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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잊고 지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연말, 다시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하라미(사생아를 낮춰 부르는 말) 에 관한 폭언을 일삼는 엄마 나나 밑에 있는 마리암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보다 덮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다음, 마리암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비웃고 거칠기만 했던 엄마 나나는 사실 마리암 없이 살 수 없었던 존재였고, 마리암을 아껴주기만 할 것 같았던 아버지 잘랄은 사실 본가인 자기 집에 들이지 않고 밖에서 잠을 자게끔 하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리기만 했던 열다섯 살 마리암은 결과가 그렇게 될 줄 모르기에, 아버지의 집을 찾아 나서고 그 직후 어머니의 자살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제 아버지라 하기엔 아버지답지 않은 잘랄 밑에서, 그리고 그의 정실부인 셋 밑에서 키워질 수 없던 마리암은 급히 자신보다 서른 살,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구두 제작 공 라시드에게 팔려가듯 결혼을 하게 된다.


헤라트에서 카불로 가게 되면서 마리암은 몰랐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이 헤라트의 땅을 밟지 못하고 그토록 좋아했던 파이 줄라 선생 또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란걸.


이후 라시드와의 삶은 지옥 같은 삶이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되면서 냉담과 폭언, 시간이 지나면서 폭행을 일삼았고 자기를 보호해주는 사람 없이 외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어쩌면 평생 얽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옆 옆집의 파리바의 막내딸 라일라는 아프간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새로 집권한 헤크마트야르가 로켓포를 쏘아 마을이 파괴되면서 크게 다쳐 라시드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둘의 인생은 얽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마리암이 아이를 낳았다면 딸 정도 되었을 라일라. 그녀는 파리바와 바비 아래에 태어나 아버지 바비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여성 또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환경 아래에서 대학을 생각할 정도로 학구적이고 때묻지 않은 모습으로 자라났었다.


하지만 로켓 포로 인하여 어머니 아버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은 그녀는 사랑하는 타리크의 죽음 앞에서 결국 라시드와의 결혼을 선택하고 만다.


결국 본처와 첩으로 얽히게 된 둘은 처음에 사이가 나빴지만 라시드의 폭행 아래에서, 그리고 라일라가 낳은 딸 아지자를 안아보게 되면서 모성과 동지애로 라일라를 대할 수 있게 된다.


인습과 전쟁으로 인하여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고통을 공유하게 된 마리암과 라일라. 둘은 하루에 차 석 잔을 같이 마시며 갑갑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의 휴식을 가지며 우정을 쌓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라시드의 재정상황도 극단으로 치닫고 굶는 상황까지 치달으게 되면서 라시드는 아지자를 고아원에 맡기게 된다.


제일 답답하면서도 마음 아팠던 것은 라일라가 고아원에 맡긴 아지자를 보러 가려면 아프간의 법으로는 남자가 동행해야만 바깥출입이 가능한지라 라시드의 협조 없이는 딸을 보러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라시드가 협조를 하지 않으면서 결국 경찰 몰래 혼자 아지자를 보러 갔다가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딸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라일라를 보면서, 이보다 더 참혹한 상황이 존재하는 것인지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타리크가 돌아오면서 -사실 라시드가 일부러 라일라가 자신에게 올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타리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모두가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아들 잘마이가 라시드에게 이를 누설하면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라일라가 죽을뻔하자 마리암이 라시드를 죽이게 된다.


-그녀는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중략)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p505)-



인생을 바로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본다던가, 조감도로 볼 수 있었다면, 마리암은 본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아버지 잘랄을 보러 헤리트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럼 엄마 나나도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라시드와 결혼을 하느니 잘랄의 집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 떨어지는 포환들 속에서 그녀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뒤돌아 볼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만 .. 마리암은 라일라와 아지자 잘마이를 타리크에게 보내고 그들은 마리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잡일을 하게된다.


