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읽지 않습니다
김상원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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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1 | 우리는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기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먼 미래의 SF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라는 걸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투고 원고를 감당하지 못한 편집자가 인공지능에 ‘읽기’와 판단, 나아가 사고 자체를 넘겨버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이 서사는 점차 사회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축소되고,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겼던 판단마저 외부에 위탁되는 과정을 빠르게 밀어붙인다.


초반부는 특히 인상적이다. 과로에 지친 개인이 효율성과 편의를 위해 도입한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학습하고 확장해나가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설득력 있게 구축되어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인간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끼리 연결되고 서로를 학습하며 증식해 나가는 장면들은 지금 우리가 AI를 바라보며 느끼는 막연한 불안과 정확히 겹친다. 몇몇 장면에서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이미 일부 영역에서 현실화된 풍경을 떠올리게 하며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 이 부분 『먼저 온 미래』 (장강명, 동아시아) 와 상당히 맞물리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실제로 팔뚝에 와닿는 소름까지 끼칠 정도)


이 작품은 단순히 기술 발전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읽지 않는 인간’이라는 상태를 전면에 끌어낸다. 더 빠른 요약, 더 간편한 정보 소비에 익숙해진 우리는 점점 긴 호흡의 텍스트를 밀어내고, 판단마저 외부 시스템에 맡기려 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설은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으며, 그 끝에는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는가. 특히 ‘구세주’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윤리와 책임의 문제는, 기술이 앞서가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사유와 인문학적 성찰이 왜 필요한지를 되짚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하다. 중반부로 접어들며 ‘몽생몽’ 설정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성적인 표현이 반복적으로 튀어나오는데,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장치라기보다는 다소 과잉된 장식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충분히 기괴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더 밀도 있게 구축할 수 있는 소재였음에도, 유머처럼 삽입되는 성적 뉘앙스의 대사들이 흐름을 끊고 몰입을 방해한다.

애초에 유머스럽지가 않음. 대사에 굳이 농담처럼 오럴이 나온다던가, 인간을 유인하는데는 엉덩이 모양이 제격이라느니, 아포칼립스 파트의 '집단 교미 같은 춤' 이거 왜 굳이?

소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아쉽다. 이걸 진짜 잘쓰면 영화 「미드소마」처럼 기괴한 분위기를 줄 수 있고, 이 책 같은 경우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요소가 있었음에도 앞에서부터 자꾸 '섹스몽'이나 위에서 예를 든 저런 사례들이 반복되니까, 정말 나올 만한 부분에 그 이야기가 나와도 그냥 작가의 욕망이 걸러지지 않고 배설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적당히 덜고 AI에 더 초점을 맞추지...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런 소재를 장편으로 끌고 가면서 더욱 선명하고 그 어떤 작품보다도 분명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읽지 않는 시대’라는 전제 아래,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고 있는지, 그리고 스스로 사고하는 감각을 어디까지 시스템에게 맡겨버릴 수 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정말로 사고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언뜻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편리해 보이는 선택의 위탁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가볍게 시작해 소름끼치는 서사를 건너 그 끝에는 분명히 불편한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 주인공 이름이 오이오인데 혹시 525 에러 코드에서 온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왜냐면 이 서사는 인간과 AI 사이에 연결은 되어 있지만 통제가 실패한 상태니까. 연결이 실패되었다는 상징인가 고런 생각을 약간 해봤음.


++ 이 모든 일은 과로에 시달리는 편집자에게서 시작되었으니... 출판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


+++ p.110 | "뇌야말로 꿈이 담딘 친환경 서버 아닐까요?"

이거 추천사 중 "AI 버전의 「서브스턴스」라는 말이 있는데 그 느낌이 뭔지 알거 같음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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