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단어 - 늘 따라오는 것, 쫓아오는 것, 나를 숨게 하지 않는 것, 무자비한 것, 그러나 모두에게 공평한 것
김화진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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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8 | 한 사람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는 그의 확신이다. 비빌 언덕이자 믿을 구석이다. 사고하고 사유하며 계속 이어지는 지난한 항해 도중 잠시 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자리. 그것을 뺏을 담력이 없으면서 도끼를 휘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늘 반성하며 생각한다. 끔찍한 일들을 함부로 쏟아내는 글을 쓰지 말자고, 자기실현만을 앞세워 충격을 가하지는 말자고.


「도끼책」, 김서해



p.198 | 영원히 미완의 상태로 남을지도 모르는 무의미한 형식. 그래서 내가 '것'을 떠올릴 때마다 과한 슬픔을 느끼곤 했던 걸까? 늘 다른 단어를 기다리는 것이 내 모습처럼 느껴져서. 영영 완성되지 않을 내 미래 같아서. 끝내 빈칸을 채우지 못해 일인분의 몫을 견디지 못하는 의존명사로 남을까 두려워서.


「것」, 유선혜



호록 읽히는게 아까울 정도의 글들.

10명의 소설가, 시인, 번역가가 아껴둔 '나만 아는 단어'. 나는 나만 아는 단어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사람들처럼 단어를 가지고 놀아보고, 위안 삼아보고, 방향으로 세워볼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있을까.


저자들은 단어를 단순히 사전에서 꺼내 쓰지 않는다. 이미 굳어지고 통용되는 뜻을 지나, 단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며 의미의 뒷면까지 끌어낸다. 예를 들면 '나의 일부가 죽어있다'라는 문장에서 '나의 나머지는 여전히 강건하게 살아있다'라는 부분을 발견해내는 순간. 단어 하나를 통해 사고가 비틀어지고 세계를 보는 각도가 약간 달라지는데, 그 지점에서 오는 놀라움을 외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문장을 가져보고 싶어서 글을 읽지만, 동시에 이런 마음은 평생 가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단어를 보고도 이렇게까지 다른 경로로 여행할 수 있다니. 같은 말을 쥐고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들 앞에서, ‘나만 아는 단어’라는 말은 확신에 가까워진다.



+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정용준, 유선혜, 김서해 작가. 특히 김서해 작가의 '도끼책'

++ 정용준 작가글은 아주 그냥 통필사해서 먹어버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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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모두 토요일에 죽는다
정지윤 지음 / 고블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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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0 | 그야 늘 사람이 문제니까

후기 : 그 '좋은 친구' 저도 함 소개해주십쇼...


가상의 S 대학교가 있다. 여기에서는 방화, 마약, 살인, 시체 유기 등 <그것이 알고싶다> 저리가라 하는 사건들이 펑펑 터진다. 겉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 모든 사건들, 그러나 이 모든 일의 주변에는 항상 '좋은 친구'라는 이름의 존재가 숨어있다. 진짜 '좋은'(p/n) 친구기는 함.


솔직히 말만 대학교지, 그냥 범죄도시나 다름 없다. 사실 지금 사회랑도 별반 다를 바 없음. 겉으로 보이는 양지의 바닥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썩어가고 있으니까. 근데 이것도 뒤에 읽다보면 왜 'S 대학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대학교가 아니라서. 진짜 이게 픽션이긴 하구나가 여기서 드러난다. 솔직히 <거짓말쟁이 고양이 보고서>까지는 지금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뒤에서 갑자기 화끈하게 방화요?


익숙치 않으면 잘 읽히지 않을 소설. 일단 정보량이 꽤 되고, 하나의 단편에서 이야기가 온전히 완결되지 않는다. 다음 단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니 꼬리를 무는 것도 아니고 그 꼬리의 털 한 자락을 문 정도로 연결이 됨. 앞에서 그냥 스쳐지나간 단어가 뒤에서 중점이 되고 복선인지도 몰랐던 단서가 이후에 충격으로 밝혀진다. 그래서 중간에 하차하거나 한번 끊어 읽어버리면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집중력도 꽤 요구하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쉽게 읽히는, 머리를 비울 수 있고 속도감 있고 그저 편하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는다면 조금 맞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각 단편이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복선이 많고, 이게 복선인지도 당시에는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신 퍼즐을 맞추듯 읽는 재미와 세계관이 서서히 드러나는 쾌감은 분명하다. 읽는 내내 어? 하고 멈췄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반복된다면, 이 소설의 매력에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장르소설 특유의 실험성과 과감한 에너지를 원하면서, 도파민과 불신을 동시에 취하고 싶다면 S 대학교에 한 번쯤 들어가보아도 좋을 것 같다.