그리고 마리암은 그래도 누군가에게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었고 사랑을 줄 수 있었던 존재였음에 감사해하며, 라일라와 아지자를 그리워하고..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 잘랄을 용서하며 어머니 나나와 파이줄라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감옥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라일라는 마리에서 생활은 전과 달리 너무나 평화롭고 좋았지만,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마리암이 목숨을 걸면서 지켰던 라일라와 아지자의 삶이 결국 타지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닐 것임을 알기에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너를 내 딸로 삼지 않고 그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게 했던 걸 후회한다. 뭣 때문에 그랬을까? 체면을 구길까 봐 두려워서? 나의 평판에 먹칠을 하기 싫어서? 이 저주받은 전쟁에서 내가 보았던 끔찍한 것들과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모르겠구나. 어쩌면 이것은 무정한 사람에 대한 벌인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뭔가를 깨닫는 사람들을 위한 벌인지 모르겠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551p)-

그리고 그 와중에 마리암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헤리트를 라일라가 가서 그녀의 어렸을 적 살았던 -십오년간 엄마 나나와 살았던- 오두막과, 파이줄라 선생 댁에 가서 마리암의 아버지 잘랄의 마지막 선물인 유산-1987년 이미 죽었다-을 대신 확인하고 그녀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이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562p)-


그 후 라일라는 카불로 돌아가 아지자가 있었던 고아원을 잘랄의 유산으로 개조하고 발전시킨 뒤 교사로서 삶을 이어간다. 라일라는 다음 세대들인 아이들의 교육을 맡으며 새로운 삶의 빛-로켓탄의 불빛이 아닌-을 보여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세대 간 여성의 모습 -하라미로서 학교에 가보지도 못하고 오두막집에서 살며 코란만 배운 채 부르카를 입는 여성 마리암에서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대학을 갈 계획을 세우며 부르카를 입지 않았던, 공산주의 하에서 자라온 라일라같은 여성, 그리고 내전으로 생존 자체가 고통받는 상황 속에서 태어난 아지자같은 여성까지-을 보여주며, 세대에 따른 자라온 환경의 차이가 있음에도 외부적인 상황으로 고통받고 학대받는 것은 전 세대를 아우른 전쟁 하에서의 여성의 모습이라는 데서 인권의 부재, 몰살의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나 마음이 아파왔다.


한 곳에서는 끊임없이 로켓탄을 쏘아 올리고, 한 곳에서는 그에 맞아 삶을 마감한다. 남은 사람은 그 로켓탄의 조각에 꽃을 심어놓는다.이 이야기는 로켓탄을 쏘아올리는 자와 로켓 꽃을 심는 자 그 사이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서는 또한 이러한 극한 상황과 변질된 인습 속에서 사람들이 폭력에 익숙해지고,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가정에까지 퍼져 가정 내에서까지 폭력이 빈번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사라져가는 인간성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과 아이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법으로 인해서 차별이 정당화되는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도 모성과 인간애는 메마른 땅의 갈라진 틈 속의 하나의 잡초처럼 , 로켓 꽃처럼 힘겹지만 수줍게 내밀고 있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가슴 깊이 그들에게 평화가 오길,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꽃을 심을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길.. 기도해본다.


-



이 책을 산 건 대학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랐다. 그래 나는 이런 책을 샀고, 이런 주제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샌가 이런 문제들은 그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외면하기 바빴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에 바빴다.



2021년에는 좀 더 다시.. 예전처럼 시야를 넓히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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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쇼팽의 삶과 작품을 총망라한 가이드북 피아노 작품 해설 시리즈 1
고사카 유코 지음, 박선영 옮김 / 음악세계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각 작품을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쇼팽에 한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었습니다 모차르트책도 연주법이 아니라 이런 음악가의 삶과 함께 다루었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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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지냈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연말, 다시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하라미(사생아를 낮춰 부르는 말) 에 관한 폭언을 일삼는 엄마 나나 밑에 있는 마리암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보다 덮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다음, 마리암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녀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비웃고 거칠기만 했던 엄마 나나는 사실 마리암 없이 살 수 없었던 존재였고, 마리암을 아껴주기만 할 것 같았던 아버지 잘랄은 사실 본가인 자기 집에 들이지 않고 밖에서 잠을 자게끔 하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리기만 했던 열다섯 살 마리암은 결과가 그렇게 될 줄 모르기에, 아버지의 집을 찾아 나서고 그 직후 어머니의 자살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제 아버지라 하기엔 아버지답지 않은 잘랄 밑에서, 그리고 그의 정실부인 셋 밑에서 키워질 수 없던 마리암은 급히 자신보다 서른 살, 아니 그 이상으로 많은 구두 제작 공 라시드에게 팔려가듯 결혼을 하게 된다.

