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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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서고야 마는 것은 나의 정해진 패턴이었다. / 첫 문장


9년 전 캄보디아로 4개월간 해외 봉사활동을 갔던 동이, 혜란, 석이. 귀국 후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동이는 혜란으로부터 석이가 실종되었다는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사람은 외따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개인의 평온을 위해 다른 사람이 힘을 쓰고 있으며, 나의 생활 역시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결국 사람이란 서로에게 빚을 지고, 빚을 지울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캄보디아에서 해외 봉사를 하며 친하게 지내던 세 친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부채감에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나의 현실이 버거워 외면하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곤해한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우리는 몇 달 전에 큰 또 한 번의 사고를 겪었다. 운이 좋아 나를 빗겨갔을 뿐인 국가적 참사들. 사회는 그 참사를 직시하고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 날보다 더 안전해진 제도 아래 실질적으로 득을 보는 것은 운이 좋았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때때로 잊히지 않는 것이 바로 영원"이라고 책은 말한다. 잊히지 않는 것,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영원이라면 우리는 영원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며, 기꺼이 져야만 하는 것이다.



+ 왜 요즘 예소연 작가가 주목받는지 알 것 같은 작품이었다.

++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인덱스가 덕지덕지 붙어있던데 ㅎ...저두요...ㅎ...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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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1~2 세트 - 전2권
샬럿 브론테 지음, 송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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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이게 은행나무에서 나오네요! 기대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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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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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내 시간은 여행도 취재도 연구도 아니라 ‘사는 것’이었다. 관계를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호의, 기쁨, 감동과 경이, 긴장, 때론 불안과 불쾌 같은 순간순간의 감정을 지닌 채 하루하루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것. / p.276


읽으면서 계속 남극의 풍경을 상상했다. 새하얀 유빙과 그를 바라보는 새까맣고 동그란 펭귄의 등 같은 것을 생각했다. 세상의 끝에서 그 까만 눈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눈에 담고 있을까. 


'남극'하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에 생겨나는 부채감을 안고 책을 폈다. 미디어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무거움과 무서움이 있겠거니, 그 안에서 기후를 위한 어떠한 교훈을 남겼겠지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작가는 남극에서의 일상을 적어내려갔다. 남극에서 마주한 거대한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사랑스러움 같은 것들. 인류가 남극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작가는 그보다 무정하며 담담히 존재하는 자연의 경이로움, 인간도 그곳에서는 한낱 종種의 일종일 뿐이라는 그런 겸손함을 적어내려갔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거만하게 내가 너를 살리니 죽이니 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은 너무 작다는 게 느껴지는데 지구 전체에 생명력을 흘려보내는 남극에 서 있으면 나라는 개인은 과연 어떻게 느껴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는 남극의 생물들과 그 모든 것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남극 땅은 일종의 희망과 같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라는 책 제목이 계속 떠올랐다. 자연의 거대함, 끊임없이 태동하는 생명력. 나는 남극을 너무 약하게 보고 있었다. 자연과 인류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일이 필요했고, 나는 이 책으로 힌트를 얻었다. 인간은 많은 것들의 도움으로 생을 이어간다. 인간종 뿐이 아니라 많은 종들과 공생하기에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다. 공존과 우정이 만들어내는 연대 의식이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쉽게 많은 것을 파괴할 수 있을까. 차가운 땅에서 작가가 가져온 희망이자 미래의 방향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보다 대륙 자체의 '자연성'이 앞섰고 그 안에서 인간은 모두 다를 것 없는 '종'이었다. / p.252


+ 펭귄 일러스트가 진짜 가슴 터지게 귀엽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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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5
김혜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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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곳에 가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것이 다. / 첫 문장, <여름방학>


'셋셋' 시리즈는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려는 목적 하에 한겨레출판과 한겨레교육이 진행하고 있다. 책을 고르다 보면 아는 작가의 작품, 익숙한 맛에 이끌리는 인력(引力)이 강하게 작용하게 되므로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쉽지가 않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맞춤형 단편집. 진짜 처음 만나는 작가들의 이름이 사람을 설레게 한다. 『셋셋 2025』에는 새로이 문학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알 수 있게끔 하는 '한국 문학의 최전선'에 위치한 신인의 작품 6편이 모여 있다.




'구원이란 정말 특별한 것일까'. 많은 소설이 구원을 묻는다. 딱히 이 단편들만 묻는 질문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내려온 질문이지만 사회가 심란한 근래에 조금 더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한국은 특정 개인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꼈다. 그 공포에 마침표를 찍기도 전에 큰 비극이 발생했다.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ptsd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불안함에 잠을 자지도 못하고 자다가도 공포에 깨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유지와 평범한 하루, 그리고 바로 옆에서 나와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구원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소설은 작은 위안이자 숨통이 트이는 안전지대가 된다.



이지연의 <아이리시 커피> 속 희수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를 덮친 괴한으로부터 아르바이트생 소미가 살해당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다. 희수는 죽음을 적극적으로 막지도 못했고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지도 못했다. 방관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희수의 손을 잡아준 것은 소미의 어머니다.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내미는 손길, 그 연대가 있었기에 희수는 현실을 다시 마주할 수 있고 서로의 얼굴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서희의 <지영>에서 말하듯 구원이란 그런 것이다. 이해와 공감이면 충분한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거나 교회에 나가 신실하고 열정적으로 신에게 구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손에서 전해질 수 있다.


