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냥 읽으면서 끄적끄적.. 내가 생각한 하밀 할아버지와 로자아줌마


-블로그

표면장력 http://blog.naver.com/likewind11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번 썼다 지우길 반복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감정을, 그리고 생각을 첫 문장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결국 이렇게 첫 문장을 장식해버렸지만.

너무나 뜬금없지만, 중학교 동창이 생각났다. 그 아이는 나랑 중학교3학년 시절, 같은 반, 앞자리에 있어서 친해진 친구로 ,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다른데로 갔지만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쭉 약 10여년간을 같이 지냈다. 취향이 비슷했고 섬세한 성격이라서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아이가 임용를 준비하고, 나는 행시를 준비하면서 미묘하게 관계는 조금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아니, 시작은 좋았다. 같이 시립도서관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하면서 9 to 9 은 꼭 지키면서 밥도 같이먹고 산책도 하고, 그러면서 공부도 하고,
어떻게 보면 중학교때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서 더더욱 친해졌다 생각하였고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를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굳이 달라진 시점을 말한자면 친구가 임용에 '먼저' 합격을 하고, 나는 계속 도서관에 있을 때, 우리의 관계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항상 연락이 닿던 친구는 합격 후 신입교사로 지내면서 연락이 뜸해졌고, 나는 공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운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도 뒤늦게 오는 문자, 하지만 싸이월드에는 주말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사진을 업로드 했다. 업로드를 할 시간이 있으면서 몇일 전 보냈던 문자한통 확인할 시간은 없었던 걸까.

하지만 그 서운함은 아마도 내가 아직 붙지 못한 초조함과 불안감이 뒤섞인것일수도 있기에, 섣불리 서운함을 내색할 순 없었다.

입법고시가 끝난 날이었다. 친구는 시험을 마친 나에게 밥을 사준다고 하면서 나오라고 했었다. 시험결과를 대충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던 나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 약속장소에 나갔다.

하지만 그 친구를 보고 나는 조금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맘에 든 옷은 아직 세탁소에서 못찾아왔다면서 불평을 하고, 와인을 곁들이며 자신의 합격 후의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바람에 나는 안그래도 못 본 시험때문에 안좋은 기분이 더더욱 안좋아져버렸다.

하지만 말없이 주억거리면서 그 만남은 정리가 되었고,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최악의 상황은 그 뒤에 일어났다.

우연히 나는 영화리뷰를 써서 영화예매권을 받게 되었는데 나는 그래도 저번에 식사도 사준 그 친구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친구와 짤막하게 무슨 영화를 볼 지 정하고 날짜는 추후에 잡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예매권에 기한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한 내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그 뒤로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장문의 문자로 연락이 안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함께 그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을 써놓기 시작했다. 시험 합격 후부터 연락이 안되는 것에 대한 서운함, 그 와중에 싸이월드를 업데이트 했던 것, 영화 예매권을 받고 제일 먼저 너를 떠올렸지만 너는 나를 성가시게 보는 듯하다 등등 ..
결국 마지막엔 '그래 앞으로 잘 지내길 빌게' 라는 식의, 안녕을 고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문자를 끝맺었다,

그 뒤 행정고시 보기 일주일 전, 편지가 왔다.
시작은 잘 지내니 라는 말로 시작했지만 얼마 뒤 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나는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기적인 편이야 '

어쩌라고?? 라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결국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 없이 자기 상황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고 답장을 기다린다는 말은 있었지만 결국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약 십년간의 우정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이 책에 담긴 7편의 글은 모두 '이해' 와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예전의 '쇼코의 미소' 처럼,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와 우정, 사랑을 담고 있는데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보다 더 '여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여름' 과 '고백'이 여성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고 '601,602' '지나가는 밤' '고백' '손길' 은 여자라서 차별받으며 성장하는 친구 , 자매, 숙모와 조카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기존 대중문학에서 여성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은 흔치 않은데, 사실 여자 남자를 구분짓지 않고 읽어서인지 첫 글인 '그여름'은 자연스럽게 이성애를 다룬 줄 알고 중반까지 읽었다가 알아차렸다. 그리고 순간 당연히 이성애라 당연시 생각한 내 자신이 살짝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성애든 동성애든 본질은 사랑이기에 그 둘은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온전한 이해는 없으며 우리는 모든것을 상대에게 내보일 수 없고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 그렇기에 영원하고 동일한 애정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부드럽고 맑게, 열일곱부터 이십대 초반까지의 순수함을 투영하여 그려내고 있다.

