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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편지 - 보부아르와 넬슨 올그런의 사랑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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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으로 유명한 보부아르가 미국인 연인 '넬슨 올그런'에게 17년간 보낸 편지 304통.
안녕이든 아듀든 저는 시카고에서 보낸 이틀을 잊지 않겠어요. 제 말은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p.26, S.드 보부아르가 넬슨 올그런에게 쓴 첫 편지)
호감이 있는 사람과의 첫 편지는 고심해서 쓰기 마련이다. 너무 무례하지 않으면서 솔직하게, 조심스럽게 문장을 골라내었을 보부아르의 편지 첫 머리는 영어로 편지를 쓸 테니 문법이 서툴더라도 양해해달라는 말이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언어였다면 더욱 더 아름다운 말로 포장했을지도 모르고, 조금 더 호감의 결을 정확히 짚어 섬세하게 표현했을테지만 타국의 언어로 말하는 고백은 훨씬 더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보부아르의 초반부 편지는 그래서 매우 솔직하다. 물론 뒤로 간다고 표현이 덜 한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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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보부아르의 입장에서 볼 수 밖에 없어서 넬슨이 너무 야속했다. 보부아르는 서툰 영어로나마 편지를 보내고, 미국에 대해 알기 위해 책도 찾아보고 이 작가가 좋았다 저 사람이 좋았다, 당신의 작품이 너무 좋다 기대된다며 적극적인데 넬슨에게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를 공부해서 그 언어로 편지를 한통만 써줬더라면 그의 ‘개구리’는 너무 행복해서 그 이야기로만 편지를 꽉 채웠을텐데.
게다가 1950년 여름, 넬슨이 보낸 편지의 어조가 바뀌어 간다거나 갑자기 보부아르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밝힌 부분을 직접 읽지 못해서 아쉬웠다. 주고받은 편지를 완전하게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인지 저 부분이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물론 보부아르는 다시 만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넬슨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변함없이 편지를 보내는데,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애초에 보부아르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도 넬슨이 너무 별로인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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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저런 것이 사랑의 속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일상과 사소한 감정까지 공유하는 일. 사적 기록이라 하더라도 오랜 기간 축적되면 역사가 된다. 물론 보부아르의 사랑이 가득 묻어있었지만, 타인의 연애편지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당시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의 눈으로 들어가서 그 시대를 지켜본다는 감각이 훨씬 강했다. 파업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다거나 편지가 안 와서 속상하다는 식으로, 굉장히 일상적이면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미시적으로 섬세하게 속속들이 구경할 수 있었다. 근데 작성한 사람이 보부아르라서 만나는 사람들이 사르트르, 카뮈, 앙드레 지드… 저 에피소드는 꽤나 재미있어서 인덱스를 붙여뒀다. 그냥 주정뱅이들 아니냐고. 며칠 뒤에 밤탱이 된 눈을 감추려고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극장에 나온 카뮈의 모습까지 완벽히 그냥 평범한 친구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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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사르트르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보부아르의 남편이자 (2년 갱신 계약결혼) 지적 동반자, 평생의 친구로서 그를 보는 시선이 정직하고 곧은 느낌이라 좋았다. 사실 관계도만 보면 진짜 대박임. ‘장거리 연애 중인 내 여자친구가 자기 남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함’. 하지만 사실 사르트르 이야기는 나오는 내내 굉장히 담백한 친구와도 같다. 그의 생각에 공감하면서 토론을 하며 실제로 일상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관계. 사실 이런 게 오래 사랑한 사람들의 안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은데, 이 안정적인 모습이 사실은 둘 다 따로 연인이 또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뭔가 어렵다. 관계 자체가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닌데 마음이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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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보부아르의 모습을 보면 그녀가 사랑에만 모든 것을 불태운 것은 아닐까 싶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모든 것을 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상대가 교만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
나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을 보며 이들이 기존 제도를 가지고 어떠한 사회적 실험을 한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전통적 결혼과 다른 모습을 시도하고 방법을 제시한다고 여겼다. 그런 사람이 십년이 넘도록 쏟아붓는 사랑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의 거리나 시간, 연속성, 질량 같은 질문들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제도와 사랑의 모습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이들의 삶을 한 번 접해보기를 권한다.
+ 근데 진짜 이게 온 마음을 다한건지, 책으로 보면 그래보이는데 보부아르의 삶으로 보면 어떨까. 죽을 때 넬슨이 준 반지를 끼고 사르트르 곁에 묻힌 이 관계가 난 너무 요상한 것 같아…
++ 진짜 여러가지 문제를 생각해봤다. “결혼한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연인을 만드는 것은 불륜이 아닌걸까?” “한 쪽 책임자에게 귀책사유가 있어 결혼 갱신 거절을 했다면 위약금은 얼마나 내나.” “만약 반려동물을 키우면 누가 데려가나, 안 데려가는 쪽이 양육비도 주나.” 까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