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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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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낭만과 예술과 자유의 도시 빠리

 

나는 지난 달(2005년 10)에 빠리를 여행했었는데 그 때에 빠리에서 받은 깊은 인상이 지워지지 않아서 빠리에 관한 책을 찾던 중에 예전에 읽은 이 책을 발견하였고 다시 읽었다.

역시 좋은 책은 언제 다시 읽어도 좋았다.


이 책에서는

1) 요즈음에는 우리에게 흔하지 않은 망명객으로서의 홍세화.

2) 생존의 수단으로 선택한 택시운전사로서의 홍세화,

3) 망명의 계기가 되었던 남민전 활동가로서의 홍세화

의 개인적인, 그렇지만 한국현대사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빠리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망명객! 어디서 들어 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이 결국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10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살해되었다.

여기에서 지식인 망명가인 홍세화에게 빠리라는 도시가 제법 잘 어울렸던 이유는 빠리가 연상시키는 자유와 낭만의 이미지와 똘레랑스 라고 하는 이민족이나 망명객에게도 너그러운 관용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러한 프랑스가 예전의 무지막지한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를 많이도 약탈하고 착취하여 쌓아 놓은 부와 여유를 토대로 형성된 것이라고 하더라도(12-13), 빠리를 저렇게 화려하고 조화롭게 단장해 놓고, 세월이 흘러도 전혀 퇴색되지 않을 예술미를 가미시켜 놓은 것은 분명 그들의 예술적인 감각 때문일 것이다.

자유 박애 평등의 프랑스 혁명의 이미지가 이번 무슬림의 폭동으로 많이 퇴색되었지만 (특히 이민자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매우 우려할 만한 것이지만), 그리고 요즈음은 좌익정권(예전에는 좌익정권이 이민자들에게 더욱 너그러웠다. 143)이나 우익정권이나 모두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서 정체성을 알아보기 힘들어졌지만, 내가 본 낙엽이 지던 10월의 빠리는 관광객에게는 역사와 예술과 낭만의 도시였다.

관광객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가 망명객인 홍세화에게는 아름다워서 더욱 슬픈 도시였을 것이다. (285).


2. 빠리 사람들


이 책은 그냥 스쳐가는 관광객이 볼 수 없는 빠리의 속모습을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택시정책이나 이민정책이 주로 언급되지만 그것을 통하여 빠리 사람이 사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빠리의 택시정책은 우리의 회사택시 개인택시 제도와 대체로 우리와 비슷해 보이며, 저자가 그려낸 택시 손님들의 모습은 결코 우리의 지금(!)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들한테 다녀오는 할머니 이야기(160), 택시요금 안 내고 도망가는 사람이야기(184). 인종주의자들(189)의 모습. 프랑스에서의 신분과 직업의 귀천 문제(107) .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야 다 그렇다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여유롭고 너그럽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유럽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후에 프랑스에서 무슬림폭동이 일어나고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이 책에서도 프랑스인들이 북아프리카 아랍인들을 가장 싫어하고 갈등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188).

하기야 어느 사회든 근본주의자 내지는 수구꼴통들이 왜 없겠는가? 프랑스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비율의 이민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런던과 빠리는 마치 인종전시장 같다. 그 현상이 제국주의 시대에 자기들이 저지른 엄청난 범죄 행위들에 대한 업보이고, 이민자들이 대개 사회의 하층부에 속하고, 그들이 하는 일들은 대개 백인들이 하기를 꺼려하는 3D업종에 속하는 허접한 일들이지만, 그래도 그 정도로 어울려서 부지런히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었는데.


(프랑스가 경제성장기인 60년대에 일손이 부족해서 집중적으로 이민족을 받아들였고, 일거리가 많았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처럼 프랑스가 상시적인 고실업사회가 되면서, 이민 2-3세대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고 이번 폭동은 그 결과이다).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라 이민족과 약자에 대한 민족주의적 혹은 국수주의적인 배타성의 표현일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얼마 안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프랑스의 이민자들보다 훨씬 안 좋게 차별대우하고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을 것이라는 데로 생각이 미쳤다.


3. 1970년대와 80년대의 암울한 현대사


저자의 발은 빠리에 걸치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돌아가지 못하는 한국의 서울을 맴돌고 있었다. 그는 남민전 사건에 연루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회사일로 1979년에 한국을 떠난 후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은 암울했던 1970년과 80년대의 한국의 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다.

군사독재정권시절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크고 작은 희생을 치렀고 고통을 겪었다. 그중의 일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상당한 보상을 받았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5년도 당시에도 빠리에서 유일한 한국인 택시운전사로 일하면서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고 한국에 간절히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그의 프랑스에 망명신청을 하여 받은 망명증명서 관련 부분을 읽으면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여행목적지항목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깊은 심연 속으로 자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여행목적지: 꼬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153)”

나도 그러한데 홍세화는 저자는 얼마나 몸서리쳐지도록 슬펐을까?

그는 쎄느강변에서 포도주를 먹으면서 이렇게 외쳐댔다.

나는 배반하지 않았어. 내가 배반한 것이 아니야. 네가 배반했어. 배반한 것은 바로 너란 말이야! 따져보자구. 하나하나 따져보자구! 정말 누가 배반했는지 따져보자구!”


그는 그렇게 망명객이 되었다. 조국에 배신당해 조국을 버린 망명객의 애닯은 심정이 이 책 읽는 내내 절절하게 독자들의 가슴에 전해졌다. 저자의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글솜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치열한 의식과 그의 험난했던 인생의 경험들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70-80년대의 한국의 부자유와 증오와 공포의 비극적 정치현실이 그 당시의 자유롭고 여유롭고 낭만적인 빠리와 교차되면서 더욱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책은 훌륭한 문학(소설)책이고, 대한민국 현대역사책이고, 빠리 생활의 기행문이다.

