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 합법적 권력은 가난을 어떻게 지배하는가?
에드워드 로이스 지음, 배충효 옮김 / 명태 / 2015년 11월
평점 :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에드워드 로이스 지음, 배충효 옮김. 2015년, 명태.
1. 이 번역판 책은 우리나라에서 2015년에 처음 출간되었는데, 원저 <Poverty and Power>는 미국에서 2009년에 발행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금부터 약 9년 전쯤에 미국에서 발행된 것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시의적으로 적절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전혀 그렇지 아니했다. 하기야 가난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항상적인 문제이기에 이 가난의 문제는 언제나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겠다. 아마도 10년이 지난 2019년 현재에는 미국에서 저 가난의 문제가 더 심각해졌겠지!
2.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도 “흑인이나 히스패닉 사람들은 백인이나 동양계(한국, 일본, 중국) 사람들보다고 유전적으로 게으르고, 머리가 좋지 않고, 교육에 대한 열의도 없어 교육도 안 시키고, 윤리개념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빈부격차가 심한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런 인종적인 이유가 주된 이유일 것이고, 그러한 인종문제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회통합이 쉽지 않을 것이며, 사회통합에 대한 열의가 없다 보니까 누진세율이나 사회복지를 통한 소득재분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사회복지 제도가 정착이 잘 안 되고 있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 책은 미국에 가 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의 막연하고 뿌리 깊은 인종과 빈곤과 미국에 관한 선입견과 편견들을 체계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난과 불평등은 개인 탓이 아니고 체제 탓이라고!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미국은 세계 최강이고 억만장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면서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하여 빈부격차와 인종차별이 심하고, 감옥에 있는 국민들의 비율이 세계 최고이고, 영아사망률이 높은 나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역시 그러한 실상을 이 책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은 가난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가난은 워낙 체계적이어서 국가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3. 우리가 아는 미국은 ‘아메리카 드림’을 이룰 수 있는 나라였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 가거나 유학 가서 꿈을 이룬 경우가 많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자기는 고생하더라도 자식 교육에 열성을 쏟았기에 꿈을 이루는 케이스가 많았지만, 미국에서 원래부터 가난했던 흑인들이나 남미계 사람들(히스패닉)은 백인들과 접촉하기 힘든 열악한 주거환경과 교육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도 못하고, 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는 경향이 많고, 여성들은 중고등하교 때에 미혼모가 되는 경향이 많다.
언젠가 1990년대 전후에 미국에서 정부차원에서 ‘미혼모와의 전쟁’을 벌이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기사에는 고등학교에 아이와 함께 등교하는 흑인 여학생의 사진이 실려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자꾸만 임신하고 일하기를 귀찮아하고 사회복지에만 매달리는 흑인 10대 미혼모의 이미지를 전달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을 재확인하고 가난을 유발하는 정치·경제적인 요인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 책은 지적하지만 그래도 어차피 이 문제는 개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어쨌든 미혼모와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동안 가난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 것 같다.
빈곤층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는 아무래도 금전적인-생활상의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남편을 찾는 일인데 빈곤층이 겪는 열악한 거주환경, 인종차별, 사회적 고립, 주변 사람들보부터 받은 성적 학대, 열악한 학교, 형편없는 일자리, 불충분한 대중적 지지 환경 속에서 자란 가난한 여성들은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과 자폐, 애정 결핍, 자기혐오감 같은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어 현명하게 제대로 된 남편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하기야 어느 사회든지 끼리끼리 문화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강남사람들은 강남사람들끼리 결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나라에서든지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생활안정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것을 기대했다가는 오히려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괜찮은 남편을 만나려면 우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4.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든지 부의 양극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데 이 책은 미국이 가장 심하고 그 중심에는 일자리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인용되는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2012)와 <워킹 푸어-빈곤의 경계에서 말한다>(데이비드 K. 쉬플러지음, 2009) 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어느 나라든지 저임금 일자리가 만연하여 평생 동안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 벋어날 수 없는 사람들(Working poor)이 많다. 젊고 교육수준이 낮은 흑인 남성들이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여러 차례 실업을 경험 하였거나 만성적인 실업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낮은 임금의 일자리가 더 위험하고(위험의 외주화), 더 독재가 횡행하고, 더 단기적이어서 불안정하고, 여성들이 더 많고, 노동조합이 더 없고, 승진기회도 장래성도 없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독일도 그렇고 다른 모든 나라도 그렇다! 어느 나라든 일자리에는 우열이 있다. 일자리가 평등하지 않는 한 인간은 평등하다는 얘기는 다 헛된 구호이다.
