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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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혜연 옮김, 글항아리, 2023.

*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보고 바로 이 책을 구입했고 다 읽고 나서 뭔지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났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이름이 군자, 이하에서는 엄마로 지칭)의 삶과 저자 본인의 삶을 섞어서 써 내려가 자서전이자 우리 민족의 현대사이다. 모든 이야기에 가공은 좀 있겠지만 거의 실제 이야기겠다. 엄마는 1941년생. 엄마는 4남매 중 막내였는데 외아들이었던 오빠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했을 때 행방불명되었고 큰언니 춘자는 26살인 1961년에 위암으로 죽었다. (엄마는 1986년 조현병 발병, 66살인 2008년에 사망)

1. 엄마는 한국전쟁 중에 아버지(위암으로 사망)와 오빠를 잃고, 부산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아들을 낳았고, 1970년쯤에 미국 상선(商船) 선원인 스물두살이나 더 많은 백인 남성을 만나 그 사이에서 딸(저자)를 낳았다. 그 남성이 미국에 있었던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나서 엄마와 결혼했고 1972년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난한 백인들만 사는 미국 워싱톤 주 셔헤일리스로 이주한다.
엄마는 본인은 물론 두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마련해 주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결단을 내렸고 그것은 그 시대의 흔한 풍속도였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 우리 김포 시골 마을에도 이러한 케이스의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성은 미군 남성을 데리고 친정집을 방문하였는데 짙은 화장과 요란한 눈 주위 치장, 평범하지 않은 옷을 입고 왔었다. 우리들은 뒤에서 ‘양갈보’라고 수근거렸다. 아마도 그 여성도 미국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엄마와 두 아이들은 이민자가 아주 드물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하는 미국 서부의 작은 동네에서 삶을 이어 나간다. 엄마는 정규학교는 별로 다니지 못했지만 나름 총명하여 영어를 잘 했고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영어로 되어 있는 버섯 관련 책을 탐독하여 어느 것이 먹는 버섯이고 독버섯인가를 연구하면서 버섯을 채취하고, 야생의 블랙베리를 왕창 따서 팔기도 하고, (나중에 드러났지만) 성폭력이 판을 치던 소년원에서 야간에 청소일을 하는 등 ‘천부적으로 생활력이 강’해서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한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3개월 동안 바다로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다 엄마는 어쩌다가 조현병에 걸려 음식을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한국요리를 잘 하고 주변 사람까지 챙기고 온갖 음식을 만들어 파티까지 주선하던 엄마가 한국음식도 안 만들고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으면서 갑자기 소파에 쳐박혀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텔레비전속에서 이상한 암호를 찾으려 하고 이웃이 자기를 감시하고 해치려 한다고 환청 환시에 시달린다. 저자인 딸은 결국에는 엄마의 이 모습을 모티브로 하여 대학원에서 어머니의 생을 추적하면서 한국전쟁과 이민이 어머니에게 남긴 폭력과 상실의 상처(트라우마)를 추적한다.

2.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한국 음식들의 레시피가 자세히 자주 나온다. 김치는 물론 미역국, 소고기국, 전과 떡, 생태찌개 같은 음식은 원래 생존수단이지만 여기서는 과거 기억과 감각을 환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또한 가족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딸은 엄마를 통해서 일찌감치 요리의 강력한 힘을 터득했고 나중에 제과제빵 자격증도 취득하고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취향과 소질을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엄마의 코치를 받으며 “칼칼한 맛, 불 맛, 알싸한 맛과 단맛”의 생태찌개도 만든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저런 맛들에 대하여, 그리고 한국 음식들과 요리법이 여러 군데 상세하게 나오는데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타국의 타인종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겠나? 하기야 K-pop과 같이 K-food도 인기라 하지!

‘전쟁 같은 맛’은 군자가 조현병에 걸린 뒤 먹는 것을 거부하면서 분유를 두고 한 말이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에게서 어쩌다 얻었던 분유를 먹고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 있는 수많은 한국인이 복통과 설사를 경험했다. 나도 아직도 우유가 들어가는 그 고소한 카페라떼를 못먹는다. 먹으면...
소설책이든 뭔 책이든 간에 (요리책 빼고는) 이렇게 요리와 음식에 대하여 이 책만큼 많이 나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하루에 3끼, 적어도 1~2끼는 먹고 (특히 가정주부들은) 하루동안에 이 끼니 때우는 것에 대하여 많은 시간과 비용과 신경을 쓰는데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너무나 일상적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학교수가 된 딸이 엄마와 함께 살면서 대학에서 ‘음식사회학’ 수업을 진행하고 요리를 배우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엄마가 폐쇄된 세상을 조금씩 벋어나면서 자기의 기억과 새로운 가능성을 조금씩이나마 찾아가는 과정을 애뜻하게 그리고 있다. 엄마와 딸은 요리와 맛을 통해서 거대한 권력구조에 대항하고 자기주체성을 찾고 디아스포라의 한을 치유하고 조현증의 증세와 싸운다. 이것이 이 책의 주요 테마라고 보면 된다.

