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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 ㅣ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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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걷는다. 피터 모건은 쓴다.
어떻게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길을 잃어야 해.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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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인물이 나온다. 철책 밖의 걸인 소녀, 철책 안의 부영사와 프랑스 대사 부인 안-마리 스트레테르. 이 세 명은 직접적으로 얽히지는 않지만 시대적 텍스트로 엮여있다. 커다란 서사적 줄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인물을 통해 각 층의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대조, 가난과 사치, 상처에서는 구더기가 들끓는 걸인 소녀의 발과 사뿐히 춤을 추는 백인들의 부드러운 발. 그러나 세 인물들의 행위는 철책으로 분리된 두 세계를 잇는다.
걸인 소녀는 어머니에게 버림받는다. 아이를 밴 몸으로 길을 잃기 위해 걷고 걷는다. 굶주림에 허덕이고 고통에 가득 찬 삶, 백인에게 자신의 아이를 팔기 위해 시장에 내놓는 이야기는 얼마나 비극적인가. 죽는 것이 나은지 그래도 사는 것이 나은지 쉽사리 판단조차 불가능한 삶이 그 곳에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소녀의 고통은 개인의 것으로 국한되지 않고 당시 식민지인들의 고통으로 확대된다. 이 소녀는 개인이자 당시 인도인들이다. 그리고 소녀는 곧 미쳐버린다. 잠시 지성을 찾았던 일이 꿈인 것 마냥, 자신의 분신인 아이를 버린 순간 스스로를 잃는다.
그렇기에 철책 안 백인들의 생활이 더욱 이질적이다. 사치스러운 대사관저의 사람들은 바깥 거지들과 무엇이 그다지도 달랐던 걸까. 맥락없는 이야기, 빙빙도는 대화 그 무의미함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오지 않는 그 비극적인 소녀를 생각했다.
백인 사회와 식민지인들은 섞일 수 없었다.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걸인 소녀)을 마주한 샤를은 도망간다. 샤를의 모습이 당시 백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당시 사회는 인도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었다. 풀릴 수 없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눈 앞에서 치워버리듯, 그들은 걸인 소녀를 굶주림과 문둥병 환자와 동일시하며 외면하고 회피한다.
부영사는 다르다. 그는 ‘부재할 때만 관심을 끄는 인물’이다. 즉 백인 사회에서 외면을 받는 외톨이. 그는 라오르에서 식민지인들의 참상을 보고 이 소설에서 가장 능동적인 행동을 취한다. 총을 쏜다. 그들을 향해, 허공을 향해, 거울 속 자기 자신을 향해. 그는 인도의 비참함을 바라볼 줄 알았고 분노와 절망으로 백인 사회와 인도를 연결했으나, 그런 그를 백인들은 외면한다. 백인들의 철책 안 세계는 눈을 감고 외면해야 유지되는 화려와 권태이므로. 그의 절규는 라오르의 비참한 현실과 백인들의 비겁함을 향한다.
그리고 백인 사회를 상징하는 프랑스 대사 부인 안-마리 스트레테르가 있다. 그녀 역시 바깥의 사람들을 동정하며 먹을 것과 물을 주며 부영사의 절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부영사가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총을 쏘고 비명을 지르며 분출한다면 안-마리는 대신 울어주고 혼자 고통을 삼킨다. 그러나 마지막의 부영사의 외침을 외면하는 모습에서 백인 사회의 한계를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셋의 이야기가 그저 각자의 길로 흘러간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문장을 비워버린다. 문장 틀에서 단어를 분리시키고 의도적인 침묵이 가득하므로 그저 흘려 읽어 버리면 길을 잃지도 못하고 정지해 있게 된다. 고민 끝에 닿은 오독과 헤멤 역시 작가의 의도 하에 있으리라 생각된다. 익명으로 주어를 모호하게 하면서,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의 문제로 환원될 때 무력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소녀와 부영사처럼 미쳐버리거나 안-마리처럼 외면한다. 이 소설은 그런 늪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섬광처럼 깨달음을 주기보다는 시대의 혼란을 텍스트로 경험하게 한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향하듯, 독자 역시 다른 곳을 헤매게 될 것이다. 나는 무력함에 닿았고, 안-마리의 권태를 약간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서 마침표를 찍었을지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