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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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권태를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다. / p. 120

여름하면 으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너무 쨍해서 모든 것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의 채도라던가 풋풋함, 설렘 뭐 그런 것들.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마저 빛나보이는 이미지.

그러나 서한나의 글에서는 오히려 그런 청춘의 감정보다는 묘하게 습도가 높은 장마철의 늦은 밤같은 눅눅한 느낌이 난다. 설탕에 절인 복숭아의 향도 나지만 달콤하게가 아니라 오히려 눅진하게 졸여져 끈적하게 입가로 떨어질 것 같은.


여름의 생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충실하게 계절을 감각하는 사람이자, 여름을 권태를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냥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름에 즐길 수 있는 것은 모두 즐긴 후의 탈진 상태의 후련함에서 오는 나른함을 여름이라고 표현하는 글.

이는 서한나 작가의 글과도 닮아있다. '진심이 생길 때 이 사랑에서 패배했다'고 느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사랑을 하고 그렇게 닳을 때까지 상대를 오감으로 경험하는 사람이어야만 이렇게 열기와 권태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의 경험, 시절의 감정을 계절과 함께 묶어서 제 달고 쓴 마음까지 모조리 솔직하게 녹여내는 글이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랑은 물리적인 일이다. 얻어맞은 것처럼 주저앉고, 어금니가 흔들리고, 몸은 붕 뜨고 시야가 흐려진다. 머릿속에는 내 맥박 소리로 둥둥거리고, 손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 p.37


나는 원래가 사람과 계절에 열정을 가져본 적이 없을 뿐더러 여름에는 쥐약이라 에어컨 밑을 도무지 떠나질 못하는 인간이라서 저런 권태로운 상태가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가장 새뜻한 자유가 아닐까. 단순 계절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 이렇게 마음을 다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미디어에서 주입한 관념 속의 여름에서 벗어나 실제로 피부로 겪어낸 그 습한 여름밤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할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삶은 얼마나 다채로워질까.



+ 봄에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문보영, 2024)을 읽고 장마철~늦여름에 『여름에 내가 원한 것』을 읽으면 완벽한 봄여름이 되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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