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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국민의 탄생
이경숙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5월
평점 :
<시험국민의 탄생> 이경숙 지음, 2017, 푸른역사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이 책을 구입했는데 대박이다! 한마디로 시험의 역사와 문제를 아주 적절하게 콕콕 찝어서 내 머리 속에 넣어주는 것 같았다.
나의 대학 입학 동기들이 모여서 대학 입학 40주년을 기념하고자 회고록을 발행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그래서 나도 대학시절 4년과 그 前後의 얘기를 엮어서 회고록을 썼다. 그때 내가 쓴 회고록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다음과 같이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시험을 두고 저마다, 가족마다 굴곡이 있고, 곡절이 있다. 굴곡과 곡절이 없는 이야기는 밋밋해 누구도 거론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시험은 극적인 이야기라 힘이 세다.” (17쪽)
이 책을 읽고 그 때 쓴 나의 회고록을 다시 들여다보니 나의 회고록의 상당부분이 시험에 관한 것이 차지하고 있었다. 의도적인 것이 아닌 거였는데... 다른 친구들의 글에도 시험에 관한 것이 많이 나온다.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언젠가부터 시험은 劇的(감동적, 인상적)으로 인생의 榮辱(영광과 치욕)을 대변하는 아주 적절한 소재였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중학교 입시(마지막 세대)부터 고등학교 입시(마지막 세대) - 대학교 - 대학원(석사과정-박사과정) 입학과정에서 시험을 치뤘다. 어느 노래 가사에는 찬바람이 불면 ‘님과의 이별과 추억을 생각’한다 했는데 나는 찬바람이 불면 시험 때가 다가왔음을 느꼈고 ‘또 시험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에 시달렸었다. 저 많은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기도 많이 했으나 그래도 결국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 책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지만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는 상급학교에 ‘입학’하는 데에 힘이 들었지 ‘졸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학교교육을 남들보다도 오랫동안 그리고 늦게까지 받았고 지금도 교육이라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 모든 시험들이 나의 성장의 역사에서 중요한 갈림길이었다. 지금은 내가 어쩌다가 시험이라는 것을 통해서 학생들을 평가하고 등수를 매기는 위치에 서게 되었지만, 이 책은 내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체험했던 그러한 시험의 역사와 의미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文民통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武人들이 아닌 文人들의 통치에 있어서 과거시험의 제도는 인재발굴과 출세의 지름길 역할을 하였다. 적어도 조선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험에 집착하고 시험에 합격하고자 하는 노오력들은 나라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거룩한 의미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출세가도를 달리고픈 인간들의 적나라한 욕망만이 존재했다. 각종 시험이 생겨나고 변화하고 확대되고 치열해지는 과정과 그 모습은 모든 국민의 생활의 역사를 잘 대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시험을 통한 좋은 학벌의 획득은 본인의 능력이고 충분히 보상 받을 만하다고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헛된 믿음)가 작동하여 반박하기 힘든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제도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하고 고학력자나 고소득자들이 사회적 자원을 독차지하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은 존재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능력주의의 폐해는 심화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험에 의한 서열화와 경쟁은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에 안 나오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인간의 지혜, 상식, 사회성, 공감능력, 연대의식, 협동의식 같은 능력들을 등한시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듯이, 인간에게 진짜 중요한 것은 시험으로 테스트하기가 힘든데도!
“성장기 내내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 지속되면서, 소수를 제외하고 다수는 열패감과 열등의식을 내면화하게 된다.”(126쪽) 이 얘기는 바로 나의 얘기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주 시험을 잘 보았던 내 친구와 비교당하고, 그리고 내 스스로 잘난 우리 아버지의 그늘에서 항상 비교당하면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청소년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내면화된 열등의식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시험은 고득점 학생들과 시험을 잘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엘리트 의식을 가지게 하고 점수가 낮은 학생들에게 무기력과 열등의식을 가지게 한다. 이것이 실제로 지금 우리나라가 운영되고 통치되는 방식이다. 시험을 통한 차별화와 서열화는 우리나라 모든 방면에서 소통되지 않는 관료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고 양극화의 방식으로 심화되고 있다.
또한 국가는 이러한 시험을 통한 손쉽게 국민을 통제할 수 있었다.
“시험은 지식의 습득을 돕는 역할보다는 학생들을 학교의 관료주의적 필요에 맞추고, 미래의 고용주들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행동양식과 이데올로기에 맞추기 위해 사회화와 분류하는 역할을 더 많이 한다”는 주장은 너무나 지나친 주장 같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험을 자주 보는 이유는 학생들이 시험에 안 나오는 것들에 쓸데없이 몰두하거나 시험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여 학생들을 통제하고 있다.
