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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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내 시간은 여행도 취재도 연구도 아니라 ‘사는 것’이었다. 관계를 만들고 대화를 나누고 호의, 기쁨, 감동과 경이, 긴장, 때론 불안과 불쾌 같은 순간순간의 감정을 지닌 채 하루하루 일상을 만들어나가는 것. / p.276


읽으면서 계속 남극의 풍경을 상상했다. 새하얀 유빙과 그를 바라보는 새까맣고 동그란 펭귄의 등 같은 것을 생각했다. 세상의 끝에서 그 까만 눈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눈에 담고 있을까. 


'남극'하면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에 생겨나는 부채감을 안고 책을 폈다. 미디어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무거움과 무서움이 있겠거니, 그 안에서 기후를 위한 어떠한 교훈을 남겼겠지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작가는 남극에서의 일상을 적어내려갔다. 남극에서 마주한 거대한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사랑스러움 같은 것들. 인류가 남극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작가는 그보다 무정하며 담담히 존재하는 자연의 경이로움, 인간도 그곳에서는 한낱 종種의 일종일 뿐이라는 그런 겸손함을 적어내려갔다.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거만하게 내가 너를 살리니 죽이니 할 수 있을까. 하다못해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은 너무 작다는 게 느껴지는데 지구 전체에 생명력을 흘려보내는 남극에 서 있으면 나라는 개인은 과연 어떻게 느껴질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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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는 남극의 생물들과 그 모든 것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남극 땅은 일종의 희망과 같다.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라는 책 제목이 계속 떠올랐다. 자연의 거대함, 끊임없이 태동하는 생명력. 나는 남극을 너무 약하게 보고 있었다. 자연과 인류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일이 필요했고, 나는 이 책으로 힌트를 얻었다. 인간은 많은 것들의 도움으로 생을 이어간다. 인간종 뿐이 아니라 많은 종들과 공생하기에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다. 공존과 우정이 만들어내는 연대 의식이 있다면 우리가 이렇게 쉽게 많은 것을 파괴할 수 있을까. 차가운 땅에서 작가가 가져온 희망이자 미래의 방향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보다 대륙 자체의 '자연성'이 앞섰고 그 안에서 인간은 모두 다를 것 없는 '종'이었다. / p.252


+ 펭귄 일러스트가 진짜 가슴 터지게 귀엽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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