이 책은 결국에는 bestseller (2001년에 36)가 되었다. 속된 말로 그는 이 책으로 떴다’. 물론 이 책은 그동안의 힘들게 쌓은 내공의 결과물이겠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민전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결국에는 사건 관계자들은 다 자유의 몸이 되었고 저자도 한국 신문에 글을 발표할 수 있게 되고, 결국 2002년에 한국에 영구귀국한다. 20년만에 이후에도 몇 권의 책을 냈고, 지금도 문필가로서 맹활약 중이다.


4) 엘리트의식. 선비의식. 저항의식.


저자는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글을 읽고 쓰고 싶어했다. 그는 그 어려운 속에서도 르몽드신문을 매일 사서 본다. 그 당시의 프랑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구려 황색신문을 보았다. ‘르몽드신문은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부동의 영향력 1위의 신문이다)

그럴 여건이 안 되면 더욱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아마 그는 품위 있는 선비처럼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기야 이 시대의 성골인 KS마크를 단 사람에게 빠리에서도 한국에서도 택시운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 어울리지 않음과 그 원인이 이 책에서는 제일 주요한 소재이다.

저자가 그 시대와 不和를 겪지만 않았어도 그는 더 우아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어차피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작동된다. 나머지 군중은 시키는 대로 따라하고 휩쓸리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엘리트 그룹을 누가 차지하느냐와 그들이 올바르게 잘 통치하느냐이다.


소수의 엘리트(지도자)그룹 중에서도 잘나가는 사람/소외된 사람, 그 시대와 잘 소통한 사람/불화를 겪는 사람, 참여하는 자/저항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저자는 체질상으로 결코 앞의 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알고 보니 그런 집안의 핏줄을 타고 났다. 깐깐한 선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70년대 80년대의 저항 그룹, 특히 서울대 문리대 데모꾼(!)들이 민주정권의 정치권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도 거대 정당에 기웃거렸다면 멋진 감투를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민주노동당 소속이다. 아마 그는 영원한 아웃싸이더로 남을 것 같다.


5) 중앙정보부, 치안본부 대공분실, 보안사...


저자에게 많은 직접적인 육체적 고통을 가했던 저런 국가기관이 (모습을 바꾸어가면서) 지금까지도 국민들에게 군림하고 있다. 권력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政敵들을 도청하고 감시했던 장본인(국정원장)들이, 그 책임자(DJ)가 오히려 큰 소리치고 있다. 자기들이 피해자라고, 그 전에는 더 했다고, 왜 자기들만 문제 삼냐고,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10년이 지나고 20-30년이 지나도 군부독재의 고문과 도청과 억압의 악습과 관행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는 구시대 인물들의 최후의 발악이다.

군사독재정권에게 감시와 억압을 당했던 YS와 그 정권이 정적들을 도청하고 감시하고 억압하였듯이, 그렇게 당하고도 DJ 정권은 다시 정적들을 감시하고 도청했다.


그렇지만 도청당한 노무현 정권은 이제는 정적들에 대하여 도청과 감시를 하지 않는다.

지금의 이 땅에 이만큼의 자유가 보장되고 도청과 감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 많은 고통을 당했던 홍세화 같은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국민들에게 고통을 가했던 기득권세력이 또다시 온갖 반칙과 불법을 통해서 또다시 득세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경계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 노무현 정권이 실패하면 다음에는 팟쑈(극우)정권이 들어설 것이고 그러면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침해는 상당할 것이다. 두렵다.


(이 글은 2005년에 쓰여졌는데, 정말 노무현 정권 이후에 극우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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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천장 - 커리어와 인생에 드리운 긴 그림자
샘 프리드먼.대니얼 로리슨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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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 엘리종 종18000데이터175건의 인터뷰 통하여 각자의 계급적 상황을 조사한 것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실제 이러한 연구작업은 대개 난잡하고 일관성이 결여될 수 있지만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집요하게 체계적으로 실시된 것으로 보인다이 책은 그러한 인터뷰와 정리를 통해서 무엇이+어떻게 각자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탐구하였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인 <계급천장>을 처음 보았을 때 '천장'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봤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 '유리천장’. 이러한 유리 천장이라는 은유는 우리에게도 여성들 집단이 남성들과 직위와 급여에서 동일한 보상을 받고자 할 때 보이지는 않지만 견고한 장벽을 강조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천장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이 책에서는 여성이라는 존재는 계급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중에 하나다젠더라는 요소뿐만이 자신이나 부모의 출신 배경이나 재산정도흑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성적 취향(성소수자문제출신 지역 내지는 사는 지역학력 같은 것들이 결합되면 더 복잡해지고 상층계급은 훨씬 좁아진다.


우리에게도 이민자들 같은 존재들이 있지만 영국과 같이 대규모적이거나 체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영국은 자기들의 과거 업보 때문에 이민자들이 많은데 인도계/파키스탄 또는 방글라데시계/중국계/기타 아시아계/흑인 아프리카계/카리브해계 흑인-영국인/기타 인종 민족 집단 등등이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다런던에 가면 인종백화점이. 그렇지만 어차피 백인이 아닌 이런 이민자들은 상위 계급에 편입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 책 내용의 골격을 이룬다..

 

우리는 계급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신분이라는 용어를 쓴다조선시대에 신분은 백성들의 정체성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그러나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때 그 전의 신분질서가 완전히 깨졌다다른 나라에서는 유래를 볼 수 없을 정도로우리 사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의 영향으로 한국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이 가난한 상태로 setting 되었었다그 이후 새롭게 신분이 만들어지고 공고화되고 대물림되고 있다지금은 사다리를 타고 신분 상승한다는 말들도 많이들 한다.