헤라트에서 카불로 가게 되면서 마리암은 몰랐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이 헤라트의 땅을 밟지 못하고 그토록 좋아했던 파이 줄라 선생 또한 보지 못하게 될 것이란걸.

이후 라시드와의 삶은 지옥 같은 삶이었다. 아이를 유산하게 되면서 냉담과 폭언, 시간이 지나면서 폭행을 일삼았고 자기를 보호해주는 사람 없이 외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어쩌면 평생 얽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옆 옆집의 파리바의 막내딸 라일라는 아프간에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새로 집권한 헤크마트야르가 로켓포를 쏘아 마을이 파괴되면서 크게 다쳐 라시드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둘의 인생은 얽히게 된다.

어떻게 보면 마리암이 아이를 낳았다면 딸 정도 되었을 라일라. 그녀는 파리바와 바비 아래에 태어나 아버지 바비의 보호와 사랑 속에서 여성 또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환경 아래에서 대학을 생각할 정도로 학구적이고 때묻지 않은 모습으로 자라났었다.

하지만 로켓 포로 인하여 어머니 아버지 모두 죽고 혼자 살아남은 그녀는 사랑하는 타리크의 죽음 앞에서 결국 라시드와의 결혼을 선택하고 만다.

결국 본처와 첩으로 얽히게 된 둘은 처음에 사이가 나빴지만 라시드의 폭행 아래에서, 그리고 라일라가 낳은 딸 아지자를 안아보게 되면서 모성과 동지애로 라일라를 대할 수 있게 된다.

인습과 전쟁으로 인하여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고통을 공유하게 된 마리암과 라일라. 둘은 하루에 차 석 잔을 같이 마시며 갑갑한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의 휴식을 가지며 우정을 쌓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라시드의 재정상황도 극단으로 치닫고 굶는 상황까지 치달으게 되면서 라시드는 아지자를 고아원에 맡기게 된다.

제일 답답하면서도 마음 아팠던 것은 라일라가 고아원에 맡긴 아지자를 보러 가려면 아프간의 법으로는 남자가 동행해야만 바깥출입이 가능한지라 라시드의 협조 없이는 딸을 보러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라시드가 협조를 하지 않으면서 결국 경찰 몰래 혼자 아지자를 보러 갔다가 경찰에게 폭행당하고 딸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오는 라일라를 보면서, 이보다 더 참혹한 상황이 존재하는 것인지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타리크가 돌아오면서 -사실 라시드가 일부러 라일라가 자신에게 올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해 타리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와 함께 모두가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아들 잘마이가 라시드에게 이를 누설하면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라일라가 죽을뻔하자 마리암이 라시드를 죽이게 된다.


그녀는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중략)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p505)


인생을 바로 앞만 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본다던가, 조감도로 볼 수 있었다면, 마리암은 본인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을까.

아버지 잘랄을 보러 헤리트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럼 엄마 나나도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라시드와 결혼을 하느니 잘랄의 집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 속에서, 떨어지는 포환들 속에서 그녀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고 뒤돌아 볼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만 .. 마리암은 라일라와 아지자 잘마이를 타리크에게 보내고 그들은 마리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잡일을 하게된다.

그리고 마리암은 그래도 누군가에게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었고 사랑을 줄 수 있었던 존재였음에 감사해하며, 라일라와 아지자를 그리워하고..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 잘랄을 용서하며 어머니 나나와 파이줄라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감옥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라일라는 마리에서 생활은 전과 달리 너무나 평화롭고 좋았지만,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마리암이 목숨을 걸면서 지켰던 라일라와 아지자의 삶이 결국 타지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닐 것임을 알기에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너를 내 딸로 삼지 않고 그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게 했던 걸 후회한다.
뭣 때문에 그랬을까? 체면을 구길까 봐 두려워서?
나의 평판에 먹칠을 하기 싫어서?
이 저주받은 전쟁에서 내가 보았던 끔찍한 것들과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모르겠구나.

