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양장 특별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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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 p.16

겨울에 재즈를 틀고 술 마시면서 보세요. 게다가 눈까지 온다? 완벽.

딱 그 깔임

커피, 차 다 마시면서 읽어봤는데 술이 딱입니다. 맥주 이런 거 말고 위스키, 진토닉 이쪽으로. 제발....



솔직히 말하면 좋은 쪽으로는 순수고 나쁜 쪽으로 말하자면 비현실. 자기연민은 지나치고, 예전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설정은 약간 진부하다. 그래도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니 슬퍼지고, 특유의 분위기가 묵직하게 사람을 눌러온다. 그러니까, 단순한 로맨스 소설, 인터넷에 연재된 소설로 가벼이 보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책이라는 말.

간단히 말하면 잘생긴 남자 x 상당히, 놀라울 정도로 못생긴 여자. 최근에야 여성 주인공도 못생겼다는 특징을 가지는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나오지만, 이 이야기가 연재될 당시에는 훨씬 드물었기 때문에 확실히 당시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외모를 폄하하는 순간, 그 자신도 더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예쁜가? 그렇게 예뻐질 자신이... 있는 걸까? / p.326


'못생김' 이라는 특징을 가진 인물을 사용하여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불완전하고 사회가 내 걸은 특정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의 감정을 조명한다. 즉 이 책은 외모지상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작가의 말 중 '우리의 손에 들린 유일한 열쇠는 「사랑」입니다'(436)라는 주장의 근거이자 그리하여 한낱 인스턴트처럼 전락한 사랑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된다. 사랑의 힘이란 여전히, 이렇게나 강력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 거였다.



+ 특이하게도 엔딩이 두 갈래이다. 결국 선택하는 것은 독자에게 달려있으나 주가 되는 인물 세 명이 온전히 행복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기에 가슴이 그냥 찢어져버림. 여운이 진하게 남는 이유가 단순히 망한 사랑이라서가 아니라... 하 그냥 울면서 눈 내리는 겨울, 혹은 낙엽 지는 늦가을 쯤에는 꼭 읽어달라고 파닥거릴게요.


++ 저 안 믿어도 박정민은 믿을 수 있자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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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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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는 권리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세워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권리라 말할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의 시작과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변화는 인지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p. 260



테무깡, 쉬인깡이 유행하는 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옷을 산다. 사실 지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패스트 패션 시대를 살아가며 버려지는 옷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질 낮은 상품을 과잉생산해서 저렴하게 팔고, 빠르게 버려지는데 문제가 없을리가 없다. 심지어 지금은 울트라 패스트 패션 시대란다. 몇 년 전부터 분명 지적되어 온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속화되었다.


굳이 '패스트 패션'은 환경에 유해합니다. 이르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모를 수가 없다. 친환경적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저 말이 크게 와닿지가 않는다. 왜? 보이지가 않으니까. 버려진 헌 옷들은 그 순간 나의 눈 앞에서 사라진다. 헌 옷 수거함에 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이 헌 옷들이 차라리 국내에서 대부분 처리되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그렇게 막연하게 알고 있던 사실에 <헌 옷 추적기>는 가시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153개의 추적기를 헌 옷에 부착해 4개월간 그 옷들이 어디로 흘러가는 지 쫓는다. 

한국은 세계 중고의류 수출 5위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헌 옷을 가장 많이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순위로 손에 꼽힌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그렇게나 많이. 수출 된 옷은 재활용되는가? 공식 통계는 100%지만, 정작 옷들은 인도의 불법 소각장과 타이의 쓰레기 산, 볼리비아의 황무지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가. 금방 버려질 쓰레기가 될 것이 확실한 옷들을 유흥거리처럼 사고, 다른 나라에 떠넘기면서 탄소배출량을 줄인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정도 줄였다며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앙의 지리학>에 나오는 '탄소 식민주의'라는 단어가 정확하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으로, 개발도상국이 후진국으로 떠넘기고 외면한다. 그리고는 후진국이나 개도국이 자국 발전에 눈이 멀어 탄소를 배출한다며 조절하라고 꼬집는다. 그들의 환경 오염 문제를 심각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바라본다. 인도의 수질과 대기를 오염시킨 것은 오롯이 그들이 자국 발전에 눈이 멀어서 그렇다는 듯이. 


읽는 내내 기분이 처참하다. 쓰레기 산에서 유해물질을 들이마시고, 그 위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나올 때마다. 기업, 물론 책임이 있다. 과잉 생산, 대량 폐기 구조를 만들고 재활용을 한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빠져나가니까.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낸 구조가 더욱 빠르게 굴러가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건, 옷을 즐기듯 사고 쉽게 버리고, 쓰레기가 될 것이 자명한 옷들을 대량으로 사서 10분 짜리 컨텐츠로 소비한 뒤 버리고, 그런 컨텐츠를 즐기는 우리 아닌가. 이 처참한 구조에 개인의 책임은 없는가. 


