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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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만 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하루 웃었다 하루 울었다 했다. 하루는 글이 잘써진다고, 이만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다가 다음날에는 전날 쓴 글을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꾸준히 써야 한다고들 말했다. 적어도 오 년을 꾸준히 썼지만 글이 늘지 않았다. 평생을 써도 아무 의미 없는 장면들만 만들어내리라는 공포가 근육을 굳게 했다."

나는, 책을 곱게 펴서 내 얼굴위에 얹었다. 보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술의 진짜 얼굴을 보고싶었다. 나도.
하지만 볼 수 없었고, 꿈도 꾸지 못했다. 범인의 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더 비참한 건, 예술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처음엔 아쉬웠는데, 조금 지나니 예술의 진짜 얼굴을 볼 자격이 있는 천재적인 사람에 대해서, 그냥 덤덤히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정말 이젠 이게 아닌거구나..

예술의 열매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쇼코의 미소에서 작가를 본다.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힘들었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그 시간동안 그도 아마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이 소설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까지 , 그 인내의 시간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의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아가고, 절박하게 매달리고.. 그 과정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 이 글귀에 숨겨놓은것이 아닐까. 자기 마음을.

"미스터 김이 너에 대해서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몰라. 네가 만든 영화가 상영된 영화제에 다녀왔던 이야기도 쓰셨어"

신기하게도, 미스터김(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쇼코, 주인공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거짓말로 서로의 사정을 숨겼고, 서로의 아픔을 묻어버렸지만, 오히려 더 진실한 마음이 드러났다. 곳곳에서
솔직하지 못함에도 더 진실해서 슬펐던 , 그래서 서늘하지만 끝은 미묘하게 슬픈 쇼코의 미소였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잘 가요, 선배. 나는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고, 선배를 보내고 나 또한 그 얼굴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도."

미진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선배가 러시아 유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율라를 만나고 선배 이야기를 하면서, 소은은 어느샌가 선배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학생운동 노래패의 전통을 중요시 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때는 후배가 마음에 안 들면 세워놓고 빠따로 두들겨 팼어. 그게 다 교육이었지" 라고 소은에게 충고하는 변리사 선배의 말에 "지랄" 이라는 대사로 미진 선배는 소은에게 첫 인상을 남기게 된다.

노래패의 학생운동의 전통을 끊었다고 비난받는 선배, 하지만 그러한 선배도 그 당시엔 스물 다섯의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고, 그 비난을 감당하기엔 여렸다. 그리고 소은은 그런 선배가 좋았다. 진심을 다 담아 전하지 못해 뒤늦게 러시아 땅을 밟게 되었지만.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냐고 이야기 하면서."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 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상대방의 어둠이 너무 짙어지면 그 어둠을 나눠갖지 못하는 이상, 부담감 혹은 비슷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최대한 상대에게 많은걸 베풀고 싶고 도와주고 싶지만 한계가 있음을 느낄 때 , 스스로에게도 이는 상처가 되어버린다. 결국 그 관계는 시들해지고, 멀어지고 소원해진다.

그리고 마음에 아주 오래오래 남아서 그 때 내가 좀 더 손을 내밀었으면 달라졌을까 그때 무작정 뒤돌아버린 나는 나쁜 사람이었던건가 자책하고, 그러다가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를 하고 , 그런 모습에 다시 실망을 하고, 그렇게 인생의 오랜 시간동안 생각하면서 천천히 그 인생의 일정부분을 상대에게 떼어줄 수밖에 없는. 그런 인연이 있다.

어렸을때 그토록 빛나던 언니가, 사회의 흐름에 적응, 혹은 부적응하면서 그리고 원치않는 고통을 얻게 되면서 점차 바래지고,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같이 한 장소에 있기조차 버거워진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이를 외면했던 엄마의 이야기.

아직 이 글 속의 엄마의 나이까지 되보지 못했기에, 이런 인연을 겪어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소설을읽다보면 어느샌가 열여섯 시절의 순애언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도 마음의 빗장을 걸어잠그고, 전혀 상처받지 않을 상대들과 함께 하며 어디엔가 있을 순애언니를 무의식적으로 밀어낸것은 아닐까.


