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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 건설업자로부터 검찰 고위간부(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를 위한 성 접대를 수업이 강요받은 여성들이 수사기관에 이들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봐주기 수사’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검찰 고위 간부와 건설업자에 대해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p.10)
상식적이지 못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이미 공정과 정의를 잃어버린 정부를 사방으로 둘러 싸고 검찰이 단단하게 보호하고 있다. 많은 사건 중 이 책은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가 아님을 선언한 사건' 인 김학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본질적으로 뇌물수수 사건이 되었어야 할 이 사건이 긴급출금과 성폭력 사건으로 축소하고 뭉개진 해당 사건은 검찰의 기가 막힌 막무가내식 수사와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무소불위로 휘두른 검찰권이 만들어 낸 예술적인 작품이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 것은 검사 임관 시 하는 선언이다. 이 선언 아래 현재의 검찰은 떳떳한가.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고 힘없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겠다는 이 직업군은 현재 누구보다 열심히 제 식구와 현 정권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그 칼 끝은 정말로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자를 지키기 위해 가장 약한 사람을 향하고 있다.
▪︎ 더욱이 검찰 조사는 앞서 경찰에서 했던 이 씨의 진술을 탄핵하려는 의도로 진행됐다. 그래야 김학의를 봐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김학의를 상관으로 모셨던 검사는 이 씨에게 비아냥 거리거나 고압적인 태도로 질문을 던졌다. 검사는 이 씨에게 아버지의 도박 전과가 화려하다느니, 이 일로 집에 돈을 많이 벌어다 줘서 동네에 효녀라는 소문이 자자하다는 등의 모욕적인 말을 건네며 심리적으로 위축시켰다. 심지어 검사는 ‘이 사건 별거 아니니까 그냥 윤중천 용서하고 김학의도 용서하라’는 취지의 말을 조언이랍시고 해댔다. (p.71)
정부의 성격, 목표를 떠나서 성폭행 피해자인 이 씨에게 가해지는 검찰의 언행은 너무나 끔찍하고 폭력적이라서 읽는 내내 내 마음에도 같이 생채기가 났다. 특히 김학의 동영상에 나오는 성행위가 자연스러운지 확인해야한다며 피해자에게 재현해보라는 말은 충격과 속상함을 넘어서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모욕적이었다. 제 식구를 감싸야한다는 커다란 의지 아래 일반 국민, 심지어 피해자의 인권은 발에 채이는 낙엽만도 못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실감이 피부로 다가왔다.
▪︎ 추정에 의해 진술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박준영의 태도에 피고인들은 분노했다. 재판에 출석한 증인은 스스로 경험한 사실을 진술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나 추측을 말하면 '증명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법조인이라면 응당 알고 있을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박준영은 피고인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진술을 한 것이다. (p.185)
읽다보면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도 다시 보일 수 밖에 없다. 그의 신념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본인의 자유이지만 수사기록을 의심하며 재심 사건을 이끌어 온 그가 왜 김학의 사건에서는 유독 검찰의 수사기록을 무한정 신뢰하며, 당사자성도 떨어지는 진술을 법정에서 하고 있는지는 내내 의문스럽게 보였다. "문재인 정권이 김학의 사건을 검찰개혁의 불쏘시개로 활용했다". 그는 무엇을 실제로 경험해서 이런 진술을 법정에서 했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사건을 장자연 사건과 버닝썬 사건과 묶어 지나치게 과장하고 왜곡시켰다'. 이 것은 본인의 '뇌피셜' 아닌가. 본 것도 없고 직접 사건을 경험한 적도 없다. 몇 보 양보하여 저 이야기가 실제라 해도 본인은 증명해낼 수 없다. 누구보다 본인이 이 발언의 증명력을 더 잘 알것이다. 그럼에도 불과 한달 여 간의 경험과 단체 채팅방 '눈팅'으로 얻은 조각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이 추측성 발언을 법조인이, 법관의 앞에서 했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다.
▪︎ 이정섭의 논고는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들에게 ‘김학의 불법출금 의혹 사건’은, 검찰의 과거를 트집 잡아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음모이자, 운동권 출신 정치집단의 국기문란 범죄일 뿐이었다. 따라서 검찰의 자존심을 걸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믿었다.(p.191)
김학의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국민들은 분노하였다. 분노하였지만, 이 사건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나는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는 채로 뭉툭한 주먹질을 검찰에 던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건의 전후관계와 검사들의 목표 그리고 의지, 그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짓뭉갠 것들을 이 책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뭉툭한 분노에 날이 벼려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면 알수록 빛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희끗한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다. 검찰의 권력은 터무니없이 거대해보이지만 이 책 내내 누군가는 검찰권에 저항하고 있다. 허무함에 빠지고 싶어도 피해자들의 목소리나 그들을 위하는 여러 마음, 이 와중에 공정과 상식을 말하는 작은 외침을 들으면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우울은 내 지성의 부산물(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이라는 문장이 있다. 누구보다 우울할 수 있는 사건과 가까운 사람과 당사자,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아직 무기력하게 절망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거 조금 알았다고 답 없다고 나라와 정치를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 검찰정권에서 검찰을 개혁하는 것은 문재인 정권 때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철옹성 같던 군사독재정권도 시민의 거듭된 저항 끝에 결국 무너졌다. 민주주의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 그 출발점이었다. 검찰정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p.228)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