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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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한줄평 : 세상에 듣도보도 못한 에세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에세이가 아니라 진짜 제목에 답이 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상 선언이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응, 진짜 나의 책임. 책이 자아를 가지고 나한테 말을 걸어요... '심호흡을 해보십시오.' '지금 그대의 정신은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같은 문장들이 아무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데, 이쯤 되면 독서는 아니라 체험에 가깝다.


▪︎p.127 |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여행의 책』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분명히 현실 속에 있지만, 그대의 정신은 책 속에 투영된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에세이라 베르3 나르1 양반의 일상이라던가 으레 에세이하면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들을 알 수 있겠거니 했는데 개뿔 남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의 독서를 되돌아보아요

근데 이게 이 작가라서 또 이해가 되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이다. 그러니까, 책 안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을 또 쓰는 작가라서. 책 속의 책 속의 책 속의 책. 읽다보면 책이랑 같이 부유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명상록의 느낌도 약간 난다. 불교와 상통하는 부분도 있는 듯하고, 자연과 나의 내면을 한데 묶어서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가이드북.)


물론 호불호는 갈릴 수 밖에 없다. 책이 너무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와서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과한 친절함과 개성, 상상력으로 내면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바쁘고 지치는 일상 속에서 멀리 가지 않고, 어려운 글을 읽을 필요 없이 내면으로 여행해보고 싶다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이 말도 못하게 실험적이라 새롭다. 각 목차마다 색과 내지 재질과 폰트가 아예 다른데, 이게 참신하긴 하지만 가독성을 저해하는 부분이 분명 있긴 있다. '불의 세계' 진짜 힘들었어요....페이지와 폰트가 불타올라버려


++ 이거 이북으로 읽으면 절대 이 느낌 안날것 같다. 일단 촉감에서 오는 느낌이나 표지 재질이 아예 다른 책과 달라서. 만져봐야 앎. 손톱으로 두드리면 ASMR 소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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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즈
무라야마 유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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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4 / 그러나 이제 원하는 것은 부가 아니었다. 명예다. 상이다. 당당하게 나오키상을 받아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단순한 대중소설가가 아니라는 것을, 내실도 훌륭한 ’THE 작가‘라는 사실을 이 세상은 물론이고 그 거만한 남편에게도 증명해야만 한다.



책만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지만 문학상 하나 없는 인기 작가 ‘아모 카인’과 그녀의 '성덕' 편집자 ‘오자와 치히로’의 나오키상 사냥 스토리


처음에는 뭔가 범죄와 비리를 통해 나오키상을 노리는 건가 했는데

진짜 다른 의미로 충격적임

왜 출판사의 홍보문 중에 "작가, 편집자, 서점 직원을 경악시킨 금단의 책"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진짜로 책 홍보 페이지를 보면 웃음만 나옴. 그게 맞아서. ^하이퍼 리얼리즘 출판 서스펜스^ 그거 맞다.. 


나는 전혀 업계인이 아닌데도 순수하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사람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인정욕을 솔직하게 들춰낸 것도 그렇고, 주인공인 카인을 마냥 선하게 그리지 않고 좀 입체적으로 그려낸 것도 눈에 띔. 그래서 초중반 정도까지는 확실히 호감형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근데 또 작품 내 그녀의 팬의 입장에서는 눈물 줄줄 인성대박 내 자까님 인거지... 뒤에서 편집자들과 출판사들에게는 인성갑인거고.

근데 이 작가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게, 정말로 자기가 쓴 글을 자신의 아이처럼 귀하게 여기고 그 작품이 대접받기를 바라면서, 그걸 알아주는 독자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거라.... 이게 그녀의 무대 뒤를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까탈스럽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마냥 비호감이고 밉다고 보기에도 참 어렵다.


솔직히 이 책 주인공을 팬이 많은 베스트 셀러 작가로 내세운 것도 흥미롭다. 무명이라면 당연히 상을 노리겠지만, 그렇게 얻을 거 다 얻고, 명성도 있는 작가 역시 버리지 못한게 그런 욕구라는 점에서.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활용해 더욱 탐욕스럽게 노린다는 점에서 확실히 재미있다.


심지어 이 작가를 밀어주는게 그 소설가를 사랑하는 성덕 편집자인것도 웃김. 진심 이렇게 둘이 만나서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감. 이 여자들의 과감함에 진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프라이즈>는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가 원고 한 줄, 교정 한 컷을 두고 얼마나 치열하게 부딪히는지부터 문학계 안팎의 현실까지를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인다. 심지어 업계의 뒷이야기를 엿보는 재미와 인물의 행동 이유를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인정욕'에 두고 있으며 그들의 공모 속에서 독자는 문학상이라는 권위 뒤에서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면면들을 보게 된다. 솔직히 이런 글이 한국을 배경으로 나온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은데, 누가 감히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솔직해서 재밌다.



+ 줄거리를 보고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운데 여기서 그 얘기를 찝어 해주는 것도 좀 웃김. 아 근데 진심.... 오사무 하남자 그 자체...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싶어서 눈물의 장문 편지, 그것도 4m. 내가 수신자라도 질려서 안 줌 이 하남자야.


