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 여행자-되기 둘이서 3
백가경.황유지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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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자 공간

<관통> 사회와 개인이라는 공동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관계된 것

<통> 담아냄으로서 (桶) 연결되는 (通) 아픔(痛)들 


우리는 많은 <관>으로 삶을 지탱한다. / p.10


이 책은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가 손을 잡고 사회·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을 찾아가 시간을 넘어 개인을 그리고 우리를 관통하는 것들에 대해 풀어내는 이야기다.

그런 생각을 해 본적 없는가, 내가 딛은 발 아래 축적된 역사들에 대해. 같은 땅을 밟으며 살았던 누군가의 삶에 대해. 두 명의 저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관내>를 여행하며 그 공간 안에서 사유하고 글을 쓴다. 인천 성냥 박물관에서 일했던 어린 여공들이 딛고 선 바닥, 미군 부대 앞 성매매 여성들의 슬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스러져간 곳 그리고 안산과 광주, 이태원 등으로. 시간은 흘러도 발 밑에 고통을 수반한 역사는 남아 숨 죽여 웅크리고 있고 저자들은 직접 그 곳으로 걸어가 조심스러운 통(通·痛)을 감각한다. 말 그대로 정말 시공을 넘는 관내 여행자.


발 밑의 시간에, 과거의 사람들에게 빚을 진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공간에 떠다니는 아픔을 잡아채 기록한 편지. 서로의 슬픔을 묻는 안부란 이토록 먹먹하고 귀한 것이다.


나의 작은 투쟁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진실에 다가가는 공부를 일상적으로 꾸준히 하기. 진실을 가려내는 눈을 기르기. 특정 집단이 시간을 끌며 대중의 망각을 유도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끝끝내 증명하기. 계속 말하기. 계속 쓰기. 작든 크든 계속 투쟁할 수 있는 위로와 에너지를 얻으러 여기저기 다니기. / p.15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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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 위픽
임솔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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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하게 사회의 쳇바퀴처럼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삶에 흥미도, 여한도 없어 죽고 싶어하는 유리와 자기파괴적 행동 끝에서야 비로소 살고 싶어진 규리의 이야기.


같은 슬픔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고 애도의 방법 또한 다르다.

행복보다 슬픔의 전염성을 체감할 때가 있다. 기쁨보다는 아픔에 깊이 공감하게 될 때 주로. 어쩌면 인간들은 통(痛)의 감각으로 서로에게 더 깊이 통(通)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서로의 아픔을 기준으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그러다보면 맞지 않는 부분에 벼려지기도 하고 오히려 깎여나가 무뎌지기도 하고. 이 소설 인물들의 잔잔한 슬픔들은 어쩌면 통각의 무뎌짐 끝에 완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에 우연히 침범한 슬픔은 개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게 될까. 비극이라고 하기도 힘든, 스쳐갈 법한 우연한 인연으로 인해 발생한 슬픔은. 이를 흘려보내야 하나 마음에 고이도록 놓아두어야 할까. 



+ 사실 읽는 내내 '누가 누굴' 이런 생각도 하면서 읽었다. 인물이 인물에게, 내가 타인에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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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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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너무 재밌다. 솔직히 3베르 1나르 작품은 『개미』 를 지금도 가장 1순위로 꼽는데, 키땅이 무섭게 치고 올라옴. 어느 정도냐면 일단 한번 펴면 이 책을 끝내기 전까지 중간에 잠깐 하차할 승강장이 없음. 1권도 그랬고 2권은 새벽에 잠깐 폈다가 밤을 세워서 다 읽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시리즈가 있으면 1권이 매력적이고 2권은 힘이 빠지면서 엔딩이 나기 마련인데 이 책은 2권이 진짜 미쳤음.


보통 이 작가의 작품이 그래도 현재나 근미래에 발을 붙이고 있거나 혹은 아예 천국같은 배경을 바탕으로 했다면 『키메라의 땅』은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상당히 선명하게 풀어내고 있다. 실제로 키메라가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 만약에 정말 이런 일이 가능했을 때, 이 새로운 인류 키메라들이 선택하는 생존의 길이 얼마나 설득력 있었는지.