3.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은 군자에게 처음 발병했을 당시만 해도 그 정체가 잘 밝혀지지 않은 병인데 엄마와 같은 환자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 병이 단순히 개인적.유전적인 정신질환이 아니라 비백인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도덕적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비백인의 조현병의 발병률은 그 지역에서 그들의 인구비율이 감소함에 따라, 즉 더욱 소수가 되면서 증가한다. 불행하게도 저자의 가족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유색인종이 드물고 백인과 기독교와 극우세력이 판을 치고 나중에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던 지역이었다. 그런 부분을 저자는 엄마를 통해서 집요하게 통찰하고 있다.

엄마는 예전에 한국에서 나중에 남편이 되는 미국 남성을 만나 그 남성을 따라서 미군기지 안의 레스토랑에 가서 치즈버거를 주문해서 함께 먹는다. 그 치즈버거는 굶주림에 익숙했던 엄마에게는 미국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고 모든 희망과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때 그 남성은 처음에는 군자가 ‘과연 자기처럼 나이든 남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극적이고 절절하게 만났지만 아버지가 외양 선원 생활을 접고 집에 들어앉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심한 갈등과 싸움이 시작되면서 별거-이혼-화해 또 이혼의 과정을 겪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들은 물론 저자도 오빠도 참으로 힘들었겠다. 그 싸움의 원인 제공은 아버지의 백인 중심의 사고도 문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가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오빠는 1964년생인데 저자는 씨가 다른 이 오빠와는 (다른 설명 없이) 사이가 안 좋았다고만 하는데 그래도 그 오빠의 서양인 부인(올케)와는 좀 소통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4. 엄마는 자신의 불우했던 그리고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하여,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이 대공황 시절 때문에 미처 마치지 못한 대학 교육을 딸은 받게 하기 위하여, 딸이 요리사가 아닌 학자가 되도록 부추기고 적극 지원한다. 그래서 저자는 열심히 공부하여 좁은 바닥을 벋어나 아이비리그인 최고 명문대학인 브라운대학에 진학한다. 이 대학은 주로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였지만 저자는 거기서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백인이 될 필요도, 백인 흉내를 낼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에 이미 어머니에게는 조현병 증세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깨달음이 바탕으로 어머니의 정신을 박살낸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겠다고 결심을 한다.

저자는 대학원 과정에서 사회학-여성학적으로 디아스포라를 겪는 이민자로서의 어머니의 생애와 질병을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여 결국 (엄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엄마가 꿈꾸었고 엄마의 믿음이었던)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된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서 연구했는데) 저자도 ‘급진적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 밑에서 연구하기 위해 뉴욕시립대학으로 가서 수업을 듣고 거기서 사회학 박사과정에 등록하는데 정말 제대로 된 스승을 찾은 것 같다. 흑인이었던 벨 훅스는 그 당시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이 인종과 계급까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의 (내가 좋아하는) 인간 승리-성공 스토리이다. “엄마에게 내 학업은...개인사에 얼룩을 지워내는 방편이었고,” “엄마의 유일한 인생 목표는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해외 어디를 가서 살아도 자녀 교육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딸이 공부를 해서 당신의 개인사에 진 얼룩진 부분을 지워냈으면 했지만 오히려 저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회정의에 대한 내 의식은 우리 가족사와 더 밀접하게 얽혀만 갔다.”고 했다. (359쪽)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정신적 고통, 그 부분을 계속 연구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첫번째 책인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을, 그리고 두번째로 이렇게 훌륭한 이 책을 내게 되었고 이런저런 상들도 받았고 뉴욕시립대학에서 정년제 교수도 되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뒷부분에는 저자가 20여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어렵고 끈질기게 돌보면서 연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눈물겹고 참으로 효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 엄마라 하더라도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짐만 되는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엄마를 돌보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엄마의 어두웠던 과거를 밝히고 끌어안으면서까지 엄마 세대와 전쟁과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연구하고 엄마의 병을 치유해 나갔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 부분에 감동했다.
엄마에게서 1/2의 유전자만 물려받은 저자였지만 같은 여자로서 불행에 처한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전쟁과 가난과 사회 혼란기에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 후유증을 직시하며 연구를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스토리 전개와 묘사가 치밀하고 짜임새와 깊이와 흥미를 두루 갖춘 문장력도 탁월하지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는 지금도 우리에게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땅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식들이 공부하도록 뒷받침해 준 조상들의 고난과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다는 것!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저자의 개인적인 성공스토리를 뛰어넘어 불행했던 우리 민족과 조상들에 대한 진혼곡이며 우리 민족이 집단적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글이며 우리 민족의 풍속과 역사의 탐구서이며 세상 어디 가서라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굳굳하게 살아남아 이렇게 잘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격려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책에도 해당되어 엄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생이 제국주의와 전쟁과 집단적인 억압과 피해라고 하는 권력과 정치에 직접 연관된 일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에게 구조적이고 집요한 차별과 폭력을 일삼는 미국 사회에 울리는 경종일 수도 있겠다.