쇼코의 미소 뿐만 아니라 이 책 안에 있는 다른 단편들도 보면, 화자가 모두 여자로서,(생각해보니 장강명 외에 자신의 본래 성이 아닌 반대의 성별을 주인공으로 쓴 사람은 본 적 없는것 같다) 섬세하게 심리의 변화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같이 사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부터 , 선배, 이모, 교환학생으로 알게 된 일본 여자아이, 나이로비 출신의 남자, 엄마, 할머니, 손녀 등..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슬픔이 담겨있지만 공통적인 점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빚어내는 아픈 순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시니컬하거나, 객관적이라기 보다, 좀 더 따뜻하고 조금은 처연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파는 아닌 , 현대적이면서도 과거의 한국소설을 조금씩 담아놓은 느낌이었다.

요즘들어 허무주의이거나 시니컬하거나, 결국엔 답이 없다는 점을 열린 결말로 내놓은 현대소설이 많은데, 그 중 이 소설은 그런 열린결말을 허무함이 아니라 좀 더 애틋함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중요함을 알게되는 시점은 왜 그 관계가 끝나고 나서일까.

그 과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 이 소설은 두고두고,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아직도 그 주인공들의 마음의 잔물결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서 파동으로 일렁이는 듯하다.
오랜만에 마음의 매듭을 맺은것 같다.







ps-작가의 말도 감동이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

나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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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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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가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고, 페북에서 장강명 작가가 좋게 써 놓은 평이 걸리기도 했다.
발목이 아파 하루 연가를 내고 아침에 주문했는데 당일배송으로 왔다. 두세시간 안에 읽고 마쳤다 .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말했다. 그 작가의 말대로 나도 유쾌하게 읽었다.

상당히 산뜻한 소설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주인공 안은영과 홍인표 그리고 그 둘이 있는 고등학교의 여러 인물들이 각 10개의 챕터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읽을수록 일본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퇴마와 알 수 없는 액토플라즘, 그리고 그와 연관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소소한 일상이야기들이 얽히고 설켜 가끔은 실소를 , 가끔은 가슴찡함을 느끼게 해준다

학교안의 이야기가 주로 웃음을 준다면, 안은영이 개인적으로 겪은 이야기들은 약간의 먹먹함을 주기도 한다(첫 친구 정현이와 첫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김강선은 아련한 느낌을 준다)

소설이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 아니면 만화로 그려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는 쉼표가 없고 , 장면들은 다이나믹하다
여러 매체로 바뀌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유쾌하게 읽었고 씩씩한 안은영이 좋았다

저런 친구 한명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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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가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고, 페북에서 장강명 작가가 좋게 써 놓은 평이 걸리기도 했다.
발목이 아파 하루 연가를 내고 아침에 주문했는데 당일배송으로 왔다. 두세시간 안에 읽고 마쳤다 .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 이야기를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말했다. 그 작가의 말대로 나도 유쾌하게 읽었다.

상당히 산뜻한 소설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주인공 안은영과 홍인표 그리고 그 둘이 있는 고등학교의 여러 인물들이 각 10개의 챕터에서 다뤄지고 있는데, 읽을수록 일본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퇴마와 알 수 없는 액토플라즘, 그리고 그와 연관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소소한 일상이야기들이 얽히고 설켜 가끔은 실소를 , 가끔은 가슴찡함을 느끼게 해준다

학교안의 이야기가 주로 웃음을 준다면, 안은영이 개인적으로 겪은 이야기들은 약간의 먹먹함을 주기도 한다(첫 친구 정현이와 첫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김강선은 아련한 느낌을 준다)

소설이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 아니면 만화로 그려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는 쉼표가 없고 , 장면들은 다이나믹하다
여러 매체로 바뀌어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유쾌하게 읽었고 씩씩한 안은영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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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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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다가 누군가 손을 내밀거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붙잡으라고"

"슬퍼질까 봐 두려워 하지마
슬픔은 아름다운 무언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분명한 흔적이거든"


"첫 날 나한테 물었지?
난 존재의 의미를 전혀 몰라
다만 삶에 대해 내가 배운 모든 걸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는 있어

삶은 계속 된다는거"