2000년경부터 전(全)세계적으로 ‘세계화’ 되고 ‘자동화’ 되면서 아웃소싱, 다운사이징, 업무자동화, 사업체의 해외이전, 장기실업, 일자리 없는 성장, 정체된 임금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피해는 상류층 사람들이 아닌 사회밑바닥에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다.
5. 우리나라에 운칠기삼(運七技三, 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라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 말을 더 실감하고 있다. 특히 사회양극화가 더욱 고착화되는 시기에 살고 있다 보니 태어날 때 조상 잘 만나고, 좋은 두뇌와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고, 행운이 잘 따라주고... 이런 것이 7할 아니라 8~9할이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기야 노력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도 타고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운이라는 것이 미국에서는 인종적으로 비히스패닉 백인으로 태어나는 것이냐 흑인, 히스패닉으로 태어나는 것이냐로 확연히 갈린다.
“2005년 미국에서 가장 큰 소수집단인 흑인과 히스패닉의 빈곤율은 각각 24.9%와 21.8%를 기록해, 비히스패닉계 백인의 빈곤율 8.3%를 크게 웃돌았다. 미국에서 흑인과 히스패닉은 전체 인구의 20%정도를 차지할 뿐이지만 빈곤층의 50%, 극빈층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흑인들과 히스패닉은 상대적으로 교육수준과 자택소유비율, 소득과 재산수준이 낮다. 반면 실업률과 수감률, 한부모가정 비율, 건강악화에 시달릴 확률은 높다. 그리고 저임근 노동자로 일하고, 극빈층 거주지역에 거주하며, 빈민가 학교에 다닐 가능성이 크다.” (245쪽)
10여년전에 본 사연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름 진보적인 여성운동을 한 여성이 딸과 함께 미국에 가서 도심 근처의 방값이 싼 저런 빈민가 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자기는 견딜 수 있었는데 딸을 그 지역의 학교에 도저히 넣을 수가 없어서 이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누구나 인종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솔직히 나도 자신이 없다. 미국이 겉으로는 인종차별이 없는 것 같지만 인종차별은 뼈 속에까지 내재되어 있다. 저런 인종문제에 당면하고 있지 않은 우리는 얼마나 다행인가?
6. 어차피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자에서 개인의 인지능력은 최소 40%에서 최대 80%가 결정되는데. 그러한 재능의 상당부분은 가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잘 발전되거나 아니면 가난 때문에 잘 발달하지 못한다. 특히 부모의 긍정적인 유산들, 예컨대 부동산, 교육수준, 인맥, 실용적인 기술, 사교기술, 문화적인 수단들은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 되는데 거꾸로 부모들의 부정적인 유산들도 또한 그렇다. 저소득층 자녀의 아이들은 가지고 태어난 능력과 적성을 온전히 꽃 피우게 하는데 필요한 경제적·사회적·교육적 여건이 잘 안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금수저’ ‘흑수저’ 얘기가 바로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든지 흑수저들은 가난에서 벋어나기가 힘들다는 것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어느 사회든지 상위그룹은 ‘그들만의 리그’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러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집안의 후원과 학연과 인맥 같은 사회적 관계망이 필수적이다. 주로 이들이 누리는 혜택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노고와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과 절망은 한이 없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인종 및 민족차별이 가장 큰 문제이고, 다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열악한 주거문제-교육문제-교통문제-건강보험문제가 심각하다. 이 책에는 그러한 실상이 자세히 언급된다. 미국에서 가난의 문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과 복합적으로 점층적으로 엮여있고 쌓여 있다. 길지만 인용해 보면,
“인종차별은 주거지를 분리시키고, 주거지가 분리되면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주택시장을 둘로 갈라놓고, 불평등한 두 가지 학제를 만들어 낸다. 열악한 주택과 주거환경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더 낳은 주택, 새 차를 구입하거나 양질의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돈을 다 써버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어른들이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이 공부에 열중할 수 없게 만들어 가난을 떨쳐 버리기 어려워진다. 교통문제가 있으면 가난한 가족들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어려움이 생기고, 양육문제는 다시 성차별을 부추기며, 성차별과 양육문제와 교통문제가 모두 뒤섞이면 부모들, 특히 싱글맘들은 좋은 직업을 찾아서 직장생활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병이나 질병에 지나치게 취약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저소득층 사람들은 더위나 추위, 그리고 2005년 뉴올리언즈 사태와 같은 재난에 더 많이 노출되고 그래서 취약하다.
