사회에서 최저선의 안정망을 법적,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선택하는 2인 1조의 동맹에 가깝다. 주거와 자산, 대출 문제, 돌봄과 의료 동의권 등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회 제도를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목적 하에 결혼은 효율적인 사회보장 제도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9명의 인터뷰를 읽어보며 우리는 결혼을 향한 청년들의 선택이 단순한 의무나 타성이 아닌, 다양한 조건을 살피고 고립을 피하려는 치열한 생존 전략 중 하나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각자의 강박과 체념을 안고 안정적인 삶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 중 하나일 터지만, 제도는 이 다양한 욕망을 하나의 툴로 획일화해버린다. 단지 사회가 허락한 이성애적 법적 결혼만이 안정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저자는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망설이는 사랑》에서도 다른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았듯, 저자는 법적 테두리 외에서도 이미 서로를 지탱하는 다채로운 연결이 존재하고 있음을 청년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인터뷰이들의 삶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이미 혼인 신고라는 제도 바깥에서 서로에게 기꺼이 버팀목이 되어주고, 경제적 그리고 정서적 돌봄을 나누는 다채로운 관계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가 오직 결혼 제도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승인할 때, 우리가 일상에서 맺고 있는 수많은 소중한 관계의 안정성은 이레귤러로 평가절하되고 다른 형태의 삶을 상상할 가능성마저 차단당하고 만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공동체가 필요했고, 소속이 필요했고, 재산과 신체를 함께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으며, 이것이 모두 오래 지속되도록 법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들을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결혼이었다. 결혼이 하는 일은 사랑을 지키는 것보다 안정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 p. 64


저자의 정직한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결혼이라는 낭만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 씌운 침묵을 깨부순다. 사랑이라는 말 뒤로 숨겨두었던 청년들의 불안과 현실적인 계산을 직시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안정을 위해 나는 어떤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끔 만든다. 대답은 시원스레 나오지 않아도 좋다. 고개를 돌려 이미 사회 여기저기에서 자라나고 있는 다양한 연결과 돌봄의 자리들을 발견해내는 것, 그리하여 결혼이라는 정해진 답에 갇히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안정과 삶의 형태를 다시 상상하는 것. 단지 그 뿐일지라도 제도를 보는 시야를 더 넓힐 수 있게 만드는 첫 발자국을 안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사회에 남긴 가장 값진 발견이 아닐까.



+ 확실히 2~30대의 청년이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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