예전에 읽은 소설(<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 지음, 마음산책)에 나오는 얘기인데, 어떤 일본인 학생이 1959~1964년을 체코 프라하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와 보니 체코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O X로 답을 고르는 출제형식이 전 과목에 걸쳐 행하여지고 있어 당황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고 보니 나도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에 O X로 답을 고르는 시험을 본 경험이 있다. 주어진 4~5개 답들에서 정답을 고르는 객관식 시험 방식은 미국 역사상 최대발명품 중의 하나라고 거론되며, 이는 객관성과 공정성과 효율성의 상징으로 미국인들의 정신에 적합했(50쪽)고, 全세계에 수출되었고, 그래서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객관식 시험 문제만 풀었다. 대학교에 가서 논술식 시험을 처음 접했을 때에 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객관식 시험 방식은 그동안 많이 지적되었듯이 새로운 사고, 비판적 사고, 창의적 사고에 이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해방 이후 오랫동안 막강하게 유지했던 지위와 신뢰를 많이 잃었다. 하기야 인간이 당면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해결책은 이미 주어져 있는 답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차곡차곡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들이다. 중요하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더 그렇다!
수학이나 국어 보다는 영어과목의 점수 차가 부모의 소득에 따라 크게 나타난다는 것을 이 책은 지적한다. 교육열은 아무래도 먹고 살만한 소득과 아파트값이 더 높은 지역의 부모들이 더 높기 마련이고 특히 사교육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 영어 점수는 평균적으로 보면 소득과 아파트값에 거의 정확히 비례한다.(81쪽) 더욱이 다양한 대학과 전공, 지역 등을 하나로 줄 세우는 데 영어가 대표값 노릇을 한다. 강준만은 영어가 한국사회의 서열화를 작동시키는 기본 방식이라고 보았다.(83쪽) 언젠가 대기업 인사담당자 그러는데 입사시험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암암리에) 기본적으로 영어 토익 점수로 1/2가량을 떨어트려 놓고 채용과정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영어뿐만 아니다. 아이들의 모든 학력은 점점 대체로 부모의 소득과 거주하는 집값과 비례한다. 이러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면 할수록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정권초기인 문재인 정부가 어떤 부분에서는 명확한 방향으로 제대로 나가고 있고 북핵문제 등 어떤 부분에서는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입제도의 수정안을 공식적으로 1년 연기했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문재인 정부는 교육의 문제들을 오직 대학입시 문제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학입시를 잘만 손질하면 교육문제가 다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물론 내 경우와 같이 시험을 통한 한 인간에 대한 검증이 중학교 입시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지금은 대학 입학시험 하나로 한 학생이 그 때까지 이룬 성과와 한 인간의 장래까지 단 한번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병목현상으로 대학입학 시험이 가장 큰 문제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대입시험문제는 단지 입시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부익부빈익빈 되는 사회경제적 문제, 신자유주의에 다른 경쟁의 가속화,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서 안정되고 풍요롭게 위상을 확보하고자 하는 개개인과 가족의 욕망의 토대위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들이 대입시험에 올인하게 만들어 공교육은 부실화되고 사교육이 판치고! 장시간 공부에 시달려 아이들은 허약하게 되고 사교육으로 가정 경제는 힘들어지고!! 이런 문제들은 단지 입시제도의 개혁으로 손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 책에 시험방식의 변천사가 잘 나와 있는데, 입시제도를 어떻게 고치던지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과 개개인들의 한없는 욕망 앞에서는 백약이 무효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대학입시에서 학생종합생활기록부(생기부) 참조와 내신성적 반영이라는 제도는 학교교육의 정상화라는 좋은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비교적 좋은 성과를 보았다고 나는 평가한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3년동안 계속 평가가 진행되는 생기부와 내신은 학생들에게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여 학교를 경쟁의 장으로 몰아넣어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나도 입시생들의 면접을 보면서 생기부를 들여다 보면 점점 생기부에 적힌 내용들이 점점 좋은 쪽으로 상향 평준화되고 있어 참조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고등학교 학교간의 학력격차를 무시하고 내신을 일률적으로 똑같이 방영하라고 하니 대학들은 내신을 무력화하려는 교묘한 기술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든 좋은 취지의 대입제도도 좋은 학벌과 연결된 출세와 안정된 직장을 얻고자 하는 거친 욕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
교육개혁의 방향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방과후와 저녁과 방학을 돌려주느냐?”가 되어야 하다는 주장(1996년, 정범모 박사), 대학을 안 나와도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나), 모두에게 좀 더 평등한 인간적인 사회가 필요하다는 주장(387쪽)들 모두는 총론적인 면에서는 타당한 주장들이지만 그러한 상황을 교육, 특히 대학입시라는 열쇠를 가지고 풀어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저자도
“시험점수로 인간을 서열화하고, 등급화 하여 모든 것을 부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싸움을 해야 한다. 불평등한 세상은 인간 서열화의 결과라기보다 서열화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이며 양분이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려는 싸움이 없으면 시험제도는 독이 된다.”
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싸움의 방향을 돌려 시험 밖에서 길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험 밖의 길은 자본주의 – 약육강식 – 경쟁과 투쟁 – 승자독식 - 사회양극화 와 같은 상황과 그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국가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하는 저자도 그렇지만 찬동하는 나도 은근히 radical(과격)하다!)
그렇다면 싸움은 더 어려워진다.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에 해결은 안 되고 있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저자는 이런 책을 내고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고민에서 시작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