* 이 책은 백인이었지만 ‘힐빌리’라는 미국 깡촌에서 자라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가 되고 지금은 공화당 상원의원이 된 J.D.밴스가 쓴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과 비슷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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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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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 간단한 독후감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의 책이름을 오래 전부터 많이 들어온 터라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하였다. 책을 받아 보니 예상보다 책 두께가 만만히 않았다. 1830년에 이런 책을 썼고 인쇄를 해서 발간하였다니... 프랑스의 발달했던 인쇄술과 종이기술에 대하여 그리고 문화적인 역량에 놀랬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의 팔만대장경을 자랑하지만 그것은 인쇄목적이 아니라 외침을 막아줄 것이라는 미신과 종교적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 더 이상 발전이 되지를 않았는데 서양은 이렇게 인쇄술이 발전하고 있었다. 서양이 이렇게 모든 방면에서 앞서 갔으니 동양은 서양에게 결국 먹혔다!!!

책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호기심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계급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남녀의 사랑이야기였다. 하나는 유부녀와의 사랑이야기였고, 또 하나는 계급을 초월하는 사랑이야기였다. 하기야 그 당시라고 남녀간의 사랑이 딱 틀에 박힌 사랑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왕당파와 자유주의자의 이런저런 갈등도 잘 그려졌고, 그 당시에 아주 견고했던 계급간의 문제도 배경으로 잘 드러냈다. 다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의 뒷 표지를 보니 이 책이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라고 한다. 이건 아니다. 나도 많이 개방적이어서 남녀간의 어떠한 사랑도 미화하고 찬양하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사랑이야기를 십분 이해하고 좋게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이 책을 선정한 사람들이 도대체 이 책을 읽어 봤는지 의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의 청소년들도 남녀간에 사랑을 하고 성행위도 할 것이다. 청소년들에게서 사랑과 성행위를 막을 수도 없으며 이 책에 나오는 사랑보다도 더 진하고 진지한 사랑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도덕관념에 따르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랑을 권장할 사항은 아니다. 20세 남자가 유부녀와 사랑을 하고 성행위를 하고, 또한 나중에 다른 처녀하고 성행위를 해서 임신하게 하는 것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전혀 권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이런 사랑은 지금 어느 사회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사랑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언제 어떠한 절차에 따라서 이 책을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했는지 모르지만 참 웃기는 짬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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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 합법적 권력은 가난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에드워드 로이스 지음, 배충효 옮김 / 명태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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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지음, 배충효 옮김. 2015, 명태.

 

1. 이 번역판 책은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원저 <Poverty and Power>는 미국에서 2009년에 발행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금부터 약 9년 전쯤에 미국에서 발행된 것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시의적으로 적절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아니했다. 하기야 가난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항상적인 문제이기에 이 가난의 문제는 언제나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겠다. 아마도 10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는 미국에서 저 가난의 문제가 더 심각해졌겠지!

 

2.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흑인이나 히스패닉 사람들은 백인이나 동양계(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보다고 유전적으로 게으르고, 머리가 좋지 않고, 교육에 대한 열의도 없어 교육도 안 시키고, 윤리개념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빈부격차가 심한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런 인종적인 이유가 주된 이유일 것이고, 그러한 인종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회통합이 쉽지 않을 것이며, 사회통합에 대한 열의가 없다 보니까 누진세율이나 사회복지를 통한 소득재분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사회복지 제도가 정착이 잘 안 되고 있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책은 미국에 가 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의 막연하고 뿌리 깊은 인종과 빈곤과 미국에 관한 선입견과 편견들을 체계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난과 불평등은 개인 탓이 아니고 체제 탓이라고!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미국은 세계 최강이고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면서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빈부격차와 인종차별이 심하고, 감옥에 있는 국민들의 비율이 세계 최고이고, 영아사망률이 높은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역시 그러한 실상을 이 책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은 가난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가난은 워낙 체계적이어서 국가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3. 우리가 아는 미국은 아메리카 드림을 이룰 수 있는 나라였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 가거나 유학 가서 꿈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자기는 고생하더라도 자식 교육에 열성을 쏟았기에 꿈을 이루는 케이스가 많았지만, 미국에서 원래부터 가난했던 흑인들이나 남미계 사람들(히스패닉)은 백인들과 접촉하기 힘든 열악한 주거환경과 교육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도 못하고, 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는 경향이 많고, 여성들은 중고등하교 때에 미혼모가 되는 경향이 많다.

