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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노래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읽기 전에 접했던 김인숙 소설가의 평은 독하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독했던가. 물론 독했다. 기구했다. 그러나 그게 저 시대 여성 대다수의 삶이었을터다. 당시 한국 사회가 보편적으로 부여하던 독함이었다. 즉 인물 개인이 유난히 독하게 살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와 사회적으로 개인에게 가하던 폭력의 농도가 그만큼 독했다는 뜻에 가까울 것이다.
과장된 비극이 아니라 당대 여성들이 몸으로 버텨낸 보편적인 역사, 그 보편성 자체가 가장 독하고 기구한 진실이다. 작가는 자극적인 비극을 쥐어짜는 대신 사실을 그대로 직시하고, 그렇기에 소설은 더욱 강력한 설득력과 몰입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최근 대중문화나 소설에서 과거를 다룰 때 현대적 정서와 윤리를 입힌 '사이다'형 캐릭터를 배치하는 경향이 뚜렷하나, 최진영 작가는 그 손쉬운 유혹을 철저히 거절한다. (이 소설이 2011년에 나왔음을 감안하더라도) 누군가의 손에서 이 이야기가 쓰인다면 저 멀리 시집간 언니를 찾고 싶었던 두자는 언니를 찾아갔을 지도 모르고, 수선은 어머니 두자에게 한번은 반항했을 것이고, 봉선은 수선의 손을 잡고 같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자는 자신을 버린 전남편에게 돌아가 쌍둥이를 오히려 독하게 매질하며 키우고 수선은 두자에게 순종하고 봉선은 그렇게 나가고도 수선에게 돈을 보내며 계속 남자를 만난다.
어쩌면 당찬 캐릭터가 있었다면 읽는 당장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르나 그랬다면 이 소설은 과거 우리의 실제 여성사가 아니라 단순한 대리 만족용 판타지가 되지 않았을까. 답답하리만큼 지금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그 모습들은 미화되지도, 정당화되지도 않은 당시 여성들이 실제로 취할 수 밖에 없었던 한계이자 생존 방식이다. 지독하게 현실을 펼쳐낸 이야기라서 그 무력함과 한계마저도 묵직한 사실감이 된다.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는 영웅을 조형하는 대신, 구조적 폭력에 짓눌려 일그러진 채 어떻게든 살아남았던 여성들을 기록했다. 그 야속하고 답답한 인물들의 삶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 보편적 수난사의 끝에서 은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은하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기에 이 책의 제목이 『끝나지 않는 노래』로 완성된다. 그 비극은 앞세대가 사회적 폭력, 가난 속에서 살기 위해 감내하고 억눌러왔던 모든 상처들이 가장 약하고 무력한 막내 세대인 은하에게로 고스란히 몰려든 결과에 가깝다. 은하는 현대 사회의 가난한 젊은이가 내몰리는 밀폐된 공간인 고시원에서, 문을 막아서고 흉기를 휘두르는 남성과 타오르는 불길에 갇혀 도망치지 못한다. 사회적 무관심과 남성 폭력의 결합이 '화재'라는 가장 극단적인 사건으로 종장을 맞이하는 것이다.
은하의 이야기는 두자부터 시작되는 기나긴 세월의 서사 속 중간중간에 아주 긴박하게 삽입되어 있다. 마치 100년 넘게 축적되어 온 이 비극의 무게가 한 인물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는 걸 말하는 것처럼 비극성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은하는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시간, 그 장소에 가장 힘없는 약자로 존재했기 때문에 그 모든 폭력을 몸으로 받아내며 죽어간다. 어떠한 포장도, 과한 자기 연민도 없이 원초적 생존의 몸부림으로 찬 은하의 기록들을 읽다보면 덤덤해서 오히려 가슴 한구석을 참담하게 짓누른다. 이 비극의 굴레는 지금 끝나있는가?
인물들에게 어설픈 개성을 부여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시대가 강요했던 껍데기와 상처를 있는 그대로 그려냈기에 읽는 내내 나는 이 인물들이 어떠한 개별자가 아니라 수많은 옛날 여성들의 고유명사처럼 느껴졌다.
소설은 그런 기구함을 다루면서도 거대한 담론을 주장하거나 세상을 바꾸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저 시대를 견뎌낸 사람들의 삶을 포장이나 연민 없이 거칠면 거친 대로, 일그러졌으면 일그러진 대로 묵묵히 3대의 이야기로 엮어두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서사는 힘을 잃지 않는다.
화려한 트렌드나 유행을 타는 자극적인 글은 빠르게 타올랐다가 소진되겠지만, 지독한 사실감으로 삶을 직시해낸 작품은 우리가 왜 과거에 지나간 폭력을 기억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입증한다. 유행을 타지 않기에 더욱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 이야기,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의 얼굴을 정직하게 담아낸 노래는 시대가 바뀌어도 결코 힘을 잃지 않은 채 오래도록 독자의 손에서 끝나지 않고 불릴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