<헌 옷 추적기>는 단지 헌 옷의 행방만 추적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엮인 구조에 대해 가시적으로 들춰낸다. 외면해온 현실을 기어코 눈 앞에 가져다 놓지만 과장도 분노도 걷어내고 침묵으로 사실을 드러내는, 드물게 정직한 추적기다. 그 담담한 시선 속에서 우리는 그제야 변명 대신 책임을 떠올리게 된다. 환경 오염에 나의 옷장은 얼마나 연루되어 있을까. 



+ 이거 글 쓸수록 약간 사람이 분노에 차오름. 아 진짜 인간들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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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정원
한소은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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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놓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비밀 같은 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 p. 190



2032년, 인구 고령화 문제와 도심 공동화 속도는 더욱 박차를 가한다.

싱글맘인 지수는 딸 아이와 '안음주택'에 입주한다. 정부에서 리모델링해서 공급하는 서울 최북단의 공동체 입대주택. 이전 세입자 모녀가 1년만 살다가 나갔다지만, 들어가자마자 회색 토끼 인형도 자기를 맞이하듯 들어있고 주민센터 직원 말로는 여기 관리소장 '은수'가 그렇게 인물이 났단다. 독거노인은 내 부모처럼, 혼자 노는 아이들은 부모처럼 살뜰히 돌봐주는 인성까지. 심지어 월세는 40퍼센트나 저렴하다. 안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침.


솔직히 저 근미래 배경? 다 상관 없음. 이거 그냥 네이트판에 올리면 난리나는 이야기거든요. 우리 알잖아요. 은근히 무리의 중심에서 가족놀이 하면서 친밀함을 강요하는 인물. 사람이 가장 절박할 때 살살 꼬드기면서 약자를 더 약자의 위치로 떨어뜨리는 인물. 

돌봄과 배려가 목적이 되어야 할 공간이 오히려 그 사람의 목을 조르는 과정이 상당히 촘촘한데 작가는 이 때 은수라는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작중 인물을 넘어서, 독자의 뇌를 주물거릴 정도로.

그렇습니다. 은수 가스라이팅 끝내줌. 이거 완전 가스라이팅의 교과서임. 보면 그냥 막 텍스트 너머로 내가 다 홀림. 이거 보면 가스라이팅? 어 너두? 야 나두. 상태가 됨. 물론 진짜 하면 안되지만.



타인과의 관계 사이의 적절한 거리, 작은 균열과 사소한 맞물림, 사람의 마음이 언제 가장 약해지고, 어떤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지, 다양한 각자의 욕망이 거미줄처럼 얽힌 이 안음주택에서는 마치 희극같은 군상극이 퍼즐처럼 맞물리며 인물들을 극단으로 몰아간다. 어떤 스릴러보다 그냥 스릴러거든요 이거.




뭔가 멋진 이야기로 평을 쓰고 싶지만, 재미가 걍 휘모리 장단처럼 쳐오면 아무 생각도 안 나버려요..

솔직히 말하면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님. 굳이 근미래가 배경이어야 할 커다란 설득력이 부족해서. 설정 이유야 납득이 가는데, 진짜 굳이라. 근데 그걸 넘어서서 스토리적인 재미는 확실했다. 언젠가 드라마로 다시 만날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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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부드러워, 마셔: 어나더 라운드 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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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은 책 속의 풍경과 책 밖의 풍경이 겹쳐질 때다. / 첫 문장

잘 모르는 분야는 책으로 배운다.

술도 마찬가지로, 주량에 비해 술 맛을 잘 모르는 터라 자꾸 술에 대한 이야기에 손이 간다. 『아무튼, 술』(김혼비, 제철소) 『술꾼들의 모국어』(권여선, 한겨레출판) 『낮술』(하라다 히카, 문학동네) 같은 것들에. 중요한 것은 책에서 술 쩐 냄새가 나면 안된다. 내가 원하는 건 적당히 마시며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거지, 크으 이야 이게 술맛이지 (술잔을 정수리에 탈탈 털며) 오늘 아주 그냥 죽어보자고, 하는 고주망태 알코올 중독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밤은 부드러워, 마셔』 역시 진작 보관함에 있었다. 특히 몇년전에 이청아 배우가 본인의 유튜브에서 이 책에 대해 조곤조곤 소개하며 바에서 술을 마시는 영상을 보고 아주 홀딱 반해버림. 다른 것보다 살짝살짝 보이는 책에 인덱스가 엄청 붙어있었는데,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면서 보관함에 넣어뒀는데...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그렇게 다른 책의 홍수들에 떠밀리게 되었습니다...ㅎ.... 그러다 그 책의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기억들에 냉큼 신청해서 운 좋게 받아볼 수 있었다.