언젠가 1990년대 전후에 미국에서 정부차원에서 미혼모와의 전쟁을 벌이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기사에는 고등학교에 아이와 함께 등교하는 흑인 여학생의 사진이 실려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자꾸만 임신하고 일하기를 귀찮아하고 사회복지에만 매달리는 흑인 10대 미혼모의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을 재확인하고 가난을 유발하는 정치·경제적인 요인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이 문제는 개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어쨌든 미혼모와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동안 가난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 것 같다.

빈곤층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금전적인-생활상의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남편을 찾는 일인데 빈곤층이 겪는 열악한 거주환경, 인종차별, 사회적 고립, 주변 사람들보부터 받은 성적 학대, 열악한 학교, 형편없는 일자리, 불충분한 대중적 지지 환경 속에서 자란 가난한 여성들은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과 자폐, 애정 결핍, 자기혐오감 같은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어 현명하게 제대로 된 남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하기야 어느 사회든지 끼리끼리 문화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강남사람들은 강남사람들끼리 결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나라에서든지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생활안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것을 기대했다가는 오히려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괜찮은 남편을 만나려면 우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4.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지 부의 양극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이 책은 미국이 가장 심하고 그 중심에는 일자리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인용되는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2012)<워킹 푸어-빈곤의 경계에서 말한다>(데이비드 K. 쉬플러지음, 2009) 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어느 나라든지 저임금 일자리가 만연하여 평생 동안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 벋어날 수 없는 사람들(Working poor)이 많다. 젊고 교육수준이 낮은 흑인 남성들이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여러 차례 실업을 경험 하였거나 만성적인 실업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낮은 임금의 일자리가 더 위험하고(위험의 외주화), 더 독재가 횡행하고, 더 단기적이어서 불안정하고, 여성들이 더 많고, 노동조합이 더 없고, 승진기회도 장래성도 없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독일도 그렇고 다른 모든 나라도 그렇다! 어느 나라든 일자리에는 우열이 있다. 일자리가 평등하지 않는 한 인간은 평등하다는 얘기는 다 헛된 구호이다.

2000년경부터 전()세계적으로 세계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아웃소싱, 다운사이징, 업무자동화, 사업체의 해외이전, 장기실업, 일자리 없는 성장, 정체된 임금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피해는 상류층 사람들이 아닌 사회밑바닥에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다.

5. 우리나라에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 말을 더 실감하고 있다. 특히 사회양극화가 더욱 고착화되는 시기에 살고 있다 보니 태어날 때 조상 잘 만나고, 좋은 두뇌와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고, 행운이 잘 따라주고... 이런 것이 7할 아니라 8~9할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기야 노력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도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운이라는 것이 미국에서는 인종적으로 비히스패닉 백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냐 흑인, 히스패닉으로 태어나는 것이냐로 확연히 갈린다.

 

“2005년 미국에서 가장 큰 소수집단인 흑인과 히스패닉의 빈곤율은 각각 24.9%21.8%를 기록해, 비히스패닉계 백인의 빈곤율 8.3%를 크게 웃돌았다.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전체 인구의 20%정도를 차지할 뿐이지만 빈곤층의 50%, 극빈층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흑인들과 히스패닉은 상대적으로 교육수준과 자택소유비율, 소득과 재산수준이 낮다. 반면 실업률과 수감률, 한부모가정 비율, 건강악화에 시달릴 확률은 높다. 그리고 저임근 노동자로 일하고, 극빈층 거주지역에 거주하며, 빈민가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크다.” (245)

 