제목 그대로, 죽고 싶은 의사와 거짓말쟁이 할머니 둘이 7일동안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그 7일이 지나면 죽기를 갈망하던 의사는 장례식을 치룰 예정이라 생각하고, 할머니 사라는 그가 절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그와 그녀가 만나면서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독자인 나는 그냥 급작스레 벌어진 '사건'에 던져진 듯 했다

7일이라는 7챕터 속에 의사의 과거, 사라의 과거, 그리고 둘이 만나면서 생기는 사고와 사건들, 새롭게 만난 사람들.. 이유도 설명도 없이 급작스레 돌아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처음에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프랑스 영화가 그러하듯, 이해하려 안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나도 사라를 익숙하게 대하게 되고 또 의사의 당혹스러운 마음에 감정이입이 되게 된다 .

그러다 잠깐씩 언급되는 사라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마음이 조금씩 아려오다가

마지막 챕터에서 먹먹함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 실타래가 풀리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조금씩 아귀가 맞아들어가면서 마음이 먹먹해진다

언뜻 마지막으로 갈수록 로맹가리의 '자기앞의 생'이 떠오르는건 프랑스 특유의 감수성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라고 물었던 꼬마 주인공이 느닷없이 떠올리는 사람은 나 뿐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살면서 누군가 내게 손을 저렇게 내밀어 줄까
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잡고싶다 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저렇게 손을 내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공유한다는건 참 멋진 일이고 아름다운 일이라는걸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의사는 참 멋진 사람이었고 사라도 멋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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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영혼을 보고 웃는다면, 이 웃음에는 밝은 곳에서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웃는 웃음과는 다른, 큰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플라톤 <국가>-


대니얼 키스가 서문에 플라톤의 국가를 인용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영혼을 그는 찰리 고든이란 한 인물로 그려내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만큼 한 사람의 정신적인 성장과 쇠퇴를 잘 그리는 소설은 없을거라고 생각한다(참고로 대니얼 키스는 심리학 전공자이다)

이 책은 IQ70이었던 찰리가 비크맨 대학의 뇌외과 및 심리학교수들의 도움을 받아(실험 대상이긴 하지만) IQ170이 넘는 사람이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참 정교한게, 책 전체 내용의 틀은 찰리가 수술하기 전부터 수술하고 난 뒤, 시간의 흐름대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경과보고서를 쓰는 형태로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수술 전의 찰리의 경과보고서는 맞춤법도 틀리고 , 생각도 매우 단순하고 , 솔직하다. 사실 맞춤법 틀린 보고서를 계속해서 본다는건 나름의 고역이기도 했지만 찰리가 예전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볼 수 있다.

우리가 보았을 땐 순수하게 찰리를 보며 웃어주는 것이 아님에도 그는 자신을 보고 웃는 것에 만족하고, 또 좋아한다. 그래서 그러한 순수한 찰리의 마음을 악용해서 나쁜 짓을 하거나 조롱하는 주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찰리는 모르기에, 그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앨리스 키니언 선생은 직적장애 성인센터의 교사로서, 찰리가 뇌 수술을 받게 적극적으로 도와준 여자이다. 참 신기했던게 지능이 낮았을때의 찰리가 본 키니언 선생과, 수술을 하고나서 점점 정신적으로 발달하면서 마주하게 된 키니언 선생은 매우 다른 모습이다. 처음에 수술 전의 찰리가 경과보고서에 쓴 키니언 선생을 상상했을 땐 나이가 있는 중년의 여성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면 보는 시각에서도 차이가 나게 되어서 키니언을 매우 매력적인 또래의 여성으로 그려낸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적 주변 인물들 , 가족들을 보았을 때를 회상하면 사진 속 그 얼굴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아마도 그런 시각도 뇌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에 같은 인물을 다르게 그려내는 것 같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러한 한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의 심리적 성장과 쇠퇴를 짧은 시간 안에 수술로 인한 성장과 부작용으로 빗대어서 총체적으로 심리학을 볼 수 있다는 면 뿐만이 아니라, 찰리의 소원이었던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잘 지내고, 자신이 아는 사람들과 동등한 친구가 되길 바랬던 , 인간적인 교류와 人間愛의 결정체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을 때 동굴속에선 다이아몬드로 보였던 그것이 사실 하나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 인간애로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본연적인 고독이 있음을 깨우치는 순간, 그 순간순간을 잘 나타내주고 있어서 감동을 받았다.

