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자주 반하는 마음
이에니 지음 / 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64 | 내가 아직 모르는 아름다움이 많고, 그것을 선뜻 형언할 수 없을 때 그 마음은 뜻밖에도 또 다른 희망이 된다. 모르는 것을 향할 때 마음은 다시 상상하게 되고 알지 못하는 영역 너머로 기꺼이 뻗어나갈 수 있게 되니까.

자신을 표현하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라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오히려 좋아하는 것의 범위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강하게 끌리는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쉽게 제동이 걸린다. 그것이 실패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쓸데없다고 여겨질까 봐 스스로를 검열하는 습관, 그리고 보이지 않는 기준들이 자연스럽게 끼어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머릿속에서는 여러 겹의 필터가 작동한다.


나이가 들수록 눈빛에서 반짝임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는데, 어쩌면 그런 변화는 이렇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좋아하기 전에 먼저 계산하고,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 의미를 따지게 되는 상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보다, 손을 거둬들이는 데 익숙해지는 과정.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유 없이 무언가에 마음을 쉬이 빼앗겼던 시절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설명할 필요 없이 좋았던 순간들, 그 찰나에 아무 의심 없이 반응하던 온 몸의 감각들.




그렇기에 이토록 용기있는 글은 때로는 귀하게 여겨진다. 좋아하는 것을 나열하거나 취향을 설명하는 대신,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쉽게, 그리고 자주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를 고백한다. 결과를 남기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한 의미로 이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태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조차 이유를 요구받는 분위기 속에서, ‘반하는 순간 자체를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하지만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문장처럼 다가온다.


그 순수한 용기는 신기하게도 과거의 기억을 건드린다. 마음이 움직이면 그대로 따라가던 시간을, 이유 없이 기울던 시선을. 우리는 그 시절을 지나왔고 이미 무뎌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여기지만 단지 사용되지 않고 있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가볍게 어루만져 끌어낸다.


+ 이제니 시인이 쌍둥이라고? 그 언니가 에세이를 낸다고? 아니 제니 에니가 실명이라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217 | 그녀가 만든 요리와 대화가 느린 속도로 고통을 치유했다. 공양 의식을 하는 것처럼

다소 익숙한 구조와 정서를 지닌, 이른바 ‘힐링 소설’의 범주 안에 놓인 작품임은 분명하다. 일본 문학 특유의 말랑한 결을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그리고 무난하게 읽힌다. 적어도 읽는 내내 마음을 거북하게 만들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사실 이런 류를 꽤 좋아함)


이야기는 남동생의 죽음 이후 삶의 균형을 잃어버린 가오루코가 그의 유언을 따라 전 여자친구 세쓰나를 찾아가며 시작된다. 첫 만남부터 어긋나는 두 사람은, 세쓰나가 일하는 가사 돌봄 현장에서 함께 움직이게 되며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엮인다. ‘남동생의 전 연인과의 협력’이라는 설정은 낯설지만, 그 어색함이 오히려 관계의 긴장을 만들고 이야기에 미묘한 밀도를 더한다.

(죽은 남동생의 전 여자친구, 생전 처음 들어보는 관계성이긴 해..)


이 작품은 거창한 사건이 주가 되어 서사를 진행시키기 보다는 동생의 이해되지 않는 죽음을 잔잔한 베이스로 두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생활의 가장 낮은 층위부터 들여다본다. 정리되지 않은 집, 제대로 챙기지 못한 끼니, 텅 빈 냉장고 같은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 상태를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두 사람이 방문하는 집들 역시 각자의 사연이 켜켜이 쌓인 장소들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문제 해결이라기보다, 잠시 버틸 수 있도록 환경을 정돈하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미세한 변화가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요리로 인해 사람이 일어나는 이야기는 지금 와서 그렇게까지 특별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은,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 갖는 강력한 힘이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조차 잃은 상태에서, 타인의 손을 거쳐 준비된 나만을 위한 식사는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어떠한 말보다 빠르게 마음에 닿고,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그렇게 사소한 개입들이 축적되며, 삶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상태로 조금씩 회복된다.