'그 여름' 이 사랑을 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면 '고백' 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친하게 지내던 세 친구 중 한명이 스스로 레즈비언이라 커밍아웃하는데서, 두 친구는 자신들에게 던져진 진실의 무게를 어떻게 감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작품은 이렇듯 공통된 주제를 다르게 풀어나가고 있는데 , 그럼에도 관통하는 주제는 ' 나는 누군가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 라는 것이다.

-
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조차 수이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아서였다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미주의 행복은 진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미주는 그 착각의 크기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너의 이야기에 내가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이 너에게 또다른 수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

이렇게 두 작품은 서른이 넘어 화자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스스로가 상대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음이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그리고 그 오만의 결과는 어떻게 그 끝을 맺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잘못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다 상대를 이해한다 생각하면서 정작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으므로. 어쩌면 화자들과 달리 눈을 감을때까지 우리는 그 착각을 끌어안은채로 살 수도 있으므로.

그리고 아마도 제일 긴 글인 '모래로 지은 집'은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에서 만난 모래,나비,공무가 20살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고, 그 이후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듯 하지만 공무의 가정사에 대한 이해대립 및 군입대, 모래의 남자친구 문제, 나비의 아르바이트로 인한 모래와의 갈등이 순간순간 비춰지면서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삼십대가 되어 과거를 돌아보며 나비는, 선미는, 자기자신이 모래를 잘 알고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된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그건 이미 과거가 된다.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가지만 이는 좀 쓸쓸한 것 같다는 모래는 ,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갈 수 있는 영원한것이 없는 세상을 긍정하고, 관계의 끝을 고한다.
어쩌면 나비는 오히려 모래보다 더 약한 모습을 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더 냉정하고 담담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게 아닐까. 결국 스스로가 그렇다 믿으며 자신의 그런 모습만 보이다가 진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 착각했지만.

'지나가는 밤' 과 '손길' 은 자매간, 숙모와 조카 간의 연대와 갈등을 그린 글이다. '지나가는
밤'은 자매였지만 너무나 다른 성격으로 인해 서로를 단절하게 된 자매가 우연히 언니의 직장 면접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게 되면서 재회한 밤을 그렸다.
은희는 동생 주희를 한심하다 여겼지만, 동생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 그래서 더 자신의 싫은 모습이 투영되어 보여서 냉랭하게 대했음을 현재의 은희는 이해하고 주희를 바라본다.

'손길'은 일곱살부터 열한살까지 주인공 혜인이 이십대 초반, 스물 둘이었던 숙모와 함께 지내면서 느낀 애정, 어린 아이의 눈에서 본 숙모에 대한 시집식구들의 논리가 없는 편견 등을 그려낸다. 열여덟, 삼촌이 죽자 자취를 감춰버린 숙모에 대해 슬픔과 원망을 가지면서도 , 그때 숙모나이보다 나이가 들은 혜인은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
여자의 행동은 혜인에게 이런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렇게 쉽게 떠나버릴 수 있을 정도로 너와 나 사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사실 넌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다고. 그때의 혜인에게 여자의 태도를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것은 그런 메시지에 동의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어쩌면 여자도 울고 싶었는지 모른다. 혜인에게 기대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혜인과 자신 사이를 망쳐버릴까봐, 혜인을 떠나게 할까봐 자제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명랑한 사람이고,나는 심각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가벼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어야지 버림받지 않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고 배우며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더이상 웃음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

601,602 는 주영이가 옆집의 효진이란 친구와 친해지면서, 효진이의 집을 관찰하면서,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친구를 보호하고자 겪게 되는 일을 그려냈다. 여자라고 "밥충이같은 년"이란 소리와 함께 오빠 기준이 효진을 이유없이 때려도 '오라비가 지 동생을 단도리 한다는데 니가 무슨관계고, 몇 대 맞는다고 안 죽는다'고 말하는 효진이 엄마를 보며 주영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주영의 엄마 마저도 너는 운이 좋은거라며 넌 여자라고 못을 박는데서 외로움이 섞인 분노를 느낀다.

아이의 입장에서 겪은 불합리한 폭력에도 성별로 정당화 시키는 부분에서 이런 일을 겪지는 못했어도 기억 어디에선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공감할 법한 글이었다.