그렇지만 영국은 그 전의 제국주의 전쟁과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였지만 점령당하거나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들보다도 전쟁의 피해를 덜 입었다그러나 사회가 안정되었을지는 몰라도 전통적 질서 내지는 계급이 해체되거나 새롭게 형성될 기회는 없었다고 본다그래서 전통적인 계급이 더 위력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영국은 지금도 왕족이 있고 귀족제도가 있으며우리보다도 더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다영국의 계급은 우리의 신분보다도 더 오래되었고 더 총체적이고 더 확고한 듯하다그래서 그 천장은 유리가 아니라 철판으로 되어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계급은 진공상태에서 작동되지 않으며우리는 불평등이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인구통계적 교차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지 파악하는 것이 계급천장을 이해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본다.” 356.

계급은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이익을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준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사회가 재형성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능력에 따라 재편되는 듯 했으나 지금 단계에서는 자기의 능력 보다도 부모 찬스가 중요하다고 인식되었다이 책에서는 엄마 아빠 은행” 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써 오던 부모 찬스’ 라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짐과의 대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배우 경력에 가해진 제약에 대한 뚜렷한 분노그리고 그런 제약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그가 느낀 깊은 무력감이었다돈 문제가 이 이야기 정체를 관통했다.” 153영국도 우리나라도 특히 예술 분야는 최정상의 사람들 이외에는 대부분이 예술로 밥벌이 하기가 힘들다그래서 부모찬스는 결정적이다.  


영국은 우리나라보다도 물가와 집세가 많이 비싸다특히 영국 런던의 임대료는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그래서 엄마 아빠 은행을 가진자와 못가진자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못가진자들에게 경제적 불안정은 고질적인 문제다.

물론 우리나라도 어디서 자랐느냐가 스펙이 될 정도로 지역은 중요하다지방 사람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정착하기가 만만치 않다나는 서울 생활을 해서 실감을 못하지만 지방 출신들에게 수도권에서 거주공간 확보는 중요하다이럴 때에 부모찬스는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통계자료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상위직종에서 소득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거주지 및 근무지이다예를 들어 런던 중심부에서 엘리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은 영국 내 다른 지역 평균보다 16000파운드(36%, 약 272만원더 높은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113

대체로 부모가 가진 자본은 경제자본(자산과 소득), 문화자본(학력과 전통적 지식기술취향의 소유), 사회자본(유용한 사회적 연줄 및 친구관계등으로 구분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자본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로 가정과 학교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자본들은 누적되고 대물림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취업하고 사회생활하는 데에 (back)”이라는 것이 많이 작용했다그런 빽은 비공식적이고 불법(비합법)적인 것이었는데 그런 빽이 있는 사람은 사회생활하는 데에 특히 유리했다이런 것도 부모찬스인데 영국에도 있겠지.

영국에서도 어떠한 형태의 후원이 커리어를 빠르게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며종종 투명하지도 않고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안은 '뒷문back-door' 경로를 제공한다물론 후원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후원은 '자연스러운또는 '유기적인문화적 공통성에 의해 공고해진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 후에 사회가 재편되고 계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래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벌이었다대부분이 못 배우는 시절에 더 배운 소수의 사람들(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앞서 나갔다.

영국도 그러했다. “우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학력이 다수의 엘리트 직업에 접근하기 위한 핵심 요소이기에 교육적 성취의 불평등이 노동시장에서 나타나는 불평등한 결과를 설명하는 데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사회가 안정될수록 교육은 실제로 계급의 이점과 불이익을 재생산되는 핵심적인 경로이다. “ 67

예전에는 이런 학력과 시험 성적이 능력의 표상이었고 그에 따르는 것이 공정하다고 여겨진 적도 있었다그렇지만 지금은 저런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은 유행병 처럼 너무나 흔하다.


수세대에 걸친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희망과 확신에도 불구하고교육적 성취는 영국에서 '위대한 평등 기제'(great equaliser)가 아니다그럼에도 상위층 계급에서의 교육을 통한 직업의 획득은 자기들의 지위와 부를 확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평화시에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교육은 차별을 만들어내고 합리화하기 중요한 기제(機制)영국에서는 케임브리지-옥스퍼드 대학으로 상징되지만 우리나라는 SKY로 대변되는 입시경쟁이 개인과 가족의 현재와 장래를 결정짓는 척도가 되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모든 교육적인 문제는 결국 대학 입시 문제로 귀결된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계급 태생에 뿌리를 둔 (신분인종학벌 등의동종 선호가 계급 천장의 핵심 동인이라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사기업은 다르겠지만 공적인 기관에서의 채용과 대우에 있어서는 영국만큼 동종의 선호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지난번에 국회의원이 자기 공기업넣었다혼이 고 재판도 고 다음 국회의원에 출마못했.  친구공기업아들넣었다아들구속되었었. 


물론 영국에서도 능력과 재능에 따른 대우가 기본이겠다그렇지만 이런저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다양한 편견과 분리하여 완전히 객관적인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니까 동일 계급의 선호가 결정적일 수가 있겠다나라마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영국처럼 다양한 인적 요소들이 오랬동안 누적되고 체계화되어 계급이라는 기제에 녹아있다면 결국 사회는 계급으로 나눠지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계급천장이 형성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해결책자기가 어느 계급출신이라는 것은 (선택이 아닌태생적인 운에 따라서 결정적으로 달라지는데도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은 그것을 노력해서 얻는 것으로 믿게 되고 운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불운과 무능을 탓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계급적 운명이 인간들을 과도하게 좌우하여 심히 불평등하게 보상을 배분하는 경제시스템이다그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이 책에서 이러한 결론은 너무 나이브하다이런 책이 발간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제기에서 더 나아가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이 책의 추천의 글에 브래디 미카코는 정치는 땅바닥을 굴러 다니고 있을 뿐 아니라 천장을 받치고 있기도 하다.” 고 썼다.