10여년전에 본 사연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름 진보적인 여성운동을 한 여성이 딸과 함께 미국에 가서 도심 근처의 방값이 싼 저런 빈민가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자기는 견딜 수 있었는데 딸을 그 지역의 학교에 도저히 넣을 수가 없어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누구나 인종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다. 미국이 겉으로는 인종차별이 없는 것 같지만 인종차별은 뼈 속에까지 내재되어 있다. 저런 인종문제에 당면하고 있지 않은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6. 어차피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자에서 개인의 인지능력은 최소 40%에서 최대 80%가 결정되는데. 그러한 재능의 상당부분은 가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잘 발전되거나 아니면 가난 때문에 잘 발달하지 못한다. 특히 부모의 긍정적인 유산들, 예컨대 부동산, 교육수준, 인맥, 실용적인 기술, 사교기술, 문화적인 수단들은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 되는데 거꾸로 부모들의 부정적인 유산들도 또한 그렇다. 저소득층 자녀의 아이들은 가지고 태어난 능력과 적성을 온전히 꽃 피우게 하는데 필요한 경제적·사회적·교육적 여건이 잘 안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수저’ ‘흑수저얘기가 바로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든지 흑수저들은 가난에서 벋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어느 사회든지 상위그룹은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러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집안의 후원과 학연과 인맥 같은 사회적 관계망이 필수적이다. 주로 이들이 누리는 혜택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노고와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과 절망은 한이 없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인종 및 민족차별이 가장 큰 문제이고, 다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열악한 주거문제-교육문제-교통문제-건강보험문제가 심각하다. 이 책에는 그러한 실상이 자세히 언급된다. 미국에서 가난의 문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점층적으로 엮여있고 쌓여 있다. 길지만 인용해 보면,

 

인종차별은 주거지를 분리시키고, 주거지가 분리되면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주택시장을 둘로 갈라놓고, 불평등한 두 가지 학제를 만들어 낸다. 열악한 주택과 주거환경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더 낳은 주택, 새 차를 구입하거나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돈을 다 써버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어른들이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이 공부에 열중할 수 없게 만들어 가난을 떨쳐 버리기 어려워진다. 교통문제가 있으면 가난한 가족들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양육문제는 다시 성차별을 부추기며, 성차별과 양육문제와 교통문제가 모두 뒤섞이면 부모들, 특히 싱글맘들은 좋은 직업을 찾아서 직장생활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병이나 질병에 지나치게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저소득층 사람들은 더위나 추위, 그리고 2005년 뉴올리언즈 사태와 같은 재난에 더 많이 노출되고 그래서 취약하다.

저렇게 중첩적으로 쌓여 있는 문제들을, 악순환의 고리들을, 개인이나 가족이 노~~력을 해서 끊어버리기가 참으로 쉽지 않겠다. 그러기에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고 풀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 중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공교육이 잘 운영되고 있고, 대중교통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고, 건강보험이 잘 정착되어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쪽방촌과 고시원으로 대표되는 주거문제, 각종 성차별과 지금의 미투me-too운동과 연결된 성폭력문제, 각 가정에게 부담이 되는 아동보육문제 등등은 미국과 거의 똑같다.

 

7. 우리는 흔히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고 하여 가난을 국가시스템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재능과 노력, 근면성과 절제력 같은 것 때문에 생긴다고 보는 데에 익숙했었는데, 가난의 문제를 그런 개인적인 것 말고 경제적-사회적인 형평성과 공정성, 기회와 결과의 평등과 같은 문제로 확대시켜야 한다. 가난을 경제적 정의와 평등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체계적으로 보아야만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북유럽에서 보는 사회복지 국가시스템이 그런 것 아닐까??

 

누군가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어차피 경제문제는 정치문제이고 정치와 경제문제는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저소득층은 부유층에 비해 투표장에 덜 가고, 정치조직에 덜 참여하고, 선거나 그 밖의 정치활동에 참여할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없어 참여가 적다. 반면에 재벌들과 부유층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조직을 동원한다. 또한 미국의 합법적인 로비스트들의 활약은 노골적이다. 이러하니 아무래도 선거 때에 당선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은 부자들의 요구사항에 신경을 쓰고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저소득층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답이 안 나온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미국 사회에서 가난은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는 미국의 경제구조 탓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 구조 탓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난이 지속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기업의 힘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좌파정당의 출현을 저해하며, 재분배 개혁 달성 노력을 방해하는 미국의 오래된 정치제도 때문이다. 빈곤층의 이익을 외면하고, 우리가 보다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정부정책의 시행을 가로막는 주범이 바로 미국 정치 시스템 구조 그 자체인 것이다.”(217)

 

8. 이 책은 미국의 가난문제를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미국 이야기지만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의 문제는 해결이 참으로 쉽지 않겠다는 사실에 많이 답답했다.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엄청 많고 이런 책과 보고서도 많이 나와 있겠지만, 그리고 중첩되고 누적되어 온 그 가난을 해결하는 방안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가난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오늘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문재인 정부에게 좀 더 좌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라고 충고하고 있는데 그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 가난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처절함에 공감을 하면서도 안온한 나의 자리가 왠지 불안하고 미안하고 죄스럽다.

 

* 그런데 이 책에는 주()가 안 나온다. 번역과정에서 빠진 것 같다. 참고하고 싶은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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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국민의 탄생
이경숙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시험국민의 탄생> 이경숙 지음, 2017, 푸른역사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이 책을 구입했는데 대박이다! 한마디로 시험의 역사와 문제를 아주 적절하게 콕콕 찝어서 내 머리 속에 넣어주는 것 같았다.