'아치디에서' 는 아일랜드에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온 랄도와 말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한국에서 온 하민이 만나고 같이 아일랜드 생활을 견디며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 하고 , 그리고 각자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지와 영주' 의 느낌이 들었던 이 글은, 각자의 삶의 아팠던 부분을 공유하고 위로하며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그려내었다. 다만 그런 삶에 잠시나마 서로가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주었지만 종착지가 되지 못함에 아쉬움을 느끼며.

간호사였으나 좀처럼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며 생활했던, 집에서 오빠의 그늘에 가려 체념해야했던 자기 자신을 이제는 덤덤히 랄도에게 말하고 랄도는 브라질에서 커오면서 남자라는 이유로 억압된 자기 자신을 , 남자답지 못해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어린아이를 내면에 숨기고 진실을 말하기보단 가볍고 게으르게 자신을 나타내어 살았던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렇듯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를 다시 치유해나가면서도 그들은 결국 스쳐지나간다.
삶이 자기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말았을 때, 남은 것이라곤 자신에 대한 미움뿐일 때, 자기 마음을 위로조차 하지 못할때의 속수무책을 나도 알고 있어서

일곱 편 모두가 하나 하나 소중하게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는 작가 최은정의 마음이 곳곳에 녹아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이 30대 중반이 된 주인공들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나 또한 이 글들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일곱편의 글에서 맑은 슬픔을 느끼면서, 마지막으로 전에 읽었을 때 공감갔던 글귀를 써본다.


"사람에겐 흔히 상대적인 진실이란게 있어서 서로가 터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끝내 밝혀지지 않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요컨대 이쪽 마음을 숨기고 있는 마당에는 저쪽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제 마음의 정체까지 모르고 있다면 정녕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 윤대녕)

그 친구와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난 뒤 , 나도 다른 시험에 붙어 입사를 하였고 신입생활을 거치면서 가끔 그 친구 생각을 하였다 .
사실 나는 이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아직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를 하진 못했다. 세월이 지나도 상처는 흉터로 남아있기 마련이고, 새살이 나기에는 이미 한참 지난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아이도 신입시절 힘들었고 , 그래서 더 힘든 상황의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하였다.
나는 시험에 붙은 뒤로 그러한 경험때문에 아직 붙지 못한 다른 친구들에게 가끔 안부문자, 안부 전화는 하곤 했다. 언제든지 힘들면 찾아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도 나는 가끔 그 친구와 함께 공부했던 도서관을 가면 추억에 잠기곤 한다. 같이 밥을 먹던 구내식당, 지금은 없어진 사물함 자리, 커피를 타먹던 정수기, 밥먹고 산책을 갔었던 도서관 바로 뒷산의 오솔길, 막차가 끊길까봐 같이 뛰었던 기억, 같이 탔었던 시내버스.. 마무리는 그닥 아름답진 못했지만, 그 시절 이십대 초반 그 아이와 함께했던 나는 순진하고 낙천적인, 그런 아이로 남아있었다.

그시절이나 지금이나 나는 내 마음을 다 안다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고, 무해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매사 그러진 못했다. 십대의 나도, 이십대의 나도 , 지금의 나도 , 그리고 미래의 나도 항상 추구하지만 도달하지 못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항상 그렇게 되리라고 , 될거라고 믿고 노력하며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엣날엔, 힘들때면 나는 ‘연금술사‘를 떠올리곤 했다.

‘마크툽‘


이 단어 하나만을 떠올리면서 힘든 시기를 견뎌냈었다.
그 시절에 힘들었던 원인은 ‘목적‘을 찾지 못함에 있었고, ‘목적까지의 여정‘에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금술사를 몇년이나 다시금 읽고 또 읽었다.

지금은 , 그 책이 아닌 ‘쇼코의 미소‘를 떠올린다.

‘잘가요 선배‘

이젠 이 단어를 떠올리면서.
아마도 연금술사가 아닌 쇼코의 미소가 이제금 떠올라지는것은, 지금의 힘든 원인은 ‘목적‘ 이나 ‘목적까지의 여정‘이 아니라.. ‘나 자신‘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힘듦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 관계에서, 아니 삶 자체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된다.
이 책에서는 너무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상처받는 모습 또한 , 내가 어디에선가, 어떻게서든 받았던 그 상처로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가족에게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었지만 , 사실은, 엄청난 이해를 받고 있었고,

어줍잖은 재능을 가지고 개구리 울음처럼 부풀려서ㅡ 과시하고팠지만, 사실은 ,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으며 수동적인 것에 능숙한 사람이었고

상당히 심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 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본인들의 의도가 아닌 일들로 인하여 멀어지기도 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상에 대하여 바른 말을 하였지만, 지나친 비난으로 상처받은 어린 사람이 있기도 하고

사실 더이상 볼 수 없는 상대를 ,, 차마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그 상실의 상처를 숨겨야만 하기도 하고.