맞다나는 이런 문제를 정치가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정치가 해야 하는 일은 저런 명확하고 불합리한 불평등을 해소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내가 보기에는 조세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와 사회복지가 가장 긴요한 방법이다즉 높은 계급의 고소득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 낮은 계급의 사람들에게 사회복지적 혜택을 받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영국도 고소득자들에게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상황들과 방법들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의 치명적인 한계이다계급사회의 이러한 문제 제기도 중요하겠지만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도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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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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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인 김희경은 2023년에 <에이징 솔로 홀로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를 드는가>라는 책을 냈고 나는 그 책에 대한 독후감을 쓰면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오랜 기자 생활의 글쓰기 버릇대로) 내용과 표현에 군더더기가 없고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요령 있고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고 썼었다.

이 책도 그렇다. 자칫 뻔한 주제이고 소재일 수가 있는데 그 내용을 아주 요령 있고 지루하지 않게 전개하고 있으면 주장하는 바도 아주 또렷하고 설득력이 있다. 가족 문제들에 대한 개별적인 논문이나 책들도 있겠으나 이 책은 그것들을 종합하여 대중의 입맛에 맞게 무난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은 2017년에 초판이 나와서 아주 많이 읽혔는데(22) 2022년에 증보판이 나왔다. 5년동안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의 사회와 가족이라는 공간의 분위기도 많이 변하였다. 더 정확히는 바람직한 분위기로 나아졌다. 특히 저자가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보와 여성가족부 차관으로 근무하면서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러한 노력의 흔적이 이 책에 간간이 나온다. 저런 고위직에 있었던 분이 이런 알토란 같은 책을 내는 경우가 흔치 않고 더욱이 많이 팔리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많이 팔렸다니 (특히 초판 22) 참으로 귀한 케이스다.        

2. 5년이라는 기간 동안 많은 사건들, 특히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일어났으며 이 책에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인이 사건은 내가 사는 서울 양천구에서 일어났으며 특히 경찰의 부실대응이 문제 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양천경찰서장이 대기발령 되었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들에 대응한 보완조치로 인하여 지금은 특히 방치되었던 어린 아이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 사건은 (없어졌다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아마도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이 책에도 계속 나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족내의 사적인 영역에 경찰이나 외부 세력이 개입하는 것을 꺼렸다. 이제 가족이라는 사생활의 영역에 아동보육시설장 경찰 의사 등 관계기관이 적극적인 개입하고 있다. <민법>에 있던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징계권도 국회의 법개정을 통해서 삭제되었다.


30여년 전에 내가 저녁을 먹고 우리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한 구석에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왜 그럴까 하고 주변에서 머뭇거리는데 마침 경찰 순찰차가 지나가기에 차를 멈추게 하고 저기 남자가 여자를 때린다고 신고했다. 경찰이 문을 열고 나오는데 내가 부부인 것 같다고 얘기하니 부부요?” 하면서 경찰은 차를 타고 떠나갔다.


이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가정이나 부부라는 사적인 영역에 개입하는 않는 것이 철칙이었던 시절 이야기인데 이 책을 보니 지금부터 5년전쯤에도 이런 사고가 만연했다는 것을 알았고 저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그런 사고는 통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사고의 발전 때문에 자자는 2017년의 초판을 개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3. 1부에서는 친부모나 양부모에 의한 아동에 대한 체벌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예전에는 가정에서의 아동들에 대한 체벌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부부 사이에서 사회에서 군대에서 체육계 등등 곳곳에서 체벌이 만연했다. 체벌은 언제나 반복되고 대물림되었었다. 이 책에는 군대 이야기가 안 나오지만 예전에는 매를 많이 맞고 자란 쫄병이 고참 되면 쫄병들을 많이 때렸다. 부모들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인 사랑의 매라는 얘기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았다.

가정에서의 체벌도 문제지만 욕하고 창피주고, 협작하고 겁주고 조롱하고... 등도 문제다. 직장내의 괴롭힘은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


지금도 학교폭력이나 체육계 체벌 문제 등 폭력 문제가 곳곳에서 가끔 터져 나오기는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체벌이 거의 없어졌다고 보고 있는데, 가정에서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체벌도 근래에 이렇게 일어났고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으리라고 본다.

아이와 합의해서 원칙을 정해 놓은 체벌은 학대가 아닌가? 예전에 내가 남자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요즘은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 때리는 것은 없지?” “아니요. 있었어요. 제가 맞을 짓을 했거든요. 부모님 모시고 오던지, 정학당하던지 하라고 해서 그냥 매맞겠다고 했어요.” 이런 것도 폭력이다.

4. 폭력도 문제지만 아이들에 대한 방임도 그리고 과잉보호도 아동학대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거나 한부모가정에서 즉 취약가정에서 일어나는 방임은 잘 드러나지도 대책을 세우기도 쉽지 않다. 내가 아는 사례에서도 부모가 일찌감치 이혼하고 두 딸을 아빠가 떠맡았는데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빠가 아이들을 방치했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옆에서 챙겨주어서 애들이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보고 나는 부모되는 것도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모의 의무를 법에 규정하고 부모 교육은 꼭 필요하다.    