즉, 엄청나게 과학적이지는 않다. 철저하게 과학에 기반을 두었다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워서 큰 수고로움 없이 그냥 술술술 읽힌다는 것도 큰 장점. 과학보다는 철학에 무게를 두고 있는 책이라 접근성이 확실히 낮다.


1권은 3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지나가 황폐해진 지구에 두더지(디거,D), 돌고래(노틱,N), 박쥐(에어리얼,A)와 인간의 유전자를 섞은 혼종을 알리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

2권은 이 혼종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이유가 너무 납득이 된다. 심지어 신인류라고 만들어뒀더니 인간의 가장 좋지 않은 부분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역시..🤦


추가로 읽는 내내 주인공인 알리사에게 굉장히 정이 안가서 혼났다. 일은 일대로 벌려놓고 스스로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만들어 낸 혼종들을 진화된 사피엔스, 우리와 동등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보다 아래로 보는 것이 여실해서. 물론 자신이 창조한 생물을 나란하게 보는게 오히려 더 어렵긴 하겠지만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자기의 이상과 다르게 행동하는 혼종들을 외면하고 회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 무슨 무책임한 회피형 매드 사이언티스트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면 알리사가 적극적으로 각자의 문명이 번성하는 흐름에 개입하지 않고 놓아두었을 때, 자연이 어느 방향으로 데려다 둘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하므로 그렇겠구나 싶어서 납득이 갔다. 물론 그렇다고 호감이라는 건 아님.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오만하고 앞뒤가 다름. 정말 이입할 수 없는 화자였다.



이건 단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린 SF인거 같은가? 인류가 협력과 공존이 아닌 배제와 단절의 길을 택했을 때 나란히 파멸하는 길에 들어선 일이 과연 상상 속의 일일까. 도합 600p 가량의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며 우리는 인간이 자신들만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경시하거나, 자연을 골라 취사선택하여 진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착각들을 제3자의 눈으로 마주하게 된다.

우월종의 지위에서 사피엔스들이 무엇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인류 전체의 위기를 목전에 둔 지금 읽지 않으면 대체 언제 읽겠단 말인가.



+ 키메라 관련 이야기에서 혼종들에게 공감을 할 수 있는 포인트가 '인간성'에 있다는 게 재밌음.

예를 들면 『모로 박사의 섬』에서의 혼종들에게는 전혀 공감도 안가고 그냥 끔찍했는데, 『모로 박사의 딸』(황금가지, 2025)나 『키메라의 땅』의 혼종들은 말이 일단 통하고, 그들에게서 우리와 비슷한 인간성이 보인다는 이유로 바로 마음에 품어버리게 됨. 작가의 서술 차이도 있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종보다는 동종의 냄새가 나는 생명들에게 마음을 더 주게 되는 건 당연한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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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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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말뚝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어떤 종류의 재난인가? 문자를 보낸 서울특별시의 입장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 p.131


도심 한복판에, 우리 집 현관에 말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평범한 나무토막 그런게 아니라, 거꾸로 박혀 있는 죽은 사람들.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 이상한 말뚝. 심지어 광화문 광장 말뚝들 곁으로 사람들은 울기 위해 모인다. 말뚝들은 이미 죽었음에도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기에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책은 알 수 없는 일들의 향연이다. 그러니까 저 말뚝들과 주인공 장이 대체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사건들이 나열되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고 동떨어진 일이 (심지어 다소 불행한!) 마구잡이로 일어나는데 너무 웃긴건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사건들이 후에는 하나의 거대한 줄기로 귀결되었겠으나 이 책은 그냥 엉뚱한 채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세상 아닌가. 내게 벌어지는 하루치의 미약한 불행들이 모두가 특정한 인과관계로 인해 필연처럼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이 책에서는 말뚝들의 과거 가운데 장의 행동이 연루되어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장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말뚝과는 관계가 없다. 근데 그게 평범한 소시민이자, 때로는 나약해지는 직장인의 삶이지 뭐. 이 엉뚱함과 사건의 불가해함이 이상하게 납득된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 아닐까.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기억할 만한 죽음에 대해 써서 올렸다. 그들 모두에게 잊힐 수 없는 죽음이 말뚝의 모습으로 돌아온 게 분명했다. / p.247