 

나의 대학 입학 동기들이 모여서 대학 입학 40주년을 기념하고자 회고록을 발행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래서 나도 대학시절 4년과 그 前後의 얘기를 엮어서 회고록을 썼다. 그때 내가 쓴 회고록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다음과 같이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시험을 두고 저마다, 가족마다 굴곡이 있고, 곡절이 있다. 굴곡과 곡절이 없는 이야기는 밋밋해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시험은 극적인 이야기라 힘이 세다.” (17)

 

이 책을 읽고 그 때 쓴 나의 회고록을 다시 들여다보니 나의 회고록의 상당부분이 시험에 관한 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닌 거였는데... 다른 친구들의 글에도 시험에 관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언젠가부터 시험은 劇的(감동적, 인상적)으로 인생의 榮辱(영광과 치욕)을 대변하는 아주 적절한 소재였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중학교 입시(마지막 세대)부터 고등학교 입시(마지막 세대) - 대학교 - 대학원(석사과정-박사과정) 입학과정에서 시험을 치뤘다. 어느 노래 가사에는 찬바람이 불면 님과의 이별과 추억을 생각한다 했는데 나는 찬바람이 불면 시험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고 또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불안에 시달렸었다. 저 많은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기도 많이 했으나 그래도 결국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 책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지만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는 상급학교에 입학하는 데에 힘이 들었지 졸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교교육을 남들보다도 오랫동안 그리고 늦게까지 받았고 지금도 교육이라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 모든 시험들이 나의 성장의 역사에서 중요한 갈림길이었다. 지금은 내가 어쩌다가 시험이라는 것을 통해서 학생들을 평가하고 등수를 매기는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이 책은 내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체험했던 그러한 시험의 역사와 의미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文民통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武人들이 아닌 文人들의 통치에 있어서 과거시험의 제도는 인재발굴과 출세의 지름길 역할을 하였다. 적어도 조선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험에 집착하고 시험에 합격하고자 하는 노오력들은 나라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거룩한 의미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출세가도를 달리고픈 인간들의 적나라한 욕망만이 존재했다. 각종 시험이 생겨나고 변화하고 확대되고 치열해지는 과정과 그 모습은 모든 국민의 생활의 역사를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시험을 통한 좋은 학벌의 획득은 본인의 능력이고 충분히 보상 받을 만하다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헛된 믿음)가 작동하여 반박하기 힘든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제도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하고 고학력자나 고소득자들이 사회적 자원을 독차지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은 존재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능력주의의 폐해는 심화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험에 의한 서열화와 경쟁은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에 안 나오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인간의 지혜, 상식, 사회성, 공감능력, 연대의식, 협동의식 같은 능력들을 등한시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인간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시험으로 테스트하기가 힘든데도!

 

성장기 내내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지속되면서, 소수를 제외하고 다수는 열패감과 열등의식을 내면화하게 된다.”(126) 이 얘기는 바로 나의 얘기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주 시험을 잘 보았던 내 친구와 비교당하고, 그리고 내 스스로 잘난 우리 아버지의 그늘에서 항상 비교당하면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청소년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내면화된 열등의식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시험은 고득점 학생들과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엘리트 의식을 가지게 하고 점수가 낮은 학생들에게 무기력과 열등의식을 가지게 한다. 이것이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가 운영되고 통치되는 방식이다. 시험을 통한 차별화와 서열화는 우리나라 모든 방면에서 소통되지 않는 관료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양극화의 방식으로 심화되고 있다.

 

또한 국가는 이러한 시험을 통한 손쉽게 국민을 통제할 수 있었다.

시험은 지식의 습득을 돕는 역할보다는 학생들을 학교의 관료주의적 필요에 맞추고, 미래의 고용주들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행동양식과 이데올로기에 맞추기 위해 사회화와 분류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지나친 주장 같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험을 자주 보는 이유는 학생들이 시험에 안 나오는 것들에 쓸데없이 몰두하거나 시험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학생들을 통제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 소설(<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에 나오는 얘기인데, 어떤 일본인 학생이 1959~1964년을 체코 프라하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와 보니 체코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O X로 답을 고르는 출제형식이 전 과목에 걸쳐 행하여지고 있어 당황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나도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 O X로 답을 고르는 시험을 본 경험이 있다. 주어진 4~5개 답들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 방식은 미국 역사상 최대발명품 중의 하나라고 거론되며, 이는 객관성과 공정성과 효율성의 상징으로 미국인들의 정신에 적합했(50), 세계에 수출되었고,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객관식 시험 문제만 풀었다. 대학교에 가서 논술식 시험을 처음 접했을 때에 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객관식 시험 방식은 그동안 많이 지적되었듯이 새로운 사고,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에 이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해방 이후 오랫동안 막강하게 유지했던 지위와 신뢰를 많이 잃었다. 하기야 인간이 당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해결책은 이미 주어져 있는 답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차곡차곡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들이다.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더 그렇다!