이야기의 바탕에는 돌봄의 문제, 가족이라는 구조, 그리고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자연스럽게 겹쳐 있다. 작품은 특정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부딪히고 조율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명확한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는, 어찌보면 독특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연대는, 익숙한 프레임 밖에서 형성되는 유대가 어떤 질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맺는 방식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간결하게 압축한다. 거창한 말 하나 없는 아주 사소한 접촉과 관심. 『카프네』는 결국 그런 다정이 사람을 세상에 붙잡아 두고, 또 다음 날로 나아가게 만든다고 말하는 이야기다.



p.302 |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다.

정말 많이 고마웠다고. 네가 내게 해준 것이 분명 앞으로도 나를 살게 할 거라고.


+ 4장 진짜 눈물버튼. 그냥 내가 이런 이야기에 약하다고요 ;ㅅ;

++ 밤과 새벽에 읽으면 안되는 금서. 이것때문에 만두 돌렸구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지음, 김나연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400 | "내 인생을 살고 싶었어. 그 기억들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어. 하지만 그거 알아?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 게다가 엡스타인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빠져나갔어. 나는 지금 너무 화가 나.


얼마 전 '엡스타인 파일'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와 빌 클린턴 등 미국의 권력자들을 비롯해 빌 게이츠, 영국의 앤드루 왕자 등의 남성들이 그의 아동 성범죄와 얽힌 가해자와 동조자로 지목된 사건들.


『노바디스 걸』은 제프리 엡스타인 사건의 피해자로 알려진 버지니아 주프레의 회고록이다. 하지만 이 책은 엡스타인을 만난 순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훨씬 이전의 시간,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던 어린 시절이 어떻게 조금씩 무너져 갔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출발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소녀가 얼마나 쉽게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 그리고 누군가(특히 여성)의 취약함이 어떻게 또 다른 폭력의 통로가 되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단순한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 사건 자체의 잔혹함도 분명하지만,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폭력이 가능해지는 환경과 침묵이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돈을 받고 모른 척했다. 그 사이에서 피해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경험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왜 어떤 고통은 당사자가 끝까지 증명해야 하는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흔히 씌워지는 '창녀' 프레임, 그리고 범죄자와 합의한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결백함' 같은 것들. 그러니까, 왜 돈을 받았냐, 굳게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제 3자의 폭력들이 읽는 사람의 숨을 막히게 만든다.


이 회고록은 또한 ‘생존’이라는 말이 얼마나 복잡한 의미를 품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살아남은 사람에게 강하다고 말하지만, 그 말 속에는 그들이 견뎌야 했던 시간의 모양이 충분히 담기지 않는 것 같다.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는 수많은 실제적인 위협과 두려움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그녀가 끝내 말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부분이다. 한 사람의 증언이 또 다른 목소리를 불러내고, 그 목소리들이 모여 결국 거대한 사건의 진실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p.559 | 단 한 사람이 때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있다면, 기어이 부딪쳐 봐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삶을 읽고 나면 이 문장의 무게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종종 개인의 힘은 너무 미약하다며 한 사람의 발버둥을 쉽게 무시하곤 한다. 거대한 권력과 구조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단정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 질문을 다시 하고 있다. 과연 정말 그럴까.


솔직히 말하면 이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을 하루 만에 읽어 내려갔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힌 책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책을 덮어야 했고, 읽는 동안 세상이 견딜 수 없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이 감당해 온 시간을 생각하면, 내가 괴롭다는 이유로 책을 덮고 시선을 돌리는 일은 쉽게 할 수 없었다.


버지니아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들리기를, 그 목소리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딸들이 더 안전한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 그 이야기를 끝까지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p.636 | 엡스타인은 사라졌지만, 그가 마음 놓고 괴물이 될 수 있었던 토양은 여전히 비옥하다. (···) 소녀의 가치를 오직 남성의 시선에 맞추어 재단하고, 남성들에게는 어린 소녀가 가장 탐스러운 존재이며, 엡스타인이 지껄였듯 '어릴수록 더 좋다'라고 부추기는 저열한 문화는 여전하다. 이런 뒤틀린 문화가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사회 분위기 탓에 포식자가 그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난 진짜 저런 ㅆ새끼들이랑 지구 같이 쓰고 싶지 않은데