말뚝이 되어 다시 등장한 죽은 이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들은 은폐된 죽음의 대상이며, 사회적으로 죽임당한 사람들이다. 유독성 물질때문에 죽은 외국인 노동자나 제대로 휴식하지 못하고 일하다 죽은 택배 노동자... 여기까지만 말해도 우리는 수많은 비슷한 죽음들을 쉬이 연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 사람들은 분노하고 함께 슬퍼한다. 말뚝들을 보고 엉엉 우는 것 처럼. 누군가는 그 말뚝조차 이용하고, 없애서 은폐하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것들을 보며 감정을 쏟고 연민하고 이름 잃은 자들을 위해 발벗고 뛰기도 하고. 이런게 사람이고 인간사 아닌가.


결국 묻어두고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슬픔은 어떻게든 돌아오게 되어 있고, 우리가 그들을 위해 울어주고 연민하는 데에서 사회적 변화의 불씨가 피어오르게 된다. 타인을 위해 흘린 눈물이란 곧 그들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했다는 거니까. 거기서부터 타인을 위해 발벗고 나서거나, 적어도 같이 옆에 서줄 수 있는 연대가 시작된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하고, 죽은 자는 산 자의 미래를 돕는다. 즉 이 소설은 같은 사회에 살았거나 살고 있거나 살 예정일 모든 이들에게 유효하게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엉뚱한 상상력과 발랄한 풍자의 탈을 쓰고 날카롭게 사회의 폐부를 찌르기까지 하는.



+ 그러니까, 한겨레문학상이 또 한겨레문학상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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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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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권태를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 p. 120

여름하면 으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너무 쨍해서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의 채도라던가 풋풋함, 설렘 뭐 그런 것들.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마저 빛나보이는 이미지.

그러나 서한나의 글에서는 오히려 그런 청춘의 감정보다는 묘하게 습도가 높은 장마철의 늦은 밤같은 눅눅한 느낌이 난다. 설탕에 절인 복숭아의 향도 나지만 달콤하게가 아니라 오히려 눅진하게 졸여져 끈적하게 입가로 떨어질 것 같은.


여름의 생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충실하게 계절을 감각하는 사람이자, 여름을 권태를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냥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름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긴 후의 탈진 상태의 후련함에서 오는 나른함을 여름이라고 표현하는 글.

이는 서한나 작가의 글과도 닮아있다. '진심이 생길 때 이 사랑에서 패배했다'고 느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사랑을 하고 그렇게 닳을 때까지 상대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사람이어야만 이렇게 열기와 권태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의 경험, 시절의 감정을 계절과 함께 묶어서 제 달고 쓴 마음까지 모조리 솔직하게 녹여내는 글이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은 물리적인 일이다. 얻어맞은 것처럼 주저앉고, 어금니가 흔들리고, 몸은 붕 뜨고 시야가 흐려진다. 머릿속에는 내 맥박 소리로 둥둥거리고,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 p.37


나는 원래가 사람과 계절에 열정을 가져본 적이 없을 뿐더러 여름에는 쥐약이라 에어컨 밑을 도무지 떠나질 못하는 인간이라서 저런 권태로운 상태가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가장 새뜻한 자유가 아닐까. 단순 계절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 이렇게 마음을 다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미디어에서 주입한 관념 속의 여름에서 벗어나 실제로 피부로 겪어낸 그 습한 여름밤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할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삶은 얼마나 다채로워질까.



+ 봄에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문보영, 2024)을 읽고 장마철~늦여름에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을 읽으면 완벽한 봄여름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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