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혜연 옮김, 글항아리, 2023.

* 신문에서 이 책의 소개를 보고 바로 이 책을 구입했고 다 읽고 나서 뭔지 반드시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났다.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이름이 군자, 이하에서는 엄마로 지칭)의 삶과 저자 본인의 삶을 섞어서 써 내려가 자서전이자 우리 민족의 현대사이다. 모든 이야기에 가공은 좀 있겠지만 거의 실제 이야기겠다. 엄마는 1941년생. 엄마는 4남매 중 막내였는데 외아들이었던 오빠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했을 때 행방불명되었고 큰언니 춘자는 26살인 1961년에 위암으로 죽었다. (엄마는 1986년 조현병 발병, 66살인 2008년에 사망)

1. 엄마는 한국전쟁 중에 아버지(위암으로 사망)와 오빠를 잃고, 부산 기지촌에서 일하다가 아들을 낳았고, 1970년쯤에 미국 상선(商船) 선원인 스물두살이나 더 많은 백인 남성을 만나 그 사이에서 딸(저자)를 낳았다. 그 남성이 미국에 있었던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나서 엄마와 결혼했고 1972년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난한 백인들만 사는 미국 워싱톤 주 셔헤일리스로 이주한다.
엄마는 본인은 물론 두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마련해 주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결단을 내렸고 그것은 그 시대의 흔한 풍속도였다.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 우리 김포 시골 마을에도 이러한 케이스의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성은 미군 남성을 데리고 친정집을 방문하였는데 짙은 화장과 요란한 눈 주위 치장, 평범하지 않은 옷을 입고 왔었다. 우리들은 뒤에서 ‘양갈보’라고 수근거렸다. 아마도 그 여성도 미국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엄마와 두 아이들은 이민자가 아주 드물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하는 미국 서부의 작은 동네에서 삶을 이어 나간다. 엄마는 정규학교는 별로 다니지 못했지만 나름 총명하여 영어를 잘 했고 매력과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 영어로 되어 있는 버섯 관련 책을 탐독하여 어느 것이 먹는 버섯이고 독버섯인가를 연구하면서 버섯을 채취하고, 야생의 블랙베리를 왕창 따서 팔기도 하고, (나중에 드러났지만) 성폭력이 판을 치던 소년원에서 야간에 청소일을 하는 등 ‘천부적으로 생활력이 강’해서 활기 넘치는 생활을 한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3개월 동안 바다로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생활을 반복한다.

그러다 엄마는 어쩌다가 조현병에 걸려 음식을 거부하고 은둔생활을 하게 된다. 한국요리를 잘 하고 주변 사람까지 챙기고 온갖 음식을 만들어 파티까지 주선하던 엄마가 한국음식도 안 만들고 최소한의 음식만을 먹으면서 갑자기 소파에 쳐박혀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텔레비전속에서 이상한 암호를 찾으려 하고 이웃이 자기를 감시하고 해치려 한다고 환청 환시에 시달린다. 저자인 딸은 결국에는 엄마의 이 모습을 모티브로 하여 대학원에서 어머니의 생을 추적하면서 한국전쟁과 이민이 어머니에게 남긴 폭력과 상실의 상처(트라우마)를 추적한다.

2. 무엇보다도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한국 음식들의 레시피가 자세히 자주 나온다. 김치는 물론 미역국, 소고기국, 전과 떡, 생태찌개 같은 음식은 원래 생존수단이지만 여기서는 과거 기억과 감각을 환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또한 가족간의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딸은 엄마를 통해서 일찌감치 요리의 강력한 힘을 터득했고 나중에 제과제빵 자격증도 취득하고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취향과 소질을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엄마의 코치를 받으며 “칼칼한 맛, 불 맛, 알싸한 맛과 단맛”의 생태찌개도 만든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친숙한 저런 맛들에 대하여, 그리고 한국 음식들과 요리법이 여러 군데 상세하게 나오는데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타국의 타인종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겠나? 하기야 K-pop과 같이 K-food도 인기라 하지!

‘전쟁 같은 맛’은 군자가 조현병에 걸린 뒤 먹는 것을 거부하면서 분유를 두고 한 말이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전쟁 같은 맛이야.”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에게서 어쩌다 얻었던 분유를 먹고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이 있는 수많은 한국인이 복통과 설사를 경험했다. 나도 아직도 우유가 들어가는 그 고소한 카페라떼를 못먹는다. 먹으면...
소설책이든 뭔 책이든 간에 (요리책 빼고는) 이렇게 요리와 음식에 대하여 이 책만큼 많이 나오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하루에 3끼, 적어도 1~2끼는 먹고 (특히 가정주부들은) 하루동안에 이 끼니 때우는 것에 대하여 많은 시간과 비용과 신경을 쓰는데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너무나 일상적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학교수가 된 딸이 엄마와 함께 살면서 대학에서 ‘음식사회학’ 수업을 진행하고 요리를 배우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엄마가 폐쇄된 세상을 조금씩 벋어나면서 자기의 기억과 새로운 가능성을 조금씩이나마 찾아가는 과정을 애뜻하게 그리고 있다. 엄마와 딸은 요리와 맛을 통해서 거대한 권력구조에 대항하고 자기주체성을 찾고 디아스포라의 한을 치유하고 조현증의 증세와 싸운다. 이것이 이 책의 주요 테마라고 보면 된다.