어쩌면 이것은 무정한 사람에 대한 벌인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뭔가를 깨닫는 사람들을 위한 벌인지 모르겠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551p)

그리고 그 와중에 마리암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 헤리트를 라일라가 가서 그녀의 어렸을 적 살았던 -십오년간 엄마 나나와 살았던- 오두막과, 파이줄라 선생 댁에 가서 마리암의 아버지 잘랄의 마지막 선물인 유산-1987년 이미 죽었다-을 대신 확인하고 그녀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이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562p)


그 후 라일라는 카불로 돌아가 아지자가 있었던 고아원을 잘랄의 유산으로 개조하고 발전시킨 뒤 교사로서 삶을 이어간다. 라일라는 다음 세대들인 아이들의 교육을 맡으며 새로운 삶의 빛-로켓탄의 불빛이 아닌-을 보여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세대 간 여성의 모습 -하라미로서 학교에 가보지도 못하고 오두막집에서 살며 코란만 배운 채 부르카를 입는 여성 마리암에서 학교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대학을 갈 계획을 세우며 부르카를 입지 않았던, 공산주의 하에서 자라온 라일라같은 여성, 그리고 내전으로 생존 자체가 고통받는 상황 속에서 태어난 아지자같은 여성까지-을 보여주며, 세대에 따른 자라온 환경의 차이가 있음에도 외부적인 상황으로 고통받고 학대받는 것은 전 세대를 아우른 전쟁 하에서의 여성의 모습이라는 데서 인권의 부재, 몰살의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나 마음이 아파왔다.

한 곳에서는 끊임없이 로켓탄을 쏘아 올리고, 한 곳에서는 그에 맞아 삶을 마감한다. 남은 사람은 그 로켓탄의 조각에 꽃을 심어놓는다.이 이야기는 로켓탄을 쏘아올리는 자와 로켓 꽃을 심는 자 그 사이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서는 또한 이러한 극한 상황과 변질된 인습 속에서 사람들이 폭력에 익숙해지고,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가정에까지 퍼져 가정 내에서까지 폭력이 빈번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사라져가는 인간성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과 아이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법으로 인해서 차별이 정당화되는 비현실적인 현실 속에서도 모성과 인간애는 메마른 땅의 갈라진 틈 속의 하나의 잡초처럼 , 로켓 꽃처럼 힘겹지만 수줍게 내밀고 있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마리암과 라일라 같은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가슴 깊이 그들에게 평화가 오길,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꽃을 심을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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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마지막 독서가 이 책임에 감사하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되찾은 느낌이었다.

이 책을 산 건 대학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달랐다. 그래 나는 이런 책을 샀고, 이런 주제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샌가 이런 문제들은 그들의 문제일 뿐이라며 외면하기 바빴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에 바빴다.

2019년에는 좀 더 다시.. 예전처럼 시야를 넓히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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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MD 송진경이 뽑은 올해의 책
알라딘(이벤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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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어떤 일은 시간과 함께 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일은 지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은 그러한 노력의 하나였다.

 

 

어느순간 눈을 떠보니 최악의 상황에 갇혀있을 때, 더군다나 그것이 사고일 때 처음에는 부정을 했다. 이건 꿈일 것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런 상황을 받아들어야 했을때엔 화가 났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왜 안좋은 일은 몰아서 오는 것인지 .

 

그 다음으로는 체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단계까지 가기가 제일 힘든 단계이다. 체념을 하기에는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과 이유들이 너무나 주변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이 책은 말해주었다.

 

버스를 탈 때 유난히 덜컹거려서 속이 메스껍고, 앉아있는 자체가 고역일 때

누군가 잡아주는 손에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고.

 

힘들 때 , 그래서 덜컹거리는 인생에서도 누군가가 잡아주는 손 하나로도, 위안을 주는 눈빛 하나로도 버텨나가는 조금의 빛이 될 수 있다고.

 

작가는 스웨덴에서 이십이 년째 거주하면서, 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면서, 그리고 혼자 자폐아 아이를 키우면서, 주변의 따뜻한 손길과 위로, 새로 찾아오는 사랑과 떠나가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견뎌내는 모습들을 덤덤히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이야기들의 나열은 어느샌가 우리에게 , 또 다른 이웃이 되어 건네는 위로의 말로 다가온다.