저렇게 중첩적으로 쌓여 있는 문제들을, 악순환의 고리들을, 개인이나 가족이 노~오~력을 해서 끊어버리기가 참으로 쉽지 않겠다. 그러기에 국가가 나서서 도와주고 풀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 중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는 비교적 공교육이 잘 운영되고 있고, 대중교통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고, 건강보험이 잘 정착되어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쪽방촌과 고시원으로 대표되는 주거문제, 각종 성차별과 지금의 ‘미투me-too운동’과 연결된 성폭력문제, 각 가정에게 부담이 되는 아동보육문제 등등은 미국과 거의 똑같다.
7. 우리는 흔히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고 하여 가난을 국가시스템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재능과 노력, 근면성과 절제력 같은 것 때문에 생긴다고 보는 데에 익숙했었는데, 가난의 문제를 그런 개인적인 것 말고 경제적-사회적인 형평성과 공정성, 기회와 결과의 평등과 같은 문제로 확대시켜야 한다. 가난을 경제적 정의와 평등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체계적으로 보아야만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북유럽에서 보는 사회복지 국가시스템이 그런 것 아닐까??
누군가가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어차피 경제문제는 정치문제이고 정치와 경제문제는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저소득층은 부유층에 비해 투표장에 덜 가고, 정치조직에 덜 참여하고, 선거나 그 밖의 정치활동에 참여할 시간적-경제적-정신적 여유가 없어 참여가 적다. 반면에 재벌들과 부유층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기꺼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조직을 동원한다. 또한 미국의 합법적인 로비스트들의 활약은 노골적이다. 이러하니 아무래도 선거 때에 당선에 신경을 쓰는 정치인들은 부자들의 요구사항에 신경을 쓰고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저소득층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답이 안 나온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미국 사회에서 가난은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는 미국의 경제구조 탓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정치 구조 탓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가난이 지속되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기업의 힘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좌파정당의 출현을 저해하며, 재분배 개혁 달성 노력을 방해하는 미국의 오래된 정치제도 때문이다. 빈곤층의 이익을 외면하고, 우리가 보다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정부정책의 시행을 가로막는 주범이 바로 미국 정치 시스템 구조 그 자체인 것이다.”(217쪽)
8. 이 책은 미국의 가난문제를 총체적으로 정리하여 보여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 미국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미국 이야기지만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의 문제는 해결이 참으로 쉽지 않겠다는 사실에 많이 답답했다.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엄청 많고 이런 책과 보고서도 많이 나와 있겠지만, 그리고 중첩되고 누적되어 온 그 가난을 해결하는 방안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가난의 문제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오늘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문재인 정부에게 좀 더 좌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사회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라고 충고하고 있는데 그것이 해결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 가난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처절함에 공감을 하면서도 안온한 나의 자리가 왠지 불안하고 미안하고 죄스럽다.
* 그런데 이 책에는 주(註)가 안 나온다. 번역과정에서 빠진 것 같다. 참고하고 싶은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