술은 책과 함께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골라 읽듯이 술도 술꽂이에 꽂아 두고 골라 먹는 사람으로서 드리는 말씀이다. / p. 63


보통 책은 차나 커피를 마시며 읽는 편이라 술은 생각도 안했는데 저번 달엔가 갔던 북카페에서 복숭아 맥주와 함께 시집을 읽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살짝 공감이 간다. 예전에 알쓸인잡에서 RM과 김영하가 술 마시면서 책 읽는 것에 대해 RM은 위스키를 마시면서 보고, 김영하는 그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나도 후자 쪽에 공감을 했으나 한번 술독 해보니까 몹시 이해가 감. 차가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라면 술은 살짝 기분을 끌어올리면서 몰입하게 하는 느낌이라.


특히 이 책은 무슨 해리포터 마법주문 같은 긴 술의 이름을 수루룩 외면서 영화나 책 같은 문화적 요소를 그것과 같이 페어링한다. <중경삼림>에는 맥주를, 다자이 오사무를 생각하며 앵두주를. 그리고 정말 귀여운 월동 준비! 하리보 젤리를 코냑에 담가 두었다가 겨울 내내 한 마리씩 꺼내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도. (이걸 읽으면서 당장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코냑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검색까지 했다구...) 아, 이 에피소드 진짜 웃긴게 중간에 하리보가 뭔 크리스마스 요정같은거랑 같이 병나발 부는 삽화가 있는데 이렇게 속세스럽고 으른 같은 곰탱이 본적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읽다가 웃어버렸다.


어쩐지 이 책을 읽은 감상으로 이 책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보다는 계속 나랑 연결짓고 내 에피소드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거야말로 에세이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면서 자꾸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글. 타인의 경험을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든 재현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술은 단지 매개일 뿐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체험을 하게 만들기에, 책장에 두고 있다가 어느 날 밤이나 바에 갈 때 빼내어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시면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



+ 위에 말한 이청아 영상은 진짜 분위기 장난 아니니까 정말 추천합니다. 늦은 밤에 술 한 잔 하시면서! 특히 배우가 작가님이랑 친해지고 싶대요...증말 부러워...

++ 같은 술 에세이라도 『술꾼들의 모국어』는 반주 쪽이고, 이건 완전히 책과 영화, 분위기 쪽에 가깝다.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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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다 읽을 거야 일력 - 빈 책을 채우자 나의 이야기로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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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사람들이 이제 슬슬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할 때라는 이야기.

내년의 다이어리를 고르고 달력을 고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매번 제대로 끼지 못하고 부유했다. 왜? 일기를 꾸준히 못쓰니까. 약간 그런 타입 있지 않은가. 처음에 몇일 꾸준히 하다가 중간에 망쳐버리면 아예 다 놓아버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그러다가 SNS에서 진짜 귀여운 일력 활용법을 봤는데, 매일 일력을 한장씩 뜯어서 포토카드 바인더에 넣고 그 뒤에 짧게 일기를 쓰는 것!

내년에는 비교적 편하게 junk journal을 써볼까 하던 차에 저 방법과 합치면 글 많이 안쓰고도 편하게 일기 (날로 먹기) 뚝딱이겠다 싶어서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받아봤다.



 * junk journal 의 예


해보고 싶지 않습니까 막 일력도 대충 덕지덕지 붙이고 오늘 받은 영수증이나 영화 팜플렛, 먹은 과자 봉지 같은걸 대충 스크랩하는 그 쿨한 느낌을 내보고 싶지 않으시냐구요ㅠ0ㅜ





일러스트는 『어린이라는 세계』에 삽화를 그리신 것으로 유명한 임진아 작가님의 일러. 몽글몽글하고 너무 귀엽다.
일기를 쓰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겠다 생각이 드는게, 이 일력은 매일매일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내게 질문을 건다. 쓸게 정말 없을 것 같은 날에는 그걸 보고 도움을 받으면 되는 일 아닌가. 진짜 나처럼 일기 꾸준히 못 쓰는 사람들을 위한 사기템이다.

내년의 기록을 기대하며 1월 1일을 기다려 본 적이 없었는데, 새해를 기다리는 소소하고 귀여운 이유가 생겼다. 내년에도 잘 놀고 잘 읽고 잘 자고, 그렇게 지내야지.

+ 이런 일력은... 위가 아니라 아래로 뜯으십시오... 저도 굳이 제가 겪어서 알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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