과잉보호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교육도 가족주의와 과잉보호의 현상이다. 엄마는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갈아 넣으면서 아이들을 경쟁에 내몰고 자기 가족만이 성공하기를 꿈꾼다. 저자는 이런 것을 이상한 정상가족이라고 칭한다. 이런 폐쇠적인 정상가족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과 사회를 피폐하게 한다. 이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이다.


사교육에 몰두하여 아이들이 놀 시간이 부족한데 아이들에게는 노는 것도 배움이다. “동네의 놀이터와 골목길은 아이들이 공적인 삶을 배우는 공간이다.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 없이 놀면서 아이들은 낯섬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차이를 협상하고 갈등의 타협점을 모색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한편에서는 자기 가족에 대한 과잉보호를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타자에 대한 배척은 심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민자로 그리고 피부색이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우리에게는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이 넘쳐나지만 이는 타인종에 대한 배척으로 드러난다. 220여만 명에 달하는 이주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혐오와 차별이 존재한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소위 3D)직종에서 일하는 덕택에 우리나라 경제가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만한데도. 지방으로 갈수록 근처의 대학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이 지방경제를 버티게 해주는 중요한 인력이다.


우리나라에 왔던 외국인들이 체류기한이 만료되었는데도 안 나가는 경우 그들은 미등록 외국인이나 불법체류자가 된다. 부모가 그러하면 아이들은 당연히 미등록 이주아동이 되는 데 대략 2만명이 된다고 한다. 미등록이 되어 있으니 파악되지도 보호 받을 수도 없었다. 이 책을 보면 그들에 대한 보호가 정책적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그들이 언제 부모와 떨어져 쫓겨 나가게 될지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냐마는.


이런 이민자 문제는 정말 골치 아프다. 밀려드는 이민자를 몇 명까지, 어느 기간 동안 받아들이고 내보내야 하는지? 법적으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는데 안 나가는 사람들을 어찌해야 할지? 정말 난감한 문제다. 나는 그들에 대해서 대충 동정을 하지만 관계기관은 법과 제도를 무시하는 그들을 갑자기 급습하여 강제로 내보내기도 한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맘은 아프다.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난민들이 대규모로 몰려드는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는 안 일어나는 것만도 참으로 다행이다.    

5. 우리나라에서 저출산이 문제되는데 그 저출산의 원인으로 위의 과잉적인 사교육도 문제지만 이 책에서는 정상가족에 혐의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적인 부부간의 정상가족이 아닌 다른 삶은 잘못되었다고 차별하고 배제하면서 교육 받을 권리와 일자리까지 위협한다.


한국의 혼외출산 자녀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2019년 한국의 혼외출산 비율은 2.3%였다. OECD평균 40.7%(2018년 기준) 프랑스 60.4% 영국 48.4% 미국 39.6%이다. 물론 저런 나라들에서는 혼외출산을 정상가족에 대한 도전이나 도덕적 일탈로 간주하지 않고 부모에게나 아이들에게도 어떠한 차별도 편견도 멸시도 전혀 없다. 양육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도 도덕적 판단 따위와는 무관하게 중립적이다. 즉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혼외출신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미혼모가 되더라도 아이들을 입양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 우리나라 저출산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요즘은 사실혼도 비혼도 이혼가정도 그리고 1인 가정, 무자녀 가족, 동성끼리 동거가족 등등도 많아졌지만, 이들은 대개 숨어 사는 존재들이다. 정상가족이 중심이 되어 있고 그 가족들간의 끈끈한 연대 속에서는 그들이 경쟁에서 이겨 출세를 하려고 하는 것도 다 가족을 위한 것이 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다. 저자는 혼외가정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배척하려고 하는 정상가정에 대한 집착이 이상하다고 주장한다. 우골탑이나 기러기 아빠’, ‘치맛바람이나 부모의 극성으로 아이들 뼈골 빠지게 하는 사교육도 다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위의 통계가 말해 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이 책의 주요한 주장은 혼외출산도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이어야 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저출산 극복을 위하여 혼외출산을 권장할 수는 없다 하여도 혼외출산에 대한 편견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6. 철학자 권용혁은 한국의 근대적 자아는 자유와 자율, 권리의 담지체인 개별적 존재로서 형성되었다기보다 가족주의의 가치 테두리에 둘러싸여 있는 자아라고 분석했다는데 아주 맞는 말이다.

나부터도 그렇다. 나의 성장-발전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의 정신상태에서도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존재가 절대적이었다. 지금도 좋을 때나 힘들 때나 우리 조상님들이 떠오른다. 나의 존재와 발전이 그 분들 덕택이라는 것을 나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이뤄낸 가정도 다 그분들 덕분이다. 물론 조상님들은 자식들과 상호의존했고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했지만. 그리고 부모님이 나름 자식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자율성을 보장했는데도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주의에 대한 집착은 심한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부심을 넘어서는 나의 가족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7. 삶은 개별적으로 산다고 하더라도 모든 해결은 집단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가족에게 부과된 의미나 기능을 축소하고 가족의 짐을 사회가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교육이 아니라 공교육이 해결책이고, 여성들에게 부담이 되는 개별적인 보육보다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포기하지 않고도 자기 삶을 꾸려 갈 수 있게 하는 공공의 보육시설이 확대되어야 하고, 노인들이나 아픈 사람들에 대한 케어도 개별가정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행하여져야 한다. 그런 기능을 개별 가족에게 맡기면 (빈부)계층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고 양극화가 심화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상가족에 대한 집착에서 벋어나 한부모가족이나 이민자들이나 성소수자들에 대한 공감의 감수성이 높이고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한 정책과 제도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      


이런 것들을 정책적으로 도입하고 법적으로 규범화하여 국가가 의무적으로 행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여기에는 물론 국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국가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지금의 저출산 대비 예산을 잘 정비하고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인다.