++ 근데 진짜 인성 뭐지...생각이 든다. 일본 배경이라 그런가, 하기에도 내 생각에는 한국도 비슷할 거 같음. 왜냐면 연예인도 아니고 작가의 사생활이나 출판계에 저지르는 인성질이 크게 부각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자기가 sns에서 드러내놓고 난동부리지 않는 이상, 각종 사건들에 쉬쉬해주고 덮어주는 카르텔 솔직히 있잖아요? 무수한 작가들의 이름이 떠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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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
김정호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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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2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소유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존재들의 안식처가 되면 어떨까?


솔직히 말하면, 동물원을 좋아한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고백이지만, 정말로 그렇다. 동물원의 존재를 둘러싼 윤리적 문제를 알고 있고, 그들의 삶이 인간의 이기심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도 많다. 그럼에도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갈 때면 어쩐지 설레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 감정만큼은 좀처럼 부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마음이 배로 불편해진다.

동물원의 실태와 동물권을 이야기하는 글 앞에서 나는 늘 모순투성이의 사람이 된다. 좋아하는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작동하고, 어느 쪽에도 완전히 서지 못한 채 흔들린다.


다만, 이 책은 '동물원' 이라는 공간 자체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여기 관우라는 흰꼬리수리가 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관우는 방사 훈련 도중에 농약에 중독된 비둘기를 먹고 2차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라만 보던 하늘로 죽어서야 돌아갔다'(32)는 말이 아프게 남는다.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방사가 옳았는지, 글렀는지를 따지기보다 먼저 질문하게 된다. 자연에서 살아가야하는 아이들을 위험하게 만든 게 인간인데, 그 동물을 보호하겠다고 또 억지로 가두는 건 옳은 일일까.

개인적으로 야생동물에게 야생성이란 옵션이 아니라 존재 의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래 살기만 하는 것과 자기 종으로 살다 죽는 것이 같은 일이 아니므로 결국 자유롭게 놓아주는 게 맞다 생각하지만, 막상 이러한 현실의 이야기 앞에서는 길을 잃은 사람처럼 마음이 먹먹해진다.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는 거북이 이야기.

거북이는 생태교란종이라 함부로 풀어주면 안되는거 아십니까...그래서 거북이로 연구를 하면, 이 거북이를 '처리'하기 위해 자연으로 풀어주는 게 아니라 냉장실이나 냉동실에 거북이들을 넣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진심 아... 연구의 필요성과 제도의 논리는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함과 미안함을 지울 수는 없었다. ‘처리’라는 말로 덮이기에는 너무 생생한 생명이 거기 있었으니까.


이 책에서 저자는 귀엽지 않고, 늙고, 아프고, 장애가 있는 동물도 편안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해서 반박하기조차 어려운 말이다. 그런데도 이 당연한 이야기가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당연함이 좀처럼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누군가는 계속해서 이 말을 꺼내야 한다. 

김정호 수의사의 반복적이고도 뻔한 말들, 그리고 그 말을 몸으로 증명해온 기록은 어쩌면 동물들을 위한 유일한 스피커이자 구명줄일지도 모른다. 동물 스스로는 '아프다'라고 말할 수 없기에, 누군가 대신 묻고 대신 아파하며 대신 책임져야 한다. 이 책은 그 책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돌봄에 대한 태도의 기록이고, 그렇기에 이 책은 동물의 이야기를 건너, 결국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까지 닿는다.



+ 이거 읽고 마음 안 불편하기가 너무 어려움 진심으로. 

++ 사육곰 도토리묵 이야기도 가슴 찢어진다. 사람이 먹고 남긴 음식 찌꺼기를 얻어다 곰한테 먹이는 사육곰 농장에서 어쩌다 보니 도토리묵을 철창 밖에 떨어뜨렸다는거다. 야생의 곰들처럼 도토리를 좋아하는 사육곰이 창살 틈으로 발을 넣어 도토리묵을 잡아보려고 했는데 묵이 자꾸 으스러져서 가져갈 수가 없었다고 한 이야기에서, 아 진짜... 마음 너무 안좋아서 머리 쥐어뜯음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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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최의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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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1 / 참사가 사람들을 죽였다. 정부는 무능했고, 심지어 악의적이었다. 시민들은 무관심했고, 심지어 정부의 편을 들었다. 



나는 진짜 이런 소설이 너무 좋음


이 소설은 SF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우회하지 않는다. 현실과 매우 가깝게 밀착되어 있어, 오히려 가상의 세계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낼 뿐. 같은 사회를 살아가며 동일한 사건들을 통과해온 사람들이라면, 이 이야기가 보내는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와닿을 것이다.