그가 똑똑해지고 말고 상관 없이 그가 추구했던 것은 단 한가지였다. 비록 자신의 부모가 자길 버리듯 큰아버지에게 맡기고, 의도적으로 여동생이 자길 괴롭혔어도, 그는 가족이 보고싶었고 , 자기를 놀리고 조롱하고 괴롭히는 친구들이어도, 그 친구들과 이야기 하고 소통을 하고싶어했다.

하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성장해서 뒤돌아 봤을 때, 동굴속에서 빛으로 걸어나왔을 때 자신은 빛 아래 있지만 뒤돌아보면 그림자가 짙어짐을 알게 되고, 그 그림자 속에 자신의 뒤틀렸던, 몰랐었지만 이젠 알 수밖에 없는 기억의 파편들이 숨어들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그 때의 심리적인 충격과 분노를 이 소설에선 잘 드러내고 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똑똑한 것이...그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이 과연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지켜보고 있는 내 마음이 아팠다. 성장한다는게 아픔을 동반한다지만..찰리에겐 너무 큰 아픔이고..또 치유될 수가 없는 상처들이 많았다.

게다가, 비크맨 대학의 니머교수와 스트라우스박사가 찰리의 뇌 수술을 감행한 것은 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수술을 전 세계에 실험으로써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그들의 또 다른 목적은 찰리에게 또 다른 상처-마치 과거의 찰리고든은 인간이 아니었던 , 짐승같았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며 현재의 그를 전시물로 여기는 행동으로 인한- 를 입고 만다.

그 과정에서 또 키니언 선생과의 사랑과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내적인 한계에 대해서도 괴로움을 경과보고서에 토로하고 있다. 그는 점점 똑똑해질수록 오히려 경과보고서에 실망, 분노, 아픔을 기록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가 원한건 단 하나뿐인데. 사랑.

성장해가면서 배움의 즐거움, 그리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며 느끼는 즐거움, 이런것도 좋지만 한편으로 과거의 자신을 알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힘들 때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엘저넌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

엘저넌은 찰리가 수술 하기 전 미리 동물생체 실험으로 동일한 수술을 거친 쥐로서, 지능이 매우 발달한 쥐인데 찰리는 이 실험용 쥐가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고 그를 끔찍히 여기게 된다

하지만 엘저넌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에서 테스트 하는 여러 과제들을 거부하고 서서히 먹이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죽어간다. 찰리의 분신과도 같은 엘저넌의 죽음은 , 찰리에게도 드리우게 되는데 찰리는 점차 자신의 지능이 떨어질 것임을 자신이 스스로 증명하게 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스스로 세우게 된다.

마치 스스로 임종을 준비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찰리도 그냥 엘저넌처럼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게 낫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바보에서 천재가 되었는데, 그래서 자신이 바보였을때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는데,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라는것은 잔인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아직도 존재하는 그 시절의 찰리가 있음을 알기에,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그 시절의 찰리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찰리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것을 느꼈다

일 평생 평범하게, 하나만 알고 하나만 겪은것보다 그것이 더 나은 삶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직접 글로 쓸 수 있었다.

마지막은 너무 비극적이진 않다. 왜냐면 다시 그 긍정적이고 밝은 하지만 조금 정신이 어린 찰리로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글로 쓰여진 것보다 원래 더 많은 것을 마음속의 주석으로 달고 있는게 독자 아닌가.

나는 많이 슬펐고 또 많이 씁쓸했다.

아마 다시 이 책을 읽을때마다 항상 찰리를 그리워 할 것 같다

어떠한 시절의 찰리라도 나는 그리울 것 같다.

사랑을 원했지만, 그 누구-부모,친구,연인-와도 되지 못했던..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수술대에 올랐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던

그런 찰리에게 꽃다발을 선물해주고 싶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자신의 집을 지나가게 되면 엘저넌에게 꽃을 바쳐달란 말과 같이 나는 그에게 주고싶다)

먼길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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