사실 나의 입장에선, 내가 처한 현실에서 가장 많이 와닿는 단편은 <먼곳에서 온 노래> 였다.

사실, 그 편을 보고 .. 나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노래패 라는 학생운동 중심의 동아리에서 주인공 소은은, 홈 커밍데이 뒷풀이에서 80~90년대 학번 선배들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듣게 되고, 이에 미진선배가 반발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다.

아닌 것을 아닌 것이라고 말 하고, 적어도 약자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곧은 생각을 말할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비난받는 미진선배가. 그리고 그러한 비난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상처받지 않은 척 하면서 나아가지만, 실은 이십대 초반의 여학생이었다는 것을.

미진선배의 소신있던 발언들에 대해, 그리고 그 이후의 약한 모습들에 대해서도 소은은 이해하고 그녀를 따르게 된다.

그날 로터리 횡단보도 앞에서 스물다섯 선배가 흘렸던 눈물은 분노가 아니라 그때까지 누적된 외로움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구절을 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사실 그러한 점들은 남들에게 쉽게 약점이 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했다. 남에게 드러내는 사람이 좋았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도 소은처럼 그런 점들 덕분에 자주 웃었으니까. 적어도 남에게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적어도 싫은 이유가 타당하지 않은게 아닌, 그래서 좋고 싫음이 모두에게 납득이 되어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 싫은 이유가 타당하더라도 , 내 자신이 윗사람이 아닌 이상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미진 선배가 노래패에서 겪었던 그 경험 그대로 -심지어 이 노래패에서 신입생인 소은은 02학번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 그대로 지금에서도- . 그것이 결국 현실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결국 미진 선배처럼 울고 말았다.

잘 가요, 선배. 나는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고, 선배를 보내고 나 또한 그 얼굴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도.


잘 가요 선배.
나도 글을 읽으며, 소은과 똑같이 읊조렸다. 잘가요 선배.. 마치 진짜 있었던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보냈다.

어쩌면 보내는 것은 미진선배의 얼굴을 한, 과거의 나의 모습,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나도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미진선배같은 사람을 동경했고, 좋아했고, 그렇게 되고싶었고, 그렇게 된 것 같았지만.

이제는 나도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고싶고, 어느 순간에서도 쇼코의 미소처럼, 예의바르지만 싸늘한 웃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노력해서 되는게 아니라는것을 알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만 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하루 웃었다 하루 울었다 했다. 하루는 글이 잘써진다고, 이만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다가 다음날에는 전날 쓴 글을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꾸준히 써야 한다고들 말했다. 적어도 오 년을 꾸준히 썼지만 글이 늘지 않았다. 평생을 써도 아무 의미 없는 장면들만 만들어내리라는 공포가 근육을 굳게 했다."

나는, 책을 곱게 펴서 내 얼굴위에 얹었다. 보는 순간 흐르는 눈물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예술의 진짜 얼굴을 보고싶었다. 나도.
하지만 볼 수 없었고, 꿈도 꾸지 못했다. 범인의 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더욱 더 비참한 건, 예술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처음엔 아쉬웠는데, 조금 지나니 예술의 진짜 얼굴을 볼 자격이 있는 천재적인 사람에 대해서, 그냥 덤덤히 인정하게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정말 이젠 이게 아닌거구나..

예술의 열매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쇼코의 미소에서 작가를 본다.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힘들었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그 시간동안 그도 아마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이 소설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까지 , 그 인내의 시간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의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아가고, 절박하게 매달리고.. 그 과정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 이 글귀에 숨겨놓은것이 아닐까. 자기 마음을.