 

수학이나 국어 보다는 영어과목의 점수 차가 부모의 소득에 따라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이 책은 지적한다. 교육열은 아무래도 먹고 살만한 소득과 아파트값이 더 높은 지역의 부모들이 더 높기 마련이고 특히 사교육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 영어 점수는 평균적으로 보면 소득과 아파트값에 거의 정확히 비례한다.(81) 더욱이 다양한 대학과 전공, 지역 등을 하나로 줄 세우는 데 영어가 대표값 노릇을 한다. 강준만은 영어가 한국사회의 서열화를 작동시키는 기본 방식이라고 보았다.(83) 언젠가 대기업 인사담당자 그러는데 입사시험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암암리에) 기본적으로 영어 토익 점수로 1/2가량을 떨어트려 놓고 채용과정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영어뿐만 아니다. 아이들의 모든 학력은 점점 대체로 부모의 소득과 거주하는 집값과 비례한다. 이러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면 할수록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정권초기인 문재인 정부가 어떤 부분에서는 명확한 방향으로 제대로 나가고 있고 북핵문제 등 어떤 부분에서는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입제도의 수정안을 공식적으로 1년 연기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문재인 정부는 교육의 문제들을 오직 대학입시 문제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입시를 잘만 손질하면 교육문제가 다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물론 내 경우와 같이 시험을 통한 한 인간에 대한 검증이 중학교 입시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금은 대학 입학시험 하나로 한 학생이 그 때까지 이룬 성과와 한 인간의 장래까지 단 한번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병목현상으로 대학입학 시험이 가장 큰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입시험문제는 단지 입시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부익부빈익빈 되는 사회경제적 문제, 신자유주의에 다른 경쟁의 가속화,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안정되고 풍요롭게 위상을 확보하고자 하는 개개인과 가족의 욕망의 토대위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들이 대입시험에 올인하게 만들어 공교육은 부실화되고 사교육이 판치고! 장시간 공부에 시달려 아이들은 허약하게 되고 사교육으로 가정 경제는 힘들어지고!! 이런 문제들은 단지 입시제도의 개혁으로 손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 책에 시험방식의 변천사가 잘 나와 있는데, 입시제도를 어떻게 고치던지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개개인들의 한없는 욕망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대학입시에서 학생종합생활기록부(생기부) 참조와 내신성적 반영이라는 제도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라는 좋은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좋은 성과를 보았다고 나는 평가한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3년동안 계속 평가가 진행되는 생기부와 내신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여 학교를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어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나도 입시생들의 면접을 보면서 생기부를 들여다 보면 점점 생기부에 적힌 내용들이 점점 좋은 쪽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어 참조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고등학교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무시하고 내신을 일률적으로 똑같이 방영하라고 하니 대학들은 내신을 무력화하려는 교묘한 기술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좋은 취지의 대입제도도 좋은 학벌과 연결된 출세와 안정된 직장을 얻고자 하는 거친 욕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

교육개혁의 방향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방과후와 저녁과 방학을 돌려주느냐?”가 되어야 하다는 주장(1996, 정범모 박사), 대학을 안 나와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모두에게 좀 더 평등한 인간적인 사회가 필요하다는 주장(387)들 모두는 총론적인 면에서는 타당한 주장들이지만 그러한 상황을 교육, 특히 대학입시라는 열쇠를 가지고 풀어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저자도

 

시험점수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등급화 하여 모든 것을 부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싸움을 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은 인간 서열화의 결과라기보다 서열화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이며 양분이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려는 싸움이 없으면 시험제도는 독이 된다.”

 

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싸움의 방향을 돌려 시험 밖에서 길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험 밖의 길은 자본주의 약육강식 경쟁과 투쟁 승자독식 - 사회양극화 와 같은 상황과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국가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하는 저자도 그렇지만 찬동하는 나도 은근히 radical(과격)하다!)