8. 이 책을 읽고 나서 저자와 같은 분이 이번 국회의원 선거 때 (비례든, 지역구든)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번에 국회의원이 된 분들이 다들 훌륭한 분들이겠지만 이런 분이 지금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전문가적이고, 나름 진보적이고, 인류애적인 시각으로 체계적으로 잘 풀어나갈 수 있겠다 싶어서다. 저자가 주장했듯이 이런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회의 정책화-법제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런 저술 활동도 훌륭한 정책제시가 될 수 있겠다.    

이런 지적은 적당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비혼이다. 저자도 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했겠지만 결혼해서 가족을 구성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가족에 매몰되지 않고 가족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연구할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저자가 결혼을 해서 가족 생활을 했었더라면 아마도 이 책 내용이 더 풍부했을 것이고 간혹 가족에 대한 다른 방식의 경험과 관찰과 견해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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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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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에이징 솔로(Aging solo)’란 나이 들어서 홀로 사는 사람을 뜻한다. 대개 40~50대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여기에는 결혼 하지 않은 사람도 이혼한 사람도 다 포함된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오랜 기자 생활의 글쓰기 버릇대로) 내용과 표현에 있어서 군더더기가 없고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요령있게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주변에 포진해 있는 에이징 솔로들이 겪고 있거나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관계 생계 주거 돌봄 노후 등의 사회적이고 개인적의 문제를 조목조목 집어가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당면한 문제들의 해결을 모색하고 조심스럽게 새로운 시대경향에 맞추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자고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들여다 보는 뚜렸한 시각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따뜻한 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이라는 시각이다. 학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기자 생활을 오래했고 사회복지재단과 정부부처에서 일한 경력들이 다 이런 글쓰기 실력과 내공을 쌓은데 도움이 되었겠다. 이러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분이 (논픽션) 작가로 활약하는 흔하지 않다.


이는 이 책의 장점만을 대략 이야기 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 책의 한계를 남자인 나의 경험을 통해서 지적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성과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고 다른 입장에서 이 책을 보충하려 함이다.

우선 대담자, 즉 저자 자신을 포함한 20명의 비혼여성의 샘플이 너무 한정되어 있고 적었는 느낌이 있다. 더 많은 대담자를 만나는 것이 필요했다고 보여지는데, 그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풍부하고 다양한 사례들을 접했으면 좋았겠다.


지난 주말에 내가 재직했던 (수도권, 2년제) 대학의 제자 두명(34, 50)과 시간강사(45)와 가볍게 술한잔 했다. 그 세사람이 다 남자이고, 10년전 쯤에 캠퍼스에서 만났다 헤어진 관계이고, 다 에이징 솔로이다. 이 세 사람의 간단한 소개를 대충 보아도 저 책에서 거론하지 않은 부분들이 생각날 수가 있다.


이 책은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이 책의 한계를 명백하게 실토하고 있다.

1. 이 책은 여성 에이징 솔로만을 대상으로 했고 남성 에이징 솔로들을 언급하려다가 절실하다고 느끼는 생애 과제에 큰 차이가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묶기에 어렵다고 판단하여 포기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 여성과 남성은 생애 과제 뿐만 아니라 개인적-사회적 태도와 기대와 책임들이 다르다. 남성 에이징 솔로들의 문제들은 더 복잡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함께 묶어서 거론하기가 쉽지 않겠다. 그렇지만 이 에이징 솔로의 문제가 여성들만의 문제로 한정이 되면 폭넓은 공감과 해결책을 이끌어 내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나는 더 심각한 것이 남성들의 에이징 솔로라고 본다. 빈곤과 무기력과 중독과 단절이런 것들이 중복되어 있으면 답이 안 나온다. 이들을 어찌해야 할지?


2. 이 책은 다소 수월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솔로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당면한 문제가 저출산-고령화이고 사회양극화 문제인데 그렇다면 이 책은 저출산 문제를 약간은 거론했지만 양극화 문제는 외면한 셈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보다도 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에이징 솔로들의 문제들은 더 심각하다.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가난하고, 지방에서 태어나고, 집안의 도움을 못받고, 제대로 교육도 못받고, 희망도 없고, 당장에 먹고살기에 급급한 에이징 솔로들의 문제들은 거의 거론이 안되고 있다. 경제 문제 보다는 관계문제에 역점을 둔 이 책의 의도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수월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 책의 한계가 처음부터 느껴졌다.


여기에 나오는 저자를 포함한 에이징 솔로들은 우아하다는 느낌이다. 우아하지 못한 에이징 솔로들이 더 많은데. 대담자 중의 1/3은 저소득층이라 했지만 그래도 저들은 경제이상의 관계는 그래도 양호한 사람들이겠다(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3. 저자도 언급했지만 이 책은 비자발적인 솔로의 이야기 보다는 (이혼을 포함한) 자발적 솔로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 사회의 에이징 솔로를 보면 (추측컨대) 결혼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되어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원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가족 중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으면 남녀 모두가 결혼하기가 쉽지 않다.