"사람들이 그 문장을 어떻게 완성하는 줄 알아? 고양이 밥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부모님이나 아이를 생각해서 살아간다, 보통은 그런 식이야.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할 때면 관계를 떠올려. 너한테는 그런 관계가 되어줄 만한 누군가가 있니?"/ p.61, <지영>



소설가들의 눈을 통과하여 선정된 단편집에 아쉬움을 말하는 것에는 다소 용기가 필요하지만, 솔직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게 요즘 한국 신인 문학의 트렌드라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크게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작품이 적다. 현실은 냉혹하고 우리는 일상을 버텨야 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은 평범함에 건네는 위안이 내게는 너무나 밍숭맹숭하게 느껴졌으므로. 


그러나 이 소설은 분명 시의적절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문학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도록, 독자의 마음을 다독이는 글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벼려낸 이야기임에는 확실하다. 구원은 공감에 있고 공감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이끌어낸다. 신을 찾지 않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구원할 수 있다. 당연한 말도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있고 그건 지금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가 다같이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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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독서 - 한 권의 책이 리더의 말과 글이 되기까지
신동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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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그 영향은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p.22


"대통령의 부주의한 꿈이 나라를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홍보 사진에 있던 글이 심금을 울린다.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실은 취임 이후 10개월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구입하지 않았다] 는 기사의 문장을 첨부하고 부연 설명은 하지 않겠다. 김용현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히틀러 자서전이라는 얘기에 왜 사람들이 경악했겠는가.


지도자가 읽은 책은 단순한 개인의 사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정 전반의 방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전 대통령들의 독서 목록을 보며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의 골조를 미리 엿볼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3의 물결>을 읽으며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소유의 종말>을 읽으며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꾸준히 책을 추천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읽어나간 책과 그의 연설문들에서 그가 꿈꾸는 세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고, 그에 대한 공감을 국민에게서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씨의 나라를 짐작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상식 밖인 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그에게는 구체적인 국정 운영의 방향이 없었고, 한 번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존재하지도 않는 독서 이력보다 유튜브 시청 내역을 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이럴 거면 재작년에 왜 김건희 씨가 도서전에 와서 그 난리를 치고 갔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정식 출간도 되기 전에 2쇄 중쇄를 했다. 단지 대통령이 읽은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이 그의 철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 영향이 정책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줄 뿐인데 국민들은 그의 책장에 관심이 많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의 이력은 개인을 넘어 나라의 현실이므로. 그의 과거가 오늘의 정책이 되어 미래를 그려내므로. 


'책 안 읽는' 대통령이 위에 선지 2년 반이 지났다. 전 정권만 해도 대통령이 추천해 주는 책을 구경하고 추천사를 읽었었는데, 2년 사이에 그 재미를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다시 책 읽는 대통령을 원한다. 그에게 미래를 사유할 힘과 확실한 국정 철학이 있기를 바란다. 



+ 김대중 대통령의 글을 읽으며 이런 사람이 대통령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인간 싫어, 인간 때문에 다 망했네' 이러고 있는데 그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재조립해보고 구상해본다고 했다. 대통령 그릇이 확실히 따로 있는게 틀림없는거 같다.




사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조작되었을 뿐이다. 희망은 충분하다. 지금도 가정에서, 거리에서, 회사에서 더 많은 사람이 친절을 베풀고 서로를 돕고 있다. 폭넓게 전염되고 있다. "인간의 선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조롱의 폭풍을 뚫고 나가야 함을 의미"(브레흐만)하고, "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인이나 성인, 또는 변절자들의 특권"(에코)이었지만 이제는 모두의 것이 되었다. 우리는 우정과 친절, 협력과 연민을 용감하게 드러내야 한다. / p.59


매국은 언제나 애국이라는 가면을 쓴다. 국가의 이익, 국민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주장 뒤에 자신들의 이익을 감춘다. 따라서 민족 전체를 폄훼하고 상황을 스스로 악화시키는 것은 매국의 고유한 패턴이다. 국민을 그저 '혜택받는 대상'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도록 사용한 수법이다. 자신들만의 대의인 매국을 위해 개인은 희생돼야 마땅하다. / p.168


<소년이 온다>에서 김진수를 기억하는 '나'도 그랬다. 그는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 자각한다. 시신들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시민들과 함께 공수부대의 총구 앞에서 섰을 때, 그는 자신 안에서 깨끗한 무엇을 발견하고 놀란다. 바로 양심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한 번쯤 겪어봄 직한 느낌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거대한 혈관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생생함에 닿았을 때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지금 죽어도 후회없을 것 같은  경지에 다다른다. 그것은 양심이 가져다주는, 숭고한 심장의 맥박이다. / p.192


돌아보면 한국의 진보는 도덕적인 이들과 함께할 때 훨씬 적극적이었고, 훨씬 너그러웠다. 억압과 패배, 절망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시민들도 박수를 쳤다. 한국 보수의 귀가 빨개진 까닭도 그것 때문이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한국의 진보에게 비도덕의 탈을 씌우려고 안달했던 것이다. 다시 태도가 절실하다. 도덕적 지도자의 등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 p.210


*하니포터 9기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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