 

이 책의 페이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했어. 너도 그랬니?' 라고 조곤조곤 말을 건네주며 '하지만 다 지나갈거야.내가 알아'라고 다독여 주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집어든 모두가, 다들 힘든 시기이기에 선택한 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 리뷰를 쓰는 도중에도 나는 ,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조금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한 위로를 해주고 싶다. 조금만 견뎌보자고, 그러면 나도,당신도 어느샌가 비가 그친 햇살 아래,빗물이 톡톡 떨어지는 나무 아래 서있을 것이라고.

 

앞으로도, 이 책을 펴보면 독자들에게 조금의 위로를 나누어주고, 서로 의지하며 힘이 되어주는 그러한 스웨덴 한 마을의 사람들을 잠시나마 곁에 두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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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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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많은 감정이 뒤섞여 들어왔다.

라이너 쿤쩨, 프리모 레비, 마크 로스코, 그리고 위안부와 세월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로 드러난 인간의 잔혹성, 가족의 부재와 상실까지.. 그녀는 많은 비극과 그로 인한 아픔들을, 응집하여 보여주기보다 시어들로 흩어지게 둠으로써 그 아픔의 파편들을 우리가 직접 주어 보고 응시하게 한다.

부표 하나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사이에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 사이에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中-
부표처럼 흔들리면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그 간극, 그리고 그 속의 슬픔에서 시인은 우리 자신이 가라앉은 자일지, 구조된 자일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가라앉힌 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한다. 그들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과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그 간극이 두려움으로 채워지는데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 中-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의해 오히려 더 공격하는, 그리고 먹는 것이 먹히는 것인 줄도 모르는"늑대"와 "하이에나" 같은 존재들에게 맞서기를 말하고 있다.

정직함이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정직함에 대한 부정직한 이해만이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필사적으로 말을 더듬거리며
피가 묵처럼 굳을 때까지 기다리는 그는
-정직한 사람 中-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돌아올 수 있도록
-문턱 저편의 말 中-

시인은 이 시집에서 끊임없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상처들과 상처 입은 존재를 보여준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피 흘리는 존재를 보여주며 이를 묵인하지 말기를 촉구한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이런 다양한 인간들이 시간의 일관성 속에서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나이 들어가고 죽음을 맞이함을 보여준다

한 개의 씨앗에서
삶과 죽음은 두 개의 떡잎처럼 돋아났다
(중략)
한 열매가 대지로 돌아간 그날에

씨앗의 심연이여,
그것은 어떤 피에타인가
-어떤 피에타 中-
우리는 떡잎처럼, 삶과 죽음은 함께이고 우리는 그 함께인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 극단으로 보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사실은 그날의 삶과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견딤 속에서 우리는 고통받고 절망 속에 갇힌듯한 느낌을 받지만, 그리고 여러 일화들 속에서 우리는 슬픔을 발견해내고야 말지만, 이를 받아들이고 스스로가 고통을 주지 않는 존재가 되기를, 고통받는 만큼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시집을 읽으며 예술의 전당에서 한 마크 로스코 전에 갔던 일이 생각났었다. 시 '마크 로스코'를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시를 읽는 내내 형언할 수 없는 아픔들이 몰려왔다.
마크 로스코전에서 회색과 검은색만이 칠해진 캔버스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나는 아무런 설명도 사물도 없는 캔버스 앞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빛이었다.

이미 죽은 마크 로스코가 돌아와서 빛 한 점 그려줄리도 없고, 까만 캔버스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짜잔-하고 나올 리 없는데, 나는 빛을 찾고 있었다.

지나고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내 인생의 희망을 찾고픈 바램을 투영시켰던 것이었다.

시인은 그런 나에게 말해주었다

검은색 위에 더 짙은 검은색이 내려앉을 때
검은색이 비로소 한줄기 빛이 될 때
-마크 로스코 中-


시가 닻이고 돛이며 덫인 삶을 상상해본다. 종이 감옥 속에서의 삶도,

그러한 고뇌와 고통을 감내하며 쓰인 시 하나하나 소중했다.
시인에게 감사하고 창비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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