예전과 달리 남녀가 결혼하기 위해서는 뭔가 내세울 것이 있어야 하는데 대체로 원만한 성격, 경제적 능력, 비주얼, 가족의 지원 등등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비자발적으로 비혼으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거론한 내 제자 둘과 강사분도 다들 학력에, 경제력(직장), 외모에 결점이 있었다. 2년제 전문대 졸업의 학력을 보충하고자 4년제 대학에 편입도 하고 대학원도 다녔지만 남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다니는 직장을 자주 옮겼으니 비정규직이고 급여가 많지 않을 것이다. 저 강사분도 젊은 나이에 (SKY대학이 아니) in서울의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10년 넘게 시간강사로 뛰고 있다. 경북 경주까지도 강의를 나간다고 한다. (하기야 나도 오래전에 전북 전주까지 시간강의를 나간 적이 있다.) 그렇다고 전임교수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고 집안이 넉넉한 것도 아닌듯하다. 3사람은 다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비자발적인 솔로이다. 이들은 이 책에서 언급된 에이징 솔로와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이들어서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시선과 차별, 저출산의 혐의와 비난에 대한 방어가 필요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에이징 솔로가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되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고 다들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를 잘 인식하고 따뜻하고 너그러운 시선과 제도적인 뒷바침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거창하지 않지만 차분하게 내고 있다. 이 책은 에이징 솔로라고 하는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숨죽이고 있는 존재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는데, (인문.사회학적으로) “삶의 사소한 조각들이 모여 사회적 패턴이 형성되는 지점을 관찰하는나름 참신한 시각과 방식을 사용했으며, 읽기에 부담이 없고, 유용하고 의미있는 내용을 지닌 책이고, 완성도가 높다.


저자의 홀로이면서도 함께인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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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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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혜연 옮김, 글항아리, 2023.

*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보고 바로 이 책을 구입했고 다 읽고 나서 뭔지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났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이름이 군자, 이하에서는 엄마로 지칭)의 삶과 저자 본인의 삶을 섞어서 써 내려가 자서전이자 우리 민족의 현대사이다. 모든 이야기에 가공은 좀 있겠지만 거의 실제 이야기겠다. 엄마는 1941년생. 엄마는 4남매 중 막내였는데 외아들이었던 오빠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했을 때 행방불명되었고 큰언니 춘자는 26살인 1961년에 위암으로 죽었다. (엄마는 1986년 조현병 발병, 66살인 2008년에 사망)

1. 엄마는 한국전쟁 중에 아버지(위암으로 사망)와 오빠를 잃고, 부산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아들을 낳았고, 1970년쯤에 미국 상선(商船) 선원인 스물두살이나 더 많은 백인 남성을 만나 그 사이에서 딸(저자)를 낳았다. 그 남성이 미국에 있었던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나서 엄마와 결혼했고 1972년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난한 백인들만 사는 미국 워싱톤 주 셔헤일리스로 이주한다.
엄마는 본인은 물론 두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마련해 주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결단을 내렸고 그것은 그 시대의 흔한 풍속도였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 우리 김포 시골 마을에도 이러한 케이스의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성은 미군 남성을 데리고 친정집을 방문하였는데 짙은 화장과 요란한 눈 주위 치장, 평범하지 않은 옷을 입고 왔었다. 우리들은 뒤에서 ‘양갈보’라고 수근거렸다. 아마도 그 여성도 미국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엄마와 두 아이들은 이민자가 아주 드물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하는 미국 서부의 작은 동네에서 삶을 이어 나간다. 엄마는 정규학교는 별로 다니지 못했지만 나름 총명하여 영어를 잘 했고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영어로 되어 있는 버섯 관련 책을 탐독하여 어느 것이 먹는 버섯이고 독버섯인가를 연구하면서 버섯을 채취하고, 야생의 블랙베리를 왕창 따서 팔기도 하고, (나중에 드러났지만) 성폭력이 판을 치던 소년원에서 야간에 청소일을 하는 등 ‘천부적으로 생활력이 강’해서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한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3개월 동안 바다로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다 엄마는 어쩌다가 조현병에 걸려 음식을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한국요리를 잘 하고 주변 사람까지 챙기고 온갖 음식을 만들어 파티까지 주선하던 엄마가 한국음식도 안 만들고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으면서 갑자기 소파에 쳐박혀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텔레비전속에서 이상한 암호를 찾으려 하고 이웃이 자기를 감시하고 해치려 한다고 환청 환시에 시달린다. 저자인 딸은 결국에는 엄마의 이 모습을 모티브로 하여 대학원에서 어머니의 생을 추적하면서 한국전쟁과 이민이 어머니에게 남긴 폭력과 상실의 상처(트라우마)를 추적한다.

2.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한국 음식들의 레시피가 자세히 자주 나온다. 김치는 물론 미역국, 소고기국, 전과 떡, 생태찌개 같은 음식은 원래 생존수단이지만 여기서는 과거 기억과 감각을 환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또한 가족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딸은 엄마를 통해서 일찌감치 요리의 강력한 힘을 터득했고 나중에 제과제빵 자격증도 취득하고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취향과 소질을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엄마의 코치를 받으며 “칼칼한 맛, 불 맛, 알싸한 맛과 단맛”의 생태찌개도 만든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저런 맛들에 대하여, 그리고 한국 음식들과 요리법이 여러 군데 상세하게 나오는데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타국의 타인종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겠나? 하기야 K-pop과 같이 K-food도 인기라 하지!

‘전쟁 같은 맛’은 군자가 조현병에 걸린 뒤 먹는 것을 거부하면서 분유를 두고 한 말이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에게서 어쩌다 얻었던 분유를 먹고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 있는 수많은 한국인이 복통과 설사를 경험했다. 나도 아직도 우유가 들어가는 그 고소한 카페라떼를 못먹는다. 먹으면...
소설책이든 뭔 책이든 간에 (요리책 빼고는) 이렇게 요리와 음식에 대하여 이 책만큼 많이 나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하루에 3끼, 적어도 1~2끼는 먹고 (특히 가정주부들은) 하루동안에 이 끼니 때우는 것에 대하여 많은 시간과 비용과 신경을 쓰는데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너무나 일상적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학교수가 된 딸이 엄마와 함께 살면서 대학에서 ‘음식사회학’ 수업을 진행하고 요리를 배우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엄마가 폐쇄된 세상을 조금씩 벋어나면서 자기의 기억과 새로운 가능성을 조금씩이나마 찾아가는 과정을 애뜻하게 그리고 있다. 엄마와 딸은 요리와 맛을 통해서 거대한 권력구조에 대항하고 자기주체성을 찾고 디아스포라의 한을 치유하고 조현증의 증세와 싸운다. 이것이 이 책의 주요 테마라고 보면 된다.