+ 읽는 내내 이 단편들에는 분명 하나의 중심 줄기가 있는데 왜 이렇게 잘 모아지지 않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분의 이유는 뭘까 했는데, 이 연작 소설집이 한 번에 집필된게 아니라 일부는 2020년대 초에 독립출판되어 장르소설 마니아들에게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던 작품과 다른 신작을 함께 엮었다고 한다. 어쩐지... 확실히 기존 독립출판 단편들이 더 재밌긴 함 (소근

++하지만 가장 재밌었던 건 <죄인들의 정치학>. 죽인 사람, 죽일 뻔한 사람, 죽을 뻔한 사람의 환상 혹은 환장의 작당모의 이거 뭐 영화 '놈놈놈'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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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참 이상한 마음 황인찬 시에세이 2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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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 우리는 계속 기다립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기대한다는 것이고, 삶이란 결국 그 기다림과 기대를 손에서 놓지 않기로 결심하는 일이니까요.


1. 내가 문학동네 메일링 서비스, 우시사를 좋아한다.

2. 시인이 시에 대해 쓴 글을 좋아한다.


왜 안 읽어요?


수능독해에 익숙해서 밑줄과 문제지 사이에서 시를 읽는 방법을 잃어버렸을 때, 우시사의 도움을 꽤나 받았었다. 그럼 당연히 읽어야겠죠.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연재했던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의 원고와 문학동네 메일링 서비스 ‘우리는 시를 사랑해’의 원고 일부를 정리한 책이니까.


문장이 어렵지 않고 정겹다는 게 특징적인데 부러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하지 않으며 굉장히 일상적이다. 그냥 옆집 친구 일기장 들여다보는 느낌.

왜냐면 시를 잘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시 앞에서 우왕좌왕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을 먼저 이해해주니까. 시가 어렵다 느껴지는 이유, 이상하게 느껴지는 그 거리감까지 이 글들은 자연스럽게 껴안는다. 한 편의 시를 읽고 나면 그 여운을 곱씹듯 짧은 글이 이어지고, 읽는 이들은 그 사이에서 나의 생각을 하나 얹어보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시를 얼마나 이해했는가, 정확히 바라보았는가가 아니라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오로지 그것뿐. 좋은 것은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아이처럼 기뻐하던 마음을 다시 상기시켜주면서.


▪︎p.123 | 사랑은 어쩌면 이해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오해와 착각, 누락과 맹목, 그런 것이 사랑의 얼굴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요.


시를 사랑하라고 설득하지 않고, 시를 이렇게 해석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단지 삶 속에서 왜 시가 필요한지에 대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 시를 읽는다는 건 결국 자기 안의 기억과 감정을 한 번 더 불러오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가볍게, 그러나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 이 책에 인덱스 다 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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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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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제 이름은 〈여행의 책〉입니다.

한줄평 : 세상에 듣도보도 못한 에세이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에세이가 아니라 진짜 제목에 답이 있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상 선언이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응, 진짜 나의 책임. 책이 자아를 가지고 나한테 말을 걸어요... '심호흡을 해보십시오.' '지금 그대의 정신은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같은 문장들이 아무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데, 이쯤 되면 독서는 아니라 체험에 가깝다.


▪︎p.127 |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여행의 책』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분명히 현실 속에 있지만, 그대의 정신은 책 속에 투영된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에세이라 베르3 나르1 양반의 일상이라던가 으레 에세이하면 떠오르는 그런 이야기들을 알 수 있겠거니 했는데 개뿔 남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나의 독서를 되돌아보아요

근데 이게 이 작가라서 또 이해가 되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이다. 그러니까, 책 안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책을 또 쓰는 작가라서. 책 속의 책 속의 책 속의 책. 읽다보면 책이랑 같이 부유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명상록의 느낌도 약간 난다. 불교와 상통하는 부분도 있는 듯하고, 자연과 나의 내면을 한데 묶어서 나 자신을 위한 여행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가이드북.)