그렇다면 싸움은 더 어려워진다.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해결은 안 되고 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저자는 이런 책을 내고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고민에서 시작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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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잠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1권은 흥미롭게 읽었다. 인간은 인생의 1/3은 잠을 잔다. 이 책은 그 잠에 관한 얘기다. 이 책에서는 잠을 1~5단계로 나누고 있고, 아마도 있을 것 같은 미답(未踏)의 단계인 6단계를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테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잠에 대한 고민과 경험을 되돌아보았다. (아직도 환갑이 2개월이나 남았지만) 나에게도 50대 어느 날에 불면증이 찾아왔다. 잠을 못 이루거나 새벽에 잠이 깨면 잠이 안 왔다. 어떤 때는 숙면을 했고 어떤 때는 선잠을 잤다. 잠이 들쑥날쑥했다. 그래서 얼마간의 기간 동안 고생했다. 잠을 못잔 것 같은 날에는 피곤이 더욱 느껴지는 것 같아서 자꾸 신경이 쓰였고!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비몽사몽간에 있는 그 시간도 내가 잠을 자고 있었다. 어차피 자겠다고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은 자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 아마도 수면 1단계 정도도 아니 0.5단계도 나에게는 잠의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경험을 하고 부터는 잠에서 어느 정도 초월하게 되었다. 잠이 안 와도 눈을 감고 있고 이런저런 생각하다 보면 잠이 왔고 잠에 들어도 좋고 안 들어도 좋았다. 잠을 초월하니까 오히려 잠이 잘 왔고 편안하다.

 

군대에서의 일이다. 취침시간 (10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동안에 여름날에는 4교대로 2시간 동안 부대 외곽 보초 서러 나가야 하는데 약 20분 전에 불침번이 깨우는데, 아마도 잠의 4단계에 있다가 갑자기 깨니까 비몽사몽간에 너무나 괴로웠다. 지금도 밤에 자다가 중간에 깨서 오줌을 누고 자지만, 지금은 깨는 단계가 무의식적으로 차츰차츰 이루어지지만, 군대에서는 갑자기 잠에서 깨니까 엄청난 정신적인 무리수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경험이다.

이 책에도 246쪽에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그래. 수면마비가 일어난 것이 분명해. JK48이 수면 단계를 전부 건너뛰고 나를 5단계에서 0 단계로 바로 올려 보내는 바람에 일종의 <버그>가 생긴거야. 그래서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 끼어 오고 가도 못하게 된 거야..”

이 책은 이러한 잠의 단계를 일깨워준다. 이 정도는 지금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고 잠을 못자는 불면증 환자들 치료에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잠에 대한 유익하고 흥미로운 정보였다.

 

지난번에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10여명이 함께 걷고 나서 내 승용차로 나 포함 5명이 숙소쪽으로 가고 있는데 한 남성(42)이 차안에서 골아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옆에 있던 그 남성의 누나가 하는 말이 자기 동생이 갑자기 잠이 드는 증세(기면증)가 있었는데 이것이 병이라는 것을 근래에야 알았고 그래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다. 이 병은 지금은 군대도 안 갈 수 있는 병인데, 그 때는 몰라서 동생이 군대에 갔고 통신병으로 기면증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지금은 약 먹으면 그런 증세가 안 나타나는데 오늘은 여행 온다고 그 약을 안 먹어서 저렇게 자고 있다고 했다.

내가 바로 전날에 읽은 책(그 때는 1권만 읽었다)의 내용에 나오는 기면증 환자가 바로 내 뒷좌석에서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남성의 누나에게 이 책을 권했고 알았다!”고 했다. 남매가 우애가 좋고 명랑하고 나름 지성과 교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는데, 그 남성은 이러한 병 때문에 학교생활-군대생활-사회생활 하는데 얼마나 많은 장애를 받고 괴로웠을까?

이 책에는 그러한 증세를 겪고 있는 프랭키 샤라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나오지만 현실에서 저런 환자들의 고충은 매우 컸을 것이다. 그런 증상이 없는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이 소설은 소설 그 자체로 평가해 보면 좋은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왜 지금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 소설은 1권과 2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래도 1권은 잠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토대로 진지하고 애쓴 흔적이 많아서 의미가 있지만 2권으로 넘어가면서는 구성도 너무나 허술하고 (잠과 꿈에 대해서는 좀 진지하지만) 나머지 내용에 있어서는 진지하지도 않고 성의도 없다. 잠과 꿈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나머지 부분을 축소했어야 하는데 2권에서 너무나 벌려 놓다 보니 수습이 안 되었고 나머지 다른 부분은 엉성하게 처리 되었다.

예컨대 원시공동체의 지역사회에 고급 호텔을 짓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책에서 호텔을 짓는 문제가 나왔을 때 구성원들의 반대도 있을테고, 원시 공동체가 무너지는 그런 현상이 당연히 조금이라도 언급될지 알았는데 그런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원시공동체 마을에서 자란 자크의 아들과 장님인 자크의 부인이 파리에 와서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는 모습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잠에 관한 사업은 너무나 잘 진행되어 건물들을 마구 사들이고...

자크의 엄마의 행적도 엉성하고, 반전도 없고 (특히 2권에서는) 긴장감도 없고, 마무리도 애매하고, 현실성도 전혀 없는 판타지 소설 같다. 내가 싫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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