2036년, 천안은 이동에 취약한 중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천안에서 서울까지 잇는 차세대 열차를 만든다. 개통식, 꿈에 부푼 사람들이 열차에 오르고, 장엄한 경적과 동시에 역사는 무너져 버린다. 천안역은 그대로 없어져버린다. 그렇게 2045년 폐허가 된, 누군가에게는 자본 상승의 기회이며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인 천안에서 펼쳐지는 버려진 자들의 투쟁기.



이 소설은 참사와 장애, 소수자 등 굉장히 많은 지점을 동시에 건드린다. 특히 '사이보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사이보그'의 정의를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 속 로봇이 아니라, 신체의 손상을 보완하는 기계를 착용한 사람으로 본다면 이미 우리 근처에도 수많은 사이보그들이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김초엽·김원영, 사계절)가 말하듯, 사이보그는 먼 미래의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이 책에는 그런 수많은 사이보그들이 나온다. 오히려 사회의 기준에 따라 정상성으로 분류되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한다.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이 오히려 약자의 방패가 되고 천안을 지킨다. 그렇다면 수많은 '평범한' '정상인'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소설은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찌른다. 읽는 동안 독자는 자연스럽게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외면해왔는가.


이 책의 핵심 스토리를 이끄는 살아 있는 사이보그들은 '불구단'에 소속되어 있다. 자칫 멸칭으로 읽힐 수도 있는 그 '불구'라는 단어를 이 소설은 오히려 장애를 가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당당히 꺼내 놓는다. 그렇게 그 단어는 사회가 규정해온 ‘비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전복되어 그들의 것이 된다. 불구란, 장애란 생활에 다소 불편함이 따를 수는 있으나 위축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다. 그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어떤 불편함을 곧바로 비정상으로 분류하지 않듯이 말이다.



어쩌면 쉽게 읽히지는 않을 수도 있다. 왜냐면 서술 자체가 '당신은 ~했습니다.'라는 2인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근데 왜 이런 방법을 선택했는지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서술이란 말. 게다가 장르 자체가 SF 누아르라서 머리를 비우고 읽기에는 결코 수월하지 않다. 하지만 읽어내기만 한다면, 그 불편함을 견뎌낸다면 진짜 품에 꼬옥 안을 수 있을거라 장담합니다.


 

+ 제 최애는 마빈입니다. 아 마빈 진짜 귀여워!!!!

++ 솔직히 두 번 읽었음. 소설인데도 박박 필기해가면서. 저 인덱스들이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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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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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 타고난 친절함이 이미 그를 유죄로 만들었다. 미덕과 선행은 이제 공공모독죄로 처벌받았다. 모든 사람은 고귀하고 기사도적인 행동으로 타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이들을 정부에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소수가 모범을 보이려 하고 그러한 행위를 통해 사람들의 양심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은 용납되지 않았다.



고통을 다루는 소설은 많다. 그리고 그를 설명하고자 그로테스크한 장치를 사용하는 방식 또한 낯설지 않다. 하지만 바바라의 소설은 고통을 그저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고통은 지속성을 가진다. 인물들은 강요받거나, 오인당하거나 지저분한 방에 갇힌 채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던져진다. 내가 내 손으로 끝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읽는 사람들은 그 출구 없는 환상 속을 인물들과 머물러야 한다.


특히 「잘린 손」은 현대 소설이라 해도 믿을 정도의 세련됨을 가지고 있다. 개인 나름의 배려는 쉽게 무례로 오독당하고, 군중들은 각자의 사정을 모른 채 쉽게 손가락질한다. 선한 행동은 어리석고 유약한 것으로 취급되며, 위악일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 개인에게 악한 행동을 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 식으로 개인에게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광신론자의 광기와도 같다. 멈출 수 없고, 나 외의 타인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머리 없는 남자」 속 여자는 머리가 없는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에게 머리가 생긴 것을 보고 절망하여 밖으로 내달린다. 그 얼굴이 아름다울지라도, 형태가 생긴 얼굴은 그녀에게 공포를 준다. 과연 그 여자가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표제작이 이 단편집 중에서 그녀의 고통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나를 '돌보겠다'고 말하는 남자들. 내게 고통을 주면서도 나를 낫게한다고 하고, 나를 돌본다면서 지저분한 방에 가둔다. 나는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자들이 내가 다 나았다고 판단할 때. 나의 고통과 외침과는 관계없이 나의 의사는 모조리 타인에 의해 묵살당한다. 이것만큼 여성이 가지고 있는 악몽을 직설적으로 나타내는 게 어디에 있을까.


몽환적이고 기괴한 이야기의 인물들은 끝내 구원받지 않는다. 희망은 희미하다. 그러나 그 잔혹함이 독자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기묘한 매력을 가지고 끌어당긴다. 개인에게 불현듯 덮쳐오는 고통을, 인물의 신체와 인생을 사방에서 점령하는 폭력들을 끝까지 응시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메시지는 쉬이 나의 이야기로 치환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일은 한 때의 환상같은 악몽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 작가님 부활 기원 1일차.

++ 작가가 찢고 찢어서 그 끝에 남긴, 생애 단 한 권의 책 낭만 미쳤죠. 근데 독자한테는 좀 많이 비극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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