물론 호불호는 갈릴 수 밖에 없다. 책이 너무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와서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과한 친절함과 개성, 상상력으로 내면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바쁘고 지치는 일상 속에서 멀리 가지 않고, 어려운 글을 읽을 필요 없이 내면으로 여행해보고 싶다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디자인이 말도 못하게 실험적이라 새롭다. 각 목차마다 색과 내지 재질과 폰트가 아예 다른데, 이게 참신하긴 하지만 가독성을 저해하는 부분이 분명 있긴 있다. '불의 세계' 진짜 힘들었어요....페이지와 폰트가 불타올라버려


++ 이거 이북으로 읽으면 절대 이 느낌 안날것 같다. 일단 촉감에서 오는 느낌이나 표지 재질이 아예 다른 책과 달라서. 만져봐야 앎. 손톱으로 두드리면 ASMR 소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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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즈
무라야마 유카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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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4 / 그러나 이제 원하는 것은 부가 아니었다. 명예다. 상이다. 당당하게 나오키상을 받아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단순한 대중소설가가 아니라는 것을, 내실도 훌륭한 ’THE 작가‘라는 사실을 이 세상은 물론이고 그 거만한 남편에게도 증명해야만 한다.



책만 냈다 하면 베스트셀러지만 문학상 하나 없는 인기 작가 ‘아모 카인’과 그녀의 '성덕' 편집자 ‘오자와 치히로’의 나오키상 사냥 스토리


처음에는 뭔가 범죄와 비리를 통해 나오키상을 노리는 건가 했는데

진짜 다른 의미로 충격적임

왜 출판사의 홍보문 중에 "작가, 편집자, 서점 직원을 경악시킨 금단의 책"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진짜로 책 홍보 페이지를 보면 웃음만 나옴. 그게 맞아서. ^하이퍼 리얼리즘 출판 서스펜스^ 그거 맞다.. 


나는 전혀 업계인이 아닌데도 순수하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다. 사람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인정욕을 솔직하게 들춰낸 것도 그렇고, 주인공인 카인을 마냥 선하게 그리지 않고 좀 입체적으로 그려낸 것도 눈에 띔. 그래서 초중반 정도까지는 확실히 호감형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근데 또 작품 내 그녀의 팬의 입장에서는 눈물 줄줄 인성대박 내 자까님 인거지... 뒤에서 편집자들과 출판사들에게는 인성갑인거고.

근데 이 작가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게, 정말로 자기가 쓴 글을 자신의 아이처럼 귀하게 여기고 그 작품이 대접받기를 바라면서, 그걸 알아주는 독자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거라.... 이게 그녀의 무대 뒤를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 까탈스럽게 표현된다는 점에서 마냥 비호감이고 밉다고 보기에도 참 어렵다.


솔직히 이 책 주인공을 팬이 많은 베스트 셀러 작가로 내세운 것도 흥미롭다. 무명이라면 당연히 상을 노리겠지만, 그렇게 얻을 거 다 얻고, 명성도 있는 작가 역시 버리지 못한게 그런 욕구라는 점에서. 심지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무기를 활용해 더욱 탐욕스럽게 노린다는 점에서 확실히 재미있다.


심지어 이 작가를 밀어주는게 그 소설가를 사랑하는 성덕 편집자인것도 웃김. 진심 이렇게 둘이 만나서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감. 이 여자들의 과감함에 진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프라이즈>는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가 원고 한 줄, 교정 한 컷을 두고 얼마나 치열하게 부딪히는지부터 문학계 안팎의 현실까지를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인다. 심지어 업계의 뒷이야기를 엿보는 재미와 인물의 행동 이유를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인정욕'에 두고 있으며 그들의 공모 속에서 독자는 문학상이라는 권위 뒤에서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면면들을 보게 된다. 솔직히 이런 글이 한국을 배경으로 나온다면 더 흥미로울 것 같은데, 누가 감히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솔직해서 재밌다.



+ 줄거리를 보고 다자이 오사무를 떠올리지 않기가 어려운데 여기서 그 얘기를 찝어 해주는 것도 좀 웃김. 아 근데 진심.... 오사무 하남자 그 자체... 아쿠타가와상을 받고 싶어서 눈물의 장문 편지, 그것도 4m. 내가 수신자라도 질려서 안 줌 이 하남자야.


++ 근데 진짜 인성 뭐지...생각이 든다. 일본 배경이라 그런가, 하기에도 내 생각에는 한국도 비슷할 거 같음. 왜냐면 연예인도 아니고 작가의 사생활이나 출판계에 저지르는 인성질이 크게 부각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자기가 sns에서 드러내놓고 난동부리지 않는 이상, 각종 사건들에 쉬쉬해주고 덮어주는 카르텔 솔직히 있잖아요? 무수한 작가들의 이름이 떠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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