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동안 하향하던 혼인 건수가 다시 반등하기 시작할때, 미디어는 이를 흔히 사랑과 희망의 회복으로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안희제 작가의 『사랑과 안정』은 그 화려한 숫자의 이면을 드러내며 사회에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청년들은 과연 순수한 낭만과 행복의 결실로 결혼을 선택하고 있는가?

전작 『망설이는 사랑』(오월의봄, 2023)에서 사이버 렉카와 알고리즘이 휩쓰는 온라인 공론장의 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분투를 벌이는 팬들의 망설임을 들여다 보았던 저자는 이번엔 청년들이 결혼이라는 하나의 문으로 몰려드는 현상의 기저에 단순 사랑만이 아닌 지독한 불안과 안정에 대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파헤친다. 전작이 단죄와 퇴출이라는 손쉬운 정답 대신 윤리적 사유의 자리를 지켜냈듯, 이번 책 역시 ‘결혼’이라는 정해진 해답 뒤에 가려진 청년들의 다층적인 불안을 끈질기게 청취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결혼을 퍽 얄팍한 프레임으로 소비해왔다. 하나는 모든 현실을 낭만으로 포장해버리는 '사랑의 결실' 이고, 최근에서야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을 틀에 가두는 '가부장제의 재생산' 이라는 비판적 시선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살아가고 결혼을 고민하는 청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촘촘하게 들어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집값 상승과 고용 불안, 점점 파편화되고 개인화 되는 사회적 고립 속에서 청년들에게 결혼은 낭만의 완성이 아니라, 이 혹독한 사회에서 최저선의 안정망을 법적,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선택하는 2인 1조의 동맹에 가깝다. 주거와 자산, 대출 문제, 돌봄과 의료 동의권 등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회 제도를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목적 하에 결혼은 효율적인 사회보장 제도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9명의 인터뷰를 읽어보며 우리는 결혼을 향한 청년들의 선택이 단순한 의무나 타성이 아닌, 다양한 조건을 살피고 고립을 피하려는 치열한 생존 전략 중 하나임을 알 수 있게 된다. 각자의 강박과 체념을 안고 안정적인 삶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전략 중 하나일 터지만, 제도는 이 다양한 욕망을 하나의 툴로 획일화해버린다. 단지 사회가 허락한 이성애적 법적 결혼만이 안정이라는 사회의 통념에 저자는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망설이는 사랑》에서도 다른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았듯, 저자는 법적 테두리 외에서도 이미 서로를 지탱하는 다채로운 연결이 존재하고 있음을 청년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인터뷰이들의 삶을 세밀히 들여다보면, 이미 혼인 신고라는 제도 바깥에서 서로에게 기꺼이 버팀목이 되어주고, 경제적 그리고 정서적 돌봄을 나누는 다채로운 관계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가 오직 결혼 제도만을 정상적인 것으로 승인할 때, 우리가 일상에서 맺고 있는 수많은 소중한 관계의 안정성은 이레귤러로 평가절하되고 다른 형태의 삶을 상상할 가능성마저 차단당하고 만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향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아니,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공동체가 필요했고, 소속이 필요했고, 재산과 신체를 함께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으며, 이것이 모두 오래 지속되도록 법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들을 동시에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결혼이었다. 결혼이 하는 일은 사랑을 지키는 것보다 안정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 p. 64


저자의 정직한 통찰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결혼이라는 낭만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 씌운 침묵을 깨부순다. 사랑이라는 말 뒤로 숨겨두었던 청년들의 불안과 현실적인 계산을 직시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안정을 위해 나는 어떤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끔 만든다. 대답은 시원스레 나오지 않아도 좋다. 고개를 돌려 이미 사회 여기저기에서 자라나고 있는 다양한 연결과 돌봄의 자리들을 발견해내는 것, 그리하여 결혼이라는 정해진 답에 갇히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안정과 삶의 형태를 다시 상상하는 것. 단지 그 뿐일지라도 제도를 보는 시야를 더 넓힐 수 있게 만드는 첫 발자국을 안내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사회에 남긴 가장 값진 발견이 아닐까.



+ 확실히 2~30대의 청년이 읽으면 좋을 책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