"미스터 김이 너에 대해서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몰라. 네가 만든 영화가 상영된 영화제에 다녀왔던 이야기도 쓰셨어"

신기하게도, 미스터김(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쇼코, 주인공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거짓말로 서로의 사정을 숨겼고, 서로의 아픔을 묻어버렸지만, 오히려 더 진실한 마음이 드러났다. 곳곳에서
솔직하지 못함에도 더 진실해서 슬펐던 , 그래서 서늘하지만 끝은 미묘하게 슬픈 쇼코의 미소였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잘 가요, 선배. 나는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서 어떻게든 눈물을 참으려던 선배의 얼굴을 떠올렸고, 선배를 보내고 나 또한 그 얼굴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마음도."

미진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선배가 러시아 유학시절 룸메이트였던 율라를 만나고 선배 이야기를 하면서, 소은은 어느샌가 선배와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학생운동 노래패의 전통을 중요시 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때는 후배가 마음에 안 들면 세워놓고 빠따로 두들겨 팼어. 그게 다 교육이었지" 라고 소은에게 충고하는 변리사 선배의 말에 "지랄" 이라는 대사로 미진 선배는 소은에게 첫 인상을 남기게 된다.

노래패의 학생운동의 전통을 끊었다고 비난받는 선배, 하지만 그러한 선배도 그 당시엔 스물 다섯의 어린 여자아이에 불과했고, 그 비난을 감당하기엔 여렸다. 그리고 소은은 그런 선배가 좋았다. 진심을 다 담아 전하지 못해 뒤늦게 러시아 땅을 밟게 되었지만.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냐고 이야기 하면서."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 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상대방의 어둠이 너무 짙어지면 그 어둠을 나눠갖지 못하는 이상, 부담감 혹은 비슷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최대한 상대에게 많은걸 베풀고 싶고 도와주고 싶지만 한계가 있음을 느낄 때 , 스스로에게도 이는 상처가 되어버린다. 결국 그 관계는 시들해지고, 멀어지고 소원해진다.

그리고 마음에 아주 오래오래 남아서 그 때 내가 좀 더 손을 내밀었으면 달라졌을까 그때 무작정 뒤돌아버린 나는 나쁜 사람이었던건가 자책하고, 그러다가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를 하고 , 그런 모습에 다시 실망을 하고, 그렇게 인생의 오랜 시간동안 생각하면서 천천히 그 인생의 일정부분을 상대에게 떼어줄 수밖에 없는. 그런 인연이 있다.

어렸을때 그토록 빛나던 언니가, 사회의 흐름에 적응, 혹은 부적응하면서 그리고 원치않는 고통을 얻게 되면서 점차 바래지고, 예전의 모습이 사라지고, 같이 한 장소에 있기조차 버거워진 모습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이를 외면했던 엄마의 이야기.

아직 이 글 속의 엄마의 나이까지 되보지 못했기에, 이런 인연을 겪어보지도, 알지도 못하지만.. 소설을읽다보면 어느샌가 열여섯 시절의 순애언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말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도 마음의 빗장을 걸어잠그고, 전혀 상처받지 않을 상대들과 함께 하며 어디엔가 있을 순애언니를 무의식적으로 밀어낸것은 아닐까.


쇼코의 미소 뿐만 아니라 이 책 안에 있는 다른 단편들도 보면, 화자가 모두 여자로서,(생각해보니 장강명 외에 자신의 본래 성이 아닌 반대의 성별을 주인공으로 쓴 사람은 본 적 없는것 같다) 섬세하게 심리의 변화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같이 사는 가족과의 관계에서부터 , 선배, 이모, 교환학생으로 알게 된 일본 여자아이, 나이로비 출신의 남자, 엄마, 할머니, 손녀 등..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슬픔이 담겨있지만 공통적인 점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빚어내는 아픈 순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시니컬하거나, 객관적이라기 보다, 좀 더 따뜻하고 조금은 처연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파는 아닌 , 현대적이면서도 과거의 한국소설을 조금씩 담아놓은 느낌이었다.

요즘들어 허무주의이거나 시니컬하거나, 결국엔 답이 없다는 점을 열린 결말로 내놓은 현대소설이 많은데, 그 중 이 소설은 그런 열린결말을 허무함이 아니라 좀 더 애틋함을 담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중요함을 알게되는 시점은 왜 그 관계가 끝나고 나서일까.

그 과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 이 소설은 두고두고,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아직도 그 주인공들의 마음의 잔물결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서 파동으로 일렁이는 듯하다.
오랜만에 마음의 매듭을 맺은것 같다.







ps-작가의 말도 감동이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

나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강 신청합니다 꼭 가고싶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