3.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은 군자에게 처음 발병했을 당시만 해도 그 정체가 잘 밝혀지지 않은 병인데 엄마와 같은 환자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 병이 단순히 개인적.유전적인 정신질환이 아니라 비백인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도덕적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비백인의 조현병의 발병률은 그 지역에서 그들의 인구비율이 감소함에 따라, 즉 더욱 소수가 되면서 증가한다. 불행하게도 저자의 가족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유색인종이 드물고 백인과 기독교와 극우세력이 판을 치고 나중에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던 지역이었다. 그런 부분을 저자는 엄마를 통해서 집요하게 통찰하고 있다.

엄마는 예전에 한국에서 나중에 남편이 되는 미국 남성을 만나 그 남성을 따라서 미군기지 안의 레스토랑에 가서 치즈버거를 주문해서 함께 먹는다. 그 치즈버거는 굶주림에 익숙했던 엄마에게는 미국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고 모든 희망과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때 그 남성은 처음에는 군자가 ‘과연 자기처럼 나이든 남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극적이고 절절하게 만났지만 아버지가 외양 선원 생활을 접고 집에 들어앉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심한 갈등과 싸움이 시작되면서 별거-이혼-화해 또 이혼의 과정을 겪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들은 물론 저자도 오빠도 참으로 힘들었겠다. 그 싸움의 원인 제공은 아버지의 백인 중심의 사고도 문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가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오빠는 1964년생인데 저자는 씨가 다른 이 오빠와는 (다른 설명 없이) 사이가 안 좋았다고만 하는데 그래도 그 오빠의 서양인 부인(올케)와는 좀 소통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4. 엄마는 자신의 불우했던 그리고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하여,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이 대공황 시절 때문에 미처 마치지 못한 대학 교육을 딸은 받게 하기 위하여, 딸이 요리사가 아닌 학자가 되도록 부추기고 적극 지원한다. 그래서 저자는 열심히 공부하여 좁은 바닥을 벋어나 아이비리그인 최고 명문대학인 브라운대학에 진학한다. 이 대학은 주로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였지만 저자는 거기서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백인이 될 필요도, 백인 흉내를 낼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에 이미 어머니에게는 조현병 증세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깨달음이 바탕으로 어머니의 정신을 박살낸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겠다고 결심을 한다.

저자는 대학원 과정에서 사회학-여성학적으로 디아스포라를 겪는 이민자로서의 어머니의 생애와 질병을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여 결국 (엄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엄마가 꿈꾸었고 엄마의 믿음이었던)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된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서 연구했는데) 저자도 ‘급진적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 밑에서 연구하기 위해 뉴욕시립대학으로 가서 수업을 듣고 거기서 사회학 박사과정에 등록하는데 정말 제대로 된 스승을 찾은 것 같다. 흑인이었던 벨 훅스는 그 당시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이 인종과 계급까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의 (내가 좋아하는) 인간 승리-성공 스토리이다. “엄마에게 내 학업은...개인사에 얼룩을 지워내는 방편이었고,” “엄마의 유일한 인생 목표는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해외 어디를 가서 살아도 자녀 교육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딸이 공부를 해서 당신의 개인사에 진 얼룩진 부분을 지워냈으면 했지만 오히려 저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회정의에 대한 내 의식은 우리 가족사와 더 밀접하게 얽혀만 갔다.”고 했다. (359쪽)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정신적 고통, 그 부분을 계속 연구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첫번째 책인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을, 그리고 두번째로 이렇게 훌륭한 이 책을 내게 되었고 이런저런 상들도 받았고 뉴욕시립대학에서 정년제 교수도 되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뒷부분에는 저자가 20여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어렵고 끈질기게 돌보면서 연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눈물겹고 참으로 효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 엄마라 하더라도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짐만 되는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엄마를 돌보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엄마의 어두웠던 과거를 밝히고 끌어안으면서까지 엄마 세대와 전쟁과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연구하고 엄마의 병을 치유해 나갔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 부분에 감동했다.
엄마에게서 1/2의 유전자만 물려받은 저자였지만 같은 여자로서 불행에 처한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전쟁과 가난과 사회 혼란기에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 후유증을 직시하며 연구를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스토리 전개와 묘사가 치밀하고 짜임새와 깊이와 흥미를 두루 갖춘 문장력도 탁월하지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는 지금도 우리에게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땅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식들이 공부하도록 뒷받침해 준 조상들의 고난과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다는 것!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저자의 개인적인 성공스토리를 뛰어넘어 불행했던 우리 민족과 조상들에 대한 진혼곡이며 우리 민족이 집단적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글이며 우리 민족의 풍속과 역사의 탐구서이며 세상 어디 가서라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굳굳하게 살아남아 이렇게 잘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격려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책에도 해당되어 엄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생이 제국주의와 전쟁과 집단적인 억압과 피해라고 하는 권력과 정치에 직접 연관된 일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에게 구조적이고 집요한 차별과 폭력을 일삼는 미국 사회에 울리는 경종일 수도 있겠다.

* 이 책은 백인이었지만 ‘힐빌리’라는 미국 깡촌에서 자라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가 되고 지금은 공화당 상원의원이 된 J.D.밴스가 쓴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과 비슷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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