3.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은 군자에게 처음 발병했을 당시만 해도 그 정체가 잘 밝혀지지 않은 병인데 엄마와 같은 환자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 병이 단순히 개인적.유전적인 정신질환이 아니라 비백인이나 소수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도덕적 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비백인의 조현병의 발병률은 그 지역에서 그들의 인구비율이 감소함에 따라, 즉 더욱 소수가 되면서 증가한다. 불행하게도 저자의 가족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유색인종이 드물고 백인과 기독교와 극우세력이 판을 치고 나중에 트럼프에게 몰표를 주던 지역이었다. 그런 부분을 저자는 엄마를 통해서 집요하게 통찰하고 있다.

엄마는 예전에 한국에서 나중에 남편이 되는 미국 남성을 만나 그 남성을 따라서 미군기지 안의 레스토랑에 가서 치즈버거를 주문해서 함께 먹는다. 그 치즈버거는 굶주림에 익숙했던 엄마에게는 미국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고 모든 희망과 가능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때 그 남성은 처음에는 군자가 ‘과연 자기처럼 나이든 남성을 사랑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극적이고 절절하게 만났지만 아버지가 외양 선원 생활을 접고 집에 들어앉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심한 갈등과 싸움이 시작되면서 별거-이혼-화해 또 이혼의 과정을 겪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들은 물론 저자도 오빠도 참으로 힘들었겠다. 그 싸움의 원인 제공은 아버지의 백인 중심의 사고도 문제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가 더 많이 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오빠는 1964년생인데 저자는 씨가 다른 이 오빠와는 (다른 설명 없이) 사이가 안 좋았다고만 하는데 그래도 그 오빠의 서양인 부인(올케)와는 좀 소통이 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4. 엄마는 자신의 불우했던 그리고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하여, 그리고 아버지는 자신이 대공황 시절 때문에 미처 마치지 못한 대학 교육을 딸은 받게 하기 위하여, 딸이 요리사가 아닌 학자가 되도록 부추기고 적극 지원한다. 그래서 저자는 열심히 공부하여 좁은 바닥을 벋어나 아이비리그인 최고 명문대학인 브라운대학에 진학한다. 이 대학은 주로 부자들이 다니는 학교였지만 저자는 거기서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백인이 될 필요도, 백인 흉내를 낼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절에 이미 어머니에게는 조현병 증세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깨달음이 바탕으로 어머니의 정신을 박살낸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겠다고 결심을 한다.

저자는 대학원 과정에서 사회학-여성학적으로 디아스포라를 겪는 이민자로서의 어머니의 생애와 질병을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여 결국 (엄마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엄마가 꿈꾸었고 엄마의 믿음이었던)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된다.

(나도 페미니즘에 대해서 연구했는데) 저자도 ‘급진적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저자 ‘벨 훅스’ 밑에서 연구하기 위해 뉴욕시립대학으로 가서 수업을 듣고 거기서 사회학 박사과정에 등록하는데 정말 제대로 된 스승을 찾은 것 같다. 흑인이었던 벨 훅스는 그 당시 백인 중심의 페미니즘이 인종과 계급까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의 (내가 좋아하는) 인간 승리-성공 스토리이다. “엄마에게 내 학업은...개인사에 얼룩을 지워내는 방편이었고,” “엄마의 유일한 인생 목표는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해외 어디를 가서 살아도 자녀 교육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딸이 공부를 해서 당신의 개인사에 진 얼룩진 부분을 지워냈으면 했지만 오히려 저자는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회정의에 대한 내 의식은 우리 가족사와 더 밀접하게 얽혀만 갔다.”고 했다. (359쪽)
그래서 저자는 엄마의 정신적 고통, 그 부분을 계속 연구했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첫번째 책인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을, 그리고 두번째로 이렇게 훌륭한 이 책을 내게 되었고 이런저런 상들도 받았고 뉴욕시립대학에서 정년제 교수도 되고 학계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을까!

뒷부분에는 저자가 20여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어렵고 끈질기게 돌보면서 연구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정말 눈물겹고 참으로 효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 엄마라 하더라도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짐만 되는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엄마를 돌보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 엄마의 어두웠던 과거를 밝히고 끌어안으면서까지 엄마 세대와 전쟁과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연구하고 엄마의 병을 치유해 나갔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그 부분에 감동했다.
엄마에게서 1/2의 유전자만 물려받은 저자였지만 같은 여자로서 불행에 처한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보살피고 전쟁과 가난과 사회 혼란기에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그 후유증을 직시하며 연구를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스토리 전개와 묘사가 치밀하고 짜임새와 깊이와 흥미를 두루 갖춘 문장력도 탁월하지만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한국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는 지금도 우리에게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땅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자식들이 공부하도록 뒷받침해 준 조상들의 고난과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다는 것!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저자의 개인적인 성공스토리를 뛰어넘어 불행했던 우리 민족과 조상들에 대한 진혼곡이며 우리 민족이 집단적으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글이며 우리 민족의 풍속과 역사의 탐구서이며 세상 어디 가서라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굳굳하게 살아남아 이렇게 잘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격려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이 책에도 해당되어 엄마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생이 제국주의와 전쟁과 집단적인 억압과 피해라고 하는 권력과 정치에 직접 연관된 일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에게 구조적이고 집요한 차별과 폭력을 일삼는 미국 사회에 울리는 경종일 수도 있겠다.

* 이 책은 백인이었지만 ‘힐빌리’라는 미국 깡촌에서 자라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가 되고 지금은 공화당 상원의원이 된 J.D.밴스가 쓴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과 비슷한 면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