++ 버지니아가 로비(책 내내 그녀의 가장 큰 지지자로 나온 그녀의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까지 진짜 비극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 - 《파이돈》에서 《팡세》까지, 삶과 죽음을 읽는 철학 수업
최대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대개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작에 집중한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같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삶이 시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언젠가 반드시 맞이하게 될 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자주 여러 이유로 인해 미뤄 두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이며, 인간이 오래전부터 그 질문을 어떻게 붙잡아 왔는지 보여준다. 철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비슷한 문제 앞에서 멈춰 섰다.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실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철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비슷한 문제 앞에서 멈춰 섰다.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실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해. 그들의 고민은 결국 인간의 삶으로 되돌아온다. 죽음은 단순히 삶의 끝을 의미하는 사건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태도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를 묻게 만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특히 마음에 오래 남았던 부분이 있다. 몽테뉴가 말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말이 내게는 죽음을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 안에서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이 문장을 떠올리고 나니 책에서 이어지는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이유 역시 결국 삶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일테니. 그렇기에 우리는 그 죽음에 대한 질문을 미루거나 외면하기도 하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책을 덮은 뒤에도 죽음이라는 주제는 분명한 답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이전보다 훨씬 가까운 질문처럼 남는다. 우리가 가진 시간이 결국 유한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지금의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기에는 어딘가 아깝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라는 질문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게 된다.



+ 제목에서 오는 느낌에서 나는 이게 그냥 신부님의 에세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그 정도의 글인줄 알았다. 진짜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철학 이야기일줄은 몰랐다는 이야기... 상상이상의 책이라 진짜 뇌에 힘 깍 주고 읽었다 이거예요....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이만큼이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죽고 나서 어떻게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던가, 그런 건 진짜 전혀. 지금 이 순간에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그래도 가족들이 너무 오래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내가 지금 죽으면 필경 좋지 않은 사유일테니 힘들겠지... 무병장수해야겠다.


++ 이 책과 함께 오는 질문이 있는데 이 중 '지금 내 주변에서 누가 떠나면 가장 허망할 것 같은지', 이건 생각할 것도 없다. 나는 우리 엄마 동결건조시켜단이기 때문에. ;ㅅ;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478 | 점점 더 그런 느낌이 든다. 과거란 사실 미래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확정되지 않은 곳이 아닐까 하고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죽은 사람이 날아오른다니, 꽤 거창하고도 한번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정신병원이 집이었던 소년의 일기장을 보는 듯한 자전적 소설이라는 줄거리를 들으면 더더욱.


요아힘의 유년기는 자연스레 병동과 환자들 사이에서 흘러간다. 보통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긴장부터 하게 되지만, 요아힘에게 그곳은 자신의 전부인 집이다. 병원을 지나 학교에 가고, 환자들과 마주치며 하루를 보내고, 밤에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

오히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쪽은 바깥세상이다.

어른들은 웃으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옳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행동이 종종 다르다. 그에 비해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엉뚱하고 예측불가능 하지만 적어도 자기 방식대로 솔직하게 살아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이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해’라는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이다. 사람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까워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이해보다 단순한 공감이, 혹은 공유하는 시간이 더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쉽고 재밌는 소설은 아니다. (근데 독일 소설 치고는 쉽고 재밌다고 생각함)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것치고 사람들의 통상 인식처럼 극적이고 놀라운 사건의 연속도 아니고, 이야기의 흐름도 꽤 느긋하다. 그러나 타인의 앨범을 천천히 넘겨보듯, 드라마를 한 편씩 보는 것처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지막에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기묘한 여운과 그리움이 남아서.

아마 그 이유는 결국 이 책 자체가 특별한 타인의 삶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기억과 닮아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순간,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들,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풀려가고 바라볼 수 있게 되는 마음들까지.


즉, 이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는 말은 어쩌면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시간과 떠나버린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조용히 내 발 근처에서 떠다니고 있었을 뿐이라고, 약간의 틈이 생기면 언제든 날아올라 단순한 과거를 다른 의미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라고.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